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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귀신이야기
내가 꼭15세가 되던 해였다. 그때 우리 동리에 나이드신 목수한분이 계셨는데, 우리와는 먼 친척이며, 나이는 아버지보다 몇 살쯤 많았었고 항렬도 높아서 아버지에게 “조카님”이라고 부르고 아버지는 “아저씨”라고 존대를 했지만 사실상 두 분은 친구 사이였다. 항렬로 치면 나도 할아버지라 불러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목수아저씨”로 호칭하겠다.
목수아저씨가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소달구지를 만들다가 위장이 아프다며 쓰러지셨다. 며칠 지나서 아버지께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약수를 먹으면 나을 것 같으니 조카님이 동행 좀 해 주세요." 하여 아버지는 흔쾌히 동의 하셨다.
두 분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내가 나섰다.
"아버지 저도 같이 갈게요."
상황이 이러니 당시 우리 집 “만기아제”(우리 집 머슴,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도 자연히 따라나서고 주위 몇 분도 합세하여 순식간에 8명의 대원이 구성 되었다.
약수터는 "치레약수터"란 곳인데 우리 동리서 산길로 칠,팔십리 쯤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는 곳 이었다. 며칠 뒤 떠나기로 약속한날 우리8명은 아침 일찍 동네 가운데 모여 일종의 출정식처럼, 빠진 게 없는지 한차례 점검을 마치고 출발 하였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길이 험하였다. 나는 큰 몽둥이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 뒤에 바짝 따라 갔다.
왜냐 하면 목수아저씨가 자꾸 뒤 처지니, 아버지는 그분 때문에, 나는 아버지 때문에 뒤처졌다. 이렇게 되다보니, 우리 셋은 일행의 후미에서 따라가게 되므로, “행여 산짐승이라도 나온다면 내가 아버지를 보호해야지, 나는 이미15세 사내대장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몽둥이를 더 단단히 쥐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가 드디어 저녁때가 되었다. 오후 네 시쯤인데도, 산속이라서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더 가지 못하고 그 곳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그 골자기 이름은 "굴아우 애끼골" 이란 대표적 산골인데 외딴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산을 넘으면 한집이 더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그 집 마당 을 빌어 화톳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쑥이며 잡초를 한 아름 베어 얹었다. 독한 쑥 냄새에 영악한 모기가 한풀 꺾였다.
저녁밥은 옥수수로 대충 요기 하고 멍석위에서 제 나름 대로 누워 그날 밤을 지냈다. 다음날 일찍 서둘러 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걸으니 오전10쯤에 목적지 “치레 약수터”에 도착 하였다.
이 약수터에는 단 한 채의 작은 능애 집(전나무를 도끼로 판자처럼 결대로 쪼개어 지붕을 이은 집)이 있는데 말이 집이지 두평도 될까 말까하여 두세명이 들어가면 족할, 문도 없어 거적으로 문을 대신한 아주 작은 비가림이나 겨우 할 수 있는 집이었다.
이런 공간에 여덟 명이 들어간다면, 모제비로 눕기도 빠듯한 정도였다. 그래도 아궁이가 있어서 여기에 불 때고 밥을 해 먹을 수는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산신을 모시는 사당이 하나 있는데, 음침하고 축축한 공기에, 가끔씩 들르는 약초꾼들이 붙여 놓은 듯한 타다만 양초와 향로에서 나는 메케한 향내와 곰팡이 냄새가 뒤엉켜 낮에도 으스스 하였다.
사방이 대나무와 떡갈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그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마치 동네 우물 속처럼 파랗고 동그랗게 들여다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흘러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어울려, 한여름 산속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처음이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증조부가 어려서 음식을 먹은게 체하여 고질병이 된 뒤로 이곳에서 평생 요양을 하셨다는 얘기를 할머니로 부터 수없이 들은 때문 이었다. 어째 던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밥을 해먹고는 칠,팔십리를 걸어온 여독과 어젯밤 설친 잠 때문에, 지쳐서 모두 낮잠에 빠져 들고 있었다.
단지 나보다 3살 더 먹은, 항렬이 높아 내가 “아제”라 부르는, 동네 형 한사람과 나는, 어른들이 낮잠에 빠진 능애 집 마당에서 지팡이와 장난감을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숲에서 뱀들이 몰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고 각 종 뱀이 10 여 마리가 사방에서...
