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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북부 신촌포구 주변 탐방
1일차 월요일:제주도착.숙소입소.신촌포구.석식.하나로마트장보기(08:00~20:00영업.16:00계산까지만배달)
<숙소주변식당.
*신촌선창식당(한식.064-783-6697.11시~21:30분)-석식
*조반물(국수.064-783-4647.09시~21시.화-휴무)
*신촌카츠란돈가스(돈가스.순두부찌개.064-784-4464.11시~20:30분.라스트오더19:30분)
*신촌땅스부대찌개(부대찌게.064-784-8599 10시~22시)
2일차 화요일:제주향교.서문공설시장.관덕정.향사당.광해군유배지(제민신협바로앞).이세직유배지(농협제주중앙지점바로앞).오현단.귤림서원.장수당.제주성지.을묘왜변 제주대첩 전적지.오현단.김진구 김춘택유배지.동문재래시장
<향교주변 식당>
*미풍해장국본점(해장국.064-758-7522 05시~15:00시 마감)-중식
*동문시장내 금복식당(고기국수.김밥.순대.0570-1379-6055.08시~19시.라스트오더 18:30분)-석식
3일차 수요일:성산포 이생진시비거리,동암사,수마포해안,광치기해변,오조포구조망,해녀박물관,애향탑.조규현가옥.신촌향사
<성산 주변과 신촌주변 식당>
*성산 제주뚝배기(전복뚝배기.064-782-1089)-중식
*산촌카츠란식당(돈가스.순두부찌개.새새우튀김.064-784-4464)-석식
4일차 목요일:제주4.3평화공원,남생이못 습지생태원,닭머르,신촌4.3성터,신촌환해장성
<신촌초교근처 식당>
*땅스부대찌개(부대찌개.064-784-8599.10시~22시)-중식
*신창식당(한식.064-783-6697)-석식
5일차.금요일:숙소출발,제주공항 도착, 제주공항출발,김포공항도착,서울경부도착,버스승차,귀가
조식:숙소. 제주 공항에서 간단 아점식사, 중식은 경부터미널 식당, 석식은 귀가 후 집에서.
1일차 월요일
서울경부터미널행 10시 고속버스 승차.김포공항출발.제주도착.하니하우스펜션(H) 입소tl.신촌포구.석식.하나로마트장보기
김포공항 중식 후 16:35분 대한항공 탐승-제주공항17:50분 도착-제주공항게이트2로 나가서 1,2,3 중 2(일주동로,516도로)에서 급행101번승차(2,000원).18:20분 출발(다음은 19:10분)-7개정류장 35분-신촌초등학교(남)하차-650m-숙소-120m-신촌포구-180m-신촌선착장-100m-선창식당.곱창전골석식-250m-조천농협하나로마트.장보기(4일동안 조식 및 기타 먹거리 충분히.이날 늦어서 배달이 안되면 1일치만 사고 다음날 살것) -210m-숙소입(하니하우스 루니의집)
*제주공항에서 325번버스(1,150원)는 게이트3 용담.시청(북)에서 승차하는데 18:10분, 19:10분출발-29개정류장 46분소요-신촌초등학교(남)하차
총 이동거리:1.5km
* 제주공항 게이트
<신촌포구>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신촌포구는 올레길 18코스가 지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포구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산책 명소다. 큰 방파제와 작은 방파제가 감싸고 있는 형태이며, 바닷물이 매우 맑아 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평온한 바다여서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
<신촌포구 용천수>
제주시 조천읍 신촌포구 인근의 용천수탕으로 남탕과 여탕이 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 솟아나는 용천수는 노천탕으로 과거에는 주민들의 목욕탕이었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물놀이 장소였다. 오늘날에는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다.
2일차 화요일
제주향교.서문공설시장.관덕정.향사당.광해군유배지.이세직유배지.을묘왜변 제주대첩 전적지.오현단.제주성지.김진구 김춘택유배지.동문재래시장
숙소(하니하우스)-580m-신촌초등학교(북)정류장 325번(극동여객(064-753-0310) 07:40분버스(신사동기점 07:30분출발.10분소요) 승차.(다음 버스는0:8:50분.늦다)-23개정류장 32분소요-서문시장(북)정류장 하차-150m-제주향교-640m-관덕정-230m-향사당-220m-미풍해장국식당.중식-150m-광해군유배지.광해군적소터(제민신협바로앞)-190m-이세직유배지(농협제주중앙지점바로앞)-200m-오현단-40m-귤림서원-30m-장수당-250m-제주성지-150m-을묘왜변 제주대첩 전적지-90m-제이각-오현교(유적표식확인)를 건너서 김진구 김춘택유배지(제주시종합안내센터근처 사거리 과일가게 옆에 표지석 있음))-500m-제주동문시장.금복식당석식.먹거리장보기-90m-동문로터리.동문시장(남) 간선325번(1시간간격).380번(1~2시간간격).312번(27개38분.1시간간격)-21개정류장 34분-신촌초등학교(남)정류장 하차-640m-숙소
총 이동거리:4km
* 극동여객 064-753-0310 전화문의 할것:제주시 관덕정 다음 서문시장 정류장에 정차하는지?
