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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이미 성렁님과 연결되어 있고, 진정 자신이 얼마나 분별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든지 간에 따지고 보면 성령님 자체가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면서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것이기에 이미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는 누리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실제들이 그렇다고 복음의 명료함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고, 더 나아가 강렬함 가운데 있다는 의미인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인데 잘 통찰하면서 살펴 보면 그와 같은 복음의 명료함, 게다가 강렬함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완벽한 조화 및 완전한 하나되심에 대해 조금 이라도 제대로 통찰하고 최소한이라도 명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체이시고 하나님 만큼이신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체이시고 하나님 만큼이신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이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게다가 동일하게 하나님 자체이시고 하나님 만큼이신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성령님께서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함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신 모든 모양의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의 절정인 것이자 최고의 실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로 하나되심에 있어 단 한 위격일지라도, 단 한 번일지라도, 잠시일지라도 분리되시거나 빠져도 되시거나 별개이실 수가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말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며, 성령님께서도 말씀의 영이신 분인 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렇듯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분인 것이며,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말씀의 신앙과 함께 기뻐 역사하시면서 말씀 그대로 다 이루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꾸어서 강조하면 성도 개인이 더욱 살고, 가정들이, 교회들이, 교단들이, 교계가, 나라 전체가, 더 나아가 이 세대 전체가 더욱 살려면 이와 같은 삼위일체에 대해 절대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삼위일체라는 것은 오늘날의 신학과 교계 전반적 구조에서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미흡하고 이상하리 만큼 미미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것처럼 여러 신학의 범주들 중 한 측면인 조직신학 속에서의 구석에서 부분적으로 잠시 다루어도 괜찮은 차원 정도일 수가 없는 것인데, 사실 조금만 따지고 보고 통찰해 봐도 오히려 그와 완전 반대의 차원과 현안과 과제인 것으로 모든 구약과 신약의 말씀, 모든 신학 영역들, 모든 교리들, 모든 신앙적, 복음적, 삶의 실제와 현장과 영역에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이고, 모든 근본이자 현실이며 다리이고 열쇠이며 검증이고 생명인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에 있어 근본적, 실존적인 실체인 것이기에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서의 모든 영역과 사안과 요소들에 있어 삼위일체적으로 제대로 통찰하고 연계하며 해석하지 않으면 사실상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온전하기 힘들고, 강렬해 지기는 더 힘들며, 죄악 및 세속화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이단화에 있어서도 자유할 수 없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 교회 안에서 조차도 적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적인 문제들에 빠지고 있고, 장년들이 복음의 견고함과 강렬함보다는 세속적인 시험과 유혹들에 자주 휩싸이곤 하며, 교회들의 주변과 온 지경에 있어서 까지도 이단, 사이비들이 여기저기서 득세하고 있고, 실상 이 땅의 교회들, 교단들, 교계 전체, 더 나아가 열방과 이 세대 전반에 있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마치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시로 음행과 우상들, 불신앙과 세상적 이치에 복속되었던 것과 점점 더 많이 유사하게 되어 지는 때에 삼위일체에 관한 것들이야 말로 가장 중대하면서도 긴급한 방책이자 무기일 수 있는 것인데..
