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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영탁 상담(아래제목에 상담1, 상담2.....순서를 매겨주세요 )
(상담1) 개인적인 기도 들어주실까요?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2) 가족 중에 이단시되는 교회에 출석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3) “딸이 다른 교회 나가는데…”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4)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5) 교회 내분으로 이적 고민==========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6) 기독인이 피해야 할 음식은?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7) 낙태 경험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용그대로 사용(약력,사진편집)
(상담8) 왜 자살하면 안 됩니까?
(상담9) 주여! 삼창기도에 대하여
(상담10) 부모님의 방식대로 나를 함부로 대합니다.
(상담11) 하나님은 왜 전쟁을 방치하고 멈추게 하지 않는 지요?
(상담12) 천주교인과 결혼 어떻게 할까요?
(상담13) 교회 내에서 교인 간의 금전거래는?
(상담14) 제사 때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인가요?
(상담15) 아내를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려면?
(상담16) 중고생들의 노래방 가는거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담17) 어릴 때 부모님의 서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담18) 퇴직한 남편이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 합니다
(상담19) 아이가 가정예배를 지루해 합니다
(상담20) 육아양육에 대한 스트레스는 왜 생길까요?
(상담21) 인터넷을 자제할 방법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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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1개 상담사례에=====아래 약력으로 통일해 사용해 주세요
글/ 이영탁 교수
신한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비정년전임강사
CCC기독교수회 회원, 대한상담심리치료학회 이사
미국 메릴랜드대학교(경영학), 중앙대학교(심리학)(학사)
미국 펜실베니아신대(M.Div.목회학석사), 케이씨대학교(Th.M신학석사)
미국 캐롤라이나신대(Ph.D철학박사), 대한신학대학원대(Ph.D상담심리학박사)
고려대학교(Ph.D아동교육학박사)
(상담8) 왜 자살하면 안 됩니까?
중3 남학생인데요. 부모님이 이혼하고 몸이 아프신 할머니와 살고 있는데 세상을 살기 싫고 죽고 싶습니다. 언젠가 교회에서 설교 중에 ’자살하면 안 된다‘라고 하던데 ’왜 자살하면 안 됩니까?‘
(답변) 힘들 때는 고민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은 그래도 소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가장 불효는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하나 밖에 없는 이 생명을 잘 가꾸어야 하며 더 더구나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큰 효도는 못해도 부모님 살아 생전에 건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양심의 부르짖음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자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자살’로 인한 사망은 전체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에 해당합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우리나라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이 넘는 동안 많은 인기 연예인이 자살했는데 그 가운데 기독교인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노인 자살도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마도 10대의 자살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하며 상처받는 때 우리는 자살하려고 극단적인 결론을 내지 말고 먼저 교회를 찾아가 도움받거나 아는 분 중에 교회 다니는 분이 있다면 고민을 얘기하여 보십시요. ‘생명의 전화’도 좋고 ‘정신과 병원’을 찾아 도움을 받고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살은 긴급히 치료해야 할 하나의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들은 하나님께 의해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키우셨습니다. 영어에서는 ‘태어났다’라는 것을 ‘I was born’이라는 것 같이 수동형입니다. 우리들은 오늘은 몇 번 호흡하며, 심장을 몇 번 움직이는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막히게 작동하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기에 자살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며 궁극적으로 지옥에 바로 가는 일입니다. 내 생명은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를 만나기 까지는 우리의 진정한 삶이나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명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의 사명을 찾고 사명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십시오. 어서 속히 진정한 자유를 얻어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1).
(상담9) 주여! 삼창의 기도에 대하여
기도모임때 목회자들이 “주여! 주여! 주여!” 삼창하며 인도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왜 그렇게 기도하며,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요?”
