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군 참전 기념비. 제2차 세계대전 때 외적의 침략으로 군대를 잃은 에티오피아는 황제의 근위대를 한국에 파병했다. 셀라시에 당시 황제는 그들의 부대에 ‘격파하라’라는 뜻을 가진 ‘각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강원도 춘천시 이디오피아길).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엔은 바로 다음 날인 6월 26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서 북한에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북한이 불응하자 유엔은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7월 24일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유엔군 사령부가 정식으로 설치되었고 사령관으로 맥아더 장군이 결정되었다. 유엔 결의에 뜻을 같이한 16개 나라는 전투 부대를, 6개 나라는 의료지원단을 보내기로 했고, 38개 나라는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나라가 없어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 참전국이, 참전용사들이 아낌없이 베풀어준 희생과 헌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커다란 은혜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위기에서 구해낸 자유 대한민국 안에서 그 빛나는 번영을 한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길의 시작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본지에서는 전국에 있는 참전국들의 기념비와 전적비를 지면에 실어 그들을 기억하고 가슴 깊이 기리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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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가평 전투 참전 기념비 근처에 있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이 새겨진 표석. 이곳에서 미국 유타주 출신 포병 대대 장병들은 대규모 중공군을 상대로 단 한 명의 아군 희생자 없이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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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군 참전 기념비와 트루먼 대통령 동상. 트루먼 대통령의 즉각적인 결단 덕분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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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리 영국군 전투 전적비.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이다. 영국군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참전국 대대들이 배속된 영연방 여단의 중심이 되었다(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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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군 참전 기념비. 전면에 남아공의 상징 동물 스프링복(영양의 일종) 동상이 서 있다(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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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그리스 고대 유적 아테네 신전 모습으로 세워진 기념비 정면에는 월계수 잎과 투구가 새겨진 둥근 동판이 붙어 있다(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상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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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룩셈부르크군 참전 기념비. 참전하려는 나라는 최소한 대대 규모의 장병을 보내야 했지만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예외가 되었다. 룩셈부르크는 1개 소대를 이웃 나라 벨기에 대대에 포함시켜 파병하였다(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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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정면 벽에는 프랑스 대대의 마크와 프랑스군이 배속되었던 미 제2사단 마크, 사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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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군 참전 기념비. 튀르키예는 배 다섯 척 외에도 보병, 공병, 수송, 의무 등의 부대를 갖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단급 병력을 파병하여 탁월한 용감함을 드러냈다(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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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군 참전 기념비. 당시 멘지 호주 총리는 유엔 결의를 곧바로 지지하고 “대규모 부대보다 소규모일망정 조속한 참전이 몇 배 더 바람직할 것이다”라며 해군과 공군을 서둘러 보낸 후 곧 지상군도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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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하거나 실종된 캐나다 장병들을 기리는 조형물. 어린이들이 안고 있는 단풍잎과 무궁화꽃은 실종자 수를 나타내고 있다(부산 유엔기념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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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 참전 기념비. 필리핀은 공산주의가 아시아로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파병을 결정했다. 필리핀의 참전으로 “아시아에서 백인들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라는 공산주의자들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었다(경기도 고양군 덕양구 관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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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군 참전 기념비. 태국은 6·25전쟁 때까지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했고 의료지원단까지 파견했다. 이렇게 3군을 모두 보낸 나라는 미국과 호주, 캐나다, 태국 네 나라뿐이다(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문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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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군 참전 기념비. 뉴질랜드가 파병한 포병 대대는 영연방군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묵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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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 6·25전쟁에 참전한 부대 이름 ‘빠타욘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독립군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했는데 이 이름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한다(인천시 서구 연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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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군 참전 기념비. 풍차 모양으로 만들어져 한눈에 봐도 그 나라 기념비임을 알 수 있다. 기념비가 있는 횡성은 6·25전쟁 때 네덜란드군이 가장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이다(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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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지원국 참전 기념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 결의에 따라 유엔 회원국은 의료 및 물자를 지원하여 유엔군의 군사 작전과 한국의 민간인 구호에 큰 도움을 주었다(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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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 묘역 전경. 1951~1954년에는 1만1000여 구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 후 많은 장병의 유해가 조국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 36명을 포함하여 11개국 2300여 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는 부부 합장자 등 전후에 사망한 사람들을 포함한 숫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