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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목양(蘇武牧羊)
소무가 양을 친다는 뜻으로, 충절의 상징을 일컫는 말이다.
蘇 : 되살아날 소(艹/16)
武 : 호반 무(止/4)
牧 : 칠 목(牛/4)
羊 : 양 양(羊/0)
적에 잡혀가서도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중국에서는 소무(蘇武)가 첫손에 꼽힌다. 전한(前漢) 때의 명신인 소무는 전성기를 이끈 7대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금당한다.
북방의 국경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일으키던 흉노는 우두머리 선우(單于)의 계략으로 포로를 인솔해 온 소무 일행을 사로잡았다.
온갖 위협과 회유에도 꿈쩍 않는 소무를 선우는 땅굴에 가두었다가 북해(北海, 바이칼호)로 쫓았다.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보내준다고 하고 식량도 주지 않아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했다.
소무가 양을 친다(牧羊)는 말은 충절을 상징하는 말이다. 절개에 반한 선우의 동생이 양과 소를 보내줘 소무는 19년간 온갖 고생을 이겨내며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무제가 죽고 관계가 회복되자 천신만고 끝에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나라의 사신을 상징하는 부절(符節)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하여 충절을 소무지절(蘇武持節)이라 하기도 한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절조를 지킨 고난의 일생이 상세히 실렸고, 온갖 시화의 소재도 되었다. 그중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소무(蘇武)'란 제목으로 읊은 오언시를 만나 보자. 앞부분 네 구절이다.
蘇武在匈奴, 十年持漢節.
소무는 흉노 땅에 잡혀 있으면서도, 십년이나 한나라의 부절을 지녔다네.
白雁飛上林, 空傳一書札.
흰 기러기 상림원에 날아와서는, 편지를 전한 것도 헛되었구나.
牧羊邊地苦, 落日歸心絶.
양 치느라 변방에서 고생하노라니, 지는 해 볼 적마다 고향생각 간절했네.
渴飮月窟水, 飢餐天上雪.
목마르면 흉노 땅의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내리는 눈을 삼켰다네.
소무의 생사를 모를 때 기러기가 알려 줬다는 데서 안서(雁書)는 먼 곳에서 온 편지를 말하게 됐다. 달이 나온다는 서역의 땅 월굴(月窟)은 흉노의 땅을 가리킨다.
소무는 절친했던 이릉(李陵)이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으니(人生如朝露)'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간곡히 만류해도 듣지 않았다.
고생 끝에 돌아온 소무는 황제에게서 벼슬과 많은 제물을 받고 80세가 될 때까지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조그만 이해에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속세의 사람들에겐 소무의 충절은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다.
(안병화/前언론인)
⏹ 소무목양(蘇武牧羊)
양을 치게 된 소무
위청과 곽거병이 흉노를 대패시킨 후 몇 년 동안은 북쪽 변경에 전쟁이 없었다. 중원을 대거 침입할 힘을 잃어버린 흉노는 한나라와 평화적으로 지내겠다고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중원을 쳐들어올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기원전 100년, 흉노는 한나라에서 또 출병할 기미가 보이자 즉시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했다. 그리고 잡아두었던 한나라 사신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무제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중랑장 소무(蘇武)를 사신으로 흉노에 보냈다. 소무는 부사 장승(張勝)과 수원 상혜(常惠)를 데리고 한나라 황제가 내린 정절(旌節)을 들고 갔다.
그러고는 가져간 선물들을 흉노 선우에게 바치고 포로로 잡아두었던 한나라 사신들을 돌려보내도록 했다. 이제 흉노 선우가 한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답서만 받으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예전에 흉노로 파견된 사신 중에 위율(衛律)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흉노에게 투항했다. 흉노 선우는 그를 중히 여겨 왕으로 책봉했다.
그런데 위율의 수하에 있던 우상(虞常)은 위율의 소행들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는 소무의 부사인 장승과 각별한 친구사이였다.
장승을 만난 우상은 위율을 죽이고 선우의 모친을 볼모로 잡아 중원으로 돌아가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우상이 조심하지 않은 탓에 이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흉노 선우는 그 둘을 잡아들였고 위율로 하여금 심문하게 했다.
