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제도(이하 ‘토허제’)가 계속 논쟁거리다. 최근 토허제의 부당성을 강한 어조로 제기하면서 다시 논쟁에 불을 붙인 인사는 유경준 국민의힘(강남 병) 의원이다. 물론 유 의원이 토허제를 처음으로 비판한 정치인은 아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을 지역구로 둔 태영호 국민의힘(강남 갑) 의원도 지난 4월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다. 태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집값 급등을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지난 2020년 6·17 부동산 대책에서 토지거래허가제를 강남 등 인구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 적용했다”며 “문 정부의 무리한 규제는 당초 예상했던 효과는커녕 주택 거래량만 대폭 감소시켜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만 야기했다”고 맹공했다. 그는 “토지거래허가제는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드러났다”고 지적한 뒤 “그 어떤 제도도 헌법으로 보장된 주거 이전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보장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태영호 의원의 토허제 철회 요구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폭주’를 멈추지 못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말 압구정동 등에 시행 중인 토허제를 1년 연장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재지정 서울시에 여당 의원도 불만
태영호 의원 뒤를 이어 토허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폐지를 요구한 이가 유경준 의원이다. 코넬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을 거친 통계청장 출신의 유경준 의원이 제기한 토허제 해제 사유는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을 지역구로 둔 유 의원은 서울시가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 송파구 잠실동에 대한 토허제를 1년 연장하기로 한 것을 두고 서울시를 강력 비판했다.
유 의원은 오는 6월 22일 지정기한이 만료되는 강남구와 송파구 일부 지역에 지정된 토허제를 서울시가 1년 재연장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무엇을 위한 토지거래허가제도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서울시는 해당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하면서 재지정을 위한 정량지표와 정성지표에 근거하지 않고 소위 정무적 판단만을 강조하여 특정지역 주민들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박탈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통계 전문가다운 접근법이다. 그는 서울시가 숫자로 표현된 ‘정량지표’와 측정이 불가능한 것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정성지표’를 사용해 토허제 재지정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감’에 의지해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봉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특정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2년을 지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1년 연장하여 3년째 지정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반(反)헌법적인 행태”라고 혹평했다.
그는 토허제의 취지는 ‘투기적 거래’를 방지하는 것에 있는데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 송파구 잠실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명분이었던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은 2014년부터 추진된 사업이어서 규제의 빌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은 “투기적 거래가 있으려면 9년 전에 있어야지 현재까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쏘아붙였다.
유 의원의 주장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시작해 송파구 잠실동 종합운동장 일대까지를 아우르는 이른바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은 박원순 전 시장이 재임했던 2014년부터 추진된 반면 서울시가 이 지역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2020년이다. 서울시가 투기 거래를 걱정했다면 2014년에 지정했어야지 2020년에 지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핑곗거리라는 것이 유 의원의 주장이다.
지난 정부는 ‘공급 억제+수요 규제’의 시장 질서를 거스르는 부동산 대책을 25차례나 시행했지만 집값은 고공행진했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5월 출범했는데 2017년 4월 24일부터 2021년 6월 28일까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KB국민은행 기준으로 51.32%에 이르렀다. 유경준 의원은 서울시가 2020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한 것은 “투기적 거래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으로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지정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지적한 뒤, “과거 민주당 정부와 박원순 시장을 반시장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던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서울시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와 박원순 전 시장의 토허제 시행을 비판해온 입장에서 같은 당 소속의 오세훈 시장이 2022년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을 핑계로 토허제를 재연장한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다’고 말한 것이다.
유 의원은 오 시장이 전 정부와 박원순 전 시장의 합작품인 토허제 지정을 해제하지 않는 것을 두고 부끄럽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22년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기존 토허제를 오히려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종전의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 효력은 ‘공고한 날부터 5일 후’에 발생하는데 이것을 ‘공고 후 즉시’로 변경한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후 5일 동안 발생할 수 있는 투기성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 따른 조치다.
