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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생명의숲 원문보기 글쓴이: 참사람
블로그>가끔은 해찰도 하지, 그러다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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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회 무등산풍경소리
강허달림 콘서트 '건널 수 없는 강'
2009년 9월 12일 저녁 7시 30분
무등산 증심사 문화광장
노래손님/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드럼 유재욱, 기타 김종락
오카리나연주와 합창 '마인'
이야기손님/
소설가 문순태
사회/
돌다리_최명진(미래에서온교회 목사)
슬픈 정서와 흥겨운 리듬 절묘한 조화 묘한 중독성
[우리시대의 명반·명곡] 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년 뮤직 런뮤직 上
한국 여성 블루스 보컬의 적자 평가
잡초 같은 강인함으로 희망을 노래
글/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주간한국 2009-04-01]
우리의 판소리와 흑인의 블루스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두 가락은 질박한 민초들의 삶의 고갱이를 녹여낸 진솔한 가락이란 점에서 닮은꼴이다. 고된 삶을 반영한 노래는 대부분 슬프다. 하지만 두 장르에 각기 신나는 장단과 리듬이 살아 꿈틀거리는 이유는 삶이 버겁고 힘겨워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은 잡초 같은 강인함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자체가 곧 블루스로 평가받는 강허달림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흥겨운 리듬이 공존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사와 리듬이 절묘하게 합체된 그녀의 노래는 묘한 중독성을 발휘하며 절망이 아닌 희망을 그려낸다. 강허달림은 지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담은 블루스 트랙들을 통해 한국 여성 블루스 보컬의 적자로 평가받는다.
임희숙의 데뷔시절을 연상케 하는 감칠맛과 빌리 할러데이의 처연한 슬픈 바이브레이션과 닮은 그녀의 보컬은 독특하다. 2008년 발표된 강허달림의 1집 [기다림 설레임]은 테크닉만이 넘실거리는 요즘 음반들과 차별적인 삶의 진솔한 향내가 ‘감동’적인 명반이다.
강허달림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강은 아버지 성이고 허는 어머니 성이다. ‘달림’이란 이름은 밤하늘에 떠있는 그 ‘달님’이 아니라 씩씩하게 '달리는' 달림이다. 그녀는 2008년 1집 앨범을 내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무명생활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의 가수다.
그녀는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인 승주군 상사면 용계리 죽전마을에서 태어났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수몰마을이다. 시냇가와 집 뒤에 있던 야산의 대나무 숲은 그녀의 자연친화적 인성을 조성시킨 음악적 DNA들이다.
그녀는 명절 때마다 당산나무 밑에서 열린 ‘동네 노래자랑대회’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부른 꼬마 인기가수였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리듬감각은 동네잔치에서 장구를 치며 흥을 북돋았던 아버지의 한량기질을 되 물림 받은 자연산이다.
가수라는 평생의 꿈을 품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 라디오에서 접한 가수 이선희의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를 듣고 난 후부터. 중학교 때 순천시로 나와 ‘기타 중창반’이 있는 순천여상에 진학한 것도 음악을 배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타를 살 돈이 없어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의 김선정은 처음으로 창작노래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친구다.
시골소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다. 일생일대의 용기를 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기타 하나를 둘러매고 무작정 상경했던 것. 작은 회사의 경리, 아르바이트는 물론 입시학원에서 근로 장학생을 하면서 신문배달을 하며 2년간 서울예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했지만 낙방했다. 좌절감이 컸지만 막 생겨난 서울 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입학했다.
그는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악보조차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서구의 팝과 테크닉을 중시하는 동기들과 달리 자기 스타일의 판소리 발성을 고집했기 때문. 실제는 그녀는 공연 때 마다 자신은 늘 ‘왕따’였음을 고백한다. 학창시절 내내 시험지 답안지 유출 같은 사건이 터지면 무슨 이유에선지 선생님들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수업 중에도 홀로 먼 산을 쳐다보기만 했던 3차원적 감성의 소유자였던 것. 고등학교 때 담임은 그녀를 ‘썩은 사과’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기타실력이 마음이 들어 교류했던 재즈아카데미 동기 김용희의 소개로 이태원의 카페 ‘저스트 블루스’에 오디션을 보러 가 채수용을 만났다. 그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이중산을 능가하는 재야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오디션 후 프로젝트 밴드 풀 문을 결성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12마디 블루스(스탠더드 재즈곡)를 주로 하는 레퍼토리에 곧 공허함이 밀려왔다. 창작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 연주 욕심이 강한 멤버들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또 왕따가 되었다. 이후 밴드에서 독립한 그녀는 오랜 기간 클럽 무대를 거치며 2003년 마침내 관록의 블루스 밴드 ‘신촌 블루스’의 보컬이 되었다.
