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청주방송총국장 인사에 청와대 고위 인사 A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KBS 내부에서 제기됐다. 최근 KBS의 ‘태양광’ 보도 관련 재방송 불방(不放)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KBS 노동조합(비대위)으로부터 고발당한 데 이어, 또다시 ‘청와대 개입설’이 불거진 것이다.
유용 총국장 임명에 반발한 KBS 노조
지난 4월 말 KBS 청주방송총국장에 임명된 유용(58)씨는 임명 직후부터 화제가 됐다. 한 지역 언론은 “한국방송공사(KBS) 사상 처음으로 지역 출신 기자인 유용씨가 KBS 청주방송 총국장으로 임명됐다”고 전했다. 이어 “유 총국장은 충북 출신으로 지역 기자가 총국장에 첫 임명되면서 언론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KBS 사내에서는 유용 총국장 임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7월 23일, KBS 사내 게시판에는 노조가 작성한 <청주 총국장 인사 문제, 뭉개고 넘어갈 수 없다>란 제하의 성명이 올라왔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유용 총국장의 전임자인 이강현 총국장이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좌천된 사실을 지적하며 유 총국장 임명에 ‘여권 핵심 실세’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성명의 일부다.
<이 납득할 수 없는 인사(유용 총국장 임명-기자 주)의 배경에 청주 출신 여권 핵심 실세 정치권 인사의 청탁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이런 변칙적 행태는 그 심각성으로 인해 과거 10년간 보수정권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에서도 감행하지 못했던 후한 무치한 짓으로, 공사의 인사 원칙과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그 부도덕한 행태는 위법, 나아가 범죄적 혐의(업무 방해)까지 짙다고 말할 수 있다.>
‘청와대 실세’ A씨의 이름이 나온 배경
기자는 복수의 KBS 관계자를 통해, 유용 총국장 임명에 입김을 불어 넣은 이로 지목된 인사가 청와대 고위직을 맡고 있는 A씨란 사실을 확인했다. KBS의 한 관계자는 “유용 총국장과 A씨는 청주고 선후배 사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유용 총국장은 평기자 시절, 청주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A씨를 취재원 삼아 기자 생활을 해온 인연이 있습니다. 유 총국장은 기자 생활을 거의 다 청주를 기반으로 해, 이 지역 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청주대)도 모두 청주에서 나왔으니까요. 따라서 지역 사회 유력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죠.”
이 관계자는 청주방송총국 보도국장으로 있던 유용씨가 총국장으로 발탁된 건 특이한 케이스라고 주장했다. 보통 지방 총국장직은 서울 본사에 근무했던 사람이 발령 받는 게 KBS 내부의 통상적인 관례라고 한다. 유 총국장처럼 지방총국 보도국장을 했으면, 서울(본사)에서 근무했다가 지방 총국장으로 발령 받는다는 것이다. 반면 유 총국장은 지방총국 보도국장에서 곧바로 해당 지역 총국장으로 승진한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이 관계자는 거듭 강조했다.
“A씨의 보좌관 출신과 유용 총국장, 친분 두터워”
이 관계자는 유용 총국장이 임명된 배경에 A씨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이었던 L씨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유용 총국장과 L씨가 친분이 두텁다는 건, 청주 지역 사회는 물론 해당 지역 기자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L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선임행정관을 역임하고 현재 모 광역자치단체 고위 공직을 맡고 있다.
그는 유용 총국장이 청주방송총국 보도국장 시절, 이른바 ‘셀프수상(受賞)’을 한 적이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유용 총국장이 ‘우수 프로그램상’ 시상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을 상신해 사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이강현 총국장이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4개월 만에 좌천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강현씨는 청주방송총국장에서 밀려난 후, KBS 자(子)회사인 ‘아트비전’ 부사장직으로 발령 받았다. 무대 장식, 컴퓨터그래픽 등 미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아트비전’은 규모가 작은 조직이라 창사 이래 부사장 직책을 한 번도 둔 적이 없었다고 한다. 노조 역시 연간 최소 2억 5000만원이 더 들어가는 부사장직 신설에 반대했지만, 사측은 이 인사를 강행했다.
A씨와 김상근 KBS 이사장의 ‘친분’
또 다른 KBS 관계자는 김상근 KBS 이사장과 A씨가 밀접한 관계라는 주장도 했다. 과거 A씨가 출석했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김상근 이사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2012년 5월 17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 일부를 소개한다.
<(A씨는) 긴급조치 9호 위반(연세대 구국선언서)으로 구속되어 2년을 복역했다. 당시 A 의원이 구속 전 다닌 수도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는 A 의원에 대해 “과묵하고 실천가적인 타입이었다”며 “A 의원이 감옥에 갔을 때 장로였던 그의 아버지가 굉장히 힘들어 하셨지만, 나중에는 A 의원과 함께 아버지도 민주화운동에 리더십이 되셨다”고 회고했다.>
미디어연대 “(A씨) 방송 외압 관련해 KBS 이사장에게 연락한 의혹”
언론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디어연대(공동대표 이석우, 조맹기, 황우섭)도 지난 24일 성명을 통해 A씨와 김상근 KBS 이사장 '유착설'을 제기했다. 미디어연대 성명의 일부다.
