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그의 어머니 요한나.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쇼펜하우어의 어머니 요한나는 바이마르의 사교모임을 이끌었던 사람이며 작가였다.
어머니는 쇼펜하우어를 싫어했고, 쇼펜하우어 역시 소설을 쓰는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쇼펜하우어와 그의 어머니가 결정적으로 갈라선 것은 쇼펜하우어가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원에 대하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발간하면서였다.
그가 책을 발간한 뒤 책을 건네자 어머니는 그 책을 보고 놀렸다.
“약사들을 위한 책인가 보구나.” 그 말을 들은 쇼펜하우어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어머니가 쓴 책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려도 제가 쓴 책은 오래도록 읽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도 질세라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그럴 테지, 네 책은 초판 그대로 안 팔리고 계속 쌓여 있을 테니.”
그 순간 모자 사이에 전례 없던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괴테가 언젠가 그의 어머니인 요한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부인의 아드님은 장래에 반드시 유명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기 자신보다 자식이 잘 된다는 말에 기뻐하는데, 요한나는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의 재능을 과신한 그는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천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쇼펜하우어의 관계는 결정적인 파국을 맞았다.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마음을 감지한 그는 다음과 말을 남기고 바이마르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갔다.
“어머니의 이름은 훗날에 내 이름을 통해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1814년 5월이었다.
그의 어머니 요한나는 그 뒤로도 24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모자가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란 것이 무엇인가?
어떤 부모들은 너무 못 주어 안달이고,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을 짐으로 여기기도 한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부부가 갈라서게 되면 자식을 서로 키우기 위해 법정소송까지도 불사했는데, 요즘에는 서로 맡지 않기 위해 난리가 아니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이 이러할진대, 십년, 이십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 사람들을 놀래킬 것인가?
심히 궁금하면서도 우려스럽다.
”불행이란 무엇입니까?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소절 같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 그런 사랑이자꾸 사라져가고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