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쳇말이 무섭다면 '폰'을 놓고 '책'을
교육방송(EBS)이 만든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을 봤습니다. 3년 전 제작한 프로그램인데, 지금 다시 방영해도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문해력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을 테니까요. 조금이라도 개선되긴커녕 어쩌면 더 심각한지도 모르겠어요. 주요 장면은 이렇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업시간. 교사가 학생들한테 말합니다. “영화 ‘기생충’의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다.” 한 학생이 질문합니다. “가제는 랍스터 아닌가요?” 임시로 붙인 제목인 ‘가제(假題)’의 뜻을 몰라 ‘바닷가재’로 알아들은 거예요.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면 대화가 산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인 ‘시쳇말’의 시체(時體)를 죽은 사람의 몸인 시체(屍體)로 여겨 “시체가 어떻게 말을 해요?”라고 묻습니다.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인 ‘이팔(二八)청춘’은 ‘팔팔한 청춘’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이렇게 되묻습니다. “팔이 두 개니까 팔팔한 거 아닌가요?”
학부모들은 다르다고요? 안타깝지만 청소년과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합니다. “우천 시 ○○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하면 ‘우천 시에 있는 ○○ 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라고 묻는 분도 있다.” 지난 7월 한 어린이집 교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한양대 국어교육과 조병영 교수가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 역시 화제가 됐죠.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 제공’을 보고 ‘왜 중국 음식을 제공하냐, 우리 아이에게는 한식을 제공해 달라’는 학부모가 있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글을 읽고도 뜻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문해력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길어도 글을 이해하지 못해 까막눈으로 사는 어른도 여럿입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문해력 문제는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속도’가 원인이지 싶습니다.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동영상을 보며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동영상을 보는 동안 문자메시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도 할 수 있고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싶어 글이나 영상을 빠르게 휙휙 보는 이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든 건 많은데, 바르고 적절한 말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얇은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게 힘들다는 이도 점점 늘어납니다.
혹시 청년들을 살펴본 적이 있나요? 그들은 여럿이 함께 있어도 대화를 하지 않고 각자 휴대폰만 봅니다. 밥을 먹든 커피를 마시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스마트폰 대신 책을 잡았다는 큰딸 회사 동료 몇몇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끼고 살 땐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하고 말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가장 중요한 ‘소통’이 무너졌던 거죠. 손에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서, 누구하고든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는 청년들은 대화하는 내내 활짝 웃었습니다.
50대 중반인 친구들은 손 편지 쓰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바르고 좋은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편지를 썼다고 말합니다. 밤새워 읽어 보고 또 읽어 보고. 그러고 나서도 마음을 온전히 담지 못한 것 같아 지우고 다시 쓰던 때를 떠올립니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었지만 말이든 글이든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설렘도 느끼고 싶다고 합니다. 청년들처럼 우리도 몇몇이 모여 손 편지 쓰기 약속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신조어와 줄임말도 문해력 문제의 큰 원인이지 싶습니다. 말과 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통입니다.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그 말과 글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신조어와 줄임말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막갈 때가 있어 부끄럽습니다. 마치 새로운 문화라도 소개하는 양, 말도 안 되는 신조어와 줄임말을 방송 자막 혹은 신문지면에 내보내곤 합니다. 물론 신조어는 언어의 진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만큼은 신조어 사용에 앞서나가선 안 됩니다.
말밭이 기름진 사람은 어디서든 존경받습니다. 품격은 말에서 드러나니까요. 문해력을 키우고 말밭을 가꾸는 거름은 바로 독서입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눈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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