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괴담과 착각·상상력의 정치
국회 대정부 질문(외교·통일·안보 분야)이 있은 지난 10일 여야는 조태열 외교,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불출석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야측은 “국무위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따라 대놓고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며 “두 장관이 국회를 능멸하고 있다”고 공박했습니다. 여당은 “중요 고위급 회의 때문에 차관 대리 참석을 사전 통보했고, 야당은 양해 확인까지 해놓고 딴소리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민주당이 박찬대 원내대표 직인을 찍은 양해 확인서를 외교부(3일)와 국방부(9일)에 전달했다는 국민의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아마 당 실무자가 실수로 원내 대표 직인을 찍은 것 아니겠느냐”고 책임 소재를 아랫것들한테로 돌렸습니다.
22대 국회 들어 야권이 발의한 법안이 1,000개도 넘어 의원들도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하니 원내대표도 기억에 한계가 왔나 봅니다.
# “계엄 근거 있나”…“상상에 따른 의심”
이에 앞서 여야는 계엄 괴담으로 날선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의 잇단 윤석열 정부의 계엄 준비설 언급에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선동·괴담이라며 발끈했습니다.
이 대표의 최측근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3일)에서 “계엄설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나 김용현 국방장관 등은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이라는 상상력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야당 의원이 그 정도 의심도 못하나? 계엄의 구체적 증거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그런 생각조차 갖지 마라’는 측면의 발언 아니겠느냐”고 얼버무렸습니다.
# “선포 동시에 의원·체포 구금설 있다”
말싸움 끝에 계엄 괴담은 증거 없는 억측으로 유야무야되는 모양새지만, 이재명 대표는 지난 1일 더 무서운 발언을 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담 모두 발언에서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야당 42명)을 체포·구금하는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도 있다”고.
그는 “(사실이라면) 완벽한 독재국가가 아닌가”라고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계엄 해제 요구권을 강화하는 법 개정까지 검토하고 있다니 착각이나 상상력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시쳇말로 ‘특검을 해야’ 사실이 밝혀질까요?
풍진(風塵; 세상의 속된 일) 병진(兵塵; 전쟁의 어수선하고 살벌한 분위기) 세상을 다 겪은 세대는 자포자기하는 한숨을 짓기도 하지만, 내일 모레(9월 21일) ‘청년의 날’을 맞는 젊은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론조사 대상도 아니지만 항간에는 이 식상한 막장 정치판을 걷어치우려면 “계엄밖에 없다”고 공공연하게 내뱉는 사람도 숱하게 있었습니다. 입으로만 민생·협치를 외치며 국리민복을 외면하는 사이비 정치꾼들 모조리 잡아다 수장(水葬)하든지, 암장하든지 해야 한다고. 장삼이사들의 무책임한 볼멘소리겠지만 정치판에 식상한 많은 백성들의 울분이기도 합니다.
# 민주주의 불만 59%…“독재 체제 선호”
2017년부터 세계 유권자를 대상으로 대의(代議)민주주의 제도 만족도 조사를 해온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는 지난해 조사(2~5월, 24개국 3만861명) 결과 불만족 응답자가 59%라고 밝혔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좋다는 유권자는 2017년에 비해 영국(43->31%), 독일(46→37%), 인도(44→36%), 한국(19→17%), 일본(22→14%), 이탈리아(29→23%) 등에서 줄어들었습니다.
퓨리서치 측은 “이런 현상은 의원 등 선출직 엘리트들이 시민과 소통하지 않고, 정치·경제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대중들의 불만 때문”이라며 “대의민주주의가 좋은 통치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소수”라고 했습니다.
“국민들의 생각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응답은 스페인(85%), 아르헨티나·미국(각 83%), 헝가리(78%), 한국(73%), 일본(72%) 등이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퓨리서치 조사에서는 “강력한 지도자가 의회·법원 등의 견제를 거치지 않고 결정하는 체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늘어났습니다. 독일(6→16%), 폴란드(15→25%), 아르헨티나(17→27%), 인도(55→67%), 한국(23→35%) 등입니다. 이번에 포함된 미국도 26%나 됩니다.
멕시코(58%), 남아공(46%), 브라질(42%)은 군부 통치를 원했습니다. 영국(17%), 일본(16%), 미국(15%)도 상당수에 달했습니다.
한국도 그런 성향을 가진 유권자가 적지 않다니 미래의 한국 정치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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