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사진들이 좀 있으니까 못 보는 분은 뒤로..
현대전에서 그 존재만으로도 위협이되는 핵무기와 원자력들
첫번째로는 핵무기와 관련된 방사능 피폭의 이야기
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
모두들 익숙하게 알고있는
현대 핵무기의 가장 무서운점이
대표적으로 두가지가있다.
첫째로 폭발과 동시에 일정 피폭범위안의
모든것들이 흔적도없이 증발한다는점,
둘째로 핵무기가 끼치는 상상하기도 힘든 후발적 피해양상이
인류, 나아가서 전 지구적 환경에 위협이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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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에 피폭되어 그 증상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에비하면
폭발과 동시에 열상으로 즉사하는사람은 차라리 행운인편이 라고도 할정도로
핵무기의 잠재적위험은 폭발력보다는 뒤에다가올 재앙에 존재한다고해도
지나친말은 아닐것이다.
방사능피폭은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체외피폭과 체내피록으로 구분된다.
체외피폭이란
원자폭탄이 작열한 순간에 나오는 방사선이나
의료에서 사용되는 X선 촬영처럼 체외의 방사선원으로부터
피폭되는 것으로 지금보시는 거의 대부분의 자료는 체외 피폭에의한 피해들이다.
체내피폭은 오염식품 따위의 방사선을 내는 물질을
체내에 섭취하여 발생하는 피폭이다.
이 체내피폭에 대해서는 토양으로부터 식물에의 이행과정이나
식물의 연쇄를 통하여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서 농축되기 때문에
대단히 막대한 피폭을 몰고 올 위험성이 크다.
한꺼번에 고선량의 피폭을 당하게 되면 급성장애 및 급사를 맞게 된다.
어림잡아 0.1~0.25 Sv(시버트)에서 화상, 탈모, 구토감, 백혈구 감소 등의
급성장애가 발생하고, 3 Sv부터 급사가 나타나며,
6 Sv 정도에서는 전원이 급사한다.
저선량의 피폭을 당한 경우에는 그 방사선량에 따라
일정한 확률의 백혈병, 암으로 인한 사망 등이 일어나며,
생식세포가 피폭되면 유전장애 등을 몰고 온다.
이러한 암이나 백혈병은 급성장애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피폭 후 수년 혹은 수십년이 경과한 뒤부터 발생하므로 후발성장애라고 한다.
더우기 유전장애의 경우에는 한 세대의 피폭 영향이 세대를 넘어
자손대에까지 신체적 장애로 나타나므로
다른 단순 재해나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성을 나타낸다.
그외에도 방사능 피폭이 두려운 이유는 한가지가 더 존재한다.
강한 방사선을 맞는다고 해도, 세포는 대부분 거의 죽지 않는다.
다만 세포 분열에 필요한 DNA가 파괴되어 분열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신체 조직의 재생이 불가능해지며 그래서 일정기간 후
(현재 존재하는 세포가 수명이 다해 죽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피폭(방사능병 혹은 방사능증)은 전리복사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생체 조직이 피해를 입는 것을 지칭하는데,
일반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리킨다.
방사선이 세포 분열과 상호작용함에 따라 수많은 피폭 증상이 나타나며
특히 이러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빠르게 세포가 분열하는 위장 기관 등에서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의 점막세포가 전부 벗겨지므로 영양을 흡수할 수 없게 되어
치사에가깝거나 혹은 치사에 이를만큼 굉장히 심각한 설사증에 걸리며,
피부가 전부 때처럼 벗겨져 떨어지면서 피부 밑의 생살, 근육이 그대로 노출된다.
(심한 화상상처와 같은 증상)
또한 혈구를 만드는 골수 세포가 소멸해서, 면역력이 없어진다(에이즈와 같은 증상)
뇌나 신경세포는 죽는 그 날까지 수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나 감각은 그대로.
죽는 그 날까지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 계속된다.
