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이 맞이하는 다행스러우면서
곤혹스러운 현상 중 하나는
아마도 '신중함'과 '교활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신중하면서도 솔직해지고 싶다.
교활함의 덫에서만은 정말이지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부단히 성찰하고 노력해야
어느 정도 가능 할 것이다.
이제는 생긴대로 솔직하게
내 좋은 면이든 나쁜 성향이든
받아들이고 보듬고 살아가야 할
어쩔 수 없는 나이다.
그럼에도 간간이 내 성향 중에
못 마땅한 너무도 싫어질
때가 있다.
어려운 일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바로
그 때다.
매사에 너무 진지한 것
내게는 불치의 병처럼 여겨지는
좋기도 하고 그러나 더 많이 싫은
바로 '진지함' 성향이다.
세상에 빛이 있고 어둠이 있듯이
무엇이든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지만, 좋은 면도 너무 지나치면
그게 아주 많이 힘들게 한다.
완벽주와 진지함과 조급함.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성향들이
내 안에 동거하고 있다.
잘 알려진 얘기가 있다.
어느 날 두 스님이 길을 나섰다.
마침 강둑에 도착했는데 젊은
여인이 건너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 스님이 그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넜다.
한 십여리 길을 왔는데 혼자
강을 건넌 스님이 질책하듯이
물었다.
수행자가 여자를 멀리 해야하는데
자네는 젊은 여인을 그것도
등에 업고 강을 건넜는데
본분을 크게 벗어난 게 아닌가?
그러자 나는 그 여인을 건너주고
바로 잊었는데 자네는 어째 아직도
그 여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겐가?
한 스님은 본분에 대한 집착으로
도리를 다른 각도로 보고있고
다른 스님은 신분과 체면과 원칙
이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는 게
사람의 삶이라는 인식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거기다가 어쩌면 내가 그 여인을
엎고 건널 것을 하는 아쉬움과
후회와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심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연민'과 '사랑'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혔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성경에도 삶에서 '사랑'을
제일이라고 한다.
신에 대한 믿음보다도 사랑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느긋한 성향과 급한 성향.
여유로움과 신중함과 적은 실수,
신속함과 책임감과 정의감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좋은 면일 것이다.
반면 게으름과 우유부단함과 책임
회피, 경박함과 실수와 분위기
훼손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흠잡히
는 부정적인 면이 되지 싶다.
사람이나 도구나, 아니 이 세상애서
완벽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우리의 간사한 마음은 대체로
자신이 이득이 되는 입자에 서고
거기에 맞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될 뿐이다.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절대적 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이만큼
살고난 뒤에 오는 깨달음이다.
누구나 삶에서 가장 힘든 게
사람 관계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위에서 보다시피 우리의 마음은
위선에 가려져 있어서 잘 들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생각보다
많이 간사하다.
우리는 살면서 개인간 또는 조직
구성원간에 발생하는 불미스런
일이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원하지 않는 불편한 일이나 갈등에
가장 일반적이고 하기 쉬운 대처가
바로 양비론이다.
거기에 더해 그 일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대처한다.
누구나 사람의 인연과 친분과
성향의 호불호에 휘둘리기 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못하기에
불미스런 일과 갈등 발생에는
백퍼센트 일방적인 잘못은 드물다.
양비론은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중용의 우아함이
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것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누구도 언제나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둔감해지고 너그러워
지려 애쓰게 된다.
여기에 바로 양비론의 함정이 있고
그 쉬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건이나 갈등의 원인에는
분명 더큰 잘못과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 그리고 제삼자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인간의 마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간사하기에 양비론을
자신이 유리한 것만 받아들인다.
양비론 보다 더 고약한 것은
바로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대처하는 것이다.
수습은 커녕 일을 망치는
지름 길이 아닐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
종교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따르라 하지만
얼마나 멀고 먼 길인가?
'연민'과 '사랑'
분명 삶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나에게는 아직도 가야할
머나먼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