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자비송(Kyrie)
우리는 미사 시작 부분에 참회 예절을 거행합니다. ‘구원의 신비’인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 먼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고백 기도와 함께 바치는 기도가 바로 ‘자비송’입니다. 자비송은 그리스어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을 번역한 것으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호소하는 청원 기도입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라고 부르짖었던 눈먼 바르티메오의 외침과 연관됩니다.
본래 자비송은 4세기 중엽 안티오키아 - 예루살렘 전례에서 바쳐지던 부제의 선창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주례자가 하느님 앞에서 공동체를 대표해 ‘본기도’(Collecta)를 드리기 전, 공동체의 청원 기도가 바쳐졌는데 이에 신자들은 한목소리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응답했던 것입니다. 이는 5세기 말 서방 교회에 전해졌습니다.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년 재위) 때의 기록을 보면, 자비송 전에 청원 기도가 바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감사기도 중에 다른 청원 내용이 들어가고 ‘보편 지향 기도’(Oratio universalis)도 발전함에 따라 자비송 앞에 바쳐지던 청원 구절이 사라지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구절은 그레고리오 대 교황(590-604년 재위) 때 삽입되었습니다.
[키리에](Kyrie, Kyrios의 호격)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말입니다. 본래 [키리오스](Kyrios)는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호칭을 부활하신 예수님께도 사용함으로써 성자를 성부와 동등시하였습니다. 이로써 이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된 주님이시라는 고백과 찬미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비를 베푸소서.”(eleison)라는 호소를 통해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사제는 참회 예절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에게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라고 권고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인간적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라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적 잘못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고, 어떻게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돌아보라는 초대입니다.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에 상처를 입으신 주님의 마음을 특별히 생각하는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며 자비송에 담긴 신앙고백과 회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고 정성스럽게 기도 바치도록 합시다.
[2024년 6월 16일(나해) 연중 제11주일 의정부주보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