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지키는 나무들, 현담, 법연 스님.
가을은 떠났고 이젠 겨울의 문턱을 넘었다. 봄부터 시작되는 그 화려한 계절은 다 지나갔다.
가을이 겨울로 바꾸는 환절기에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아직도 어린 소년 시절의 여린 감정이 남아 있는지 계절이 바뀌는 때면 가슴 한 쪽을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늘 마음 병을 앓는다. 특히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들어설 때, 떨어진 낙엽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더 이상 나를 주체할 수 없게 한다. 이번에도 나는 그 바람 소리를 들을 때쯤 어딘가로 길을 떠나야 했는데 어물어물 지체하다가 결국 몸살을 앓고 말았다.
몸살을 앓고 있는 중에 문병 차 찾아온 도반이 시집 한 권을 두고 갔다. 이번에 해인 출판사에서 낸 현담, 법연 두 스님의 공동시잡 <길에 나가 길을 묻는다> 였다. 일찍부터 두 스님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도반이고 진작부터 시집이 나올 것이란 말을 들은 터라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가 뜻하지 않게 받은 것이다. 몸살로 머리는 지끈거리고 방안에서만 며칠을 지낸 탓으로 어지간히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두 스님의 시집을 펼치는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그 만큼 구 스님의 시는 나를 감동시켰다.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출산하기 위해서 산고의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그만큼 시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없는 사람의 시는 아름다운 말로 치장을 해도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그 동안 우리 절집 안에도 시를 쓰는 시인이 많았다. 소위 문단 추천을 통하여 시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중도에 시를 포기한 사람도 더러 있고 아직도 시를 쓴다고는 하나 참으로 시다운 시를 쓰는 이는 드물다.
옛날 선사들의 특출한 시 세계에 비하면 요즘 승려의 시는 세인들의 수준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졸려하기까지 하다. 이는 오늘날 불교계의 혼탁상과 더불어 시를 쓰는 승려가 본분사를 상실한 채 진실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과 관계가 있다. 한 때 시를 쓴다고 천방지축 설레발을 떨고 다니던 덜 떨어진 승려들이 결국 종단의 가장 비난받는 정치 승려가 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보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발문을 쓴 현웅 스님은 그 발문에서 “법연이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스무 해가 넘은 세월에야 그것도 반쪽의 시집으로 내어놓게 됨은 지독한 게으름이자 어눌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1979년 첫 시집 <햇살의 숲> 뒤로 1980년대에 들어와 시를 버린 사람‘이라고. 사실 현담은 그 동안 도반들 곁을 떠나 노동자 노릇도 해보고 신라 혜초 스님같이 인도 부처님 성지 어디쯤인가도 돌아다니고 유럽 쪽 화려한 도시의 골목길로 쑤석거리며 다니다가 돌아왔다.
참다운 시인은 시를 쓰기 힘든 것이 아니라 시의 삶을 살기가 더욱 힘든 것일 게다.
법연이 스무 해 넘어서야 반쪽짜리 시집을 내놓은 것이나 현담이 절필까지 하면서 방황한 것이 바로 그들의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 그리워하고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 절망의 바닥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 절망의 방황 중에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현담이 1980년의 불교 운동에 가장 앞장섰고 5.18의 광주를 보고 가장 깊이 절망하고 분노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다. 그런 중에 그는 시인으로 인간의 죽음과 짓밟힌 자 앞에 시라고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했고 총과 권력 앞에 나약하게 보이는 시를 경멸하기까지도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두 시인 법연, 연담과 같이 19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이런 중에도 이들 두 시인은 결국 시를 버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이들이 시인의 삶까지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내가 두 스님을 알고 지낸 인연 중에 법연을 안 것은 조금 길고 현담을 안 것은 조금 짧다. 법연은 평소의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며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뜻을 같이 하는 도반들이 모여 밤을 새우면서 열띤 회의나 토론을 할 때는 그는 빠지는 일 없이 꼭 참석은 하지만 별로 자기 의견을 말하지는 않는다. 항상 듣고만 있다. 누군가가 법연에게 한 마디 하기를 권하면 “내가 할 말 스님들이 다 했는데 뭐,,,“ 하고 웃고 만다. 그의 웃음은 사람을 그냥 편안하게 한다. 누구와도 시비할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지각없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기 쉬운 사람, 하지만 내면의 시 세계는 깊고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다. 외유내강의 사람이다.
그는 시를 통해서 분노하고 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말을 깎고 다듬어 우리에게 사자후로 토해 놓는다.