(답변)
목회자들이 기도회를 인도할때에 “주여, 주여, 주여” 삼창을 크게 외치며 기도회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성경적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다니엘의 기도로서 다니엘서 9장 19절에 보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중략)”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위인들의 경우, 기도의 사람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다니엘은 왜 ‘주여’ 삼창의 기도를 해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다니엘은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언을 통하여 알았고 메데와 바사가 통치할 것임을 알게 되고 되었습니다. 바로 그 과도기에 다니엘은 메대왕 다리오 왕 밑에서 총리의 일을 보고 있는 매우 비상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절박하게 ‘주여’ 삼창의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며 그 기간이 임박했음을 알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갈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민족의 회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세 번 거듭 반복된 ‘주여“ 라는 다니엘의 절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간구하는 그의 간절한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때 비로소 기도의 응답과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절박한 다니엘의 심정으로, ’주여‘ 삼창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여‘ 삼창의 기도는 다니엘의 사생결단의 간구요 중보기도 방법이었으며 성경적인 근거를 둔 다니엘의 기도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담10) 부모님의 방식대로 나를 함부로 대합니다.
저는 올해 고2학생 입니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방식대로 내 생각을 물어보지 않고 나를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한 부모님을 저는 이해할 수 없고 부모님을 존경할 수 없습니다. 제가 나쁜 사람인가요?
(답변) 항상 얼굴을 대하는 부모님을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가정이 이로 인해 관계가 차가워지고 소통의 부재로 청소년 자녀의 입장에서는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물질적으로는 풍부하게 된 최근의 여러 원인이 있지만, 부모, 자녀간의 대화 부족, 공감능력의 결핍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고 인생관이나 세계관도 넓어져서 부모님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평가하게 되고 때로는 부모님을 나의 라이벌처럼 대하고부모가 말하는 것을 시대착오라고 생각한다든지, 부모의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생각도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와의 관계 사이에 더욱 괴리와 거리감을 느낍니다.
또, 부모님이 더 한층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것에 압박을 느끼고 무엇이라도 반항적이 되어 ‘내 일은 참견 말아줘요!’하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 다음 3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첫째, 부모님께서 걸어온 인생길을 물어보세요. 부모님께는 부모님의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젊을 때 이야기를 물어보세요. 그럴 때 부모를 존경할 마음이 생길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 길러주셔서 정말 큰일 하셨다고 감사하여 보세요. 학생이 오늘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습니까? 어릴 때 병에 걸리면 부모는 한밤중에도 병원에 뛰어갔을 것입니다. 셋째, ‘그래도 아직 존경할 수 없다’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그대로의 기분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으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성경에는 사람이 성장하여 자립할 때를 알기 쉬운 말로 ‘부모를 떠난다’(창2:24)라고 표현 합니다. 학생은 지금이야말로 장래의 인생설계를 자기가 세워야 합니다. 경제, 결혼, 생활에 관한 것, 어느 하나라도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하여야 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가 아니라 탄탄한 바위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 현명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마7:24-27). 그것은 학생의 가치기준이 부모의 생각하는 기준에서 하나님의 기준에 변해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은 육신의 부모도 존경합니다. 지금은 비록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열심히 신앙으로 살다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잘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기에 길이 있고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화이팅.
(상담11) 하나님은 왜 전쟁을 방치하고 멈추게 하지 않는 지요?
세계 여러 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은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또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비참한 전쟁을 방치하시고 멈추게 하지 않고 망하게 하지 않으신지요?“ 궁금합니다.
(답변)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 왔습니다. 하나님과 전쟁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성도로서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의 행동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전쟁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을 정리하고, 전쟁에 대해서 성도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 자 합니다.
첫째,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전쟁에 관계해서 대략 3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에 대해 하나님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입장은 전쟁이 전적으로 사탄의 조종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입장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전쟁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면 성경은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전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 성경이 전쟁에 대한 기사로 가득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세상 끝 징조를 설명하면서 전쟁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24:6-7, 계16:13-16딤후3:13) 그래서 오늘날경험해보지 못했던 가공할 테러전쟁을 목도하면서 왜 하나님은 전쟁을 허락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왜 전쟁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는 인간이 택한 죄의 대가가 얼마나 두려운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갈6:7). 다른 하나는 인간이 품고 있는 죄의 실제가 무엇인지 폭로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른 입장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쟁 허락은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그의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 인간 죄를 심판하시고, 죄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명령을 받아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사도행전 17:31).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행동하면 좋을까요? 힘닿는 데까지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구하는 행동들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마5:9)가 되고, 또 예수님을 불신자들에게 소개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평화를 만드는 자’로 만드는 운동에 참가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상담12) 천주교인과 결혼 어떻게 할까요?
