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예수의 외출
김여하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 날 아침입니다. 간밤에 자정미사를 지내고 난 뒤라 모두 피곤하여 잠에 빠졌습니다. 제대담당 수녀님은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성호를 긋고 고개를 든 순간, 수녀님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구유에 누워서 쌔근쌔근 잠들어 계셔야 할 아기예수님이 사라진 것입니다. 수녀님은 우선 본당 안을 찾아보다가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께 보고를 한 후 수녀님들에게도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습니다.
온 성당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혹시 누군가의 장난인가, 동네불량배의 행패인가 하며 본당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았습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보아도 아기예수님은 안 계십니다. 어쩔 수 없이 평신도회와 레지오등 각 모임의 장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제 모든 교우들이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본당은 도림동 성당입니다. 종현(명동), 약현(중림동), 백동(혜화동) 성당에 이어 우리나라 네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입니다. 6.25동란 때는 피란을 갔다가 남겨진 교우와 본당일이 걱정이 된 이 현종(야고보) 보좌신부님이 돌아와서 성당을 지키고 계시다가 괴뢰군의 흉탄에 순교하셨습니다. 그해 (1950.4.15일) 서품 받으셨으니 얼마나 젊고 아까운 나이입니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유명성당들은 순교자가 많다거나 그 이름에 맞는 아름다운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림동 성당도 63년도 중건 때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의 부인 제클린 여사등에게 우표를 보내어서 비용을 보탠 일도 있습니다.
원래는 주변에 온통 옥수수 밭이어서 황량한 들판의 산등성이에 서 있었으나 이제는 제법 큰 건물들이 들어서서 마을들이 때깔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예수가 사라진 사상 초유의 사건에 당면한 주임신부 및 교우들이 온 동네를 아침밥도 쫄쫄 굶었습니다. 헤메이던 중 아기예수님은 엉뚱한 곳에서 그 옛날 부활하시듯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자전거의 장바구니 안에서이지요.
아기예수님을 안고 갔던 범인(?)은 초등학교 2학년의 꼬마였습니다. 사연인즉 아기예수님이 며칠째 구유속의 요람에 누워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었답니다. 모두들 잠든 시간에 성당에 들어가서 아기예수님을 안고나와 자전거에 모셨답니다. 그리고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옆 동네 까지 한 바퀴 돌면서 세상을 구경시켜드렸답니다.
어른들은 아이의 말에 기가차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무라지도 못하고 칭찬도 할 수 없었답니다. 무사히 돌아오신 아기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제 자리에 뉘였습니다. 그날 주임시부님은 본인의 불찰이라고 고해성사를 드렸을까요?
지금부터 수십 년 전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보라, 연보라, 분홍, 하양색의 네 가지 색깔 대림초에 불이 모두 켜지고 성탄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또 무슨 은총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올까요. 더 받고자 하지마시고 더 나누어주자고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