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화(山桃花) 피는 산자락
현직 시절에는 주중 근무일과 주말 휴식일의 경계가 뚜렷했다. 퇴직 이후 자연학교 학생이 되고 보니 주중과 주말의 감각이 무뎌졌다. 자연학교는 연중무휴라 주말도 방학도 없이 매일 등교한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학교로 간다. 오늘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삼월 한 달을 보내는 날이다. 이월 말 정년을 맞아 자연학교 학생으로 재입학해 자유로이 산과 들을 누비며 지낸다.
삼월 끝자락 목요일 아침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친구가 가꾸는 꽃밭을 둘러봤다. 꽃대감 친구는 보이질 않고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가 소일삼아 가꾸는 구역을 살피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가 돌보는 꽃밭에는 수선화가 화사했고 돌단풍이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친구는 유튜브에 소개할 봄꽃 차례가 밀려 있다고 들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해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불모산동 종점에서 북면 마금산 온천으로 오가는 17번 버스를 탔더니 명곡교차로를 지나 천주암을 거쳐 굴현고개를 넘어갔다. 차창 밖 북녘으로는 겹겹이 포개진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회전교차로에서 새터를 지나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앞둔 중방마을에서 내렸다.
북면 감계 일대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녹지와 생활공간 경계는 뚜렷해졌다. 시골의 원형질을 간직한 중방마을과 내감마을은 섬처럼 고립시키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이십여 년 전 논이거나 산기슭 밭뙈기였다. 언제부터인가 도심이 팽창해져 택지난을 겪게 되자 주거지는 외곽으로 뻗쳐져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그로 인해 내 텃밭마저 망가지게 되었다. `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전 나는 그곳 개울에서 돌미나리나 돌나물을 걷어와 소중한 찬거리로 삼았다. 조롱산 기슭에서는 봄날에 취나물이나 참나물을 뜯어 귀로에 지기들과 나누기도 했더랬다. 둥굴레도 군락을 이루어 잎줄기는 나물로 하고 가을에 뿌리를 캐서 담금주도 담아 음용했다. 늦여름부터 가을이 이슥하도록 물봉선이 선홍색 꽃을 피우면 장관이었는데 이제 지난 일이다.
중방마을에서 녹지 공간인 남서쪽 단감과수원 산자락으로 올랐다. 예전 도시 개발 이전 농업용수를 공급했을 작은 저수지를 지나다가 둑에 자라는 달래를 몇 포기 캤다. 봄날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면 내 주특기인 채집 실력을 발휘했다. 과수원 농막을 지나 양미재로 오르는 숲으로 들었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밟으며 산기슭을 오르다가 인동덩굴 새순이 나와 몇 줌 따 모았다.
양미재로 오를 때면 늘 쉬었다 가는 너럭바위에 앉아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오리나무에서는 연녹색 잎이 돋고 호젓한 숲속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이 재잘거렸다. 쉼터에서 일어나 양미재로 오르면서 딱총나무 새순을 몇 가닥 따 모았다. 양미재를 넘어 구고사 뒤로 뚫린 트레킹 길을 따라 갔다. 작대산 트레킹 길에 이어 상봉 꼭뒤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음을 최근 알게 되었다.
상봉은 천주산이 작대산으로 가는 산등선의 농바위라고도 하는데 천주산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봉우리다. 외감마을에서 바라보면 세워둔 장롱 같아 농(籠)바위로 불린다. 상봉 꼭뒤에서 구고사와 가까운 칠원 산정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새로 뚫린 등산로를 따라 가면서 엉겅퀴가 보여 캐고 찔레나무에서도 새순이 돋고 있어 몇 가닥 따 모았다. 이들은 식용 가능한 찬거리다.
돌너덜을 지나니 수목갱신지구 조림지를 앞두고 형상이 특이한 바위더미가 나왔다. 청청한 소나무 곁에 주사위 같은 정사면체 바위가 공중 부양하듯 받쳐 있었다. 함안 경계 고개 가는 길은 훗날 가보기로 하고 산정마을로 내려서다가 보라색 뫼제비꽃을 만났다. 산기슭을 빠져 나가니 분홍빛 산도화(山桃花)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도원이니 여기가 무릉이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