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빵

[오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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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항상 받아도 반가운“경주빵”을 사위로부터 선물 받았다. 포장을 열고 한 줄에 4개씩 5줄로 가지런히 정돈된 “예술품”중에서 하나를 꺼내서 한입 물고는 50년도 더된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의 맛을 추억했다.

“경주빵”은 제과점 단팥빵 같이 생겼지만 크기는 조금작고 예쁘게 장식이 되었는데 단맛은 조금 덜한 단팥빵같이 생긴“빵”이다. 경주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전통을 살려 만든 것이라는데, 제과점 빵보다는 조금 비싸고 멋진 포장 속에 들어있어 선물하기에 적당하다.

요즘 젊은이들의 먹거리 정서에는 잘 맞지 않지만, 복고풍 풍미나, 웰빙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선물이다. 사위는 내가 좋아 하는 줄 생각했는지 이“빵”을 가끔씩 사온다.

처음 이 선물을 사위로부터 받은 것은 그가 아직 사위후보였던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깔끔하고 담백한 외모도 맘에 들었지만 꼭 저 닮은 선물을 들고 온 것도 기특하여, 포장을 뜯고 속에 있을 빵을 꺼내 맛을 보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바로 이런 맛이었어, 아직 이런 빵이 있다니!” 그간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나마까시” 맛이 5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내 입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체면 때문에 내색도 못하고 혼자 야금야금 며칠을 아껴 먹었다.

식구들에게는 단순한 간식거리를 내가 왜 그토록 좋아하는지 궁금해 했지만, 그냥 얘기하기도 좀 쑥스러워 비밀에 붙여둔,“경주빵”에 대한 나의 아련한 추억은 다음과 같다.

내가 5살 되던 해, 그러니까 1954년은 625전쟁이 끝난 그 다음해이다. 우리가족이 수해를 당해서 호구대책으로 수복지구 속초에 가서 어머니가 재봉틀하나로 우리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다급한 시기였다.

당시는 주린 배를 채우기도 급급하던 때라서 간식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나마까시”(일본어로 생과자)라 불리던 작은 팥빵은 당시에 새로 떠오르는 먹거리로서 요즘으로 치면 “고급피자”같은 거랄까? 아니 그보다 훨씬 비싸고 귀한, 누구나 좋아하던 사치스런 간식거리였다.

내가 이것을 처음에 어떻게 먹어보게 되었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집(임시거주하던 판자집)에서 몇 발작가면 거기에는 언제나 군침이 도는 먹거리 들이 있었다. 하얀 설탕이 듬뿍뭍어 있는 기름이 배어나온 누런“꽈배기”며, 한입에 넣기 힘들만큼 큰 왕사탕이 굵은 설탕을 뒤집어쓰고 큰 유리병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싸늘해지는 늦가을 날씨에 먹으면 더욱 맛있는 국화빵집이 있고, 그 다음집이 바로 “나마까시”를 만드는 빵집이었다. 나는 가끔씩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와서 사먹는 것을 보고는 무척 부러워하였다. 그 때부터 돈의 위력을 차차 깨우치면서.

“나도 돈만 있으면 저런 걸 사먹을 수 있을 텐데, 시골집에 있을 때는 할머가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 주시던데,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어. 그럴 바엔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 온 거야?”

정말 그랬다. 할머니는 집에서 만든 과질(한과)이며 곶감 등을 항상 대바구니에 담뿍 담아 주셨다. 그리고 여름이면 자두를 가을이면 홍시와 삶은 밤을 먹기 싫도록 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고모들은 얼마나 나를 위해 주셨는데.. 어쩌다가 요즘 내신세가 요모양이 되었을까?

정말 생각할수록 속상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내 응석을 받아 주지 않으니 어쩌랴. 오늘도 눈치만 살피다가 용기를 내어, 일하시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다시한번 졸라 보았다.

“ 엄마 나 10환(현재 1원) 만 줘, 사먹게. 나 먹고 싶단 말이야. 응? 내 세배 돈도 있잖아..”엄마는 나를 한참 보시더니 아무 대답이 없이 다시 일만하신다. 아마 할말이 없는가 보다.

“이럴려면 나를 왜 데려온거야, 응? 다시 할머니한테 보내줘”이 말을 하면서 설움이 복바쳐서 울음이 나왔지만, 사소한 일로 울면 사내답지 않다고 항상 일러주던 작은 고모생각이 나서 억지로 눈물을 참느라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재봉틀에 매달려 있는 어머니는 나를 처다 보지도 않은 채 “밖에 나가 놀아라.”한마디 하시고는 일하시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별로 놀랄일도 아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더 이상 보채도 소용없다는 걸 어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지만, 이제 다섯 살 밖에 안된 아이가 놀이시설도 없는 판자촌에서 시간을 보낼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었다.