그녀의 삶 대변하는 12곡의 블루스
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년 뮤직 런뮤직 下
절망·고통의 흔적 희망 메시지로 승화
싱글 발표후 '사운드' 아쉬움 직접 앨범 제작사 세워 달래
그녀의 창작방식은 독특하다. 흥얼흥얼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멜로디를 녹음하기 위해 항상 카세트 녹음기를 가지고 다닌다. 창작의 물꼬를 튼 것은 1995년쯤 ‘독백’을 처음으로 만들면서부터. 1집 발표 전까지 ‘지하철 자유인’등 4곡의 노래를 완성시켰지만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녀가 거친 모든 밴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 그런 면에서 밴드 풀 문의 베이스 박순철은 그녀에게 ‘너만의 멜로디가 있다’며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독려했던 소중한 친구다. ‘춤이라도 춰볼까’ 리플은 그의 도움으로 완성한 곡이다.
2년간의 신촌블루스 활동 후 클럽을 맴도는 가수로 머물 것 같아 유학을 결심했다. 장충동의 한 찌개 집에서 하루 13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절치부심했다. 2005년 마침내 기회가 왔다. 카페 스튜디오70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가능성을 발견한 기획사 ‘풀로 엮은 집’의 이윤호대표가 데뷔 음반을 제작했던 것.
프로듀싱 개념도 없이 스스로 모든 음악과정을 맡아 싱글EP ‘독백’을 발표했다. 비록 대중적 반향은 미미했지만 일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에 여러 곳에서 정규앨범 제작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 제작조건이 취약했다. 녹음진행 중에 뒤엎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은 싱글 앨범 발표 후 가장 아쉬움을 느낀 ‘사운드’의 질은 결코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에 대한 고심으로 가득 찼던 3년간의 공백 후 중대 결심을 했다. 스스로 자신의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인디레이블 '런뮤직'을 창립했던 것. 10년째 옥탑 방에서 살며 모아놓은 돈과 모자라는 돈 2천만 원을 대출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강남 양재동의 텔레만 스튜디오에서 녹음비용을 1/3가격으로 후원해주었고 KBS 관현악단 멤버 남영국이 프로듀싱을 맡아주었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블루스 기타의 달인 채수영과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세션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2007년 3월에 제작에 들어간 1집은 이듬해 2월에야 가까스로 녹음을 끝냈다. 제작비가 부족해 녹음실, 프로듀서 스케줄에 맞춰가야 했기 때문.
강허달림의 1집은 짙은 향내가 진동하는 토종 블루스 명반이다. 이 앨범에는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12곡이 담겨 있다. 11곡은 그녀의 창작곡이고 ‘꿈꾸는 그대는’은 인천 노래패시절에 감명을 받은 소나무(윤대형)의 곡이다. 29살 때 만난 한 남자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은 기다림과 극복의 미학이라는 음악적 감성을 제공했다.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끝내 자존심만은 잃지 않는 여성특유의 인내를 담고 있는 타이틀 곡 '기다림, 설레임', 탁월한 감성의 보컬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미안해요’ 같은 창작곡들은 그 결과물이다. 또한 경쾌한 리듬감이 탁월한 첫 트랙 '춤이라도 춰 볼까',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용기와 희망이 담긴 '독백'과 ‘옛 일기장’, 하늘과 바다‘는 쉽게 접하기 힘든 그녀의 명곡들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비트 강한 경쾌한 리듬이 공존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그래서 청자를 때론 서정적 분위기의 노래에 푹 빠져들게 하고 때론 어깨를 들썩이는 흥겨움으로 인도한다. 절망과 고통의 흔적은 탁월한 리듬을 통해 극복되고 이내 희망의 메시지로 거듭나게 하는 힘은 강허달림 노래만의 차별성이다.
강허달림은 1집에 대해 “속을 너무 많이 썩어 음반이 나왔을 때 보기도 싫었다. 프로듀서 이름이 첫 브클릿 인쇄에 누락되어 폐기시키고 다시 인쇄를 했다. 재킷도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의 작업을 거쳤다.”고 털어놓는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혼자 서있는 자아’를 표현한 1집의 독특한 이미지 재킷은 급히 소개받은 아트 디자이너 정경숙의 작품이다.
