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영심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심은 사람들) 시대가 열렸다.
지난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되면서 여당인 한나라당 뿐 아니라 제1야당인 민주당과 제2야당인 자유선진당 대표까지 모두 김 전 대통령이 정치권에 발탁했던 인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가장 인기 있던 TV 만화가 '열네 살 영심이'였는데,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90년대에 발탁된 '영심이'들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김 전 대통령(YS)이 개혁을 내세우며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끌어모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YS 집권 초인 1993년 민자당 소속으로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에 발을 디딘 전형적인 '영심이'다. YS는 "개혁추진에 걸맞은 인물을 당시에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고, 그중 내가 직접 고른 사람이 손학규"라며 상당한 애정을 평소 표시해왔다. 손 대표도 당시 선거공보물 구호를 "대통령이 불렀다. 개혁 위해 나섰다"로 쓸 정도로 YS의 '부름'을 받았음을 내세웠었다.
한나라당은 15대 총선(1996년 4월)에서 신한국당 공천으로 당선됐던 '정치 96학번'들이 14년이 지난 지금 '열네 살 영심이'가 돼 당 지도부를 대거 차지하고 있다. 상도동계인 김무성 원내대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YS는 당시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예상되자 '개혁공천'으로 이를 돌파할 전략을 짰다. 이때 '개혁의 이름'으로 수혈됐던 신인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한 안상수 검사(현 대표),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홍준표 검사(현 최고위원)다. 재야에선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 (현 특임장관), 노동운동계의 대부 김문수 (현 경기지사) 후보들이 당시 야당의 아성이었던 서울 은평과 경기 부천소사에서 당선됐다. 학계에선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시 서울 서대문을에 공천을 받아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15대 총선 공천작업을 했던 YS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당내 반발이 있었지만, 법조계와 학계, 재야에서 대표 선수들을 고른 뒤, 철저히 여론조사와 인지도를 고려해 공천했다"며 "그래서 정치 96학번들이 인지도와 정치 생명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역시 YS시절 감사원장에서 국무총리, 그리고 당시 여당(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다.
'영심이'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를 일각에서는 사제관계처럼 엄격했던 DJ의 동교동계와 달리 다소 느슨하고 출입이 자유로웠던 옛 상도동계의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김태호 전 총리후보자가 총리 지명 소식을 듣자마자 YS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옛날에 상도동에서 짐을 좀 날랐습니다"라고 인사했는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상도동을 거쳐 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자당 시절부터 있었다는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YS 때는 군사정권의 종식, 경제적으로는 IMF가 오기 전까지 급성장을 하던 때라 지금보다는 다양한 정치적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