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부장, 300분 간 ‘5개항 요구’...한국 主權 침해하며 협박?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 5시간 전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일(8월24일)을 정확히 보름 앞두고 이달 9일 열린 양국 외교 장관 회담에서 중국이 한국의 주권(主權)과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5개항의 요구를 해 ‘협박 외교’ 논란이 일고 있다.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달 9일 오후 4시(현지시간)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지모구청쥔란(卽墨古城君蘭) 호텔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후 첫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두차례 회담과 100분에 걸친 만찬(晩餐)을 포함해 양측은 300분 동안 대화를 했다. 하지만 양측은 한 줄의 공동 성명도 내지 못한 채 회담 내용을 개별적으로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보도자료는 대개 한국 외교부가 먼저 게시한 뒤 중국 외교부가 올리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9일 밤에는 중국이 오후 9시42분(한국시간 오후 10시42분)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국은 3시간 10분이 더 지난 10일 01시55분 A4용지 4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양측 발표 내용을 보면, 공급망 문제·사드(THAAD)·북핵 등 현안을 놓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심각할 뿐 더러 중국이 대한민국 주권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내용 일색이다. 발표문 제목부터 ‘5개 응당을 견지하라(堅持五个 ‘应当')였다. 왕이는 이날 회담에서 “’5개 응당’은 “(한중) 양국민이 바라는 최대 공약수이자 시대 흐름에 따른 필연적 요구”라고도 했다.
‘5개 응당’은 얼핏 보면 당연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외교 언어가 ‘꿀발린 말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口蜜腹劍·구밀복검] 경우가 태반인 것을 감안하면,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응징(膺懲)하겠다는 ‘공개 협박’에 가깝다. ‘5개 응당’을 하나씩 보면 이렇다.
1. 마땅히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应当坚持独立自主,不受外界干扰)’
이는 한국을 독립국·자주국도 아님을 시사(示唆)하는 표현인 동시에 외부 간섭 배제라는 말은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韓美)동맹의 파기를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요구와 영향력을 거부하고 미국 편향 외교에서 벗어나라는 강요이다.
2. 마땅히 근린 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사항을 배려해야 한다(应当坚持睦邻友好, 照顾彼此重大关切)
중국이 여기에서 말하는 ‘중대 관심사항’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한국 내 사드(THAAD) 배치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문재인 정부때 한국 정부가 얘기한 ‘사드3불’을 윤석열 정부도 준수하라는 요구이다. ‘사드 3불(不)’은 ▶한국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도 결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3.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应当坚持开放共赢,维护产供链稳定畅通)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우주위성·양자(量子)컴퓨터·희토류 같은 중국을 압박하고 탈(脫)중국하는 공급망 동맹에 가입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올해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립멤버로 가입한 한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 이른바 ‘칩4′ 참여 문제를 긍정 검토 중이다.
4.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应当坚持平等尊重,互不干涉内政).
여기서 상호 내정은, 중국이 자국 영토라고 무작정 주장하는 대만 문제를 일컫는다.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의 최근 대만 방문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중국측의 입장을 무조건 따르라는 요구이다.
5.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 헌장의 원칙을 준수한다(应当坚持多边主义,遵守联合国宪章宗旨原则)
미국 주도의 일극(一極) 체제가 끝나고 다자(多者)주의 체제로 가고 있는 세계 흐름을 적시하고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각종 대중(對中) 제재에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한 것이다. ‘다자주의’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비판할 때 활용하는 논리 중 하나이다.
‘5개 응당’을 요약하자면, 미국·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고 확대하는 와중에 한국이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협박이다. 이는 한미(韓美)동맹 강화를 외교 노선으로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기(氣)를 꺾고 5년 내내 ‘5개 응당’을 한국을 상대하는 원칙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왕이가 말한 ‘양국 국민의 최대 공약수’라는 표현은 한국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이 일방적으로 갖다 부친 것으로 오만(傲慢)의 극치이다. 중국은 한국 외교 수장(首長)과 주중대사를 상대로 ‘외교적 무례(無禮)’도 저질렀다.
이번 외교 장관회담을 수도 베이징이 아닌 칭다오에서 연 게 대표적이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지난달 26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총서기를 만났었다.
정재호 신임 주중한국대사는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데도 지난달 19일 중국에 도착하고도 베이징 대사관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그 대신 톈진(天津) 시내 호텔에서 10일 동안 ‘강요된 격리’를 해야 했다. 중국이 한국 정부를 하대(下待)하고 우습게 보고 있기에 벌어진 ‘경멸(輕蔑)’적 행태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강력한 대중(對中) 외교 원칙을 이번 회담에서 5~6개 강하게 치고 나갔어야 했다”며 “주권 침해적인 중국의 ‘5개 요구’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가 말과 행동으로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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