<첫째, 청와대 실세의 청주총국장 인사개입설은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이자 KBS 고위임원들의 권한남용에 해당되는 것임은 물론, 이 실세가 방송 외압 관련해 KBS 이사장에게 연락한 의혹에 심증을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문제이다.
23일 KBS 사내게시판에 따르면 청와대 실세가 자신과 청주지역 고교동기인 청주총국 기자를 몇 단계 수직상승시켜 청주총국장으로 임명시키고, 임명 4개월 밖에 안 된 기존 총국장을 계열사로 좌천시키는 데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증언글이 오른 것이다.
둘째, 이번 방송 외압과 관련해 위 정권실세가 친분이 깊은 김상근 KBS 이사장에게 연락했다는 의혹이다… KBS 이사장이나 집행 간부들의 권한남용은 물론, 정권 실세의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진상도 역시 밝혀내야 한다.>
23일 KBS 사내게시판에 따르면 청와대 실세가 자신과 청주지역 고교동기인 청주총국 기자를 몇 단계 수직상승시켜 청주총국장으로 임명시키고, 임명 4개월 밖에 안 된 기존 총국장을 계열사로 좌천시키는 데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증언글이 오른 것이다.
둘째, 이번 방송 외압과 관련해 위 정권실세가 친분이 깊은 김상근 KBS 이사장에게 연락했다는 의혹이다… KBS 이사장이나 집행 간부들의 권한남용은 물론, 정권 실세의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진상도 역시 밝혀내야 한다.>
참고로 김상근 이사장은 소위 진보 성향 기독교 단체로 잘 알려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와 기독교방송(CBS) 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KBS의 ‘태양광’ 관련 보도가 靑의 반발 산 까닭
KBS 관계자는 “윤도한 수석 '외압설' 배후에 A씨가 있다는 게 대다수 KBS 구성원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윤도한 수석이 ‘불방 압력’을 넣었다고 의심 받는 프로그램은 ‘시사기획 창’이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6월 18일 ‘태양광 복마전’을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태양광 사업에 친(親)정부 인사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청와대의 강력한 반발을 산 이유 중 하나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과거 A씨의 사무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태양광 사업과 청와대가 연관돼 있다는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의 증언이 보도됐다. KBS 제작진은 청와대에서 저수지 태양광 활성화 논의를 위해 저수지 수면의 몇 퍼센트를 태양광 패널로 덮을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최규성 전 사장은 방송에서 “40%를 하냐 10%를 하냐 가지고 논쟁했지만 차관이 처음에 30%를 합의해 주다가 다 풀어버리더라고. 왜냐하면 대통령께서 60% 한 데를 보고 박수를 쳤거든. 그러니까 차관이 ‘사장님 30% 그것도 없애버립시다’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때 제작진이 최 전 사장의 사무실(태양광 관련 업체)로 찾아가는 장면을 방송하면서 그의 사무실 우편함에 ‘국민정치연구소 민주연대’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영상도 전파를 탔다. 이곳이 A씨가 과거에 쓰던 사무실이었다는 게 KBS의 보도 내용이었다. 실제 방송에서도 “A씨가 쓰던 사무실입니다”라며 그의 실명이 담긴 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 같은 사실을 거듭 부인하며 지난 12일 KBS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조정 신청을 했다. 앞서 지난 8일 KBS는 청와대에 '사실관계의 다툼이 있어 정정·반론보도가 어려우며 추후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전기기술에 밝은 ‘태양광 전도사’ A씨
이와는 별개로 KBS 관계자들은 “A씨가 ‘태양광 전도사’ ‘태양광의 아버지’라는 건 이미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진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A씨는 전기기능기사·위험물취급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기기술자’ 출신이다. 1984년 청주로 내려온 그는 전기기술자노조를 만든 데 이어 1986년 그동안 익힌 전기기술을 바탕으로 전기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0년 6월 독도에 태양광발전소가 세워지자 A씨는 관련 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1년 4월 충북 7개 시·군이 태양광 산업특구로 지정됐을 때에도 A씨의 공이 컸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와 지식경제부 특구위원회가 충북도가 신청한 태양광산업특구를 심의 의결했다”면서 “이 특구는 시·군 단위로 지정된 종전 143개 특구와 달리 7개 시·군을 한데 묶은 최초의 광역특구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유용 총국장의 '묵묵부답'
한편 《월간조선》은 25일 유용 총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유 총국장은 “할 얘기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기자는 아래의 질문을 유 총국장에게 문자 메시지로 발송했다. (유 총국장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는 익명으로 처리된 부분을 실명으로 처리)
<─ 노조는 총국장에 임명된 배경에 A씨의 입김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 L씨(A씨 보좌관 출신)와는 A씨보다 더 가까운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보도국장 시절 ‘우수프로그램상’과 관련해 이른바 ‘셀프수상’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 KBS 지방총국 보도국장이 지방총국장으로 곧바로 승진한 케이스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윗선의 입김이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으신지요.>
이밖에 청와대로도 이메일을 발송해 A씨 관련 여부를 질의한 상태다. 《월간조선》은 청와대에서 답변이 오는 대로 A씨의 입장을 담아 후속 기사를 내보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