곧 삼위일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통찰하게 되고 명료해 짐과 함께 그 속에 직결되고 예비되어 있는 말씀으로의 결단,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열정에의 회복이 모두 함께 일어나 다시 살게 되고, 더욱 강해 지게 되며, 실질적으로 저항하게 되고, 굳세게 맞서면서 이길 수 있게 하며,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변화되고 역전되며, 더 나아가 생각 이상으로 흥왕케 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와 통로, 관건과 열쇠인 것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센터 대표이사&대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행복카페교회
담임목사 양범주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21세기 두란노 서원 1부, 2부 통합(서문 추가)/20261023>
*1부/사무엘하 21장 QT/20261014/21세기두란노서원/'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삼하21:1~6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죄악을 범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로 인한 막힘들 및 그에 합당한 징계들이 있는 것이고, 최대한 빨리 자복하면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시편 39편 10~11절에서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라고 증거되어 있고, 시편 89편 30~32에서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라고 증거되어 있으며,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증거되어 있고, 히브리서 12장 4~7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증거되어 있는 등과 같은 말씀들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들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진정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이고,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아가게도 하시는 것이며, 때로는 범한 죄악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와 계획과 시간에 따라, 또는 그 당사자의 사명과 영성과 준비도에 따라, 더 나아가 그 공동체나 지경이나 후대의 끼칠 영향과 결과와 열매들까지 고려하시어 생각 이상으로 곤고하고 고통스러우며 비참케도 하시곤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러한 때에는 반드시, 최대한 빨리 다윗이 아래 본문을 위시해서 여러 모양들로 실천했던 것과 같이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인데 그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와 같은 다윗의 때를 포함해서 구약의 모든 때에 있어서든지, 또한 신약 시대 초대 교회 공동체의 때에서나 오늘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든지 간에 유일한 방법, 유일한 길,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방법, 다른 구원자는 없는 것이고, 반면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는 실질적인 사함과 나음들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와 같은 자복과 사함들, 돌이킴과 회복들은 일종의 구원의 역사인 것으로 실제로 모든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에 걸쳐서 오직 한 분 구원자 예수님, 반드시, 전적으로 예수님으로 인해서는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을 수 없는 것으로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본성, 본질, 능력, 역량, 수준, 가치, 분량에 있어서 하나님 자체이신 분인 것이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은 모든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뛰어넘는 등 모든 것들을 초월하시는 하나님만큼의 구원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 온 우주보다 더 크시고 영원보다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 곧 하나님 자체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모든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유일한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필요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모든 것들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만큼으로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정말 모든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초월해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약의 때에 있어서 뿐 아니라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구약의 때에 있어서도, 게다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대략 2000년이나 지난 오늘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우리 후세들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도 전적으로 구원자이실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온갖 모양의 구원의 역사들에 있어 유일한 길과 방법이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래 본문 및 뒤이어지는 말씀에서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그 민족을 위해 함께 자복하며 돌이킴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이자 유일한 방법도 오직 한 분 예수님이신 것이고, 그러한 예수님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며, 사실상 하나님 아버지께로의 제대로 된 기도 한 번도 아예 불가인 것입니다..
다만 아래 본문의 다윗의 때와 같은 구약의 시대 때나 오늘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예수님이신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 섭리와 인도 안에서 그 모양과 방식과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곧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은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구약의 때에 있어서는 아직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때가 아닌 것이기에 근본적으로는 동일하신 예수님이신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면서 구원에 값없이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간구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혹 아래 본문 등에서와 같이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최우선으로 하면서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특히 수시로 기도가 가능할 수 있도록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준비하시고 구약 성경 곳곳에서 수없이 많이, 온갖 모양들로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인 것이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올려드린 희생 제사, 다양한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더 나아가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깨어진 반석, 할례, 회막, 지성소, 성전, 제사장, 사사,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상 아래 본문에서의 다윗과 같은 기름 부으심을 입은 왕도 그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적으로 정확하게 정리하면 그와 같은 자복과 사함과 같은 구원의 역사를 위시한 모든 모양의 구원의 역사들에 있어, 참으로 일종의 구원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구약과 