1집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앨범’에 선정되고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여러 부문의 후보에도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이 계속 늘어 현재 3판 제작에 들어가 있다. “블루스는 운명적인 장르지만 특정 음악장르에 매몰되기보다 좋은 노래를 찾아가는 음악여정을 오래 하고 싶다.”고 말하는 강허달림은 우리시대가 주목해야 될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싱어송라이터 _ 강허달림
1997
- 서울 재즈아카데미 1기 보컬전공 수료
- 밴드 '마고' 보컬
1998~2002
- 이태원 Just Blues에서 Blues Band 'Full Moon' 보컬
- KBS 위성 재즈클럽 방송 (1월)
- "5th Bird Rock Festival" 참가
- 클럽 'Rock and Roll', 'Led Zepplelin', 'Big Apple', 'Hot House Jazz Club'등 다수의 클럽에서 활동
2002
- 'Blues Project Band' 보컬로 'Evans', 'Rube'ck'등 클럽에서 연주
2003~2004
- 신촌 'Blues' 보컬로 다수의 공연과 방송 활동
2005
- MBC '사람-사진으로 쓰는 이야기'
- 싱글앨범 '독백'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서 (10월)
- 음반 '독백' 발매기념 DGBD 단독공연(11월)
2006
- Soccer Rock 컴필레이션 음반 참여(4월)
- 8회 여성영화제 ;아시아 여성 영화인의 밤' 초청 공연(4월)
- 'Hi 악 Festival' 공연(5월)
- LIG 극장에서 단독 콘서트(6월)
- 'JazzStory', '화수목'외 다수 Club에서 공연 활동
2007
- Run Music
- 수원 과학대 출강
- 결식 아동 돕기 '아름다운 공연'(5월)
- 춘천 아트 페스티벌 (7월)
- KBC 광주방송'시대공감' (9월)
- 경인방송'백영규 가고 싶은 마을'FM공개방송 (12월)
- 강원교통&강릉시'송년 경포대 특별 공연' (12월)
2008
- 강허달림 첫 정규 앨범 기다림, 설레임 제작 발매 (4월)
- 10회 여성 영화제 ‘아시아 여성 영화인의 밤’ 초청 공연(4월)
- 앨범‘기다림, 설레임’ 네이버 이주의 앨범 선정 (4월)
- 일상에서 건져 올린, 날 것의 소리‘ 4th 강허달림 문화일보 홀 공연(5월)
- 광주 MBC '콘서트 난장‘ (5월)
- 5th 부산 카톨릭 소극장 단독 공연 (7월)
- Summer High Seoul Festival (8월)
- 4th Save Tibet Festival (8월)
- 6th The Last Summer Night Club '타‘ 단독공연(8월)
- 광주 MBC 주관 충장로 축제 (10월)
- 7th 루나틱홀 단독 공연(10월)
- 심상정 대표 ‘당당한 아름다움’ 출판 기념회(10월)
- IF 서울시청‘안전야행’ 축하공연(10월)
- 방은진 ‘밤으로의 초대’,이종환 ‘ 마이웨이’, 김창완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외 방송
- 8th '부엌과 서재 사이‘ 단독공연(11월)
2009
- 9th ‘트래픽’ 신년맞이 Mini 콘서트 (1월)
- 6th 한국대중 음악상 음반 기다림, 설레임 락부분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여성뮤지션' 노미네이트(2월)
- 10th 'cafe Veloso' 단독공연(3월)
- 제주 4.3 평화음악제 (4월)
- KBS '낭독의발견' 배우 강혜정 게스트 (4월)
- 11th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 단독 공연 (6월)
- 환경정의 후원 만찬 (7월)
드럼(퍼커션) _ 유재욱
- 안기정 선생님께 사사
- 성음악원,IMCJAZZ,타임음악학원,엑스텍,쥬니퍼,하비 강사역임.
- 국상현1집 앨범 세션
- 채수영1집 세션
- J-BROTHERS앨범세션
- KBS위성2'째즈 클럽' 연주 녹화.독일국영방송연주녹화.
- 재즈클럽'BIG APPLE'연주.락클럽 'ROCK'N ROLL' ' 레드제플린 '라이브 연주
- 'BIG ELECTRIC CAT'라이브.
- 인터넷STARTV라이브 연주 녹화.
