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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보수 윤석열 구속과 시위자들의 난동은 좌익의 15년 집권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은 해방 이후 극심한 좌·우익 대결이 있었다. 당시 남한에서만 좌익이 500만 명이나 되었다는 보는 사람도 있다. 주류 학자들도 좌익이 100만 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좌익은 북한의 6.25 남침 전쟁에서 일부는 사망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밀리자 일부는 월북했다. 전쟁 이후 좌익들은 철저하기 자신들의 모습을 숨겨왔고 정치적 표현을 자제해 왔다. 좌익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자신과 자식들이 입게 될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5대(1963.10.15.)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46.6%, 윤보선이 45.1%를 득표하면서 박정희가 당선되었고, 제6대(1967.05.03.)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51.4%, 윤보선이 40.9% 득표하면서 박정희가 당선되었고, 제7대(1971.04.27.) 박정희가 53.2%, 김대중이 45.2% 득표하면서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움츠리고 있던 좌익들이 본격적으로 선거에서 좌익 성향을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박정희의 3선 이후 김영삼 김대중 좌파들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면서 대학은 좌익으로 물들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도 이들에 의해 밀리면서 좌익 정권 출범이 예상되었고 마침내 김영삼이 대권을 잡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김대중 집권을 했고, 그 여세를 몰아서 16대 대선에서는 좌파 노무현이 48.9%를 득표하여 보수성향의 후보인 이회창(46.6%)을 누르고 승리했다.
1993. 02 ~ 2008. 02. 24.까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5년의 좌익 정권에서 좌익들은 정치, 경제, 문화계 등에서 자리 잡았고 기득권이 되었다. 좌익이 주류가 되어 국가와 사회를 주도하면서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수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박정희 집권 당시 좌익들이 자신이 보수적 인물인 것처럼 행동했듯이 좌익 정권 15년 동안은 내적 보수성향의 인물들은 자신이 진보적인 인물 또는 진보에 가까운 인물로 포장하기도 했다.
좌익 정권 15년의 마지막은 노무현이 정권이다. 노무현은 정권 내내 드러낸 친북성향에 대해 보수성향의 국민이 굴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반노무현, 반좌익 성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좌익 정권의 본류가 아니었던 노무현이 좌익들에 의해 탄핵이 되면서 좌우의 본격적인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명박이 보수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이 보수인지는 의문이 간다. 그런 이명박을 보수 후보로 내세웠고 15년간 좌익 정권의 폐해에 시달린 국민은 친북 좌익 정권의 집권을 이어가게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명박에게 표를 주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보수 쪽에서 이명박을 끌어들였다. 정체성이 모호한 이명박을 끌어들인 것은 보수의 1차 용병의 영입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서 지난 15년간 문화,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던 좌익들이 광우병 선동을 했고 이후 광우병 선동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좌익들의 1차 민중 쿠데타가 실패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한 채 좌익들의 눈치만 보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했다. 좌익들은 1차 민중 쿠데타에는 실패했으나 사회적 주도권을 어느 정도 가져갔다.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51.6%, 문재인이 48%를 득표하여 박근혜가 승리했다. 박근혜가 승리한 것에는 아버지 박정희의 보이지 않은 영향이 있었으나 국민은 15년간 좌익 정권에 대한 반발과 불안감으로 좌익 문재인 대신에 박근혜를 선택했다. 이것을 보아 보수의 승리라기보다는 반좌익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50% 가까이는 좌익 문재인을 지지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사회는 전반적으로 좌익이 장악하고 있었다.
선거에서 패배한 좌익들은 박근혜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어준 등 좌익은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전산 조작 등 대선 부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304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근혜가 집권한 지 1년 2개월 되었을 때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좌익들과 좌익 정당 그리고 좌익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2차 민중 쿠데타를 시도했다.
온갖 음모론이 대한민국을 휩쓰는데도 박근혜와 그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세월호에 휘둘리면서 불안한 정권을 유지했다. 세월호만으로는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안 좌익들은 박근혜 주변을 파고들었고 그들의 시야에는 최순실이 목표로 삼고 정권을 공격했으나 박근혜나 정권은 좌익들의 무서운 음모를 간과했다. 그러던 중 더 큰 음모가 터졌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이다. 2016년 10월 말경 JTBC에서는 손석희 등 기자들이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증거라면서 방송으로 태블릿을 공개하면서 들어 있는 국정농단의 증거라고 했다. 국민은 그런 줄 알았다(이후 최순실 태블릿이라고 하는 것은 김한수 등이 사용하였으며 최순실은 태블릿을 사용할 줄도 모른다고 주장했고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증거로 사용되지도 못했다).