신약 시대 등 모든 시대들, 나라들에 걸쳐서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은 오직 한 분 그와 같은 구주 예수님이신 것이고, 게다가 그 어떠한 구원의 일들, 그 어떤 종류의 구원의 역사들에 있어서도 단 하나, 단 한 번에 있어서까지 예수님 단독이신 것은 아닌 것으로 동시에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은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동시에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은 성령님이신 것인데 특히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생생하게 나타내시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 뒤에 이어지는 사무엘하 21장 14절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와 같은 죄악에서의 자복 및 돌이킴과 함께 정말 사함과 나음, 회복과 기도 응답과 같은 역사가 뒤따르게 된 것인데 그에 있어서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복과 돌이킴 및 그에 있어서의 결과들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악들이 사해 짐에 있어서는 그것이 작아 보이는 것이든지, 또는 억만 죄악들이든지 간에, 심지어는 원죄까지 포함한 이신칭의의 구원에 이르는 목욕과 같은 죄사함이든지, 게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면서 범하게 된 죄악들이든지 간에 어쨌든지 모든 모양의 사함들에 있어서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영역이라는 것이고, 그와 같은 하나님 자체이신, 하나님 만큼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을 뛰어넘고 초월해서 다 이루신 구원에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고, 완전히 충분하다는 것이며, 참으로 그에 있어 달리 더 보태야 하거나 추가로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리의 어떤 행실들이, 공의들이, 다른 모양의 추가와 보완들이 보태지고 뒤따라야 사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더 강조하면 당연히 모든 모양, 모든 종류의 사함들은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다 포함되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전적으로 합당하고, 완전히 충분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무엘하 12장 13~14절에서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다윗은 어떤 합당한 행실의 추가나 자체적 갚음 없이 단지 자복만으로 간음과 살인 교사와 같은 죄악들에서도 일단은 사함 받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다윗의 죄악들이 결코 작을 수 있거나 조금이라도 가벼울 수 있어서가 아니라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그 이상으로 강력하고 측량할 수 없는 정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러한 자복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돌이킴이 함께 여야 하고, 분리되어서는 안 됨은 잘 통찰해 보면 그와 같은 돌이킴이란 사실 말씀으로의 돌이킴, 말씀 신앙의 회복인 것으로 우선은 이전의 죄악들에서 그와 같은 말씀으로의 제대로 된 돌이킴과 말씀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도 자복과 사함은 선행되어 져야 하는 것이고 그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인 것인데 어쨌든 그렇게 제대로 된 돌이킴과 함께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 아니 반드시 되어야 함은 정확하게 따져서 죄악들에서의 사함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아래 본문과 이후에서와 같이 기도의 응답의 실제 등과 같은 하나님으로 인한 온갖 모양의 능력과 역사들의 회복과 누림들, 역전과 흥왕들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고 필수적이며 절대적이기까지 한 것이기 때문이고..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는 진정한 믿음, 자복 등에 있어 받으시기에 합당한 믿음에 있어 행함이 분리될 수없는 측면을 고려할 때 그 전에 자복에 있어서의 진정성, 자복에 합당한 믿음에 있어서의 증거라 할 수 있는 면도 어느 정도는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그런 차원에서는 고려될 수는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관련된 모든 부분들 하나하나에 있어 전적으로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최대한의 말씀대로의 돌이킴 및 최선을 다한 말씀대로의 회복이 별개,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사실은 그 자체부터도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들로 되는 것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이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하는 것으로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서, 신앙의 영역들에 있어서 모두가 성부, 성자,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범한 죄악들에 있어서의 자백, 자복, 회개와 함께 말씀으로의 돌이킴, 말씀 신앙의 회복이 중요하고 필수이며, 긴급하고 절대적이기까지 한 이유 또한 조금도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성령님께서도 말씀의 영이시기에, 그렇듯 넓게 보면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모든 것들을 실행하시면서 말씀 그대로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사무엘하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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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페북두란노서원66' 중 요한일서 파트/20261021/21세기두란노서원/'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한일서3:7~10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납득이 어려운 부분들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범할 수 없다는데 아직도 크고 작은 죄악들에서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난 구원을 못 받은 것인가, 아니라면 구원을 받았으나 구원이 돌이켜 졌거나 돌이켜 지게 되는 것인가, 혹은 난 여전히 마귀의 자식인가 등의 심각한 의문과 고민과 문제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진정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실상 육신으로 범하는 죄악들 뿐 아니라 마음으로, 눈으로 범하는 죄악들도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사실상 날마다 순간마다 범하게 되는 죄악들이 작을 수 없지 않은 현실과 실정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나 불일치나 혼란도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에 있어서는 먼저 죄의 본질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인데 참으로 죄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고, 실상 일반적 상식으로도 이 나라에서도, 세상 모든 나라에서도 법을 어기는 것이 죄인 것이기에 원론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쉬운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이자 절대 의이며 완벽한 선이고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것이기에 말씀을 어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처음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이 죄의 시작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 출발점에는 뱀의 형상으로 상징화된 사탄이 있는 것인데 실제로 성경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사탄은 늘 죄악들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러한 죄악들이 사탄의 밥과 