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떠나간뒤에 잊겠지 생각했는데 /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움 내맘에 밀리네 / 잊지못할 사람이면 보내지나 말것을 / 떠나간뒤에 생각을하면 무슨 소용 있나요 / 그대가 떠나간뒤에 잊겠지 생각햇는데 / 날이 가면 갈수록 그리움 한없이 쌓이네
그대가 떠나간뒤에 잊겠지 생각했는데 /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움 내맘에 밀리네
잊지못할 사람이면 보내지나 말것을 / 떠나간뒤에 생각을 하면 무슨 소용 있나요 / 그대가 떠나간뒤에 잊겠지 생각했는데 / 날이 가면 갈수록 그리움 한없이 쌓이네 / 그리움 한없이 쌓이네
위 노랫말은 1970년대 후반 코미디언 출신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 김미성의 대표곡 '아쉬움'이다.
김미성의 본명은 '김청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꾸었던 그녀는 열일곱, 당대 톱가수였던 박재란의 무용수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과 활동 하며 그의 소개와 추천으로 가수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
김미성이라는 예명도 사실은 '서영춘'이 '아름답게 노래하라'는 뜻으로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특히 악극단의 멤버들을 소개하는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을 가장 처음으로 올리고 싶었던 그녀를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이는 그녀의 남편 타미란 유명 제작자겸 매니저였다.
남편 타미가 키워낸 가수로는 태진아 정종숙, 진미령, 문주란, 김씨네, 장옥조 등이 있으며
당시 연예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꼽혔다.
먼훗날이 실린 가수 김미성 음반 표지
김미성은 가수 장욱조로부터 '아쉬움'이란 곡을 받아 가요계에 첫 발을 디딘다.
그녀가 불렀던 ‘아쉬움’은 37살에 히트가 되었다.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 온 몸으로 부르는 서정적인 허스키는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 주인공의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며, 기댈 곳 없는 현실에서 기대고 싶은
그리움의 간절함이 파문처럼 번지고 있다.
이 노래로 그녀는 오랜 무명의 늪을 헤치고 최고 인기가수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김미성이 마흔 살 되던 해 남편 타미는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매니저 겸 운전 기사의 인명사고로 인해 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고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가요계를 떠나야 했다.
특히 어느 날 갑자기 대중들에게서 사라져버린 까닭은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움을 피해 일본행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불법체류자 생활로 마음과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타국에서의 고생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일본의 밤무대 등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비자가 없어 한때는 공원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에겐 목숨과 같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참아야만했다.
이후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참 .파란만장한 김미성씨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