마지막으로 수위를 고려한 수많은 자료사진중 폭발직후 얼마지나서의 거리사진 한장
토카이무라JCO임계 사고
발생과정 및 원인규명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경 일본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이시가미도주쿠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핵연료 가공회사인
일본 핵연료컨버전(JCO)사의 전환시험동 핵연료 가공시설내에 우라늄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초산용액으로 용해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규정량보다 7배에 가까운 이산화우라늄용액(UO-2) 16kg을 침전조에 주입하는 도중
임계사고가 발생함에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전환시험동 시설의 서남방 경계선 지역의
공기중 방사선량률은 0.84 mSv/h로 측정되어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대책본부의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우라늄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우라늄을 초산용액에 용해시키는 과정에서 통상 핵분열을 막으려고 우라늄
주입량을 2.4kg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 날은 약 7배에 달하는 16kg을 주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계사고 발생과 경과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경,
이바라키현 나카군 토우카이무라의 주식회사 JCO의 토우카이사무소,
전환시험동에서 세사람의 작업원이 질산우라늄을 제조중,
돌연 푸른 섬광과 함께 감마선 검출 모니터가 위험을 알리고, 임계사고가 발생.
세사람의 작업원이 대량의 중성자선등을 피폭하게 되었다.
이 사고로 핵분열이 일어난 우라늄 연료는 전부 1mg 이었다.
토우카이무라의 주식회사 JCO는 1980년,
스미토모금속광산핵연료사업부 토우카이공장이 독립하여,
스미토모 금속광산의 백퍼센트 출자의 자회사로 설립되었으며,
당시까지 일본핵연료 컨버션으로 불리고 있었다.
본업은 경수로용 원자력발전을 사용하는 연료를 만드는 일로,
이 경우 사용되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3~4퍼센트이다.
전환시험동에서의 작업내용,전환시험동은, 제이시오의 본래의 업무와는 다른 것으로,
핵연료 사이클개발기구(구동력로, 핵연료개발사업단, 이하 핵연기구)로부터 위탁된 것이다.
고속증식실험로 '죠요'의 연료를 가공하는 시험적인 시설이었다.
이때는, 18.8퍼센트라는 높은 농축도의 우라늄 질산용액을 '양동이'를 이용해서
침전조에 이동시키고 있었다.
임계사고란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과 같은 핵분열성 물질의 내부에서 핵분열연쇄 반응이 예상을 벗어난
상황하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가리킨다.
임계사고에 의해 방출된 중성자선은 발생장소의 부근에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위험하고,
또 이 중성자선에 의해 발생장소 주위의 물체가 방사능을 띠는 원인이기도 하다.
핵분열 반응의 발생을 전제로서 발생하는 임계사고가 발생하면,
발생장소로부터 수십미터 이내에 있는 작업원은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르는 높은 위험성에 노출되어있고,
또 발생장소 부근에는 방사성 물질이 방출될 위험이 발생한다.
토카이무라 JCO 사고에서는, 원자로시설이 아닌 핵연료공장의 한편에 갑자기 나타나서,
'방벽이 없는 원자로' 가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계의 계속
이 사고에서는 임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눈치채지 못하고,
그것에 맞는 수단을 취하지 않은채 약 20시간을 계속 작업하고 있었다.
그때문에 대량의 중성자선과 감마선, 핵분열로 생겨난 방사능의 방출이 계속되었다.
토우카이무라의 곳곳에 설치된 방사선의 모니터는 통상의 20~30배 정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사의종식작업
10월1일, 오전 1시 40분 제일회 현지대책본부회의가 열려서,
침전조 근처의 냉각수의 처리가 시험되었다.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쐬일 각오를 하고 사진촬영반 두명과 열여섯명이 결사의 작업을 한 결과,
핵반응은, 오전 6시 15분경 종식외었다.
그후, 중성자 흡수재(붕산)이 주입되어 임계의 위험성은 없어졌다.
사고뒤 폐기물을 처리하는 모습
현장의 움직임과 대응
원자력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적절한 피난 및 방호다.
실제로 그게 되었는지 기록을 보도록 하자.
JCO 임계사고의 시간표, 원자력 자료정보실편 '공포의 임계사고' 에서 발췌
9월 30일
10시 35분경 임계사고 발생
10시 43분경 제이시오로부터 토우카이무라 소방본부에 출동요청
10시 46분 시설에 구급차 도착, 작업원 세명 수용
15시 25분 피폭한 작업원 세명이 헬리콥터로 방사선의학통합연구소에 도착,
'푸른 빛을 보았다' (체렌코프 방사선) 라고 증언
16시경 핵연료 사이클개발기구가 중성자선량율 측정개시
10시 36분경 현장에서 부터 서쪽으로 일점칠키로 떨어진 원자력연구소
나카연구소에서 6.3μSv/h (마이크로시버트퍼아워)의 중성자선량율을 검출
11시 34분 토우카이무라 관청에 제이시오로부터 임계사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연락
11시 35분 연원자력안전대책과에 연락
12시 30분 토우카이무라, 방재무선방송으로
'가공공장에서 사고, 방사성물질의 유출, 통상의 열배정도이다.