같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언제나 한 편이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것임을 군데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게 상호작용하는 한 통속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바로 그러한 죄, 사탄의 세력과 음부의 권세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사나우며, 많고 오래 반복되며 심화되어 왔고, 사실상 전방위적이면서도 입체적인 것이며, 게다가 영적인 것이라 그에 있어서 그 누구라도 그 자체로는 스스로 이기고 해결할 수 있는 인생은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세상 그 어떠한 힘과 방법과 도구들로도 제대로 극복하기란 아예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모든 기대와 소망은 오직 한 가지 방법과 통로뿐인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으로 인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구원의 일들에 직결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진정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실 뿐만 아니라 다 포함하시며,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 곧 말 그대로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으로 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상상도 다 못하며 심지어는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죄와 문제들, 사탄과 음부의 세력들, 사망과 심판들보다 더 크시고 다 포함하시며, 그에 있어서의 모든 사함과 나음들, 평화와 승리들, 복과 생명들보다 더 크시고 다 포함하시는 바로 그러한 성자 하나님이신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만한 가치와 권세들,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믿음으로 참예케 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예정하시고 준비하시며 진행하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대로 그 시간에 따라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참예케 됨과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덧입는 방법뿐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 이든지 간에 바로 그렇게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구원의 일들에 대한 사실을 알고 깨달으며, 말씀대로 인정하고 믿으며, 고백하고 결단하는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인데 동시에 그로 인해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가운데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해 정말 대략 2000년 전의 그 십자가 구원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의 죄인 중의 죄인이자 억만 죄인이라 할 수 있는 바로 나 같은 자를 위시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의 모든 합당한 자들의 구원도 될 수 있게 하고,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의 거듭남도 될 수 있게 하며, 더 나아가 날마다 순간마다, 세상 끝 날까지, 진정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데 있어서까지 계속적인 하늘의 힘과 경험들이 되는 것이고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진정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구원의 일들, 다시 말해 거듭남과 누림들은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정말 믿고 받아들일 때 실제가 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실상은 이미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모든 게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다 이루신 것에 참예하는 것이기에, 게다가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인해 실제로 거듭남이 되고 이미 시공을 넘어 완전히 인 쳐진 것이기에,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약속과 준비와 함께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이미 진행된 것이기에,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이미 실제가 되고 확정이 되며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나고 확정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까지 처음의 믿음과 함께 이미 정해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전적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기에 또 다시 돌이켜 지고 취소케 되는 차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곧 구주 예수님을 제대로 구원자로 깨닫고 믿으며 고백하고 영접한 그 순간에 이미 마치 준비된 옷을 껴입듯이, 실제로 벌써부터, 실상 오래 전부터, 사실은 처음부터 예비된 것임이 아닐 수 없듯이 다 진행이 된 것이고, 실제로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믿음과 함께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새로워 진 것이며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사실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계획과 예정 가운데 그 속에서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정말 제대로 믿어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한번 실질적인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은 그러한 구원이 중간에 취소되거나 돌이켜질 수 있는 차원이나 개념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실제로 행위 자체로 인해 구원의 참예케 됨의 유무에 있어 기준이나 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듯이 그 어떤 행위들 자체에 의해 구원이 돌이켜 질 수 있는 개념이나 차원일 수가 없는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고 중간에 인간적 행위에 따라, 행위에 있어서의 허물에 따라 구원이 취소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누구든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한 완전할 수는 없고 오히려 날마다 순간마다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은 하나하나 다 헤아려 보면 머리털보다도 더 많게 될 수 있는 실상인 것이기에 아무도 구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이치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원론적, 근본적으로는 추후의 아무리 큰 죄악들이나 아무리 사악한 세력들이라도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만한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이미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보다 더 클 수 없고, 또한 구원의 모든 과정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인 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보다 더 클 수 없으며,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뜻과 섭리, 약속과 예정보다도 더 클 수 없고,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하게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심보다 더 클 수는 없는 것으로 구원의 세계에 있어, 복음의 세계에 있어 구원 자체가 변개가 되고 돌이켜 진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과 더욱 더 심각한 혼란일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신앙적 요소들, 영역들 하나하나에 있어 부딪힐 수 있게 되거나 불합치가 될 수 있는 것인데..