장승은 겁이 나서 자신과 우상이 밀모한 일을 소무에게 알렸고, 우상은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장승과 밀모한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흉노의 선우가 소무더러 장승을 심문하라고 하자 소무는 상혜 등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신으로 온 것은 한나라와 흉노가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내가 나서서 장승을 심문하다니, 이것은 한나라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무슨 면목으로 한나라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러고는 검을 뽑아 자기 몸을 찔렀다. 위율이 급히 그를 껴안으며 말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소무는 중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소무의 지조에 탄복한 흉노 선우는 그를 투항시켜 위율처럼 흉노를 위해 일하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매일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면서 투항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소무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후에 흉노 선우의 명을 받고 위율이 직접 나서서 소무를 권유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했지만, 한나라에 대한 소무의 충성심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소무의 지조가 매우 굳다는 말을 들은 흉노 선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투항시키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는 소무를 땅굴에 가두게 하고 음식과 물을 주지 않았다. 굶주림으로 소무를 투항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지가 강철같은 소무는 추호도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갖가지 방법이 소용없게 되자, 흉노 선우는 소무를 북해(北海,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 일대) 기슭으로 보내어 양을 치게 했다.
그는 소무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한나라로 돌려 보내겠다." 숫양이 어떻게 새끼를 낳겠는가?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무를 한나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북해는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황막한 곳이었고 심지어는 새조차도 보기 힘들었다. 소무는 배가 고프면 들쥐 구멍을 파서 그 안에 있는 풀씨로 배를 채웠다.
얼마 후에 흉노 선우는 사람을 보내와서 투항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소무는 여전히 투항을 거부했다. 소무는 매일 양을 몰면서, 무제가 내린 정절을 쓰다듬곤 했다.
긴긴 세월 동안 하도 쓰다듬으니 정절의 털이 다 빠지고 대만 남았다. 그래도 소무는 대만 남은 정절을 끌어안고 고통스러운 기나긴 세월을 보냈다.
기원전 85년에 흉노의 선우가 죽자 내란이 일어나 흉노는 세 개로 갈라졌다. 이때 한나라에서는 무제가 죽고 아들 소제(昭帝)가 즉위했다. 소제는 사신을 파견해 소무의 행방을 수소문했는데 흉노에서는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나라 사신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다시 한나라에서 사신을 보냈을 때 소무의 수종인 상혜는 흉노인을 돈으로 매수해서 한나라 사신과 비밀리에 만났다.
상혜가 소무는 북해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사신은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계책을 강구해 냈다.
이튿날 그는 흉노 선우를 만나서 엄하게 말했다. "한나라와 화목하게 지내고 싶다면서 우리를 기만하다니 말이 됩니까. 우리 황제께서 어화원에서 기러기를 쏘아 맞혔는데 기러기 다리에 비단 조각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소무가 아직 살아 지금 북해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소무가 죽었다고 합니까?"
흉노의 선우는 그 말을 듣고 놀라며, 소무의 충절이 나는 새도 감동시켜서 기러기가 소식을 전해 주었나 보다 하고 사신의 말을 진짜로 믿고 황급히 사과를 했다. "소무가 살아 있다는 건 사실이오. 즉시 돌려보내겠소."
소무는 마흔에 한나라를 떠나 흉노로 왔는데, 흉노에서 19년 동안 갖은 고생을 다 겪다 보니 머리와 수염이 백설처럼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가 장안으로 돌아오는 날, 장안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그를 맞이했다. 수염과 머리칼이 온통 하얗게 센 소무가 털이 다 빠진 정절 대를 손에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본 장안 사람들은 모두 소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라고 칭송했다.
▶️ 蘇(되살아날 소/차조기 소)는 ❶형성문자로 蘓(소)는 통자(通字), 苏(소)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穌(소)로 이루어졌다. 음(音)을 빌어 소생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蘇자는 '되살아나다'나 '소생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蘇자는 艹(풀 초)자와 穌(깨어날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穌자는 물고기와 벼를 함께 그린 것으로 '깨어나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깨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穌자에 艹자를 결합한 蘇자는 본래 '차조기'라 하는 풀을 뜻했었다. 차조기는 약재로 쓰이는 풀의 일종으로 소화기나 호흡기 질환을 다스리고 신경계와 피부병 증상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는 다재다능한 약초이다. 蘇자는 이렇게 영험한 효과가 있는 차조기를 뜻하다가 후에 '되살아나다'나 '소생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蘇(소)는 ①되살아나다 ②소생하다(蘇生ㆍ甦生--), 깨어나다 ③(잠에서)깨다 ④깨닫다 ⑤찾다, 구하다(求--) ⑥잡다, 취하다(取--) ⑦거스르다, 역행하다(逆行--) ⑧그르치다, 틀리다 ⑨소홀(疏忽)히 하다 ⑩(풀을)베다 ⑪가득 차다 ⑫쉬다, 휴식하다(休息--) ⑬향하다(向--), 향하여 가다 ⑭땔나무, 섶(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⑮차조기(꿀풀과의 한해살이풀) ⑯소련(蘇聯)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다시 살아 남이나 되살아 남을 소생(蘇生), 병이 아문 뒤에 전과 같이 원기가 회복됨 또는 병 뒤에 원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특별히 잘 먹음을 소복(蘇復), 미국과 소련을 미소(美蘇), 거의 죽어 가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남을 회소(回蘇), 다시 살아남을 갱소(更蘇), 소무가 양을 친다는 뜻으로 충절의 상징을 일컫는 말을 소무목양(蘇武牧羊), 한유의 문장은 왕양汪洋하여 바다와 같고 소식의 문장은 파란波瀾이 있어 조수潮水와 같다는 뜻으로 한유와 소식의 문장을 비교해 이르는 말을 한해소조(韓海蘇潮) 등에 쓰인다.
