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親日이 뭔지 알아?"
엄상익(변호사) 2024-08-19, 13:37
양한나의 외침 "해방이 되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설쳐대는 걸 보니까 슬퍼.”
천구백사십팔년 정부수립 후 국회에서 민족 반역자 친일파를 처리하기 위한 위원회가 조직됐다. 중앙청 회의실에서 김웅진 위원장이 의사를 진행했다. 의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조선 왕족과 작위를 받은 대신의 후예들까지 모두 친일파로 처벌해야 합니다.”
“창씨개명을 한 사람, 황국신민의 서사를 낭독한 사람 그런 친일파의 자손도 처벌해야 합니다.”
“소련의 명령에 따라 우리나라의 통치를 강대국에 맡기자고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빨갱이들도 반민족 행위자로 처벌해야 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해방 후 미국에 빌붙어 사는 외세주의자들도 반민족 행위자입니다.”
그런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전 국민을 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몰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국가에서 나중에 만든 법으로 소급해서 처벌하고 재산을 뺏는 것은 법에 맞지 않습니다.”
“법 논리를 말하는 의원은 그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원칙을 따지고 사정을 봐주면 친일파 숙청은 물 건너가고 맙니다. 그런 식이면 이완용도 당시 국제정세 하에서 불가피했다고 변명하지 않겠습니까?”
천구백사십팔년 구월 칠일 법률 제삼호로 반민족행위자 처벌 특별법이 공포됐다. 그 법에 의해 위원회가 조직되고 조사관들이 임명됐다. 서울지역 조사책임자는 임시정부의 경호대원 출신인 서상열이었다. 경기도 조사책임자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이기룡이었다. 조사관 강홍열은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친일파 검거 작전이 개시됐다.
조사관 이덕근이 지휘하는 열다섯 명의 형사대가 화신백화점 사장실로 가서 박흥식을 체포했다. 검거 일호였다.
천구백사십구년 일월이십일일 밤 영시 이십분 조사관 서상열은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를 체포했다. 그 며칠 후 새벽이었다. 김우영 변호사의 집으로 위원회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김우영 변호사를 체포했다. 일제시대 중추원 참의를 한 혐의였다.
며칠 후 김우영 변호사의 부인 양한나가 명동 입구의 상공부 특허국 건물에 있는 위원회로 갔다. 일층에 칸막이를 만들어 조사1부, 조사2부, 조사3부의 조사관들이 앉아 있었다. 양한나가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뒤쪽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자신이 책임자라며 그녀를 맞이했다. 양한나는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경찰서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위원회에서 요즈음 친일파를 잡아들이고 있는데 반민족 행위의 기준이 뭡니까?” 양한나가 물었다.
“민족적 번영을 가로막은 거죠. 일본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고.” 책임자라는 조사관이 비웃듯이 내뱉었다.
“당신들 우리가 호의호식하는 거 봤어? 나는 목숨을 걸고 만주에서 투쟁하던 사람이야. 나 하나 죽어서 우리나라가 독립된다면 기꺼이 생명을 바치려던 사람이야. 그리고 민족적 번영? 일본 관직에 있었다면 무조건 민족적 번영을 가로막았다는 거야? 그런 허무맹랑한 논리가 어디 있어? 관직에 있었어도 민족을 위해 고민했던 사람들도 있고 관직에 없었어도 민족에 걸림돌 된 사람들도 많아. 너희가 친일이 뭔지 알아? 해방이 되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설쳐대는 걸 보니까 슬퍼.”
칠십육년 전 있었던 한 광경이다. 엊그제 한 민주당 국회의원이 친일이면서 반민족 행위가 아닌 게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독립운동을 한 양한나라는 당시의 여성은 일제 시절 관직에 있어도 민족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그때 태어나지 않았던 지금의 국회의원은 관념으로 말하고 당시의 독립운동가 여성은 처절하게 몸으로 겪은 걸 외쳤다.
일제 시대 경제가 발전하고 근대화됐다는 데 찬성을 하면 그게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들이 증오하는 과거의 일본과 지금의 민주주의 일본이 같은 것일까. 과거에 묶여있지 말고 미래로 가자고 하면 그것도 의심의 대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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