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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1. 개요
俳句
5.7.5음절과 키레지, 키고로 이루어진 일본의 정형시.
일본의 고유 정형운문문학인 와카는 5-7-5-7-7 총 31자로 구성되는데 이를 변형하여 한 사람이 5-7-5 음절로 전반부를 지으면 다른 사람이 7-7 음절로 답가를 지어 부르는 놀이 형식 시가인 렌가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후반부에 해당되는 7-7 부분을 뺀 5-7-5 부분만이 독립적으로 시가의 형식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렌가의 '첫 구절' 이라는 뜻으로 홋쿠(発句)라고 불렸다. 이 홋쿠는 에도 시대에 하이카이라는 이름을, 메이지 시대부터 하이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1].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규칙 등이 생기거나 변형되면서 하이쿠는 점차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서 정체성이 확립되어 나갔기 때문에[2] 홋쿠와 하이카이, 하이쿠를 같은 문학으로 볼 수도, 별개의 문학 장르로 나눌 수도 있다.
문명권에서 창작된 운문 문학 중 길이가 가장 짧은 장르로 꼽힌다. 본래 와카는 귀족이 주로 지었으나 하이쿠는 대부분 평민이나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문학자들이 지었다. 이는 하이쿠의 뿌리라고 생각되는 렌가가 본디 놀이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자유로움이라고 생각되고 있는데 실제로 하이쿠는 당시 다른 문학들에 비해 문학적 가치나 품격에 대한 제약이 적어 훨씬 자유로이 시를 지을 수 있었다. 일례로 마츠오 바쇼는 말똥을 주제로 하이쿠를 지어 동시대 문인들은 물론 후대에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또 정치 풍자나 기존의 문학을 비판하는 것처럼 저자의 생각을 자유로이 드러내는 오늘날의 칼럼과 비슷한 하이쿠들도 많이 지어졌다.
현대에도 활발히 창작되고 있으며 한국의 시조와도 일정 부분 비슷한 면을 공유한다. 또 아시아 문화권의 문학 장르 중에서는 서구권을 포함해 범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2. 특징
행 3개에 각각 5-7-5 음절씩 말을 이루는 것이 기본 구조이며 계절의 특성을 드러내는 키고(季語), 한 호흡을 끊어 여운을 주는 키레지(切字)를 포함하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런 단어나 묘사가 없으면 센류라는 또 다른 장르로 분류하곤 한다. 다만 밑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무키(無季)라고 하여 키고가 없는 하이쿠도 있기에 완벽한 구분법은 아니다.[3]
촉음(っ)은 독자적인 한 음절로 치지만 요음(ゃ,ゅ,ょ)은 앞의 모음에 부속되었다고 간주한다. 작은 모음들은 한 음절로 카운트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현대에 지어지는 하이쿠들은 가타카나를 포함하는 경우도 많은데 가타카나의 장음부(ー)가 포함될 경우 이는 히라가나의 장음과 마찬가지로 한 음절로 센다.
5-7-5음절로 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해당 형태를 벗어나 창작하는 것은 음률을 깨뜨린다는 의미의 파조(破調)라고 불리지만 엄격하게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마츠오 바쇼가 남긴 하이쿠 중에서도 5-7-5음절을 지키지 않는 것이 종종 있고, 심지어 10-7-5를 남긴 적도 있다. 음절의 엄격한 준수는 특유의 리듬감을 형성하며 반대로 파조는 강한 위화감을 준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파조를 이용해 리듬이 깨지는 데서 오는 위화감을 시상과 연계시켜 의미 있게 만드는 작품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 개중에는 파조를 넘어서 완전히 독자적인 음률을 사용하는 자유율하이쿠(自由律俳句)란것도 있다. 리듬을 깨뜨리는것은 파조와 자유율 모두 동일하나 파조의 경우에는 약간의 변형은 있을지언정 5-7-5조와 17음절, 키고의 사용 등 기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반면 자유율은 대부분 5-7-5조와 17음절의 기본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구어체로 작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키고의 유무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이 또한 아주 절대적인 구분 형태는 아닌지라 언뜻 보기엔 파조로 보이나 창작자의 의도는 자유율인 경우도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2.1. 키레지(切れ字)
무로마치 시대에는 렌카에 이하 18종류의 키레지를 정리하여 사용했다.