유 의원이 오 시장을 비판한 것은 그의 지역구 주민들의 토허제 비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강한 탓이기도 하다. 유 의원 지역구에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 5500여명이 토허제 해제를 촉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해 유 의원에게 제출했고 유 의원은 이를 서울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 1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추경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집값 조정기에 왜 유지하나”
오 시장을 비판하면서 토허제 해제를 요구하는 정치인은 더 있다. 송파구 잠실동 등이 자신의 지역구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역시 정부와 서울시에 토허제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역구에 있는 엘스(옛 잠실주공1단지)와 리센츠(옛 잠실주공2단지)의 아파트 외벽에는 ‘재산권 침해하는 토지거래허가제! 즉각 해제하라!’는 문구의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엘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서초구는 롯데칠성부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정보사 부지개발 등 여러 개발 사업이 예정돼 있고 집값도 급격히 올랐는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서 “특정 지역에 혜택을 몰아주는 듯한 정책의 철회를 위해 준비 중인 단체행동이 효과가 있지 않으면 추가 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서울시가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을 명분 삼아 강남구 삼성동과 송파구 잠실동에서 토허제를 연장 지정한 것을 두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유가 된 개발 사업들은 2028년에 잠정 완성되는 데다 현재는 집값 조정기인데도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강남구와 송파구처럼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토허제 해제를 촉구하는 지역은 아니지만 토허제 적용을 받는 용산구 주민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를 듯하다. 특히 용산구는 40년이 넘은 빌라와 연립이 많은데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고충은 상상 이상이다. 집은 팔 수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수리를 해야 하고 일정한 수입도 없으니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만난 85세의 용산 주민은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을 뽑은 이유가 토허제 해제 때문이었는데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한탄했다.
토허제 재지정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오는 10월 토지거래허가구역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토허제 관련 내용이 담긴 부동산거래신고법이 지난 4월 개정돼 오는 10월 19일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개정 법안은 특정 용도와 지목을 특정해 토허제 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으로 건축물의 용도별로 토허제 지정을 달리할 수 있으면 상업용·업무용은 토허제 규제 대상에서 빼주겠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주택은 토허제 대상으로 남겨놓겠다는 얘기다.
토허제와 관련해 내국인 역차별도 문제다. 토허제로 인해 외국인과 비교해 내국인에게 적용되는 부동산 규제가 상대적으로 더욱 심해졌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31일 2022년 말 기준 외국인 주택·토지 보유 통계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한 서울 주택은 2만1882가구이며 그중에서 중국인이 소유한 주택은 전체 외국인 보유 주택의 53%이다.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강남 3구(4989가구)와 용산구(1312가구)에서 중국인이 보유한 주택은 6301가구나 된다. 이 지역은 대부분 토지거래허가제 지역이다. 이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구청장의 승인을 거쳐서 취득하고 취득한 다음에 실제 거주했을까?
지난 정부 시절 외국인에게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 상향,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 금지 등의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자국민에게는 토지거래허가제라는 명목으로 주택거래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외국인에게는 규제의 예외를 두었으니 내국민 역차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대차3법은 주택공급을 확대하지 않은 채 집값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 결과는 매맷값과 전셋값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 규제를 하지 않고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주택의 수급이 시장 자율로 결정되었다면 신규 주택 공급이 이어질 때까지 집값은 상승하겠지만 공급이 현실화되면서 가격은 하향 안정화될 것이다. 결국 인허가→분양→착공→준공→입주에 필요한 시차(time lag)에서 발생하는 잡음과 혼란을 정부가 참을성 있게 견디지 못하고 ‘규제의 칼’을 매번 뽑아서 휘두르기 때문에 시장 혼란이 반복되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도 않는 과잉규제
토허제는 임대차3법과 마찬가지인 과잉규제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었을 때 사유재산권 침해를 무시하고 강행했던 초헌법적 규제를 경기가 소강상태일 때도 풀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토허제를 이용해 집값을 억누르면, 억눌려던 기간 동안 숨죽이던 가격은 정부가 규제의 끈을 푸는 순간 급등할 것이고 상승 시점이 동일하므로 부작용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매매가, 전세가의 급등락과 비슷한 혼란이 재현되는 것이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는 1년도 남지 않았다. 총선에 임박해서 토허제를 해제하면 야당은 정부·여당이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 정략적으로 규제를 없앴다고 비아냥거릴 것이 틀림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시장주의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지난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 공약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재산권 행사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토허제를 지금 당장 철폐해야 한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