그냥 벽에다 대고 낙서를 하거나, 벽 틈에 숨어있는 납작 거미를 잡아 화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낙수물 떨어지는 자리에서 깨진 사금파리를 묻어놓고 물이 튀는 것을 보며 혼자 놀아도 재미있지만, 이럴 때는 옷을 다 적셔 엄마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를 주위에서 인정받아, 일감이 몰려드는 바람에 정신 차릴 틈도 없었고, 어떻게든 식생활을 해결할 생각뿐인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 해 나는 생애 4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날씨가 썰렁해지면서 이젠 밖에서 놀기도 춥고 배도 좀 고픈데, 따끈한 붕어빵이나 향기로운 “나마까시”를 하나 먹었으면 좋으련만,

내가 아무리 졸라도 사주지 않을 것쯤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떼를 쓰며 울고 보챌 바보가 아니었지만, 돈은 없고 먹고는 싶은걸 어쩌란 말인가?

할머니 같으면 어떻게든 사줄텐데.. 아니, 10환만 있으면 사먹을 텐데.. 지난번 설에 받은 내 세배 돈이 얼만데? 그걸 내가 갖고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잃어버린다며 엄마가 보관 한다며 전부 빼앗아간 게 아닌가?

그런데도“나마까시”가 먹고 싶다는 내말을 들은 척도 한하시는 엄마가 참으로 야속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대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엄마지갑에서 내가 직접 돈을 꺼내오면 될거 아닌가? “어짜피 내 세배돈도 그 속에 있으니까!” 생각이 여기 까지 미치자 평소에 보아둔 엄마 지갑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엄마는 바빠서 내가 들어가도 모를거야. 아까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잖아!”그리고 나는 미닫이를 살그머니 열고 발소리를 죽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내 가슴이 ”쿵광“거렸다. 왜 가슴이 이리 뛸까?” 누가 들을 많큼 크게 “쿵쾅”거린다. “어짜피 내 돈인데 뭐. 엄마가 보면 그렇게 말할 거야!”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가슴이 뛰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는 방인데도 그날따라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 들어간 것처럼.. 그런데 마침 엄마가 안 계셨다.

방안은 이미 어둑어둑해 졌는데 아직도 전등이 켜지지 않았다. 어두워 질 때쯤 대체로 들어오는 전기가 오늘은 늦어질 모양이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재봉틀위에 있는 엄마 지갑을 열고 지폐 한 장을 번개같이 꺼내어 잽싸게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부엌을 지나며 그 안을 슬쩍보니 엄마는 저녁밥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버지 퇴근시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무쇠솥이 걸려있는 시멘트 부뚜막 아궁지에, 진흙으로 덧대어 만든 작은 아궁지(여름에는 이렇게 하면 장작도 절약되고 밥도 빨리되며 방도 덥지 않아 좋다고 며칠 전 엄마가 옆집아줌마 한테 얘기하는 소릴 들었다.)에 알미늄 솥이 달랑 하나있다.

얼마전 새로 작만한 알미늄 솥은 엄마가 아끼는 물건이다. 여기에 작게 쪼갠 장작을 지피고, 도마 위에 무언가를 놓고 열심히 썰고 계신다. 아마 호박이며 두부같이 내가 싫어하는 것들 일게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나마까시” 가게로 갔다.

그리고는 씩씩하게“나마까시” 주세요 하며 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내 아저씨한테 쑥 내밀었다. 그러나 내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 직접 돈을 주고 무언가를 사본 적이 없었다.

주인아저씨는 나한테 받은 돈을 허공에 대고 열심히 처다본다. 그때까지도 가게에 전등이 안들어 왔기 때문이다. 주인이 한참 돈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나는 조바심이 났다.

얼른 돈 받아 기둥에 고무줄로 매달려 있는 종이돈통에 넣고 나서, 진열장 미닫이를 열고 “나마까시” 두 개만 꺼내주면 될 텐데.. 오늘 따라 뭘 저리 꾸물대나?

그러면 나는 얼른 받아서 하나는 여기서 꿀꺽하고, 또 하나는 코끝에서 음미하며 천천히 가면서 먹을 텐데, 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 쯤, 이상한 일이 생겼다.

주인아저씨가 커다랗고 누런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나마까시”를 수도 없이 담는게 아닌가? 열 개를 훌쩍 넘었는데도 몇 개를 더 담더니 나에게 그 봉투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왜 이렇게 많이 주는가? 이럴 바엔 내가 올 때마다 한 개씩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을 해볼까? 그러나 한편으론 뱃장도 생겼다. “에라 모르겠다. 될 데로 되라지.”

우선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나마까시”한개를 꺼내어 입에 물면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집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두 개만 줬으면 간단할 텐 데, 여기쯤이면 벌써 다먹고 시치미를 뗄 수 있었을 텐데.

이봉투를 집밖에 어디다 감춰두었다가 내일 꺼내 먹을까? 아니야 그러면 누가 갖어 가면 어떻게? 아니야 그냥 집으로 갖어 가지뭐. 그러다 엄마가 물으면 뭐하고 할까? 길에서 돈을 주어서 사먹었다고 할까?