여기 <겨울 산>이라는 그의 시 하나를 보자. 잡것들아, 이 잡것들아 .겨울 산을 오르자. 산굽이 굽이로 물결치는 벌거벗은 나무들의 반란의 함성소리. 다시 치솟아 하늘을 물어뜯는 산봉의 험악한 바위들을 쫓기는 짐승처럼 피 흘리며 오라. 보아라. 끝나지 않는 싸움을 모두 다 마다하고 뿔뿔이 떠나버린 흰눈을 덮어 흰눈을 덮어쓰고 씽씽 부는 바람을 맞고 있는 저 결연한 겨울 산을 엉엉 크게 울어도 듣지 못하는 깜깜한 밤 속 잡것들아, 이 잡것들아.
이 얼마나 결연한가? 그의 사자후 한 마디를 들어 보라. 끝나지 않는 싸움판에 모두 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비겁한 잡것들이 뿔뿔이 떠난 자리. 그 자리를 흰눈 덮어 쓴 차가운 겨울 산처럼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우리의 시승 법연의 목타는 소리를...
지난 봄. 엣날, 대승불교전국승가회. 시절에 같은 식구로 일했던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대구 마당집 식당에서 오랜만에 모였을 때 법연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하거나 비껴가지 말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합시다.“ 이 말 한 마디에 그 자리에 모였던 우리들이 얼마나 힘을 얻었던가. 옛사람의 말에 ’마음이 바르면 시가 바르고 마음이 간사하면 시도 간사해 진다‘라고 한 것이 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물을 보는 눈을 맑고 반듯하게 해야 할 일이다.
언어를 다듬는 기술보다 자신의 삶을 다듬는 일이 언제나 우선하는 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동을 주는 시란, 기교를 앞세운 시가 아니라 내면 깊이 영혼을 울리며 나오는 진솔한 시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현담의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객관적 사물을 말할 때 마저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로 회귀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발문을 쓴 현웅 스님과 나는 법연, 현담의 시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현웅은 법연의 시에서는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고, 현담의 시에서는 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역시 현담이 모진 바람 몰아치는 겨울을 보내고 이제는 따듯한 봄으로 회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럼 여기서 그의 시 <동백>을 한번 살펴보자. 어디선가 추운 밤새 울음소리 들린다. 여기 숲에 와서 나의 숲이 보인다. 어느 때는 나도 누구보다 멋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작취미상 얼큰히 취하여 오래도록 근사한 춤도 추고 싶었고 저 하늘과 땅 이을 수 있는 그런 탑도 하나쯤 세우고 싶었다. 눈 내리는 여기 겨울 숲에 와서 아무리 빨갛게 타오른 불 멀리 내걸어도 나는 이미 서둘러서 돌아갈 집이 없다.
근사한 노래도 불러보고 춤도 춰보고 하늘과 땅을 이을 수 있는 높은 탑도 세워보고 싶었던 시인은 불교 운동의 기수가 되어 보기도 하고 집시처럼 떠도는 국제 만행꾼이 되어 보기도 하다가 본래 자신의 보금자리인 숲으로 돌아와 비로소 자신의 숲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숲에도 아직 자신이 돌아가 지친 몸을 쉴만한 집을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 구절은 아직도 현담의 방황과 인간으로서의 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봄으로 회귀한 시인에게 아직도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현담과 같이 우리들 앞에 놓인 절집 안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니 현담의 인간적 갈등은 시인이면서 수행자로서 갖는 갈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주위에서 옳지 못한 일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고 왜곡된 인간들의 삶 앞에서 무감각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본다.
시인 현담은 멋진 노래도 불러보고 싶고, 근사한 춤도 추고 싶은 인간적인 욕구와, 하늘과 땅을 이을 수 있는 탑을 쌓고 싶은 수행자의 욕구 앞에서 고뇌하고 번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러한 젊은 시절의 욕구를 잘 삭이고 시인은 겨울 숲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누구보다 자기 삶을 정열적으로 태워 보기도 했다. 절망도 많이 했을 것이다. 불교의 현실과 민족현실 앞에서,,,
그가 빨갛게 타오르는 불을 아무리 멀리 내걸어도 그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항상 빈손이고 허무였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듯한 그는 ‘나는 이미 서둘러서 돌아갈 집이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현담에 한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현실이며, 특히 불교 운동에 앞장서고 자기 진실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모든 수행자에게 돌아오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의 겨울이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에 얼어붙은 대지를 말한다면, 인간 사회의 겨울이란 역사가 발전을 멈춘 상태를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겨울이야말로 봄을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계절이다.
두 스님의 시 속에는 겨울이란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가을을 느끼게 한다는 법연의 시에서 더욱 많이 나오고 있는데, 두 스님에게 겨울과 겨울 산은 “두 뺨이 시리도록 아프게 온갖 잡것 다 떨쳐버린“ 것이 되기도 하고 ”어디로부터 끌려온 누이들인지, 허연 허벅지 미처 가리지도 못 하고“ 팔려가는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앞에는 차가운 계절이 있다. 이 차가운 겨울 시집 <길에 나가 길을 묻는다>를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출처 ; 효림 /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