* 325번 버스 배차간격:20분~1시간
<화북포구 화북진지>
화북진지는 1678년 숙종 4년 제주목사 최관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하였다. 제주 3성 9진 중 가장 마지막에 세워졌다. 성벽 높이는 약 3m이며 타원형이다. 해안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선시대 화북진성이 세워지면서 육지와 제주를 잇는 관문으로, 중요한 인물과 물자가 오가는 통로였다. 성 안에는 관리들이 머무는 진사, 사신용 객사, 마방, 무기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가 남아있다. 포구가 좁고 얕아 위험했던 시절, 김정 목사가 직접 돌을 나르며 포구 정비사업을 주도하여 안전한 항로로 만들었다. 청소년문화의집 담장에 160m정도의 화북진지 성벽을 보존하고 있다. 2001년 제주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화북포구 해신사>
화북포구의 해신사는 조선시대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내는 사당이다. 1820년 순조 20년 제주목사 한상묵이 처음 세웠고, 1841년 이원조 목사가 중수하였다. 매년 정월에 마을 주민과 해녀와 선주들이 모여 한 해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유교식 제례를 지낸다. 현재는 제주도 도제로 승격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화북포구 큰짓물>
화북포구 용천수 큰짓물은 제주 해상교통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별도포구)의 용천수로, 양이 많아 큰짓물이라 불렀다.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관리와 유배인들이 제주로 들어오는 제1의 관문이었다. 새로 부임한 제주 목사나 관료들이 배에서 내려 제주 성안으로 들어가기 전, 물을 마시며 여독을 푸는 환영수였다. 주민들에게는 식수원이며 목욕물로 사용되었다. 서착물이라고도 불렀다. 일부 훼손되어 시멘트로 보수했다. 한라산의 지하수맥이 솟아나 여름철에도 얼음물처럼 느껴진다. 화북동이 600여 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돤 것은 풍부한 용천수가 솟아났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18코스가 지나고, 화북동의 역사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화북포구>
제주시 화북동에 위치한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제주도로 들어오는 제1의 관문이자 물류의 중심지였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올 때 조천포구와 함께 가장 많이 이용되던 포구다. 부임하는 목사,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등이 이곳을 통해 입도했다. 옛 지명을 따서 별도포구라고도 불린다. 제주기념물 제22호인 해신사가 바로 옆에 있다.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빨간 등대로 가는 길목에 학생들이 쓴 시가 새겨져 있다. 화북포구문화제가 매년 9월경 개최된다. 목사 부임 행렬 재현, 해신제 봉행 시연 등 다양한 역사 체험행사다.
<제주향교>
제주시 용담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1392년 태조 1년에 창건된 후 수차례 이전을 반복하다가, 1827년 순조 27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대성전은 제주도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과거에는 지역 인재 양성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매년 봄·가을에 공자를 기리는 제사인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주변에는 용두암, 관덕정 등이 있다.
<서문공설시장>
서문공설시장은 제주시 서문로에 위치한 전통 재래시장이다. 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육류 특화시장으로, 신선한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제주도에서 가장 활발한 육류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흑돼지와 한우고기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고기를 구입한 후 시장 내 지정된 식당에서 즉시 구워 먹거나 육회 등으로 조리해 주는 서비스가 특징이다. 동문시장과 달리 관광객보다는 현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로, 1층에는 농수산축산물, 식당 등이 있고, 2층에는 의류 등이 있다. 시장 통닭과 막창 순대, 순대국밥 등이 유명하다.
<관덕정>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제주시 삼도동에 있다. 1448년 세종 30년 목사 신숙청이 군사들의 훈련과 삼무정신 함양을 위해 건립했다. 제주 삼무정신(三無精神)은 제주도에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특징으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제주인의 자립심, 강인함, 정직함, 그리고 이웃 간의 신뢰와 개방성을 상징한다. 이는 정낭(대문 대신 두는 세 개의 막대) 문화로도 이어졌다. 단순히 '없다'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를 나타내는 정신이다. 조선 시대에는 연무장 및 과거 시험장으로 쓰였으며, 제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팔작지붕 건물로, 처마가 길고 건물이 낮은 제주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내부 대들보에는 적벽대첩도, 십장생도 등 귀중한 조선 시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또한 제주 4·3 사건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향사당>
향사당은 조선시대 지방의 자치 기관 역할을 수행하며,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여 향촌의 여러 일들을 논의하고 활쏘기를 하던 곳이다. 제주시 삼도동에 있고, 제주도 유형문화유산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풍속교화와 향사음례(활쏘기 및 주연)를 행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고을의 과제나 민심을 논의하기도 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가락천변에서 조선 숙종 17년 1691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정조 21년 1797년에 향사당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고종 16년 1879년에는 신성여학교 자리로 이용되기도 했다.