“그러자 그게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 모퉁이를 도는 순간 엄마와 딱 마주쳤다. 마침 저녁밥을 다해놓고도 아버지가 아직 퇴근을 안 하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졸라대던 아이가 안보이니 걱정이 되어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빵이든 봉투를 뒤로 감추었다. “그게 뭐니?” “으응. 나마가시“ ”너 그거 어디서 낫니?“ ” 어떤 아저씨가 나보고, 이쁘다며 사줬어“

급한 김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둘러댔다. 아까 길에서 돈을 주었다고 말하기로 스스로 약속해놓고, 내입에서 나오는 말은 엉뚱하게 빗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널 이쁘다고 이렇게 많아 사줘?”“너 이리와 봐 똑바로 말 안해!”

“ 앗차!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 이렇게 느끼는 순간,

엄마는 나한테서 빵 봉투를 확나꿔 채서 빼앗아들고 한손으로는 나를 질질 끌고 집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는 다섯 살짜리 꼬마는 공중에 떠서 딸려갔다. 방안에는 이미 전등이 켜져서 환한데,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방구석에 몰아붙이고 수수빗자루를 거꾸로 움켜쥐고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는 단념했다. 여기서 버텨봐야 매 밖에 안돌아 오겠구나. 결국 1분도 안돼서 이실직고 했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싹싹빌며 꿇어 앉아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하면 혹시나 엄마가 나를 용서해주고 기왕에 사온 것이니까 먹으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그러나 내주측은 빗나갔다.

나는 처음으로 수수 빗자루의 매운맛을 보았다. 그리고 빵봉투와 함께 나는 “나마까시” 주인 앞에 끌려 나갔다. 정말 5살 사내대장부의 자존심도 구기고 무엇보다 아저씨한테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서슬이 퍼렇다.“어린아이가 이렇게 큰돈을 갖어오면 확인을 해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어른이 시켰는지, 돈이 어디서 났는지? 아무리 돈도 좋지만, 어찌 그리 장사하기에만 급급하십니까? ”경우가 바르고 언변이 뛰어나서 아버지한테 얻은 별명이 “판사” 이신 어머니 항변에 주인은 할 말이 없었다.

다섯 살짜리한테 백환짜리(그 돈은 몇 년 후 화폐개혁으로 10원짜리가 되었으나 세월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여 현재는 길에 떨어져도 줍지않는 천덕구러기가 되었다.)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나마까시”를 전부 환불을 받았다. 이미 내 목구멍 속으로 넘어간 한 개를 제외하고는...

그날 저녁 나는 밥도 못 먹고 울다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을 때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늦게 퇴근 하신 것이었다.

“ 그래도 몇 개는 먹으라고 주지 그랬어?”

“ 아니요. 어릴 때 확실히 잡아야지, 바늘도둑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못 들었어요?”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나?”

그 말을 들으니 속에서 슬픔이 복바쳐 오르며 벼게머리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슬프고 배가 고파도 어쩔 수 없는 일, 일어나 봤자 아버지도 엄마편을 들을테니까, 어서 여기를 탈출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그냥 자는 척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시골로 보내달라고 날마다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나마까시”를 사주며 나를 달랬지만 내 마음은 이미 돌아서 버렸다. 며칠 후 고모가 데리러 와서 나는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뒤로도 쭉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아무리 가자고 해도 다시는 속초로 가지 않았다. 지금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당시는 무척 섭섭했었던 모양이었다.

 

[궁금이]

한번의상처가 모자 이별이된 슬픈사연이네요 가슴 찡한 얘기 잘 들었씁니다

[오라비]

감사합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답니다.

[스칼릿]

저둥 무자게 삐졌을 것같아요.
엄마는 참 너무혀요. 좀 봐 주시지...
저도 비슷한 추억이 생각나서
오경석님 편만 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재밌고 참 좋은 이야기로
저의 추억도 떠 올리며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오라비]

감사합니다. 스칼릿! 바람과 함께 즐건 주말되세요

[스칼릿]

반가워요 오라비님
닉을 블로그 닉으로 바꾸셨군요.
덕분에 친근감도 들고
부르기가 더 좋아졌어요.
존함을 닉으로 쉽게 부르려니 좀 조심스러웠거든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오라버님

[오라비]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스칼릿님.
앞으로 더 재미있는 얘기를 올리고 싶어요.
중국에가서 중국어 배우던 에피소트
일본에 가서 일본어 배우려 채소가게에서
알바 하던얘기며, 영국에서 영국아가씨와
사랑에 "빠질뻔 했던 얘기등..
애궁 이러나 본전 들통날라..

[바브시인]

자주 못오다 보니 자작시방에 좋은작가님들이 안주해 계시네요^^
꾸벅 인사 드립니다

[오라비]

바쁘시더라도 자주들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