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꽃은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예쁘네’가 전부인, 그저 관상용에 불과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수녀님을 따라 꽃꽂이를 배우러 다니게 되었다.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꽃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꽃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꽃꽂이하는 ‘플로리스트(꽃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제대 꽃꽂이를 하면서 제대 밑에 앉아 아무도 없는 성당 안에서 하느님과 대화하던 시간은 큰 선물이었고, 가장 큰 축복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하느님과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가 끝난 후 아무도 없는 성당은 번잡한 도심과는 상반돼 한없이 고요했다. 하느님께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중얼거리곤 했다. 기쁜 일은 기쁜 일대로, 슬픈 일은 슬픈 일대로 빠짐없이 하느님과 나누었다.
돌아보면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나는 꽃을 잡고 있었고, 행복한 순간에도 꽃과 함께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꽃만큼은 나에게 친구가,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꽃을 알게 해 주신 분도 주님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게 꽃은 단순히 취미나 과시도 아니요, 일상적인 직업도 아니며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이자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매개였다.
시간이 흘러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방송과 꽃꽂이였다. 이 두 가지를 함께하는 꽃 나눔 수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꽃 나눔 수업’은 꽃꽂이 수업을 하고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형식이었다.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많은 친구가 함께해 주었다. SNS를 통해서 행사에 참여해주신 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조금씩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작지만 소중한 나눔을 할 수 있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사라, 준비에는 두려움과 막연함이 따랐다. 행사 자체의 성공 여부보다 과연 이 나눔 행사가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가 고민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내게 봉사나 나눔은 거창한 일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준비되고, 나눌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 시작하는 것이 봉사와 나눔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그 반대였다. 바로 지금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봉사의 실천, 그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바라는 더불어 살기였다.
봉사와 나눔은 거창하지 않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언제든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꼭 크게 나누지 않아도 그 작은 마음들이 큰마음으로 전해지고, 오히려 더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늘 나눔을 마치고 나면 더 큰 사랑을 받는다. 그 안에서 어김없이 주님을 만난다. 나눔에는 언제나 주님이 크고, 확실하게 오신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작고 소박한 마음을 나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가진 비스킷이 두 쪽이면 기꺼이 한 쪽을 나눠 먹는 일, 그런 것이 나눔이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내게 선물을 주실 때는, 그것을 곧 다른 이들과 나눠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그 선물이야말로 다른 이들과 나누면 나눌수록 더 아름답고 소중해진다고. 지금, 내게는 꽃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