<광해유배지.광해군적소터>
광해군 유배지는 강화도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제주도로 옮겨졌다. 제주시 중앙로 인근에서 4년간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강화도 교동도도 유배지였으나, 1637년 병자호란 직후 제주도 행원포구(어등포)로 들어와 떠나지 못하고 유배 생활을 마친 유일한 왕이다.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제민신용협동조합 본점 자리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이 제주도 유배생활 중 마지막을 보냈던 광해군 적소터(유배지)로 전해진다. 18년의 유배 생활 중, 마지막 1637년 제주로 유배되어 1641년 이곳에서 승하하기까지 약 4년 4개월을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에 유배 온 유일한 왕이었다. 철저한 감시 속에서 왕족 신분으로 위리안치되었다. 군사들의 감시 속에서 나인 한 명과 함께 고독하게 지냈다. 제주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외로운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당시 제주 목사 이시방은 국왕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러주었다. 개혁 군주이자 폭군이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서 비운의 삶을 마쳤으며, 제주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역사로 남아있다. 제주 제민신협본점(064-751-0601) 앞에 그 표석이 있다.
<이세직 유배지.이세직적소터.사마재터>
이세직의 주요 유배지는 제주도였으며, 동문시장 인근의 사마재다. 현재 농협중앙회 제주시지부 앞 터에 거주하며 유배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김옥균 암살 사건 이후 비리 혐의로 유배되었고, 제주에서 일본어 교육을 하기도 했다. 유배 기간 동안 세를 내어 살며 학생들을 모아 일본어를 가르쳤다. 1894년에는 추자도로 유배지가 옮겨지기도 했다. 이세직은 대한제국기 정치인으로, 김옥균 암살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장수당>
제주 장수당은 제주목사 이괴가 1660년 현종 1년에 건립한 건물로, 1520년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김정의 넋을 위로하고 향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제주 향교 근처에 위치한 역사적 유적지이자 제주도의 국가유산 관련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1578년 선조 11년 제주판관 조인후가 김정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 것이 시초이며, 1660년 제주목사 이괴가 이를 확장하여 장수당을 건립했다. 향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 향현사와 함께 제주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현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정 외 여러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이자, 탐라의 선비문화와 유교 전통을 계승하는 교육, 문화의 행사 장소이기도 하다.
<귤림서원>
귤림서원은 제주시 이도일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교육 및 제사 기능을 갖춘 서원이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된 김정 선생을 비롯하여, 제주 지역의 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다섯 분의 현인, 즉 '제주 오현'을 배향한 곳이다. 1578년 선조 11년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김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충암묘를 건립한 것이 시초다. 이후 1658년 효종 6년에 제주목사 이회가 교육 기능을 위한 장수당을 세워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고, 1682년 숙종 8년에는 귤림서원이라는 액호를 하사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제주 오현은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이다. 1871년 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2년 제주 유림들이 서원 자리에 조두석을 세워 오현단을 마련하여 제사를 이어갔다. 현재의 건물은 2004년에 복원된 것이다.
<오현단>
오현단은 조선 시대 제주도에 유배되었거나 목사 등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지역 교육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다섯 명의 선현(오현)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제단이다. 1971년 제주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동문시장 인근에 있다. 배향 인물 오현으로 충암 김정은 기묘사화로 유배되었다. 규암 송인수는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청음 김상헌은 국왕특사인 안무사로 파견되었다. 동계 정온은 광해군 때 유배되었다. 우암 송시열은 숙종 때 유배되었다. 본래 오현의 위패를 모셨던 귤림서원이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자, 1892년 제주 유림들이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비석(조두석)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현재 단 내에는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5개의 조두석과 함께 김정의 행적을 기리는 충암김선생적려유허비,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마애명 등이 보존되어 있다. 제주성지의 성벽 유적과 인접해 있으며, 산책로가 있다. 오현길(이도일동)에 기묘사화로 1519년 귀양와서 많은 시문을 남기고 이듬해 사사된 형조판서 김정을 추모하는 귤림서원과 오현단이 있고, 동문시장 입구 남수교 근처에 김정의 유배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제주성터.제주성지>
제주성터는 제주성지라고도 불리며, 제주목의 중심부를 둘러쌌던 역사적인 성곽의 잔존 터다. 최초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탐라국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왜구 방어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되고 활용되었다. 제주시 이도동 일대, 오현단 부근에 일부 복원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 1411년 태종실록에 보수 기록이 있으며, 1780년 정조 4년에는 산지천 범람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간성을 쌓기도 했다. 1920년대 제주항 개발 당시 성벽이 많이 훼손되어 일부 구간만 남아 있다. 제주의 화산암인 현무암으로 축조되었으며, 성곽 주변으로 귤나무와 유자나무가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주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현단과 함께 역사 교육 및 산책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을묘사변 제주대첩 전적지>
1555년 을묘년 명종 10년에 발생한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 민·관·군이 힘을 합쳐 왜구를 물리친 역사적인 승전이다. 왜선 40여 척에 탄 1천여 명의 왜구가 화북포구에 상륙하여 사라봉 일대를 거쳐 제주읍성을 공격했다. 왜구가 성 높은 곳에 진을 치고 3일간 격전을 벌인 초기 침입의 격전지다. 왜구들이 제주읍성으로 향하며 지나간 경로다. 제주시 동문시장 앞 오현교 입구에 을묘왜변 전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승전 이듬해인 1556년에 전공을 기리기 위해 망경루가 창건되었다. 을묘왜변 제주대첩 당시 왜구를 감시하던 곳이다. 현재 제주목 관아 내에 복원되어 있다. 제주성 안을 내려다보며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제주목사였던 김수문은 그 당시 남성이 적은 관계로 여성들이 치마에 돌을 담아 성 위로 나르며 무기 보충을 돕는 70명의 정예 기병 치마돌격대를 이끌고 왜구를 물리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임진왜란 40여 년 전 제주에서 대규모 왜구 침입을 막아낸 최초의 승리이자, 제주 민관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제이각>
제주 제이각(制夷閣)은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감시하기 위해 제주성 남측 성벽 위에 세워졌던 망루다. 1599년 선조 32년 성윤문 목사가 창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 이후 2013년 발굴 조사를 거쳐 2015년, 약 416년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제이(制夷)'는 '오랑캐(왜구)를 제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방을 감시하기 위해 벽 없이 높게 지어진 T자형 누각 형태가 특징이다. 제주성지와 오현단과 인접해 있다. 성벽 위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제주시내와 해안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제주성지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제주도 지정 기념물 제3호다.