▶️ 武(호반 무)는 ❶회의문자로 戈(과)와 止(지)의 합자(合字)이다. 창(戈)과 같은 무기(武器)로 병란(兵亂)을 막아 그치게(止)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호반(虎班), 굳세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武자는 '무사'나 '무예', '무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武자는 戈(창 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戈자는 낫과 같은 모양의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다. 이 무기는 방패 뒤에 숨어 적의 발목을 절단하는 용도로 쓰였다. 武자는 이렇게 창을 그린 戈자에 발을 뜻하는 止자를 더한 것으로 무사가 창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래서 武(무)는 문(文)에 대하여, 군사(軍事), 무술(武術), 무인(武人) 등의 뜻으로 ①호반(虎班; 무관武官의 반열班列) ②무인(武人) ③무사(武士), 병사(兵士) ④군대(軍隊)의 위용(威容), 무위(武威) ⑤병법(兵法), 전술(戰術) ⑥무예(武藝), 무술(武術) ⑦병장기(兵仗器; 병사들이 쓰던 온갖 무기), 무기(武器) ⑧발자취, 발자국 ⑨반보(半步), 석 자 ⑩무왕(武王)의 준말 ⑪굳세다 ⑫용맹(勇猛)스럽다, 맹렬(猛烈)하다 ⑬군사를 부리다, 지휘하다 ⑭잇다, 계승(繼承)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전쟁에 쓰이는 총검이나 화포나 핵병기 따위 온갖 기구 또는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한 힘이나 방패가 되는 수단을 무기(武器), 전투를 하기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 차림 또는 어떤 일을 하기에 필요한 마음의 자세나 기술 등을 갖춤을 무장(武裝), 군사 상의 힘 또는 마구 욱대기는 힘을 무력(武力), 무예를 익히고 무도를 닦아서 전쟁에 종사하는 사람을 무사(武士), 무술에 뛰어나고 군대를 거느려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무장(武將), 전쟁에서 세운 공을 무공(武功), 무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무도(武道), 무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을 무덕(武德),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무림(武林), 모든 군사 시설이나 장비를 무비(武備), 병법에 대한 글이나 책을 무경(武經), 무예에 익숙하고 능란함을 무간(武幹), 무력이나 억압으로 일을 해 나감을 무단(武斷),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무명(武名), 군대 또는 무력의 힘을 무세(武勢), 무예에 뛰어나고 용감함을 무용(武勇), 무도를 배움을 강무(講武), 힘차고 씩씩하게 걷는 걸음을 보무(步武), 위엄 있고 씩씩함을 위무(威武), 무예를 닦음을 연무(硏武), 영특하고 용감함을 영무(英武), 무기를 보관하고 쓰지 않음을 언무(偃武),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시골에 지위 있는 사람이 백성을 억지로 내리 누르는 짓을 함 또는 그런 시골을 일컫는 말을 무단향곡(武斷鄕曲), 지배자의 학정이나 압제 따위에 대항하여 백성이 무장을 하고 일어나는 저항 운동을 일컫는 말을 무장봉기(武裝蜂起), 무인으로서의 운수가 길고 오래감을 일컫는 말을 무운장구(武運長久), 학문에 뛰어나고 무술에 뛰어남으로 모든 것에 뛰어남을 일컫는 말을 영문영무(英文英武), 문식과 무략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비(文武兼備),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버젓함을 일컫는 말을 보무당당(步武堂堂), 문무가 뛰어남 또는 그러한 것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을 능문능무(能文能武), 군사를 쓸 만한 곳이나 무력을 쓸 만한 곳을 이르는 말을 용무지지(用武之地) 등에 쓰인다.
