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난을 만난 실학자들 김 선 희 (이화여대 교수)
이런 이치가 없을 터인데 명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공자는 제자인 백우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를 찾아가 창문을 통해 제자의 손을 잡고 안타깝게 탄식한다. 공자 이후로 유가(儒家)에게 병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일종의 명(命)으로 받아들여졌다. 병은 유학자들 뿐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상사였다. 다산(정약용, 1762~1836) 역시 수많은 병에 시달렸다. 다산에게 18년의 유배 생활은 다양한 병으로 기록되어 있다.
병에 시달리면서도 학문에 매달려
다산은 여러 사람에게 자주 자신의 병을 안타까워하며 고통을 토로하는 편지를 남겼다. 다산이 제자 황상에게 준 《다산여황상간찰첩(茶山與黃裳書簡帖)》의 편지 33통 중에 자신의 병과 관련된 내용은 물론, 다른 이들의 병을 걱정하는 글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다산은 학질에 걸렸는데도 곧은 자세로 필사를 멈추지 않는 제자 황상을 격려하며 자신의 병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내가 처음 귀양 왔을 때 이 병에 걸렸는데 어린 아이처럼 끙끙 앓으며 괴로워했지 고된 비와 찬바람이 살과 뼈에 끼쳐왔고 타는 듯한 여름에도 겹이불을 생각했네 손톱도 점점 검어지고 입술도 점점 파래져서 다듬이질 소리가 이빨에서 들렸다네
다산은 학질인 축일학(逐日瘧)외에도 내열에 의한 손상으로 생기는 풍병(風病), 눈에 백태가 끼는 병인 안생(眼眚), 다리가 붓는 각기병인 연각병(軟脚病), 체증(滯症), 발등의 종기[跗瘡] 설사[脾泄] 오랫동안 낫지 않는 두통인 두풍(頭風), 다리가 당기는 병인 현벽(痃癖) 등 끊임없이 수많은 병에 시달렸다. 그는 악조건 속에서도 학문에 매달렸지만, 그 결과 마비 증상과 함께 눈병까지 얻어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병은 삶을 막아서는 장애물 같아
이런 상황은 성호(이익, 1681~1763)도 마찬가지였다. 성호는 옛 백제 땅으로 떠나는 재종질 공서(公瑞) 징휴(徵休)를 보내며 쓴 시에서 병으로 평생 숙원이었던 백제 유람을 함께 하지 못하고 병으로 누워있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남주의 병상에 누워있다 꿈에서 놀라 깨어나니 침석에 엎드려 신음한 뒤로 달이 이미 바뀌었네
성호에게 병은 삶을 막아서는 장애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성호는 다양한 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종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하지 않는 날이 없으니 말을 하기 어렵고 쓰기도 힘들다.”라며 아픔을 토로한다. 아마도 심장 관련 병이 있었던 듯하다. 말년에는 부스럼[瘡疽]같이 피곤하고 괴로운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기도 한다.
성호의 병은 아들의 병과 죽음으로 더욱 악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만년에 아들을 두었으니 조개가 진주를 품은 것과 같았다.”라며 아꼈던 아들 이맹휴의 병에 차도가 없자 성호는 이를 몹시 안타까워한다. 이들에게 병은 삶을 위협하는 실존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순암(안정복, 1712~1791)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보에 따르면 그는 이미 다섯살 때 천연두[痘疹]를 앓았다. 이후 그는 병약한 체질이 되었을 것이다. 중년이 될수록 병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43세 때 부친상을 당한 뒤에 “절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슬퍼한 나머지 평소에 가지고 있는 구토와 함께 피를 토하는 증상[嘔血之症]이 더욱 심해져서 결국 종신토록 앓는 고질병이 되고 말았다.”
순암에게도 병은 학문의 길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그는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쇠약해진 탓에 남은 것이 없으며 고질병으로 괴로운 상태에서 새로운 통증이 빈발한 탓에 앞으로 진보하지 못한다.”라며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성호가 죽기 전 13년간이나 찾아뵙지 못할 정도였다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병은 일상의 균형과 조화가 깨지는 체험이다. 삶의 연속성이 파괴되고 미래의 가능성을 줄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가난 앞에서 담담하던 이들도 병 앞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병에 진 것이 아니다. 이들이 자신의 병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병에 대한 서사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공식화하고 이를 삶의 조건 내지는 당면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국 마음 안에서 치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병을 다스리는 데는 진정한 방법이 있으니 약물은 본래 믿을 수 없는 것 마음이 한번 태연하면 모든 맥이 저절로 평온해지니 고요히 중화의 기를 기르고 분노와 욕심을 막아 없애야 하니 오직 이 두 구절이면 천금을 대적할 수 있으리
순암이 쓴 「술병(述病)」중 일부다. 순암은 좋은 음식으로 보양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말한다. 그러나 순암은 결국 병의 진짜 치료는 결국 내부의 기를 조절하고 분노와 욕심을 다스리는 ‘마음[天君]’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물리적인 병을 모두 마음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병을 적으로 돌려 이차적으로 생기는 분노와 괴로움에 휘둘리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과 병, 죽음을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 현대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삶의 원리가 있고 그 원리를 따를 때 상승과 완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신념의 소유자들에게 삶의 매 순간의 고비는 시련이 아니라 겪고 넘으며 지나쳐야 할 단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삶의 난관과 고난은 일종의 자기 서사를 거쳐 공동의 문제가 되고, 이를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은 공감되고 공유된다. 현실의 부정적 상황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다른 이의 어려움도 돌아보는 일종의 공감이자 소통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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