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핀 산골
간밤 텃밭을 가꾸는 벗으로부터 전화가 왔더랬다. 겨울을 넘긴 시금치가 가뭄으로 성장이 더디다가 봄비를 맞고 세력 좋게 자라는데 캐 갔으면 했다. 시금치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대가 오르면서 쇠어진다. 이렇게 되면 채소로써 가치가 떨어져 어서 캐야함은 익히 아는 바다. 내가 산행에서 뜯어오는 산나물이 있긴 해도 친구네 텃밭을 찾아 안부를 나누고 시금치를 마련하려 했다.
사월 첫째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집에서부터 걸어 옛 도지사 관사와 도청과 법원을 지난 창원축구센터 근처로 갔더니 한 시간이 걸렸다. 대학 동기로 현직 초등 교장인 벗은 상남동 자기네 아파트단지에서 공공자전거 누비자를 타고 텃밭에 먼저 와 있었더랬다. 그간 밀린 짧은 안부를 나누고 시금치는 물론 쪽파와 돌나물까지 넉넉히 마련했다. 초벌부추도 잘라가라 했지만 사양했다.
이른 아침 벗의 텃밭을 다녀온 뒤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반송시장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해 동정동에서 온천장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천주암을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동구 밖에서 달천계곡으로 드니 계곡 입구 오토캠핑장 일대는 화사하게 핀 벚꽃이 꽃 대궐을 이루었다. 주말을 맞아 천주산 진달래꽃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산행객이 더러 보였다.
창원 도심 거리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도심의 벚꽃이 저물면 천주산은 온 산에 붉은 수를 놓은 듯 진달래꽃이 뒤덮는다. 남도에서 거제 대금산과 여수 영취산과 함께 대표적인 진달래 군락지로 알려졌다. 코로나 이전엔 이맘때 진달래 축제가 열렸고 주말이면 전국 산악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관광버스들이 차를 세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외감 들녘 농로까지 자동차들로 빼곡했다.
올해 봄꽃 개화는 예년에 비해 며칠 늦은 편이라 사월 초순인데 진달래가 만개하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달천계곡으로 드니 주말을 맞아 진달래를 완상하려는 산행객이 몰려와 경찰과 모범운전자들이 주차를 안내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천주산 가는 등산로는 천주암에서 오르는 길은 짧으나 가팔라 달천계곡으로 들면 산행 묘미를 누릴 수 있어 산행객들이 다수 이용하는 코스였다.
계곡으로 드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도 더러 보였다. 나는 근래 새로 뚫린 계곡 탐방로를 따라 천주산 건너편 산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맞은편에 쳐다보이는 응달 산등선에는 진달래가 피는 붉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함안 경계 고개에 이르러 김밥을 비우고 천주산 꼭뒤로 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난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자리는 재래시장 말고는 가질 않은 편이다.
나는 이미 달천계곡을 지나오면서 남들은 예사로 그냥 스친 야생화들을 탐방했다. 작고 귀여운 개별꽃을 봤다. 남산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났다. 산괴불주머니도 층층이 탑을 쌓듯 노란 꽃을 피웠다. 이 정도면 그 흔한 진달래꽃을 본 것 이상이었다. 남들처럼 천주산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수종갱신 조림지 상봉 비탈 편백나무 숲으로 올랐더니 취나물은 아직 자라 나오지 않았더랬다.
조림지를 관통하는 트레킹 길을 뚫어 놓아 산악자전거가 지나간 자국이 보였다. 길섶에는 엉겅퀴가 보였으나 캐질 않았다. 집에 채집해둔 산나물과 벗의 텃밭에서 마련한 푸성귀가 밀려 있어서였다. 뾰족하게 새순을 밀어 올리는 원추리는 고라니가 뜯어먹어 멱이 잘려 있기도 했다. 봄날에 일찍 돋는 새순 새잎은 산짐승의 먹잇감이었다. 길고 긴 임도를 따라 산정마을로 내려섰다.
인적이 끊긴 계곡에는 중장비를 동원한 인부들이 작업에 열중했다. 여름철 산사태를 대비하려는 사방사업이었다. 마을이 가까워진 길섶에는 양지꽃이 피어 화사했다. 그 자리 앉기만 하면 꽃방석이 될 듯했다. 계곡을 빠져나가니 엊그제 봤던 산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여기가 무릉도원이가 싶을 정도였다. 야생돌복숭나무가 피운 복사꽃이었다. 진달래 꽃구경보다 못하지 않았더랬다. 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