▶️ 牧(칠 목)은 ❶회의문자로 소 우(牛=牜; 소)部와 攵(복)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손에 막대기를 들고 소(牛)를 친다(攵)는 뜻을 나타낸다. 또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地方) 장관도 牧(목)이라 한다. ❷회의문자로 牧자는 '(가축을)기르다'나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牧자는 牛(소 우)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攵자는 손에 몽둥이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치다'나 '때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 牧자는 풀어 놓은 가축을 우리로 몰기 위해 회초리를 휘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牧자는 본래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을 기르던 사람을 뜻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牧자는 백성을 잘 이끌고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나 '통치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牧(목)은 ①치다, (가축을)기르다 ②다스리다, 통치(統治)하다 ③복종(服從)하다 ④수양(修養)하다 ⑤(경계를)정하다 ⑥목장(牧場) ⑦마소 치는 사람, 목자(牧者) ⑧성(城) 밖, 교외(郊外) ⑨법(法), 법도(法道) ⑩벼슬의 이름 ⑪행정(行政) 구역(區域)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교의를 해설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교회나 교구의 관리 및 신자의 지도 따위의 일을 맡아보는 교직 또는 그 사람을 목사(牧師), 목사가 교회를 양성하고 인도하는 일을 목회(牧會), 백성을 다스림을 목민(牧民), 양을 먹이는 사람으로 신자를 이끌어 보살피는 성직자인 목사나 신부를 달리 일컫는 말을 목자(牧者), 소나 말이나 양 따위를 놓아 먹이는 넓은 구역의 땅을 목장(牧場), 가축을 많이 기르는 일을 목축(牧畜), 소치는 아이를 목동(牧童), 집짐승을 기르려고 지은 우리를 목사(牧舍), 소를 먹여 기름을 목우(牧牛), 목장에서 가축을 돌보며 키우는 사람을 목인(牧人), 가축에게 여러 가지 신호를 하기 위하여 목자 또는 목동이 부는 피리를 목적(牧笛), 돼지를 기름을 목저(牧豬), 학교에서 종교 교육 및 예배하는 일 등을 맡아보는 목사를 교목(校牧), 군대에 예속되어 있는 장교로써 목사나 신부를 군목(軍牧), 스스로 수양하는 일을 자목(自牧),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풀을 따라 이주하며 가축을 기르는 일을 유목(遊牧), 가축을 놓아 기름을 방목(放牧), 가축을 들에서 기름을 축목(畜牧), 땔나무를 하고 짐승을 치는 일을 초목(樵牧), 다른 일도 하면서 목축업을 함을 반목(半牧), 마굿간에서 말을 기르는 일을 구목(廐牧), 목장의 경영을 폐지함 또는 폐지된 목장을 폐목(廢牧), 백성을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으로 원이나 수령 등 외직 문관을 통칭하는 말을 목민지관(牧民之官), 땔나무하는 아이와 소먹이는 총각이라는 뜻으로 배우지 못해 식견이 좁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초동목수(樵童牧豎), 아홉 마리의 양에 열 사람의 목동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의견이 서로 같지 아니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양십목(九羊十牧) 등에 쓰인다.
▶️ 羊(양 양)은 ❶상형문자로 양의 머리를 본뜬 글자이다. 양의 머리 모양을 도형화한 것이며 牛(우; 소)자와 비슷하다. 아주 옛날에 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짐승 중에서도 특히 존중된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羊자는 '양'이나 '상서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羊자는 양의 머리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린 것으로 구부러진 뿔이 특징되어 있다. 양과 소는 인간이 가축으로 기른 가장 최초의 동물이었다. 특히 양은 뛰어난 고기 맛과 유용한 털로 인해 상서로운 짐승으로 인식되어 제사에 쓰이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의 권력자들은 양의 뿔을 상서로움이나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다. 羊자가 부수로 쓰이는 글자들이 '양'이나 '양고기', '상서로움', '권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羊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하단의 획이 생략된 형태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羊(양)은 (1)면양(綿羊) (2)의지(依支)가 없이 약하다는 뜻에서 신자(信者)를 비유하는 말 (3)성질(性質)이 퍽 온순(溫純)한 사람의 비유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양(羊: 솟과의 동물) ②상서(祥瑞)롭다 ③배회(徘徊)하다 ④바라보다 ⑤자세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의 털을 양모(羊毛), 양의 젖을 양유(羊乳), 양의 가죽을 양피(羊皮), 양털로 촉을 만든 붓을 양호(羊毫), 양의 무리를 양군(羊群), 양고기를 양육(羊肉), 양 뿔을 양각(羊角),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양구(羊裘), 양의 머리를 양두(羊頭), 양을 가두어 기르는 우리를 양사(羊舍), 털빛이 흰 양을 백양(白羊), 털빛이 검은 양을 흑양(黑羊), 소와 양을 우양(牛羊), 개와 양을 견양(犬羊), 양을 기름을 목양(牧羊), 양의 수컷을 저양(羝羊), 양의 암컷을 빈양(牝羊), 우리 안에 갇힌 양이란 뜻으로 자유롭지 못함을 함양(檻羊),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이르는 말을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휘고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대학 입시나 입사 시험 등의 합격의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양장소경(羊腸小徑), 속은 양이고 거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거죽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양질호피(羊質虎皮),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을 이르는 말을 망양보뢰(亡羊補牢),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