만일 그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모든 것들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누구든 자기 자신부터 구원이 일백 번 더 돌이켜 져야 했을 것이고, 구원의 확신 자체부터가 불가가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다른 그 누구보다 간음에다 살인 교사와 같은 죄악들을 범한 다윗부터, 게다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며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베드로부터 구원이 돌이켜 져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특히 복음에 있어 아주 중요한 면이자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고,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혼동과 왜곡과 오류들이 있기도 한 것이면서 심지어는 이단들이 훔치거나 오용하고 있기도 한 측면인 것이기에 다시 한 번 더 근본적이면서 원론적인 면에서 강조하면 우리 인생들의 행위들, 공로들 등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서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의 할례가 그러한 것이었듯이 그 자체로는 조금이라도 결코 좌지우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어떤 기준도 될 수 없는 것이듯이 그와 같은 인간적 행위들, 잘못들에 의해 이미 참예케 된 구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든지 취소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일 수가 없는 것으로 그러한 가능성과 해석적인 시도는 그 자체로 그와 같은 이치와 원리 상 말이 안 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해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 인생들의 행위들이나 죄악들에 따라 정말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 의미나 개념이나 실제인 것이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하는 실상인 것이기에 더 이상 추가로 아무 죄악들 없이 살면서 끝까지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자, 중간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을 자는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이치와 실상인 것이기에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다윗의 간음과 살인 교사와 같은 죄악들을 위시해 솔로몬의 우상 숭배, 베드로의 세 번 부인 뿐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는 부인 등과 같은 끔찍한 죄악들, 있을 수 없는 죄악들에도 구원이 돌이켜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 통치와 섭리 안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력과 본이 되는 선배들로 남을 수도 있었던 것이며, 아울러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있어서의 이 세상에서의 온갖 연약함과 허다한 허물들, 크고 작은 죄악들, 더 나아가 심각한 죄악들에 있어서도 실제로 구원이 돌이켜지지는 않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자복하면서 믿음으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오히려 반대로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 통치와 섭리 안에서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고, 생각 이상의 역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조금만 따지고 봐도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구약이나 신약 시대, 초대 교회 공동체의 믿음의 선배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인데 진정 구원에 참예한 자라 하더라도 아무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가시적인 죄들, 부지중의 죄들이 없을 수 없음은 꼭 원죄는 굳이 따지지는 않더라도 잘 통찰해 보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렇게 두꺼운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이자 법들인 것이기에 아무도 그 스스로는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중간 중간에 말씀들을 어기면서 적지 아니 유혹들에 빠지고 크고 작은 죄악들을 실제로 범하곤 하는 실정인 것이며, 실상 현실적으로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조금도 어기지 않음은 불가한 일인 것입니다..
특히 웬만한 죄들과는 잘 싸우고 십계명이나 눈으로 드러나는 죄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물리친다고 하더라도 실상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이나 눈으로, 또는 생각으로 범할 수 있는 죄들도 많은 것이기에,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 15절에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에 준하는 죄인 것이고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별의 별 일들이 다 있는 세상 속에서의 인간인 이상 아무도 그에 있어 별개이거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인데 어쨌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라고 하더라도 그 누구든, 심지어는 그렇게 대단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처럼 죄악들 그 자체로 봐서는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들까지도 고백하게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며, 사실은 모든 인생들에 있어 날마다 순간마다 범할 수 있고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죄악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 누구도 억만 죄인이 아니기 힘든 실상인 것이고, 더 나아가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인 자들이라도 죄악들에 있어 믿지 않는 자들과 모양과 정도와 강도와 분량들 등에 있어서 차이들이 작을 수야 없는 것이겠지만 어떤 모양으로건 얼마만큼이든지 간이 죄악들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며, 사실상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세상에 임하신 구주 예수님이 아닌 한 그 누구라도 무흠한 자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사실상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들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모든 실제들을 감안한다면 아래 본문에서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준과 방향과 표준을 보이신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과 살아 있는 믿음에 있어 목표와 목적지를 알려주는 말씀인 것으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끊임없이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며 혹 범하게 된 죄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갈수록 더 말씀으로 몸부림침과 함께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강렬하고 충만해 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 백성들의 정체성과 과정과 위치와 강령과 목적 등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말씀들, 약속들 중 많은 종류와 영역들이 우리 인생들에 있어서, 특히 나 자신에 있어서 이미 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말씀들이 많고, 게다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도 처음부터 성숙되거나 믿음이 다 완전하고 이미 모두 완성 되었다기보다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들이 허다하며, 점점 더 자라고 장성하게 되는 시간들이 누구든 필요치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진정 목회자나 장로, 신학 박사라 하더라도 크고 작은 허물과 부족함들이 적을 수만은 없는 것이며, 모두 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주님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성화되어 가는 길과 과정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를 들어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를 범하게 된 때는 다른 무엇보다 '아 이것은 아니지, 난 죄악의 사람일 수 없지, 마귀의 자식이 아니지, 난 죄를 범할 수 없고 죄악이 나를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으로 나를 구하셨지, 모든 죄와 그로 인한 대가들을 다 치르시며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의 일들을 다 이루셨지, 이미 나를 도우셨고 분명 계속해서 나를 도우실꺼야, 이러한 죄악들도 이기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어떻게든 극복하게 하시고 역전되게 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오늘도 새롭게 하시고 하늘의 힘을 주시며 말씀대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며 최후 승리를 주시지, 하나님께서 힘주시면 나도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지'라고 하면서..