<김진구 김춘택 유배지>
김진구와 그의 아들 김춘택의 주요 유배지는 제주도다. 김진구의 유배지는 1689년 숙종 15년 기사환국 때 제주로 유배되어 1694년까지 5년간 있었다. 숙종의 첫째 왕비는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딸로 인경왕후다. 김진구는 김만기의 맏아들이며 인경왕후의 오빠다. 1680년 숙종 6년 문과에 급제해 형.공.호의 삼조판서 요직을 역임했다. 김춘택은 김진구의 큰아들이다. 폐비 민씨의 복위 운동을 하다가 1706년 숙종 32년 아버지 김진구의 유배지로 유배되었다. 인경왕후가 딸만 둘 낳았는데 돌을 못 넘기고 모두 죽고, 인경왕후도 숙종 7년 천연두로 죽었다. 숙종은 두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씨를 맞이했는데 자식이 없자 궁녀 장소의(장희빈)에게서 1688년 숙종 14년 아들 윤(경종)을 얻었다. 중전이던 민씨는 폐위되고 희빈장씨는 왕비가 된다. 세자 책봉 관계로 남인과 서인이 대립되는데, 세자책봉의 부당성을 주장한 송시열과 함께 서인의 편에 섰던 김진구 가족이 모두 제주로 유배 당한 것이다. 영조 때 제주도에 유배당한 임징하는 김진구의 사위다. 장희빈 아들 경종이 자식이 없이 37세에 죽었다. 숙종은 후궁 숙빈 최씨에게서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영조다. 최씨는 장희빈 사레로 궁녀는 왕비에 오르지 못하게 만든 법으로 끝내 왕후가 될 수 없었다. 숙빈 최씨는 김춘택 집안의 몸종이었다. 김춘택은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던 노론 편에 선 죄로 제주에 유배되었다. 1727년 영조 3년 그 당시 제주 별도포구, 현재의 화북포구를 통해 제주 안덕면 감산리에 가시울을 치고 유배당했다. 김진구 가문의 비운의 가족사다. 적거터(유배 생활을 한 집터)는 제주 동문재래시장 내에 있으며, 가락천 인근 오진의 집에서 머물렀다. 김춘택의 유배지는 1706년 숙종 32년 제주로 유배되어, 과거 아버지가 머물렀던 오진의 집이었다. 집주인 오진은 당시 제주 지역의 기녀였으며, 김진구가 유배 왔을 때 그를 수발하며 함께 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김춘택은 시문에 능하여 김만중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했다. 송강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답하는 별사미인곡을 창작했다. 유배 생활의 소회를 담은 '제주동천적거기'와 '산지칠가' 등의 시문을 남겼다. 이들은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친정 식구들(광산 김씨 가문)로, 당쟁에 휘말려 대를 이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현지 유생들을 가르치는 등 제주 교육 발전에 기여했다. 다움창에서만 동문재래시장 바로 앞의 뽕끄레주악 동문시장본점 앞으로 위치가 검색 된다. 제주 동문재래시장 내 '제주시종합안내센터' 앞 사거리 근처에 위치해 있다. 시장 중간쯤에 있는 안내센터 근처 과일가게 옆을 보면 '김진구·김춘택 유배지'라고 적힌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다.