집에서 나오지 말라' 고 방송. 200m이내 출입금지
15시경 토우카이무라 350m권내 주민피난요청, 주변도로 교통규제등을 하고,
3km 이내는 접근금지
16시 40분 나카마치혼베이자키지구에 피난요청
22시 30분 반경 10km권내 주민(십만세대 약 31만명)의 옥내피난요청
이튿날
11시 19분 과기청에 제이시오로부터 사고제일보 '사고발생 임계가능성'
12시 41분 오부치수상에 제일보
14시 30분 사고에 대해 과기청으로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 과기청, 재해대책본부설치
15시경 정부, 사고대책본부를 설치, 과기청현지대책본부설치
23시 15분 제이회사고대책본부회의에서,
침전조의 주위에 냉각장치로부터 흘러나온 냉각수처리에 대한 대책을 토론
10월 1일 2시 35분 현장의 사진촬영, 임계상황억제를 위한 침전조의 냉각수 처리등의 작업개시
여섯시십사분 냉각수처리 작업종료
16시 40분 현 10km옥내피난 해제
오전 1시경 문부성 십키로이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휴교를 지시
15시 10km권내 옥내피난해제는 문제없다고 정부견해를 발표. 과기성 사고를 레벨4로 평가
10월2일
18시 30분 토우카이무라 삼백오십미터이내 피난요청 해제,
동일한 시각 정부농축수산물에 대한 영향은 없다고 발표
10월 4일 토양 및 식물에서 요오드 131이 검출됨 (쿄토대학 원자로실험소 코이데 교수)
10월 11일 배기계를 정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됨.
이날 이후의 경계이후로도 누출이 계속되다
피폭의 실태
JCO 사고에서는, 겨우 1미리그램의 우라늄이 핵분열한것이 큰 피해를 일으켰다.
(참고로, 백만키로와트급의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하루 2~3키로그람의 우라늄이 핵분열하고 있다)
임계에 의한 방사선의 방출에서, 동해사업소내 사람들은 물론,
부근의 많은 주문들까지 피폭당하고 말았다.
방사선의 종류는, 중성자선 및 감마선, 그리고 기체의 방사선물질 등이다만,
이번의 피폭의 주된 원인은 중성자선이었다.
중성자선은 투과력이 굉장히 강하고, 두꺼운 콘크리트조차도 투과하며,
중성자선을 멈출수 있는 것은 수소를 많이 포함하는 물질이다.
사람의 몸은 많은 부분이 물로 되어있어서, 중성자선은 인체에 잘 흡수되어,
세포를 상처입힌다거나, 죽게 만든다.
(보충설명 : 중성자선은 인체에있는 나트륨을 나트륨 24 라는 방사선 물질로 바꾼다.)
치료중인 피폭 피해자
하나. 노동자등의 피폭
직접작업을 하고 있던 세사람중 한사람 오우치씨, 추정 16~20시버트이상의 피폭,
1999년 12월 21일 사망.
시노하라 리히토씨, 추정 6~10 ㏜(시버트)의 피폭, 2000년 4월 27일에 사망.
요코가와 유타카씨, 추정 1~4.5㏜(시버트)의 피폭, 일시적으로 백혈구수치가 제로가 되어,
위험하였다만, 그후 퇴원하였다.( ㏜(시버트)는 피폭선량 단위,
치사량은 6~7 ㏜(시버트) 정도라고 한다)
오우치씨, 시노하라씨의 사인은 방사선피폭에 의한 대장기의 기능부전에 의해서이다.
이상의 세사람은 1999년 10월 6일 급성방사선증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오우치씨의 사망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일본방송협회 취재반
'피폭치료83일간의 기록'을 참조)
출동한 구급대원중 세사람은 사고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출동하여, 30미리Sv의 피폭을 당한다.
임계종식을 위해 작업을 한 사람들 및 동해사업소의 종업원 정부관계기관의 직원등이
최대 120 미리시버트에 달하는 피폭을 입었다.
그외에 50미리 Sv를 넘는 사람이 여섯명이나 된다.