나는 놀라서" 뱀이야"하고 소리쳤더니 자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어디야?,어디?" 하면서 눈도 안 뜨고 쫓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네 형은 만들던 지팡이를 두드리고 한참 법석을 떨다보니 뱀도 놀라 숲으로 도망갔는데 그중 몇 마리가 능애 집 아궁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안에는 고래로 통하는 쥐구멍이 여기저기 뚤려 있어서 어느 구멍으로 뱀이 나올지 몰라 모두 불안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들 중 누군가가 부정을 타서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둥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헐벗어서 거지같은 행색을 한 사람 둘이 숲 속에서 불쑥 나왔다.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몇 년 전에 군대에서 하사관으로 제대를 하고, 할 짓이 없어 산에서 약초를 캐고 뱀도 잡으며, 혹시 산삼이라도 하나 캘까 하여 좁쌀 몇 되 박 허리에 차고 이산저산 헤매고 다닌다고 하였다.
입성이라곤 제대할 때 입고나온 듯한 군복이며 군화가 전부인데, 하도 낡고 기운 데가 많아 어느 게 본살인지 잘 모를 지경이다. 이발한지도 오래되었는지 머리와 수염도 제멋대로 자라 언뜻 보면 미친놈이 아닌가 할지경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데, 이번엔 허리춤에 찬 뱀이든 흰 자루를 풀어 “능애 집” 처마에 매다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옆에는 더 큰 자루가 하나있었는데 그 자루에도 뱀이 가득하였다.
그제 서야 우리가 뱀 얘기를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자기네가 잡은 뱀 중에 암놈이 있어 수놈들이 몰려든 것 같다면서 "좀더 빨리 올걸." 하면서 뱀 놓친 것은 아쉬워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린 걱정이 앞섰다. 산을 내려가자니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여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고 있었다. 깊은 산중이라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금방 깜깜해 진다고 하니, 변변한 손전등 하나 없이 성치 못한 사람을 데리고 밤길을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자자니 아궁이에 들어간 뱀이 찜찜하고....
젊은 패거리들은 거침없이 내려가자는 주장을 하는데, 목수아저씨는 못가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어버지와 나 그리고 만기아재, 이렇게 네 사람 만 남게 되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골짜기를 뒤로 하고 젊은 축 네 사람은 내려가자, 남아 있는 네 사람도 서로 얼굴만 처다 보게 되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온돌 밑에 들어간 뱀이 두려워도 서로 내색을 못하고 이런저런 얘기로 서로를 위로 하고 있었지만, 먼 길을 걸어 온데다 낮잠도 못자 피곤해진 나는, 어른들 얘기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곧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한참을 자다보니 두런두런 어른들의 얘기소리가 들렸다.
밖은 어느덧 새벽이 되어 먼동이 터오는데, 어른들은 벌써 깨셔서 산신당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온 뒤라고 하였다.
"조카님도 보셨수? 초불을 붙이면 어디서 바람이 나오는지...쉭 쉭.."
목수아저씨가 말을 꺼내자
"꼭 뒤에서 누가 입으로 불어서 끄는 것 같습디다. 나도 섬뜩 했어요." 아버지가 거들었다. 산산당에서는 무서워서 서로 말을 아끼고 여기까지 오신 모양이었다.
지난밤 늦게 까지 얘기하시다가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목수아저씨가 악몽을 꾸었다며 산신당에 치성을 드리러 가자고 하여 아버지가 함께 다녀오신 것이다.
"어떤 꿈인데요?"내가 물었다.
"허참 기이 하기도 하지.. 아주 생생해!."하면서 시작하는 목수의 꿈 얘기는 대강 이런 것 이었다.
꿈속에서 병원에 입원하려고 속초에 갔었는데, 아주 남루한 복색을 하고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젖먹이를 안고 다가오더니, 노자를 좀 보태달라고 애걸 하며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더라는 것이었다.
목수아저씨는 기겁을 하여 병원비도 없는 판에 보태줄 돈이 어디 있느냐며 냉정하게 거절했지만, 결국 바지가랭이를 뿌리치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도하고.." 목수아저씨는 깊은 상념에 잠기셨다.
"그럼 오늘 치성 들일 때 노자를 좀 놓지 그러셨어요? " 내가 말했다.
"놨지, 놨어!"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얼마나요?" 내가 물었다.
"1원씩!" 더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목수가 각각 1원씩 놓고 절을 하고 나온 모양이다. 당시에는 천원 짜리가 가장 큰 돈이고 1원짜리는 가장 작은 화폐로 동전과 지폐가 있었지만 1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에게, 겨우 일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귀신들에게는 액수가 중요하지 않아, 놨다는 게 중요하지."아버지가 게면쩍어 하며 거들었다.
"그래두.....아까울 정도로 좀 듬뿍놓지!"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도 밥 만지어 준비해간 장떡이며 장아찌(약수터에 갈 때는 보통약수를 많이 먹을 심산으로 짠 음식을 준비해감)로 대충 식사를 하고 먼저 간 선발대를 쫓아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나무 사이로 쪼개지며 들어오는 햇빛이며 강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황금빛 돌산머리, 여기에 어우러져 들려오는 산새와 냇물소리, 나는 자꾸 자꾸 되돌아보았다.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되도록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빨리 와."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경치에 도취되어 있는 사이 무릎 까지 밖에 안차는 산 죽 밭(깊은 산에 있는 키 작은 대나무 밭)사이로 난 가르마 같은 산길을 따라 우리 일행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아침이슬에 바지와 운동화가 젖었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늦추지 않았다.