<동문재래시장>
동문재래시장은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상설시장으로,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신선한 농수산물을 판매한다. 제주 공항과 가까이 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연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는 야시장을 운영한다. 제주 특산물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이 있다. 신선한 해산물도 있다. 제주 특색이 담긴 기념품도 있다. 채소, 생선, 건어물 등 제주산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3일차 수요일
이생진 시비거리,동암사,수마포해안,광치기해변,오조포구 조망,해녀박물관
숙소-580m-신촌초등학교(남) 201번(제주시내버스는1,150원)-64개정류장 1시간6분-성산리취락구조(남)하차-336m-이생진 시비거리-879m-720m-동암사-80m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 인증조형물-200m-수마포해안(수마포해안에서성산리입구북정류장까지는500m)-250m-제주해물배기식당 중식.전복해물뚝배기-250m-성산리입구(북)정류장 201번 외 전체버스-1개정류장-광치기해변 하차-150m-광치기해변(간조 13:11분 바다수위최저.만조는19:21분바다수위최고)).광치기해변에서 오조포구 조망 후 201번-22개정류장 27분-해녀박물관입구 하차-70m-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160m-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170m-해녀박물관-350m-해녀박물관입구 201번-45개정류장 53분-신촌초등학교(북) 하차-300m-애향탑-160m-신촌카츠란식당 석식.순두부.돈가스.새우튀김-247m-조군현가옥-576m-신촌향사-240m-숙소
총 이동거리:4km
<아생진 시비거리>
이생진 시비거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해안에 가파른 절벽과 낭떠러지가 한눈에 펼쳐지는 우뭇개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성산포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생진 시인의 대표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비롯하여, 성산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비 20기가 해안 절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성산포 일대를 여행하면서 만든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8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명예도민이 된 그를 기리기 위하여 시비공원을 만든 곳이 바로 우뭇개 동산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로 유명하다. 제주올레 1코스 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성산일출봉 근처 오정개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최근 제주올레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동완주 인증을 기념하는 산티아고 표지석이 조가비 문양으로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우뭇개해안>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우뭇개해안은 성산일출봉 절벽 아래 펼쳐진 검은 모래 해변으로, 독특하고 몽환적인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다. 움푹 들어간 해안이라는 뜻이다. 주요 특징은 검은 모래와 절벽이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웅장한 응회암 절벽과 검은 모래가 대비를 이루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산일출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유료이지만, 우뭇개해안으로 이어지는 왼쪽 산책로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무료다. 해안가에는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해녀의 집이 있으며, 특정 시간에는 해녀 물질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해상에서 성산일출봉의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보트 체험장이 운영되고 있다. 물때를 확하고 가면 좋다. 만조 시에는 해변이 물에 잠겨 좁아질 수 있으므로, 넓은 검은 모래 해변을 보고 싶다면 간조에 가는 것이 좋다. 성산일출봉 매표소에서 왼쪽 계단을 따라 약 10분 정도 내려가면 도착할 수 있다.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기념 인증조형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기념 인증서 조형물은 성산일출봉 앞에 있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으로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동시에 획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제주인의 정직한 심성을 드러내는 정주석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2011년 11월 11일, 한국 시각 12일 새벽 선정되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민간 재단인 뉴세븐원더스(The New7Wonders) 재단에서 주관한 캠페인이었다. 제주도 외에 브라질 아마존, 베트남 하롱베이,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인도네시아 코모도 국립공원, 필리핀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 마운틴이 함께 선정되었다.
<동암사>
동암사는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 기슭에 있다. 성산일출봉 입구 주차장 계단 바로 위에 있다. 성산일출봉을 방문할 때 잠시 들러 마음의 평안을 찾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곳이다. 절 앞 계단 위에서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다. 수국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6~7월경 아름다운 수국을 볼 수 있다. 1934년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당시 사찰명은 일광사였다. 이후 동화사, 일출사, 경봉사 등을 거쳐 현재의 동암사로 개명되었다.
<수마포해안>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수마포해안은 성산일출봉 남서쪽 기슭에 있다. 조선 시대에 제주에서 기른 말을 육지로 보내기 위해 배에 싣던 포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성산일출봉의 웅장한 지질 단면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숨은 명소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파놓은 18개의 일제 진지동굴이 해안 절벽을 따라 남아 있다. 지질 트레일로 수성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화산재 퇴적층과 응회암 지형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물이 깨끗하여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때 확인은 필수다. 해안이 좁고 돌이 많아,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간조) 시간에 맞춰 가야 일출봉 기슭까지 깊숙이 들어가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다. 바로 옆 광치기해변이나 우뭇개해안에 비해 인파가 적어 한적한 분위기다.
<광치기해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의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해변 중 하나다. 독특한 지질 구조로 용암이 바다와 만나 굳어진 현무암 지질층 위에 녹색 이끼가 덮여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일출 명소로 성산일출봉 옆으로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현무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검은색 모래 사장이 특징이다. 제주올길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으로 많은 도보 여행객들이 지나는 곳이다. 물때 확인은 필수다. 바닷물에 잠겨 있던 이끼 낀 비경은 간조(썰물) 시간에만 드러난다. 방문 전 반드시 바다타임 등에서 성산포 물때표의 간조 시간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 해변 입구 벤치나 바위 위에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다. 해수욕이 금지된 구역이므로 감상과 산책 위주로 즐겨야 한다.
광치기해변은 반드시 간조때 갈 것. 그래야 독특한 해변 본다.