하지만 에도 시대에 이르러 하이쿠는 독자적인 장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립시키기 시작하였고 마츠오 바쇼는 키레지를 정형화시키지 않고 화자가 끊어야 할 때 넣는 모든 글자를 키레지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현대에 창작되는 하이쿠에서 키레지는 문맥을 끊으며 운율을 맞추기 위해 여운을 넣는 모든 글자를 키레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키레지를 넣는 이유는 흐름을 끊고 시상을 전환하기 위해서이다. 정석적인 하이쿠는 한 개 내지 두 개의[4] 시상을 포함하는데 이는 하이쿠의 짧은 형식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조금이나마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키레지를 넣어 흐름을 끊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 아래 예시를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쉽다.
古池や
蛙飛び込む
水の音
Fu ru i ke ya
ka wa zu to bi ko mu
mi zu no o to
오랜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니
물 튀는 소리
이 하이쿠는 마츠오 바쇼가 지은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쿠로 꼽힌다.[5] 또 하이쿠 창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를 가진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6]
본 하이쿠의 키레지는 첫 단의 や로, 오래된 연못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시상에서 가까운 장면으로 클로즈업하며 개구리가 뛰어드는 시상으로 발전한다. 이를 키레지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엮은 것. 위 하이쿠에서 시상의 전환은 단지 먼 뷰에서 가까운 뷰로의 변화일 뿐이지만 아예 다른 장면으로 전환하거나, 주제는 같지만 전혀 다른 장면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 활용이 가능하며, 정석적으로는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하이쿠가 기존의 와카에 비해 자유도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문학 중 하나고 그만큼 형식에 제한되어 있는 부분도 많다. 두 개 이상의 시상을 창조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며 이것이 하이쿠에 있어 키레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2.2. 키고(季語, 계어)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다. 하이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모든 하이쿠는 춘하추동(봄, 여름, 가을, 겨울) 중 하나를 상징하는 단어를 넣어 그 계절을 표현해야 한다.
보통은 한 작품에 하나의 키고를 넣어 창작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예외도 있다.
키가사나리(季重なり) : 두 개의 키고
키고가 겹친다는 뜻으로, 강조하고 싶은 키고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다른 키고는 계절감을 옅게 하는 식으로 강약을 조절한다. 단 키가사나리도 서로 다른 계절의 키고를 사용하면 이는 작품으로서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 때문에 키가사나리를 하게 될 경우에는 절대 다수가 같은 계절의 키고 2개를 사용한다.
무키(無季) : 키고가 없음
언뜻 키고인 것처럼 보이는 단어가 있긴 해도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다.
키고는 5글자 내외의 일반명사형인 경우가 많지만 간혹 冴ゆ(맑고 깨끗하다)와 같이 동사형인 경우도 있으며 鷹鳩と化す(매가 비둘기로 변하다), 龍淵に潜む(용이 연못에 숨다) 같은 문장형 키고도 존재한다.[7]
키레지가 형식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면 반대로 키고의 경우 계절의 흐름을 나타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단어가 키고로 취급된다. 반드시 하나의 단어일 필요도 없으며 寒い風(추운 바람, 겨울이 오고 있음을 상징.) 등 다양한 서술을 넣어 특정 계절의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많다. 春風(봄바람) 등 그 계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키고 또한 많다. 즉, 키고의 선택에 있어서는 사실상 어떠한 제약도 없으며 시의 한 부분이 특정한 계절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자유도 때문에 오래된 하이쿠들 중에는 대체 어디가 키고이고 어디에서 계절을 짐작해야 하는지 알기 힘든 하이쿠도 많다. 또 이미지와 키고가 가지는 계절의 의미가 헷갈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8]
물론 자유도가 높다고는 해도 하이쿠의 형식 탓에 길게 서술하거나 돌려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용 상 두 가지를 표현하기도 벅찬 경우가 많으며 셋 이상을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9]
일반적으로 키고로서는 특정 계절에만 볼 수 있거나 특히 두드러지는 기상 현상, 동/식물 및 곤충[10], 기념일(주로 전통적이거나 대중적인)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위에 키레지의 예시로서 언급된 하이쿠의 키고는 개구리이며, 아래는 대표적인 키고의 몇몇 예시다.