(방사선을 다루는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연간 50미리 Sv를 한도로 하고 있다.
이 숫자는 가슴에 달고 있는 방사선량계측계에 의한 것이다)
피폭된 피해자들의 모습이 찍힌 치료사진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려져있지않고
그냥 토카이무라 JCO임계사고 피폭자 사진이라고만 알려져있다.
피폭피해 노동자 3명중 한명일것이다.
둘. 주민의 피폭
JCO의 시설은 평범한 마을 한복판에 있다.
임계사고때는 인접시설에서 작업하고 있던 일곱명 및 주변의 주민이 장시간
중성자선등을 피폭당하였다.
처음 사고조사위원회(사고보고서참조)는, 주민의 피폭을 일곱명이라고 보고하고 있지만,
그후 200명이 추가되었다.
가장 많이 피폭당한 사람은 25미리 시버트, 보통 사람이 연간 피폭한계가 1 미리시버트인데,
이를 초과한 사람이 112명에 달하고 있다.
(이 숫자는 과학기술청의 사고조사대책본부가 행동조사에 의해 피폭선량의 추정을 한 결과이다.
과학기술청의 선량평가에 대해서는, 후기의 오이즈미씨의 경우,
한난중앙병원의 조사의 육분의 일 이하라는 예도 있어, 생략하고 있다)
더욱이, 피폭인원 총 수는 바깥에서 인정된 숫자만 2000년 4월까지 667명에 달한다.
피폭 노동자 시노하라 리히토의 치료기록
토카이무라 임계사고 방사능에 쐬인 JCO노동자 시노하라씨(40세)의 치료경과 사진
(제3회 일본임석구급의료학회에서의 공표)
1999년 9월30일 : 임계사고로 얼굴과 양팔에 10 Sv (시버트,Sievert)의 중성자를 맞고 피폭
10월10일 : 외상은 없지만, 붉은 반점, 구토, 설사, 의식장애등이 나타남.
11월10일 : 피부가 점점 벗겨져, 70%가 벗겨져떨어짐.
12월20일 : 양앞팔부(분)에 피부이식을 행함.
2000년 1월 4일 : 안면에도 피부이식을 행했지만,
DNA의 손상으로 피부의 재생능력은 잃어버리고 있음.
2000년 4월27일 : 사망
배경
체르노빌 사건, 또는 체르노빌의 재앙(Chernobyl disaster)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참고로,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일부였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입니다. 현재까지의 기록으로는 최악의 원자력 관련 사고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에서 최고 등급인 7등급, 중대한(Major) 급의 사건은 아직 체르노빌 건 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그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또다른 7등급 사건이 일어나는 건 별로 달갑지 않지만...
사건의 경과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의 4번 발전소가 저출력 상태에서 실험 도중 과부화를 일으켰습니다. 실험을 하던 직원들은 긴급 정지를 시도했으나, 갑자기 출력이 더욱더 치솟더니 내부가 파열되며 폭발. 이 때 발전소의 감속 물질이 대기로 분출되면서 폴아웃(Fallout:방사능진)이 발생하였고 , 물질들은 서 소련, 동 유럽, 서 유럽, 북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의 많은 지역들에도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습니다. 이 때 이동한 사람이 336, 000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사건 당일의 경과(출처 - 위키피디아)
1:26:03 - 경보 발령
1:28 - 프라비크의 경비원들과 지역의 소방관들이 도착
1:35 - 프리퍄티에서 소방관들이, 키베노크에서 경비원들이 도착.
1:40 - 텔야트니코브(당시 발전소 소방국의 대장) 도착.
2:10 - 터빈 실의 지붕에 붙었던 불이 전부 꺼짐.
2:30 - 주 발전기실의 지붕에 붙었던 불이 진압됨.
3:30 - 키에브 소방관들 도착.
4:50 - 화재 대부분의 진압.
6:35 - 진압 완료.
오염의 진행과 결과, 그리고 제거
진행: 폭발에서 발생한 엄청난 방사능 오염 물질과 유독 가스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수십만명이 도피해야 했으며, 여태까지 일어난 방사능 오염 사태 중 사망자도 제일 많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방사능 물질보다 400배가 넘을 정도로 많은 물질이 배출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잡히죠.
당시 화재를 진압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방사능에 노출되었을까요?