좌익 언론들과 조선일보 등은 준비하고 있던 박근혜, 최순실에 대한 온갖 의혹을 제기하면서 박근혜를 압박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특수본을 구성하여 박근혜와 최순실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마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언론, 검찰을 조종하는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대국민 사과 담화를 3차례에 걸쳐서 했다. 모든 책임을 최순실에게 전가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하였으나 야당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가세하여 탄핵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하야를 요구했다. 박근혜는 질서 있는 퇴진을 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62명의 의원이 탄핵에 찬성하였고 최순실 특검은 박근혜가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졌다. 박근혜는 박영수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박영수는 윤석열 등 20명의 검사를 파견받아 최순실, 기업 총수 등을 수사했다. 특검 수사를 이끈 팀장이 윤석열이다.
박근혜는 2017. 3. 10.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파면되었다. 이로써 좌익들의 3차 민중 쿠데타는 성공했다. 박근혜는 그해 3월 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구속이 되었고, 2017년 5월 9일 대선이 있었다. 좌익 측에서는 문재인과 이재명이 경선을 했고, 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이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예상대로 문재인이 대선에서 쉽게 이겼다. 국민은 무능한 박근혜에 분노했고 좌익은 3차 시도된 민중 쿠데타의 성공을 정권 쟁취로 이어가려고 했던 시도가 성공했다. 이후 좌익은 15년. 그 이상을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15년 좌익 정권을 노리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자 박근혜를 무너뜨린 윤석열과 윤석열을 따르는 정치 검사를 검찰의 요직에 중용했다. 윤석열은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 고검장 자리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검찰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윤석열과 정치 검사들은 좌익과 문재인이 원하는 소위 좌익 정권에 방해가 되는 인사들을 적폐로 몰아 구속, 기소하여 광란을 벌였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법부 장악을 위한 친보수 성향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법 부장, 부장판사를 구속, 불구속으로 기소하였다. 그 수는 무려 14명이다. 오랜 재판을 통해서 대부분이 무죄선고가 되었고 검찰이 항소하여 항소심아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기소한 47개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선고 결과에 대해 문재인의 정치 검사 윤석열과 한동훈과 정치 검사 중 어떤 누구도 책임을 지는 자가 없었다.
문재인 좌익 독재정권은 이뿐만 아니라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대변인과 같은 행위를 하였다.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정상들에게 북한의 핵 개발. 살상 무기 개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의 경제 제재를 완화, 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부탁을 했다.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 대가리’라는 인격적 모독을 당하면서도 친북 행각을 벌였다. 그러한 좌익 정권에 대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졌다. 문재인 정권의 하수인 윤석열은 차기 문재인을 노리는 조국 등 기득권 좌익들과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배하고 검찰총장에서 물러나자 국민의힘 친윤 인사들이 용병으로 윤석열을 대선후보로 끌어들여 후보로 만들었다. 윤석열은 보수주의자도 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니다. 그런 윤석열을 끌어들여 이재명과 대선에서 싸우도록 만들었다.
홍준표든 누구든 이재명과 대선에서 싸웠다면 이재명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은 문재인 5년을 지켜보면서 친북 친김정은 성향을 보였던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이 승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겨우 0.73%로 차이로 승리했다. 적어도 10% 이상이 승리할 수 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보수의 일부 중에서 보수가 아닌 윤석열에 대한 반감과 막판 민주당이 결집하면서 윤석열이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좌익과 우익의 양쪽에 발을 담근 윤석열은 회색주의자다. 회색주의자 윤석열이 보수의 탈을 쓰고 보수의 표로써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위장 보수가 보수정당의 대통령이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뿌리와 근본 없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5.18 묘지를 찾아서 비석을 닦고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속하고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하겠다고 했으나 좌익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윤석열로서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으로 압박해오자 이를 막을 방법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대어 이들의 지지로 자신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윤석열의 주변에는 판사 출신도 있다. 판사 출신들에게 부정선거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았을 것이다. 판사 출신들은 대부분 지역 선관위원장이 되어 개표 과정에 관여하였던 경험이 있다. 이들은 부정선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데 그것은 부정선거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이고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부정선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야당의 법안 25개에 대해 무더기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국민의힘은 재의결에 불참하거나 반대를 하였다. 야당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윤석열은 이를 거부하는 등 야당과 극심한 대립을 이어왔다. 정치적 성향이 보이지 않는 국민의 눈에는 야당은 입법독재를 행사하고 윤석열은 행정독재를 행사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야당과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국민은 반발하고 있었으나 김건희 종합특검법에 대해 3회에 걸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윤석열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갈등이 격화되던 중에 튀어나온 명태균 게이트다. 윤과 김건희가 공천에 개입하였다는 것이 명태균 게이트의 주요 내용이다. 구속을 앞둔 명태균의 외침이 있었다. 자신이 구속되면 한 달 내 윤석열 정권이 무너진다는 끔찍한 예언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12.3 늦은 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대가 국회의 장악을 시도했고 경찰은 국회의원의 출입을 막았다. 그 와중에 야당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여당 의원 일부가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2시간 30분 만에 비상계엄은 끝났다. 계엄군은 국회와 선관위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자 철수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국회를 해산하여 독재를 꿈꾸었으나 실패한 친위 쿠데타였다.