봄 : 꽃(花), 벚꽃(桜)
여름 : 장마(つゆ 혹은 五月雨), 매미(蝉)
가을 : 단풍(紅葉)
겨울 : 눈(雪), 정월(正月)
현대에 와서는 크리스마스, 졸업식, 입사식 등을 키고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너무나 길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를 참조할 것.
3. 서양에서의 인기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오히려 서양에서 인기가 매우 상당하다. 하이쿠는 일본의 옛 운문 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북미, 유럽, 남미 등 서양권에서 인기가 많은데 20세기 이후 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서양의 문학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하이쿠의 간결함과 문학적 깔끔함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미지즘(추일서정, 외인촌 같은 시를 다룰 때 나오는 그 이미지즘) 시인들의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In a Station of the Metro-
-지하철 정거장에서-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Petals on a wet, black bough.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에즈라 파운드의 대표작 "지하철 정거장에서". 단 두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목을 포함한 세 줄짜리 영문 하이쿠라고 평해진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60년대부터 하이쿠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에서 상당히 대중화된 문학장르다. 일본 여행 시 일본의 오래된 정원이나 경치가 좋은 공원 같은 곳에 가면 상당수의 젊은 서양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앉아 종이에 뭘 끄적이는 걸 볼 수 있는데 대개 하이쿠를 짓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여행 관련 프로그램의 일본 가고시마 지역편에서 미국 대학생 관광객이 정원 벤치에서 하이쿠를 짓는 것을 인터뷰와 함께 보여준 적도 있다. 지역 문화센터의 하이쿠 강좌는 물론이고 교과서에도 하이쿠가 소개되었다. 하이쿠 창작 대회도 열릴 정도.
철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구조주의 철학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었던 롤랑 바르트가 일본의 하이쿠에 강한 인상을 받아서 그의 철학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양에서는 유명인들이 자작 하이쿠를 짓거나 읊기도 한다. 다만 그 중에는 엄밀히 말하면 하이쿠라고 보기 힘들고 오히려 센류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버락 오바마가 읊은 하이쿠
"봄과 녹색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우정, 나고야카니, 즉 평온하도록"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조너선 슈워츠 전 CEO가 지은 퇴임사 하이쿠
¿Es un imperio
제국인가?
esa luz que se apaga
그 꺼져가는 불빛이
o una luciérnaga?
아니면 반딧불이인가?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하이쿠에 푹빠져 스페인어 하이쿠를 여러 편 지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 작가 옥타비오 파스는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를 굉장히 좋아해 바쇼의 하이쿠를 직접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릴리아도 사전 지급 토큰 이름이 '릴리아의 하이쿠'였고 일본 문화 쪽 컨셉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4. 기타
유명한 하이쿠 시인(俳人)으로는 마츠오 바쇼, 고바야시 잇사, 마사오카 시키 등이 있다. 바쇼는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 등장해서 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한국인에게도 약간의 인지도가 있는 편. 조 아라키가 스토리를 맡은 만화 바텐더(만화)와 소믈리에르를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할 사람이기도 하다.
어도비 포토샵 CC 2015 버전의 코드네임이 하이쿠이다.
한국어 Siri에게 삼행시를 들려 달라고 하면 우리가 아는 그 삼행시 대신 음절 파괴 버전으로 변형된 하이쿠가 나온다. 아예 단적으로 하이쿠임을 보여주는 시도 있는데 "5음절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7음절이 더 나타납니다./ 5음절 더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