사귀는 남자친구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결혼을 하자고 합니다. 사귀다 보니 정도 들고 이제 결혼 이야기가 양 가족 간에 오가는 상황입니다. 남자는 결혼식을 온 가족이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 신부님 주례로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제가 천주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이런 질문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어떻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하며 장래를 약속하고 살아가야 하기에 중요하고 높은 결단이 요구됩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의 결혼에 있어서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먼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신앙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매님은 지금 자매님이 기독교식으로 교회에서 결혼식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미 심리적으로, 신앙적으로 많은 부분 남자친구에게 천주교식으로 성당에서 하자는 데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점 입니다.
결혼문제는 무엇보다도 자매님이 결정하셔야 됩니다. 혹시나 염려스러운 것은, 절대로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판단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섣부르게 결정하지 마시고 괜찮으시다면, 출석하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님께도 지혜를 구하는 것도 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두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작정기도를 해보는 과정이 필히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제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될 결혼조건은, 바로 신앙 우선주의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신앙생활로 보장되고 내가 주도적 일때 삶에 만족하고 삶의 환희와 가치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생은 살다보면 성도들이 불교로, 천주교 그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가끔 보았습니다. 그러나 개종을 하는 이유가 다만, 신앙적인 이유 그 자체 때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바꾸고 또 신앙을 바꾼다면 상황이 바뀔 때마다 또 종교를 바꾸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은 연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기도에 관한 명언을 적어 봅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으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스펄젼), “기도의 실패자는 생활의 실패자이다”(이 엠 바운즈), “싸움터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는 두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번 기도하라”(러시아 격언).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상담13) 교회 내에서 교인 간의 금전거래는?
교회 내에서 교인들 간의 금전 거래로 인하여 서로 상처를 입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정말로 어려운 성도가 발생 했을때 남에게 빌려서라도 도와줘야 마땅합니다. 물질적 도움을 받는 자와 주는 자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이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은 무엇일까요?
(답변)
교회 안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귀한 사례입니다만 교회라는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끼리 개인적으로 금전 거래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몰지각한 성도는 목회자에게 찾아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심지어, 어떤 집사님은 목회자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서 목회자 보기도 송구스럽고, 교인들 보기도 미안해서 그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결국엔 방황하게 되어 그 교회 담임 목회자는 교인 잃고, 돈 잃은 안타까운 사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은 금전거래에 대한 하나의 원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칙이란 경제적인 필요가 있는 이웃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것이 아니고,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자동차를 사기 위해, 서로 간에 빌리고 빌려주는 일 등은 하지 마시기를 권면합니다.
교회 내에서 소위 금전적 여유가 있는 분이 교회 안의 어려운 가정을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교회 내에서 기본적으로 금전거래를 반대하지만, 부득이 한 경우, 다음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부득이 돈을 빌려 줄 때에 이자를 받지 말고 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금전적 도움을 요청 받은 분들은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 돈을 다시 돌려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하시는 게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 간에 금전을 거래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이것이 교회 시책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빚에 대한 성경의 기본원리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 엘리사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먹을 것을 해결한 가난한 과부에게 “당장 가서 그 기름을 팔아 네 빚을 갚으라”(왕하4:7, 마5:26)고 말했습니다. 잠언에서는 “너는 빚의 보증인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증서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잠11:15)”이라고 가르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 내에서 목회자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성도들끼리도 가능한 한 금전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은혜롭고 좋습니다. 그리고 먼저 우리는 우리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 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서로 중보하여 기도해 주며 서로의 형편을 잘 헤아리고 도와주고 살피며 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상담14) 제사 때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인가요?
교회 다닌지 얼마되지 않은 초신자 가정입니다. 믿지 않는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제사상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어른들께 불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는 행동일까요?
(답변)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부모님의 조상을 기리며 조상의 공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이 재래식 제사의 방법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풍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마치 우리의 풍습인 양 생각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독교인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족이 기독교적 방법을 따르면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닌 중국식 유교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기독교 신앙에도 맞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철저하게 기독교화 되어야 합니다.
