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년 휴가 때, 어떤 자연 휴양림에서 겪었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휴양림 안에 아주 근사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예약해서 시간 맞춰 입장했습니다. 그 식당의 자리는 산 중턱에 있었고 경치가 한 마디로 “끝내준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여유롭게 혼자 여행도 다니고 좋겠어요.”
솔직히 저는 이 식당을 보고는 이곳의 주인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경관 안에서 여유를 느끼면서 책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바라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주인이 얼마나 좋아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 식당 주인이 저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평화스러운 곳에 살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이 진정으로 평화로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이분께서도 저를 바라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평화로울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 식당 주인을 부러워하면서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함을 아쉬워합니다. 그 아쉬움 속에서 평화는 깨지고 맙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남이 가지고 있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삶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니 평화롭지 못해서 계속 두리번거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지요.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를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세상이 가리키는 평화와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를 칼로 잘라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평화를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함이 진정한 부러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먼저 당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라. 다음으로 그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곧바로 그 일에 착수하라(H. L. 린트).
사진설명: 성 보나벤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