- 미군부대라이브
- 이정선,엄인호,김목경,라이브세션
- 락밴드 WASTE(김명기)
- 블루스밴드 BUDDY,FULLMOON, CHAI&FRIEND
- 이태원'져스트블루스'에서 6여년간 하우스로 활동
- 락 뮤지컬 "지하철 1호선"밴드마스터로 2년여동안 공연
-강허달림 세션
-현 고구려밴드로 왕성한 활동중
기타_ 김종락
- 김종락 BLUES BAND
- 벼락페스티벌 두류야외음악당
- 시노래콘서트
- 대구 오페라하우스 공연
- 경주 야외공연장 및 시민회관 공연
- 대구 문화예술회관 공연
-에릭클랩튼 콘테스트 준우승
- 대구 kbs 토요음악회
- 오산시여성회관
- 제주 just blues club
- 홍대 상상마당
- 핑거컨츄리기타의 대가 tommy emmanuel 사사
소설가 _ 문순태
전남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와 숭실대 대학원에서 공부함
65년 '현대문학'지에 시 추천을 받고 , 74년에 '한국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뷰.
한국소설문학 작품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등 수상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정년퇴임
주요작품집<징소리><걸어서 하늘까지> <타오르는 강> <된장> <41년생 소년> <생오지 뜸부기> 등 다수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에 부쳐… 아,민주주의의 횃불이여!"
아, 기어코 떠나시고야 말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 온몸을 불태웠던 민주투혼의 마지막 횃불이 사그라졌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쾌유를 빌었건만 끝내 가시다니, 이 사무치는 그리움과 비통함을 어쩌란 말입니까. 아직은 우리 곁에 더 계시면서 큰 가르침과 지혜를 주시고 평화통일을 준비해야 할 분이 가시다니, 이 상실감을 어쩌란 말입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우리 시대 큰별이셨습니다. 어둠의 시대를 밝혔던 그 별은 우리 민족의 좌표와도 같은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 아니 우리는 후광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선생님에게는 대통령이라는 직함보다 '민족의 지도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민족의 지도자이신 선생님을 잃은 상실감, 무력감, 허전함이 너무 커서 목이 멥니다. 산천초목도 슬픔에 잠기고 새들도 세상을 떠나듯 슬피 웁니다. 꽃피는 지난 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나오셔서, 추도사를 읽고 싶다던 선생님의 비장한 모습 너무도 생생합니다. 암울했던 시절, 의분에 찬 얼굴로 흰 와이셔츠 소매 걷어붙이고 민중을 이끌며 독재 타도를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사자후 아직 귀청을 때립니다.
아, 님이시여, 어두웠던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님과 한 시대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온 국민이 군사독재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마지막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꿈꾸는 동안은 용기를 잃지 않았고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꺼져가는 민주주의 불빛을 되살리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셨고 사형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르실 때도, 선생님은 일신의 안녕보다 이 나라의 장래를 더욱 걱정하셨지요. 그리고 인동초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통과 절망, 거듭된 죽을 고비를 이겨내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요. 선생님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밤을 새워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새벽에 거리로 뛰쳐나가 목청껏 민주주의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감격, 그 환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선생님은 준비된 대통령이셨고 성공한 대통령이셨습니다. 우리가 IMF 벼락을 맞았을 때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를 하여 위기를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국민들이 선생님을 믿고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햇볕정책으로 일관, 민족통일의 노둣돌 역할을 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남과 북의 평화공존 원칙 아래서 경제 발전을 다져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오랫동안 민주세력들을 핍박했던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 보복 대신 관용과 포용으로 화합의 미덕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이와 같은 정신과 철학이 영광스러운 노벨평화상을 안겨드린 것입니다.
아, 님이시여. 님께서는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받고 억눌리고 짓밟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사랑과 용기로 감싸주셨습니다. 갈등보다 화해를, 반목보다 평화를, 미움보다 관용을 실천하며 따뜻하고 넉넉한 가슴으로 세상을 품에 안고 살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선생님의 후광(後光)이 너무 빛나고 거룩하여 우리들의 상실감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러나 님이시여, 우리는 영원히 선생님을 잊지 않고 역사 속에서 더욱 큰 모습으로 살아있게 할 것입니다. 부디 이승의 번다함과 고통의 굴레 훨훨 벗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소서.
문순태 소설가 前 광주대 교수
[국민일보 2009-08-18]
하늘과 바다 /강허달림
첫댓글 한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