보통 치사량이 500 뢴트겐에 5시간에 걸쳐서 노출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데, 체르노빌 사건 당시 소방관들은 1시간에 약 20,000 뢴트겐에 노출될 만큼의 방사능 속으로 뛰어들어, 몇 분만에 치사량을 흡입하였다고 합니다.
- 결과: 앞서 말했듯이, 체르노빌 사건이 일어난 당시 수 십만 명의 사람들이 대피해야 했으며,
체르노빌 사건은 여태까지 일어난 방사능 오염 사태 중 사망자가 제일 많다고 합니다.
237명의 소방관들과 민간인들이 심각한 방사능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그중 31명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살아남은 이들도 다운 신드롬, 염색체 이상, 신경관결손 등의 심각한 병에 시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식물, 동물, 지하수, 토질까지 오염되었으며, 사건 발생당시 지역에서 날아간 새들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1989년 6월 키에프 체르노빌원자력 발전소의 북위 25도에 위치한
병원에서 발전소의 관리원으로 일하던 남자가 오른쪽다리를 치료받고있다.
이남성은 3년이 지난뒤까지 상처가 치유가 되지않아서 계속 치료를 받았다고전해지며
그의발은 다행히도 그가 신었던 신발덕분에 방사선에 많이 누출되지않았다고한다.
1945년 일본(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보다 수십∼수백배나 많은
'죽음의 재'를 뿌린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명확치 않으나, 98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략 사망자가 3500명 정도라고 밝혔다.
훗날 피폭 피해자는 수십만∼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다시 추정집계 되었고,
그중 수천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났고, 유아 사망률 또한 높아졌으며
주변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쳐, 체르노빌 원전에서 32㎞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이 방사선에 심하게 오염됐다.
마찬가지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당시 피폭자의 자료사진.
구강점막이 재생되지않아서 입안이 심하게 건조된상태
체르노빌 원전사고때 피폭자의 대장 내시경사진
인체의 조직중에서도 죽음과 재생속도가 가장빠른
대장의 점막세포가 재생이 되지 않으면서 장출혈이 발생,
또한 장내에서 영양분이 흡수가 되지않아
사망에까지 이를수있는 심각한 설사및 탈수증세를 동반했다
이사진역시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의한 피폭자의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죽은세포가 재생이 안되어서
손바닥의 기존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고있다.
1986년 방사능 누출사고를 낸 체르노빌의 제4원자로에 이어
제2원자로도 지난 1991년 화재로 가동이 중단됐고 제1원자로는
지난 96년 국제협약에 따라 폐쇄되었다.
제3원자로는 2000년 12월15일 가동을 완전중단하였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95년 서방선진 7개국(G7)의 합의에 따라 총 31억달러의 원조를 받고
2000년 12월 체르노빌 원전을 영구 폐쇄하였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폭발 당시 현장에서 3명이 사망하였고,
사고수습 후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서 28명이
방사선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방사선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 환자들은
대부분 화재 진압과정에 투입되었던 소방수들이었다.
[피폭 피해 소방수]
[체르노빌 지역 인간과 동식물의 기형]
[출입이 차단된 체르노빌 지역]
얼마나 괴로울까ㅠㅠ 진짜 보는데 너무 끔찍하고 슬프다ㅠㅠㅠㅠ
헐....................................................
쫄아서 댓글창만 켯음...
참 그 후쿠시마 원자력 안에서도 일하시는분들이 걱정되네... 보호장비를 해도 방사능을 맞을거아냐...
사진보니까 너무 무섭고 안타깝네.. 전에 들은 얘긴데 전에 교수님이 일본 원폭 피해자를 만났는데 다리에만 살짝 맞았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회복이 안되고 계속 썩어들어가고있다고.... 약도 없다는거야.. 그게 너무 무서웠어..
체르노빌은..그럼 세월이 지난 지금도 폐허로 남아있겠네... 끔찍하다 정말 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ㅠㅠ
소방수 저정도면.. 사는 게 더 고통스러울 거 같다.. 미안한 소리지만. 내가 저사람이라도 그냥 죽고싶을거같아..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해........ 진짜 ................ 아... 진짜 할말이없어...... 진짜 이건너무하잖아.....
아으 소방수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차라리 즉사하는게 편한거라니.......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보는것만으로 방사능 노출된거 같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너무 안타깝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으으 ㅠㅠ
나 무서워서 못보겠어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존나무서워 씨발 레알 아 존나 짜증나
방사능...와진짜무섭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