얼마를 더 그렇게 내려오니 갈 때 들려간 외딴 화전민 집 (굴아우 애끼골)이 나오고 어제 밤에 출발한 선발대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떨결에 먼저 떠나오기는 했지만 뒤에 남은 우리도 걱정 되고, 날도 저물어 더 못가고 거기서 잤단다.
아침이 되자 우리가 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가 그럭저럭 점심때가 된지라 이미 식사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식사를 했다.
각자 길 떠날 채비를 하며 아버지는 백양담배(당시 고급담배)를 한대 태우자, 젊은 축들은 저만큼 후미진 곳에 돌아서서 제각기 싸구려 담배를 한대씩 피우고, 나는 어제 만든 지팡이를 손질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수아저씨가 “ 아이쿠!” 하더니 배를 움켜쥐고 쪼그려 앉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점심 먹은 게 안 좋은 것 같다며, 늘 하던 것 처럼 항상 들고 다니던 소오다(중조: 시골에서 소화제대신 사용하던 화학약품)봉지에서 소오다 한 숫가락을 물도 없이 삼켰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 수록 환자는 더욱 울상을 하며 고통이 점점 심각해지는 듯 괴로워 하셨다.
젊은 축들 중 한 젊은이가 서둘러 나섰다. 목수의 당질(사촌아들) 되는 이었다 "우리 환자를 교대로 업고 빨리 병원으로 갑시다.“ 이 말에 모두 찬성하여 도끼자루만한 나무토막을 구해서 양손을 뒤로해서 환자를 업고 양쪽에서 두 사람이 부축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초등학교 때 릴레이 경주하듯이.
환자는 정신이 희미해지는지 축 늘어 졌다. 앞서 달려가는 일행을 보면서 우리 식구들( 아버지와 만기아재와 나)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집에 도착하니 목수 아저씨 소문은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다. 목수아저씨는 그길로 택시를 불러서 속초도립 병원으로 직행 하였단다.
그리고 며칠 후 소식이 다소 잠잠해 지는듯하던 환자가 리어카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 왔다는 소식이 동리에 퍼졌다. 이제는 가망이 없어서 집에서 임종을 하려고 한다는 소식에 온 동리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그를 보려고,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아저씨와 절친하신 우리아버지도 어머니를 대동하고 며칠을 그 집일만 보시며 지내셨다. 그리고 며칠 후, 예상했던 대로 그분은 사망하였다. 단지 46세의 나이에 불과 했다.
우리 집 달구지는 미완성유작으로 남기신채 돌아가셨다. 사망당시 환자는 아마 위암말기였으리라. 그러나 아플 때 마다 중조로 다스려서 병은 키울 때로 키운 뒤라서 아무리 명의가 오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어쩌면 꿈속에서 속초에서 구걸하는 여인네 귀신을 만났다더니, 속초에 가서 목숨을 거두게 되는가?” 라고.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속초가 우리 동리에서 가까운 도시라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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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약수터 귀신이야기라길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무셔운줄 알았등마..
꿈이야기네요.ㅎㅎ
저도 꿈은 신통방통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이런류의 이야기는 좀 들어봣지유..
헌데 저에게는 참말로 불가사의한 귀신 경험이 있다요
들어 보실래요 아참 그게 아니고 읽어보실래유?ㅋㅋ
나중에요...............
재밌는 동화같은 야기 잘 감상했어유~~
감사합니다. 동화같은 야기 기대할게요.
우왕~ 아무래도 울 오라비님께서
어디에 작품으로 내셨던 단편 소설 한편
꺼내 주신 것같아유...
걍 옛날 이야기가 아닌듯혀요
실화라지만 어케 이리 생생하게 표현할실 수가...
오라비님 짱 멋지십니당!ㅎㅎ
스칼릿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봉게
몸둘바를 모르겠네유. 어디서 점심이라도 대접할까유..ㅋㅋ
그냥 칭찬만 마시고 찝어주세요. 어느부분은 고치는게 낫겟다..
얘기가 길다 짧다. 지적을 해주시면 진짜로 점심살게요.
@오라비 에구 저는 글쟁이가 아니라 그런지
고런건 모르겠구요
지금 이대로가 참 좋아요
책으로 묶어 놓으시면
나중에 교육적으로도 유용할 것같아요!!
@스칼릿 그래두 좀 의견을 보내 주세요.
그저 생각 나시는 대로만요.
아주 일반적인 충고를 듣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