바다타임 성산포 물때 시간:2026.5.13.수-13:11분이 간조-바다 수위 최저.다른 여행지 본 후에 이 시각 맞춰서 갈것.만조는 19:21- 바다 수위 최고.물때표 확인 완료(00:31-간조.06:44-만조)
<오조포구>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포구는 성산일출봉을 마주 보고 있는 한적한 포구다. "해가 뜨면 나를 제일 먼저 비춘다"라는 뜻의 오조(吾照)라는 이름처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보는 숨은 명소다. 성산일출봉의 전경이 일품이며, 잔잔한 바다가 호수 같은 분위기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촬영지인 럭키편의점 돌담집이 있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도 촬영했다. 제주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갯벌이 있으며, 겨울철에는 철새들이 날아온다. 제주 올레 2코스로 마을과 연결된 나무다리와 돌담길을 걷기 좋다. 작은 오름 식산봉 정상에 오르면 오조포구와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담는다. 일출뿐만 아니라 성산일출봉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일몰도 비경이다. 오조포구 산책로가 길어 시간이 없을 때는 광치기해변에서 조망해도 좋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제주시 구좌읍에 있으며, 제주해녀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이 기념탑은 일제강점기였던 1931~1932년에 걸쳐 일어난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주도 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1998년 8월 15일에 건립되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생존권 투쟁이자 여성들이 주도한 유일한 항일운동이다. 높이 12m의 탑신은 전통 배인 덕판배 좌대 위에 세워졌으며, 제주의 삼무정신을 상징하는 3개의 돛을 형상화했다. 기념탑은 해녀박물관, 해녀광장 등과 함께 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은 제주해녀박물관과 함께 있으며, 구좌읍 해녀박물관길에 있다. 1932년 제주 동부지역 해녀들이 생존권 투쟁과 일제의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여 일으킨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해녀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세 명의 해녀(부춘화 등) 조각상과 빗창과 태극기를 든 해녀들의 조각상을 배치한 기념탑이 있다.
<해녀박물관>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은 제주 해녀들의 문화와 삶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 문화를 다양한 자료로 전시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이며 관람료가 성인 1,100원, 경로는 무료다. 1960~70년대 해녀들이 살았던 초가와 살림살이, 노동복, 해산물로 만든 음식 등을 통해 과거 해녀들의 삶을 보여준다. 모든 전시물은 실제 해녀들이 기부한 자료들이다. 박물관 앞 정원은 해녀 항일 운동의 집결지였으며, 이를 기리는 해녀항일운동비가 세워져 있다. 어린이들이 해녀 관련 놀이기구를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박물관 옥상에는 바다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다. 바로 앞에는 세화해수욕장이 있다.
<세화해수욕장>
세화해수욕장은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해변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 검은 현무암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정식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수심이 얕고 파도가 비교적 잔잔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산책하기도 좋다. 간조 시에는 넓은 백사장이 드러나며, 만조 시에는 해안 도로까지 물이 차오른다. 근처에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세화민속오일장이 있다. 해녀박물관도 근처에 있다.
<애향탑>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의 애향탑은 신촌초등학교 서쪽 100여m 지점, 신촌사무소 근처에 있다. 1976년 신촌리 출신 재일동포들이 마을 안길 아스팔트 포장 공사비 3,200만원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노동력 연인원 3,000명을 제공하여 마을 발전에 기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신촌리를 정절의 고장으로 유명하게 한 열녀 국지(國只)의 비를 비롯해 총 19개의 마을 비석이 함께 안치되어 있다. 이 비석들은 원래 신촌초등학교 앞에 있었으나 1979년 애향탑을 세우면서 옮겨졌다. 이 마을은 공동체 정신으로 재일동포들의 고향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신촌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보은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신촌리 국지 열녀비>
조천읍 신촌리 신촌초등학교 서쪽 100여m 지점 애향탑 바깥 울타리 서쪽에 있다. 조선(1634) 시대 비석(열녀비)이다. 현 비석건립년대는 1928년이다. 열녀 국지(國只)의 비는 원래 신촌국민학교 정문 앞 일주도로변 남쪽에 세워졌었는데 1978년 5월 신촌리민들이 애향탑을 세우면서 이 경내에 옮겨 세웠다.(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학교 앞을 '열녀문' 또는 '열녀문거리'라고 부른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81cm, 너비 위 36cm, 아래 33cm, 두께 위 22cm, 아래 20cm이다. 개건년대로 보아 국지의 旌門이 세워졌던 인조12년(1634)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1928년에 신촌리민들이 새로 만들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내용은 〈사비인 국지는 신촌리 사람으로 품관 홍질의 첩이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게 되자 그녀의 재색을 탐내어 호세로 겁탈하려는 자가 많았다. 이에 국지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하던 일을 모두 버린 채 시가로 옮겨 평생을 수절하였다. 숭정7년에 정려되었으며 탐라지에 그 내용이 실렸다〉는 것이다. 국지에 대하여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일설에는 국지에게 애정을 품은 한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결혼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는데 끝끝내 그를 뿌리치고 나서 그에게 잡혔던 손목을 작두로 잘라 버리고 일생을 수절하였다고 한다. 국지의 무덤은 신촌리 3842번지 속칭 원남 지경에 있다. 2015년경 신촌리사무소 앞으로 옮겨 세웠다.
