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는 평생 실내악 분야에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면서도 15세가 되기 전까지 피아노3중주곡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나마 1812년에 한 곡 내놓은 피아노 3중주곡은 ‘소나타’라는 이름이 붙은
단악장의 작품이다. ‘현악4중주’에는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슈베르트가 ‘피아노 3중주’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말년에 찾아온 친구들 덕분에 ‘피아노3중주’에 흥미를 갖게 된
슈베르트는 단숨에 두 곡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두 곡 모두 슈베르트의 말년을 장식한 친구인
카를 마리아 폰 보클렛과 이그나츠 슈판치히, 요제프 링케를 알게 된 후에
작곡되었고, 그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두 곡의 피아노 3중주곡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D.929는 악장들 간에 긴밀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는 대작으로, 특히 2악장이 유명하다. 2악장을 여는 절름거리는 피아노의 리듬과 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첼로의 그윽한 선율은 한번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선율로, 4악장 마지막에서 이
선율은 찬란하게 빛나는 장조로 나타나 벅찬 감동을 안겨주며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 드라마틱한 여정은 마치 하나의 모티브를 바탕으로 거대한 교향곡을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다.
우수에 젖은 2악장과 벅찬 감동을 안겨주는 4악장의 피날레
제1악장 Allegro :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하이든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한 화성진행의
음형으로 시작하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다 같이 한 목소리가 되어 선언적인 주제를
연주하는 방식은 베토벤이 그의 현악 4중주곡에서 종종 쓰던 충격적인 도입 방식이다.
이 작품에서 더욱 인상적인 선율은 슈베르트다운 신비함이 담긴 제2주제일 것이다.
미묘한 색채감을 뿜어내는 단조 화음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리듬 패턴은 우수를 자아낸다.
이 주제는 슈베르트의 사장조 소나타 D. 894의 미뉴에트와 트리오의 주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후 만화경처럼 반복되는 주제는 슈베르트의 눈부신 음악적 기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활기찬 코다는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다채로운 형식으로 발전한 후 놀랍게도
즉흥곡과 유사한 음형을 사용하고 있다.
제2악장 Andante con moto : 이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아름답고 명상적인 악곡으로,
스웨덴 민요 ‘날이 저문다’에서 따온 악상으로 우수에 젖은 첼로의 선율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피아노의 잔잔한 반주는 고독감이 가득하다. 스웨덴에서 온 젊은 테너 이자크 알베르트 베르크가
1827년에 빈을 방문했을 때 ‘날이 저문다’라는 스웨덴 민요를 노래했는데, 당시 슈베르트도
베르크의 노래를 들었다. 이 노래의 반복되는 피아노 반주 음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슈베르트는
이를 제2악장에 도입해 지극히 매혹적인 주제를 완성했다. 마치 31세의 짧은 생애를 목전에 둔
슈베르트의 우울한 비장함이 한껏 녹아있는 듯하다.
제3악장 Scherzando : 사랑스런 캐논 악장이다. 캐논이란 한 성부가 주제 성부를 몇 마디
뒤에서 똑같이 모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으로 일종의 돌림노래와 같다.
피아노의 뒤를 바짝 뒤쫓는 현악기들의 추격과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는 하이든의 음악을 닮았다
제4악장 Allegro moderato : 마지막 악장은 처음의 주제가 계속 반복되는 론도 형식의
음악으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론도 주제 사이사이에 끼어들며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어
연주시간도 꽤 긴 편이다. 그런 까닭인지 라이프치히에서 이 작품이 출판될 당시 제4악장 중
99마디가 생략된 채 출판되기도 했다. 빠르고 화려하게 진행되는 4악장 중간 부분에 제2악장의
주제가 회상되며 시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순간은 이 곡에서 가장 특별한 부분이며, 마지막에
제2악장의 주제가 벅찬 장조로 마무리되는 여정 또한 매우 드라마틱한 감흥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