국회에서는 윤석열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쟈 나감으로써 성원이 되지 않아 의결조차 되지 않았다. 야당은 2차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하여 탄핵이 의결되었다. 그러자 검찰은 특수본, 걍찰은 국수본이 특수본, 국방부는 조사본부, 공수처가 내란사건을 수사하겠다고 하였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탄핵이 된 후 검찰 특수본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던 중 검찰 특수본은 직권남용, 내란죄로 긴급체포를 하여 구속을 하였다. 이후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 경찰청장 등 10명이 구속되었다. 공수처는 검찰에 윤석열에 대한 수사권 이첩을 요구하였고 검찰은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공수처는 윤석열에 대해 출석을 요구했고 윤석열은 출석을 거부했다. 윤석열이 3회나 불출석을 하자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하였고 영장이 발부되었다. 공수처는 경찰 국가수사본부 직원과 함께 한남동 관저에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였으나 경호처 경호관과 경호부대원이 집행을 막음으로써 집행에 실패했다. 공수처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하였고 법원은 발부했다. 그러자 윤석열 측 변호인들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공수처는 15일 새벽에 체포영장 재집행을 하였다. 경호관들의 저지 없이 윤석열을 체포하였다. 윤석열과 변호인들은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 검사, 형사들 앞에서 체포를 거부하면서 자진 출석하겠다고 억지를 부렸으나 결국은 체포영장이 집행되었다.
윤석열이 체포되자 윤 측 변호인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신청하였다. 윤 측 변호인은 신청서에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를 할 권한이 없고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제1심 재판관할이 없는데도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이 발부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수처가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면서 관련 사건으로 내란죄를 수사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고 공수처법 제31조에 따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제1심 재판관할이 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는 그저께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오늘 새벽에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오늘 새벽 윤석열 지지자들 일부가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울타리를 넘어 입구 유리창을 부수고 법원 청사에 침입하여 점거한 후 사무실 집기 등을 부수고 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판사한테 위해를 가하기 위해 찾아다녔다고 한다. 경찰은 법원 청사를 침범하여 난동을 부린 범죄혐의자 40여 명을 전부를 체포했다. 시위자 86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라고 한다. 대검찰청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서울서부지법 폭동 전담팀’을 구성하여 주요 가담자 전원을 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체포된 사람들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공용건조물침입,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손괴)로 구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울타리를 넘었다가 체포된 시위자는 불구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일부는 대통령에 대해 체포, 구속에 대해서 동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나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을 침범하여 법원 청사를 파괴하는 난동을 부린 폭동에 가까운 행위로 인해 윤석열에 대한 동정적인 생각을 접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재판, 형사재판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것이다. 체포된 난동 혐의자들뿐만 아니라 40여 명 이상의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집회 참가자에 대한 수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폭력을 선동한 유튜버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유튜버는 영상을 지우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윤석열의 구속과 시위자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청사 침입과 파괴가 차기 대선에서 보수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보수가 아닌 윤석열, 그런 윤석열을 지지하는 자들도 보수가 아니다. 보수라면 자유를 파괴하고 법치를 무너뜨린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고 구속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하는 것이 보수주의자다. 위장 보수 윤석열을 구하자고 하는 세력은 보수의 탈을 쓴 위장 보수세력이다. 그런 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보수 흉내를 내는 이상 보수는 절대로 좌익을 이길 수 없다. 윤석열과 위장 보수로 인하여 좌익이 최소한 15년 이상을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된다.
PS: 좌익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공산화,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좌익이 기득권세력이고 가진 자 들이기 때문이다. 위장 보수 윤석열이라는 용병을 보수가 끌어들이면서 이미 보수의 궤멸은 예정되었다. 보수가 궤멸 되지 않으려면 윤석열을 버려야 한다. 윤석열은 썩은 고등어와 같은 존재다.
첫댓글 일자천금의 명문이다.
역사책을 읽듯 여야,극우 극좌를 포함 읽어야
지금 한국 국민은 그간 부절여루하게 간신히 지켜오던 양심에 따른 윤리와 도덕이 사리진 마치 짐승들 사는 우리속에 살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디오게네스의 등불이 찾은 진리 정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군가로 하여 앞장서게 하고 뭉치고 따르게
거기에 도구 박근혜가?
사람이 없기에 ?
이러다 또다른 윤석렬을?
비록 박근혜가 스톡홀름 신드럼에 빠저 허우적 거리고있지만,
여성범죄률이 남성범죄률에10%로 여자가남자보다 낮다는 통계를 근거하여?
법 그리고 법리 해석이란 법을전공한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읽을 줄 알아 읽고 아는 국민의 입장에서 상기 칼럼에 실폐한 계엄이지 내란은 아니지 않는가란 의구심이 사라지게 하는내용을 추가하면?
그리고 하위법이 상위법을 처리할 수없듯 공수처가 행한 대통령 구속에 따른 국민투표적인 강한 근거를 추가하여 다툼이 없게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