<조군현 가옥>
조군현 가옥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제주의 전통 가옥이다. 제주도에서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유일한 사례다. 1978년 제주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초가는 민속문화유산 제3-20호다. 기와집 와가는 민속문화유산 제4-6호다. 기와로 지은 안거리 안채와 초가로 지은 밖거리 바깥채가 마주 보고 있다. 밖거리는 대문간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과거 지방 향리직인 주사를 지낸 인물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조주사댁으로도 불린다. 1800년대 근대 및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축물이다. 바람에 대비해 기와를 크게 만들고 회땜질을 한 기와집과, 현무암 벽에 띠를 덮고 동아줄로 얽어맨 초가를 동시에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신촌향사>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신촌향사는 탑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방의 공무를 처리하던 관청 건물로, 현재 제주도 유형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1977년까지 이(里) 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 중동 길가에 있던 것을 1805년 순조 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으며, 마을의 공무를 논의하고 풍류를 즐기며 활쏘기를 하던 곳이다.
4일차 목요일
제주4.3평화공원,남생이못 습지생태원,닭머르,신촌4.3성터,신촌환해장성
갈때:숙소-580m-신촌초등학교(북) 지선705번 승차(배차간격 20분~90분, 제주시 공영버스(064-728-3211) )08:00승차(정확히는08:08분) 승차 -14개 정류장 18분 소요-봉개동 큰동네 정류장 제자리에서 43-2번 버스.08:33분(정확히는 08:36분)-11개 정류장 10분 소요-4.3평화공원입구 정류장 하차-430m-분-제주4.3평화공원 도착-약500m(공원탐방)
올때:제주4.3평화공원-560m-청소련수련원 정류장에서 43-2번 11:45분 버스승차-8개 정류장 9분-봉개동사우나 정류장 하차.705번 12:10분 환승-15개 정류장.20분소요-신촌초등학교정류장 하차-120m-땅스부대찌개제주신촌점식당(064-784-8599).중식-630m-남생이못습지생태관찰원-490m-닭머르-217m-신촌4.3성터-300m-신촌환해장성-580m-신촌선창식당(064-738-6697).석식-숙소
총 이동거리:4km
<제주 4.3평화공원>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배우는 공간이다. 공원 내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 위령탑, 봉안관 등이 있다.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평화기념관은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에 휴관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4·3평화기념관은 4·3사건의 발발부터 진상규명 운동까지 전 과정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이 있다. 위제단 및 위령탑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참배하는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4·3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장소다.
01위령광장(위령제단) 02위패봉안실 03행방불명인표석 04봉안관 05위령탑 06귀천 07각명비 08모녀상(비설) 09제주4·3평화기념관 10어린이 체험관 11문주 12이젠
제주 4.3 평화공원 상징 조형물
1.비설(飛雪):희생자 변병생(호적명:변병옥) 모녀의 기념조각
1949년 1월 봉개동 지역에 2연대의 토벌작전이 펼쳐지면서 군인들에게 쫓겨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재현하여 만든 기념조각상이다. 등신대의 청동조각상인 이 작품은 4·3 당시 하얀 눈밭을 표현한 백대리석의 원형판 위에서 아이를 끌어 안고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공원의 지면보다 낮게 조성된 조각상까지 달팽이형의 제주석으로 조성된 진입로 벽에는 제주 전래의 자장가인 웡이자랑이 오석 위에 음각되어 있다.
2.위령탑:제주 특유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로 설정되었으며, 그 주변에 네 방위 수호기둥인 현대화된 방사탑을 설치했다. 중앙 연못의 물은 살육의 역사를 정화하는 정화수다. 그 중심부에 있는 2인상은 가해자·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하고 있다. 2인상을 둘러싸는 금속원형의 고리는 인간과 평화의지의 영원함과 완전함을 기원하고 있다.
3.귀천(歸天):4·3 당시 민간인들의 죽음의 이미지와 전래의 수의를 모티브로한 조형물이다. 공원의 주 축선의 중앙에 설치된 상징조형물로서 다섯개의 열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어른 남녀, 청소년 남녀, 어린 아기 등 총 5개의 수의를 단순화·도상화하였다. 이는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한다. 실제 어른·아이 구분 없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설명적인 표현을 벗어나 상징적으로 도식화된 조형미와 죽음의 이미지를 전통수의의 상징성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표현의 간결미와 지역성의 문화특질이 잘 스며든 작품이다.
4.각명비:공원의 핵심공간인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의 환상통로를 끼고 각명비가 들어서 있다. 각명비는 4·3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성명·성별·당시 연령·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간결하게 기록한 것이며, 당시의 마을별 단위로 각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추모를 위한 비석이 아니라, 4·3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죽음의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물이다.
5.행방불명인 표석:이곳은 제주4·3사건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하여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특별히 개인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행방불명인들은 대부분 4·3사건의 와중에서 체포되어, 육지부 각 지역의 형무소에 수감된 후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이어 총살되어 암매장되었다. 그 결과 유족과 후손들은 부모와 자식의 사진 한 장 없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헛묘를 세우기도 하였다. 2020년 4월 현재 제주지역 2,063기, 경인지역 556기, 영남지역 445기, 호남지역 398기, 대전지역 270기, 예비검속 221기 등 총 3,953기가 설치되어 있다.