제사는 음식을 차려 놓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상의 혼이 떠돌아 다니다가 자손의 대접을 받으러 온다는 미신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액운이 찾아온다는 공포심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결국, 이것은 살아있지 않는 생명체에 절하는 것이고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조상과 부모를 기리는 데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발자국도 뒤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평소에 부모와 삼촌들과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모나 어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데 게을리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소 어른들께 관심과 사랑을 표하지 않다가 제사 때에도 협조를 하지 않으면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누구보다도 더 잘해서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께 개인의 신앙적 표현 때문에 기독교적 방법으로 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는 마음의 차이가 아니고 방법의 차이입니다. “저 애들은 제사 때만 빼고는 참 좋은 아이들이야”하는 정도의 인정을 받아 놓아야 합니다. 제사를 위해서 친척들이 모인 장소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은 불신자보다 앞장서서 도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사는 한국식이고 추모 예배는 외국식이 아니라 기독교인은 기독교식을 택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고 성경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조상을 추모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예배를 계획할 때 가족들이 같이 모여 예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일에 믿지 않는 자의 좋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문제엔 우리에게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상담15) 아내를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려면?
직업군인으로 있는 40대 중반의 안수집사입니다. 아내는 학생 시절에 교회 청년부 활동도 열심히 했는 데 결혼 후 여러 차례 전도를 했는 데 완강히 거절해서 전도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를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요?.
(답변)
“먼저 믿은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결혼 전에 먼저 교회를 잘 다녔던 아내는 지금 교회를 멀리하고 나중에 믿은 남편께서
오히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러한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힘이 많이 드시겠지만, 그래도 남편의 신앙이 강해서 아내를 이끌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감사하고 보기가 좋습니다. 제가 볼때에 학생 때의 교회 활동 자체가 진정한 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나와 주님과의 개인적 만남이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잘 입증해 줍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가 반대하지 않고 딸이 교회에 다닐수 있도록 허락한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아내의 경우 짐작컨대 학생시절에 아마도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교회 활동을 신앙으로 착각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저는 집사님에게 4가지 정도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짜증이 나면 아내를 소홀히 할 수도 있습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사랑 앞에서는 고집도 꺾어집니다. 둘째, 아내의 영혼을 위해 결사적인 기도를 하십시오(금식기도, 작정기도 등). 사랑하는 아내가 잘못하면 나와 영원히 헤어질 것이란 생각을 해 보면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전도 훈련을 받으십시오. 지혜롭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전도 폭발 훈련을 받고 기회를 보아 아내에게 복음을 제시해서 아내가 주님을 스스로 영접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영적 질서를 가지도록 도와주십시오. 넷째, 이것이 힘들면 전도 전문가나 담임 목사님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십시오. 가령, 전도 팀이 방문해서 아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결코 낙심은 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사랑하는 아내가 복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십시오.
결론적으로, 남편이 먼저 신앙으로 앞장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며 큰 축복입니다. 계속 노력하십시오. 좋은 결과를 기도합니다. 화이팅.
