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의자
이 은 규
바다는 언제나 청춘, 오래 전 한 문장에 그어놓은 밑줄이 출렁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라면, 기억이라면 눈 감았다 뜨는 사이 국경을 넘었던 것처럼 문
득 오늘의 해변에 도착하게 되었다면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질문은 금지
어쩌다 보니, 라는 대답은 반칙일 것
멀리서 보면 청춘, 가까이서 보면 재앙일 때 요법처럼 어릴 때 읽었던 동화를 떠
올려보자 달과 지구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억하니 하늘보다 구름, 글자보
다 여백으로 가득한 책장을 펼치면 서로를 끌어당겼다 밀어내는 힘이 팽팽하던
이것은 달과 지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한 사람의 입김이 가까워지면 밀물,
멀어지면 썰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지친 줄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다면,
걱정을 위한 걱정이 해저 2만 리라면 그렇게 깊어지다 가까스로 세상에서 가장
긴 의자를 만나게 된다면, 해변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그 의자에 앉아 보자
그때의 바다라면 파도라면 이야기라면,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다음 문장이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질까 속삭이고도 다시 어오르는 구름 같은 시간을 나눠
갖자 저 멀리 물결구름의 문장이 모래 알갱이에 닿기 전 흩어진다면, 차라리 음
악일까 그러니 재앙 같은 청춘이여 오라, 아름답게 부서져 버릴 마음이라면 더
더욱
--((시로여는세상>>2016 봄호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