6.동백꽃:동백꽃은 제주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3월이면 툭 하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새빨간 꽃송이는 마치 4·3 당시 희생당한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1992년 강요배 화백의 4·3연작인 ‘동백꽃 지다’를 통해 4·3의 꽃으로 상징성을 갖는다. 제주4·3 70주년인 2018년 이후 다양한 홍보를 통해 전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작된 동백꽃 배지도 4·3희생자를 추모하고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7.베를린장벽
베를린장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연합국의 분할 통치 및 정치적 충돌이 발생해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지면서 건설된 장벽이다. 베를린 장벽은 이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독일 통일이 추진되면서 1989년에 철거됐다. 독일 베를린시는 2007년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을 기념해 장벽 일부를 기증했다. 냉전의 상징물이기도 한 이 장벽은 70여년 전 미·소의 대립, 좌우익의 갈등속에서 발생된 비극적인 제주4·3의 역사와 분단된 대한민국에게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8.이젠:제주를 상징함과 동시에 4·3을 품은 한라산에서 대지(미래)로 향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젠(시간적)’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 (인권, 평화, 통일)로 나아감을 표현하고 있다.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시에 출품되었고 이후 제주4·3평화공원에 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양해수욕장>
제주 삼양해수욕장은 제주시 동부에 위치한 검은 모래 해변이다. 화산암편과 규산염 광물이 다량 함유된 검은 모래로 여름철에는 신경통 및 관절염에 도움이 되는 모래찜질을 할 수 있다. 제주시내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지만, 다른 유명 해수욕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소박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7월 중순~8월 중순에는 야간 개장을 실시하여 저녁 시간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남생이못 습지생태관찰원>
남생이못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인공 습지 생태 연못이다. 1933년 신촌리 청년들이 말과 소에게 물을 먹이고 주민들의 생활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직접 땅을 파서 만든 인공 연못이다. 90년이 넘었는데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남생이 못 이름의 유래는 민물 거북인 남생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옛날 원나라 황제가 이곳에서 제를 지내자 아들 즉 남자 아이가 생겨서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습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나무 데크 산책로, 정자, 주민들이 과거에 사용하던 남탕과 여탕 흔적 등이 있다. 생태 환경동식물은 수련, 어리연꽃, 부들 등의 수생식물과 맹꽁이, 참개구리, 물자라, 소금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닭머르 해안길 및 올레길 18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
<닭머르>
신촌포구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억새와 낙조로 유명한 닭머르 해안이 있다. 닭머르(닭머르 해안길)는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해안 명소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앉아 있는 듯한 독특한 바위 형상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몰 명소로 수평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낙조가 아름답다. 억새 산책로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은빛 억새가 가득 피어나며, 나무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가 있다. 해안 정자가 산책로 끝자락 바위 위에 세워져 있어 푸른 바다와 억새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다. 제주 올레길 18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신촌리 4.3성터>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해안가 언덕 닭머르 해안 인근에 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주민들을 감시하고 무장대의 공격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 성터다. 무장대로부터 강제 동원되어 당시 살아남은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성을 쌓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략촌 형성을 위해 1948년 말 중산간 마을들이 초토화된 후, 해안 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을 집단 수용하기 위한 전략촌의 흔적이다. 현재 모습은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뚜렷하지 않아 찾기 어려울 수 있으나, 해안가 동산 위에 검은 돌들이 쌓인 형태로 남아 있다. 역사 탐방과 자연 경관 관람을 겸하는 명소다.
<신촌환해장성>
신촌환해장성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해안에 남아 있는 고려~조선 시대의 방어 유적이다. 배를 타고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제주 해안선을 따라 쌓은 돌담성인 환해장성의 일부다. 약 90m가량의 성벽 흔적이 남아 있다. 폭은 약 240~250cm로 다른 지역의 환해장성에 비해 조금 넓은 편이다. 1270년 고려 원종 11년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조정이 처음 쌓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 및 축조되었다. 인근에 철새 도래지인 대섬, 일몰 명소인 닭머르, 용천수장 등이 있다. 오랜 세월과 해안 개발 등으로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신촌리 환해장성은 현재 비지정 문화재로 분류되어 관리가 필요한 상태다.
5일차.금요일
하니하우스펜션 출발,제주공항도착,제주공항출발,김포공항도착,서울경부도착,버스승차,귀가
숙소에서 조식 05시.06:20분 숙소 출발-541m-신촌초등학교(북)에서 제주공항행 급행101번 06:50분 승차(10:20분 비행기.08:00까지 도착해야됨) 카드2,000원-8개정류장 43분-제주공항07:34분 도착.공항 아점식-제주공항10:20분 출발-김포공항 11:40분 도착.전철9호선 승차-서울경부13:00경 도착.중식-15:30분 고속버스승차-귀가18:00분 집 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