십자가 붙잡으며 더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속에서의 그 예수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실제적인 은혜와 능력을 더욱 사모하고 의지하며 각성하고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키며 더욱 더 말씀대로 믿고 붙잡으면서 더더욱 몸부림쳐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믿음이야 말로 가면 갈수록 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붙잡고 의지하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얻어 더욱 죄악들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또 다시 범하게 되는 죄악들도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고, 또다시 더더욱 말씀으로 치열해 지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러면서 점점 더 치열하고 뜨거운 믿음, 곧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갈수록 더 강해지고 견고해 지게 되며, 깊어지고 복되게 되며, 승리케 되고,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께서 사실상 시간과 공간들에 제한되지 않는 모든 구원을 다 이루셨고, 이미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죄와 음부의 세력들에서 승리하셨으며, 그 가치와 능력과 권세들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죄악들, 다시 범할 수 있는 모든 죄악들보다 크고, 악한 세력들의 힘과 권세들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일 뿐 아니라 진정 측량도 다 못하며, 상상도 다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강력한 것이고, 또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이신 성령님의 법에 이미 속해 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하는 죄악들이 원론적으로는 효력을 발할 수 없고 당연히 구원도 돌이켜 지게 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반복하는 죄악들에 있어 아무 일도 없거나 그러한 죄악들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것이거나 진정 하나라도 용납될 수 있다거나 어떤 이단에서 함부로 주장하는 것처럼 회개가 중요치 않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 등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완전히 반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그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필요한 대가를 어느 정도까지는 합당하게 치르게 하시고, 책임을 물으심과 함께 일정 시간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과 같은 복들을 막으시며, 그 대신 하나님의 시간에 맞게 아비의 심정으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고, 어떤 때는 생각 이상으로 곤고하고 수치스러우며 비참케도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는, 특히 삶의 자리에서도 공중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이 왕 행세하고 대적하며, 죄와 사탄이 계속해서 속이고 가리기 쉬우며, 반면 우리 인생들은 많이 우둔하고 연약하며 악영향을 자꾸만 받으면서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서 적지 아니 헤매고 종종 넘어지고 혼동되며 혼잡해지고 침륜에 빠지기도 하며, 스스로를 정죄하고 절망하곤 하고, 게다가 그러한 크고 작은 죄악들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지지는 않겠지만 한 때의 다윗이나 솔로몬 등의 죄악의 결과들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탄의 심각한 구실과 공격이 되곤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은 것이나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나님 안에서는 방법이 있고 뜻밖의 기회가 되어 어떤 연단이나 훈련들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약속대로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정직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더 놀라운 역사들도 보게 될 수 있게 하고, 더욱 엄청난 계획을 위해 준비되어 지는 통로가 되기도 하며, 실제로 심히 부족하고 연약하며 허물이 많고 진정 최악의 모습이나 상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면서 새롭게 더욱 더 절실하고 치열하게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음과 함께 오히려 전혀 짐작도 못했던 반전이나 역전들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들도 참 많은 것입니다..
실상 가장 좋고 복되며 풍성하고 강력하게 되는 것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내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의지하면서 크고 작은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 혹 범한 죄악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 십자가 피권세가 그 어떠한 죄악들보다 더 크고, 진정 구주 예수님께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이미 다 대속하셨으며, 바로 그 이름과 함께 처음부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하늘의 권능으로 실제로 도우심과 효력들, 곧 나음과 사함들, 회복과 역전들이 되게 하심을 기억하면서 최대한 빨리, 철저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실질적인 사함과 나음들 등도 정말 확신하고 사모하며 누릴 수 있어야 하며, 특히 날마다 순간마다 그 어디서든, 그 누구라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고 증거하면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 갈수록 더 말씀과 기도와 찬미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해 지며 충만해 지고,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능력들, 기쁨과 복들, 은사와 응답들 등과 같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로 날마다 순간마다 승리하게 되고 더 풍성해 지며,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욱 더 말씀으로 나가며, 그러면서 더더욱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지고 더 강렬하게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누리는 점진적, 점증적인 선순환에 거하는 것이며, 그와 함께 세상 끝 날 우리 주님께서 말씀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더욱 기쁨으로 맞이하며 '수고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으며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이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장 복되며 최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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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xn--cg4b6i31mznap9s38g.com/bbs/board.php?bo_table=0201&wr_id=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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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설교(삼위일체 주제)
https://youtu.be/e0EjrsnlKPE?si=BOR6Kf7wF_A8viF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