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그릇된 집념, ‘모비딕’
집착에 빠진 옹고집 선장… 전체를 파국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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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비딕’을 쓴 19세기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사진)은 1819년 미국 뉴욕시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열한 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2년 뒤 정신착란증으로 사망하자 어머니는 여덟 명이나 되는 자식과 엄청난 빚을 떠맡아야 했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업을 중단한 멜빌은 은행 급사에서 농부, 상점 점원, 측량사, 엔지니어, 임시직 초등학교 교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직업에 종사했지만, 어느 일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1837년 영국을 항해하는 상선의 선실 급사로 선원 생활을 시작해 곧이어 고래잡이배를 타고 희망봉과 태평양을 횡단했다.
작가 ‘멜빌’ 美 소설 르네상스 시대 이끌어
그 뒤 해군 수부로 근무하는 등 줄잡아 5년 동안 바다 생활을 경험했다. 뒷날 멜빌은 젊은 시절을 보낸 이 드넓은 바다를 두고 “나의 하버드 대학교요, 예일 대학교”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렇다 할 제도교육을 받지 못한 멜빌에게 드넓은 바다야말로 인생 경험을 쌓고 삶의 의미를 터득한 교육기관과 크게 다름없었다.
선원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미국에 도착한 멜빌은 선원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마키서스 군도에서 식인종의 포로가 됐던 경험을 살려 쓴 첫 장편소설이 ‘타이피 족’이라는 작품이었다. 또 남태평양 섬에서 보낸 목가적 생활을 바탕으로 한 ‘오무’, 영국 상선에서 겪은 경험을 살린 ‘레드번’을 잇따라 출간했다.
상업적으로는 그런대로 성공을 거뒀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렇게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멜빌은 늘 마음속으로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을 쓰고 싶어 했다. 그는 이번에는 바다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되 좀 더 철학적인 내용을 담아 예술성 높은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쓴 작품이 바로 ‘모비딕’이다.
이 작품으로 멜빌은 호손과 함께 미국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모비딕’은 부제에 따라 흔히 ‘백경(白鯨)’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백경’이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엄청나게 큰 흰 고래 ‘모비딕’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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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심 불타는 광적인 선장에 선원들 모두 희생
젊은 시절의 멜빌처럼 육지에서 별로 할 일이 없던 이 소설의 화자(話者) 이슈메일은 선원이 돼 포경선을 타고 고래잡이를 떠난다. 이 포경선에서 그는 선장 에이해브를 만난다. 에이해브 선장은 고래잡이를 하다가 모비딕한테 한쪽 다리를 잃고 흰 고래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광적인 인물이다. 이슈메일은 이런 에이해브 선장을 두고 “신(神)을 인정하지 않는 신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에이해브는 단지 흰 고래를 추적하기 위해 여덟 선원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서양을 거쳐 태평양, 그리고 일본 근해까지 간다. 마침내 일본 근해에서 흰 고래를 발견한 에이해브 선장은 그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흘 동안 이어지는 이 사투에서 첫날에는 보트가 부서져 한 명의 선원이 사망하고, 둘째 날에는 세 척의 보트가 한꺼번에 침몰한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고래가 포경선에 직접 달려들었다. 에이해브는 작살을 고래에게 던져 명중시키지만, 그 작살을 끝까지 잡고 있던 그는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는다. 포경선은 침몰하고, 선원들은 모두 익사한다. 선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인물은 이 소설의 화자 이슈메일뿐이다.
목표 달성 못지않게 올바른 목표 설정이 중요
그렇다면 작가는 왜 에이해브 선장을 파멸시켰을까? 에이해브의 죽음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흰 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에이해브는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추구하려는 인물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에이해브에게 과정 따위는 상관없으며 오로지 모비딕을 죽이는 결과만이 중요하다. 자신의 집념에 타인이 희생되는 것에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모비딕으로 표방되는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가치에 에이해브는 무모하게 도전한 것이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그 목표가 옳지 않은 것이라면, 그리고 인간능력 밖의 것이라면 그보다 더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잘못 상정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자칫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화를 입을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 못지않게 목표가 올바르게 설정됐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향한 집착 때문에 혹시 주위 사람을 잃고 있지는 아닌지, 모비딕을 통해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
<김욱동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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