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현지시각), 런던 의 하늘은 드물게 청량했다. 며칠간 계속된 먹구름과 빗방울은 거짓말 같았다. 옆 자리에 앉은 스웨덴 여기자가 느닷없이 '앤 효과(Anne Effect)'라고 했다. 앤 해서웨이(Hathaway·28). 단지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객석의 조도(照度)를 몇 럭스 올려주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닌 배우다. 할리우드에서는 도리스 데이(Day)와 줄리아 로버츠(Roberts)에서 해서웨이로 이어진다고 평가하는 예외적 재능이다.
그녀가 아기사슴 담비를 닮은 눈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 큰 눈을 깜박이며,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에요, 아시죠?"라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에드워드 즈윅(Zwick·라스트 사무라이, 블러드 다이아몬드)이 연출한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앤 드럭스(Love and Other Drugs)' 홍보를 위한 자리다. "이 영화로 해서웨이는 다시 오스카(여우 주연상)를 위한 스타트 라인에 섰다"(AP통신)고 호평 받은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면 트럭 수천 대가 있어도 모자랄 할리우드지만, '러브 앤 드럭스'의 자리는 꽤 독특하다. 손이 떨려 걸핏하면 커피잔을 깨뜨리는 파킨슨씨병 초기 단계의 매기(앤 해서웨이)와, 닳고 닳은 제약회사 영업사원 제이미(제이크 질렌할)의 사랑이 기본 모티브다. 그런데 현 시점 할리우드 최고 스타의 사랑을 묘사하는 카메라치고는 무례하다 싶을 만큼 이 커플의 나신(裸身)과 침대 위를 현미경처럼 포착한다. 가족에게는 차마 보여줄 수 없는 수위의 노출이다.
하지만 정작 해서웨이는 "이 영화는 가족 영화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 가족들이 볼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라며 익살스럽게 넘기더니 이 민망한 질문을 정공법으로 돌파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렇게 일부를 가리면서 침대에 누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오랜 시간 즈윅(감독)이랑 제이크랑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영화의 리얼리티를 최고 수준으로 높여 보자고 말이죠."
정작 이런 누드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대목은 중반 이후 등장한다. 매기와 제이미는 사랑해서 잠을 자게 된 게 아니라, 감정 없는 섹스를 시작한 뒤 뒤늦게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커플이다. 불치병 탓에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다가 희생과 친밀함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깨닫고 그 느낌을 몸으로 표현할 때의 연기는, 벗었을 때의 그녀보다 몇 배 더 휘황하다. 파킨슨씨병 연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매기가 얼마나 용감하고 씩씩한 캐릭터인지를 설명할 때 이 욕심 많은 배우의 말은 속사포처럼 빨라졌다. "여배우로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이면서.
축복받은 외모 덕분에 앤 해서웨이는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프린세스'로 대접받아 왔다. 하이틴 시절 그녀가 주연했던 '프린세스 다이어리' 시리즈나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첼, 결혼하다'(2008)에서 약물중독 문제아 연기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후, 이 배우의 욕망은 자신의 연기 지평을 넓히는 데에 집중돼 있다. 이제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처럼 보인다"는 칭찬에, 그녀는 "난 언제나 배우를 꿈꿨지, 단 한 번도 스타를 바란 적이 없었다"며 "할리우드의 마케팅 전략이 나를 스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현명하게 답했다.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연약한 영혼 매기가 그녀에게 오스카의 영광을 가져다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받게 된다면 참으로 영광. 단순히 오스카여서가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연기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정말 기쁠 것 같다." 솔직하게 대꾸하는 그녀의 환한 표정이 그리 밉지만은 않았다. '앤 효과' 여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런던의 하늘은 해질 때까지 쪽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