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39~45 / 말씀으로 성장하게 하시는 예수님
(요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요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 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요 4: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어린이가 태어난 초기에는 젖이나 우유를 먹습니다. 그러다 성장하면 이유식을 먹고 밥을 먹고 딱딱한 고기도 먹습니다. 그를 통하여 어린이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모유만 먹으면 문제아입니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에는 6살이 되었는데도 밤에 6번이나 모유를 먹는 아이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문제아입니다. 만약 4, 50살이 되어서도 분유만 먹는다면 문제를 넘어 병자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이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의 간증이나 신앙 서적이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성장하면 이제는 딱딱한 말씀을 먹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마리아 사람들은 간증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3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서 죄 사함을 받고 그 속에서 성령의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을 와보라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의 과거를 알았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된 모습을 알았습니다. 여인이 간증을 하자 사람들은 여인의 변화를 통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이런 간증이나 설교나 신앙 서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배웁니다.
이런 것들은 마치 죽이나 젖과 같이 부드럽고 은혜가 있습니다. 초신자에게는 딱딱한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를 변화시키신 간증을 들으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말씀은 보지 않고 이런 간증이나 신앙 서적이나 설교만을 들으면 부작용이 큽니다. 설교만 열심히 들으면 그때는 은혜를 받는 것 같지만 삶의 변화가 없고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단단하여지지 않고 허약한 체질의 되기 쉽습니다.
물론 신앙이 성장한 후에 간증이나 서적이나 다른 사람 설교를 아예 보거나 듣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간증이나 설교를 들으면 신앙의 힘을 얻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증이나 설교를 들을 때도 한 말씀을 영접하고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도 청년의 때에 성경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40~42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틀간 그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박2일의 말씀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42절에서 그 여자에게 “더 이상 우리는 당신의 말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오.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려면 직접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에 기초하여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말씀을 없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에 기초할 때 우리의 신앙이 변함없이 견고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43~45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갈릴리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는 선지자가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과거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저귀 차고 다니면서 똥오줌을 싸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과 친인척관계입니다. 동생이고 조카고 형님이고 아저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몇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가족이 바로 예수님이 동역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요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는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써서 신약 성경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첫째, 예수님은 가족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한 번은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누가 내 가족이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참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잠시 서운했지만 이를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안에서 참 가족이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삶의 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자녀들 가운데 믿지 않는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살아서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많은 고기를 잡는 것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발견하고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도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말씀에 순종하도록 돕고 말씀에 순종하는 본을 보이고 말씀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이 나타날 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처음에는 간증이나 신앙 서적이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나 들을 때도 한 말씀을 받으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우리가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