(상담16) 중고생들의 노래방 가는거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교회 중고등부 교사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끔 저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는데 때로는 곤혹스럽습니다.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성도들이 노래방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답변) 노래방은 여가선용과 휴식, 그리고 오락의 장소로 그 자체는 순기능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거리에 많은 수의 노래방, 가요주점, 노래연습실 등의 간판을 쉽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또는 연인끼리 생일이며 파티때 노래방을 찾아가서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기던 낭만적인 추억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노래방은 예전의 노래방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순수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노래방에 가서도 건전 가요를 부르거나 찬송가를 부르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종 언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부 노래방에서는 여성 노래 도우미를 채용하여 퇴폐를 조장하기도 하고 탈선과 각종 범죄의 온상이라고 여러 차례 보도되었고 역기능적인 면이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범죄가 만연한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할 수 있고, 유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적절한 장소가 없으면 몰라도, 굳이 노래방에 간다는 것은 이제 세상을 배워가는 청소년교육과 신앙생활에 자칫 부정적인 면들을 많이 줄 수 있기에 근본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도 아이들의 가자고 졸라도 이에 비위만 맟추려 한다든가, 아이들의 말에 끌려 다니면 더더욱 안될 것입니다. 교사로서 중심을 가지고 노래방은 왜 안 되는지 단호하게 말하고 또 설득하는 지혜와 노력이 따라야 하며, 노래방보다는 놀이공원이용, 연극관람 그리고 문화시설이용 등 건전한 장소를 찾아보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고등학생들로서는 가장 중요하고 철저한 제자훈련을 통해 청소년 시절부터 복음성가와 찬양훈련, 말씀교육, 기도훈련을 철저히 하여 차세대 교회의 리더로 주님의 제자로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담당 교역자와 교사들을 교회에서 세울 때 준비된 자, 철저히 훈련된 자로 세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기독교인이 노래방에 가지 말야야 할 이유로는 특히, 청소년들이 그곳에 가서 좋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굳이 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상담17) 어릴 때 부모님의 서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저를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 선교사로 키우겠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더 성장하면 나중에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인 데 부모님이 이미 나를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고 하니 겁이 납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데, 어릴 때 부모님의 서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서원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서약입니다. 구약성경의 ‘한나’라는 여인은 자신의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부모님의 신앙고백으로 아들을 믿음으로 잘 키우고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단은 정말로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며 축복받을 일입니다. 하나님은 형편에 따라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분수에 넘치는 헌신은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는 허세이며 위선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신은 그 헌신 가운데 있는 태도와 마음입니다. 부모님이 아들을 훌륭하게 믿음으로 키우고자 선교사가 될 것을 벌써 하나님께 서원했다니 학생은 특별한 은혜를 입은 아들로 생각되며 그 의미는 대략 3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 학생은 하나님의 자녀요,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사가 되겠다고 부모님이 서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중학생 때에 벌써 삶의 목적이 생겼다는 것은 꿈이 생긴 것이고, 사람은 꿈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살겠다는 것이 얼마나 장합니까? 셋째, 인간이 계획하나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서원은 그 부모는 고귀한 마음입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뜻과 맞을 때에만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예를 보면, 50명의 청소년들이 선교사로 헌신하면 그중에 한 명이 여러 해 후에 비행기를 타고 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리고 49명은 한때 헌신한 적이 있기 때문에 선교사가 못 되어도 교회의 선교적 기둥들이 됩니다. 한 선교사를 위해 50명 정도의 기도와 물질의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들 중에 몇 명을 하나님께서 목사와 선교사로 골라 쓰시고, 나머지는 어려서 헌신하여 일생을 주님께 충성하는 지역 교회의 좋은 지도자로 쓰십니다. 제가 아는 의사 한 명은 중학생 때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타락하지 않았고 결국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구라파 지역 선교를 지원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또 한 교회를 설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학생은 부모님의 서원을 염려 마시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면서 오히려 신앙생활과 공부에 최선을 다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날 모든 교회의 새벽이슬같은 모든 청소년들이 주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헌신하기를 소망합니다.
(상담18) 퇴직한 남편이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 합니다
저는 교회 집사로 저의 남편은 시골에서 자라나 고학을 하고 성공적으로 오랫동안 다니던 좋은 회사에서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생활하다가 시간이 많아지고 건강마저 나빠져서 매사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우울해지는 등 잘 다니던 교회에 가서도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모든 일상이 이제는 괜히, 서운하고 상처가 됩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어떻게 남편을 도울수 있을까요?
(답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중략)”(전3:1~4). 지금은 울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많은 남성들이 퇴직을 하여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동안 어려운 과정을 성공적으로 헤쳐나온 훌륭한 분인 것 같습니다. 당장은 퇴직하여서 앞길이 막막하여도 성실한 사람, 믿음의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비슷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기도하며 얼마 동안 지내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길들을 열어 주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의 신앙과 태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전진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축복관이 반드시 성경의 축복관은 아닙니다. 가수 송대관도 “해뜰날”이라는 노래가사에서 꾸준한 노력하면 해뜰날이 온다고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처를 받지만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전진하면 상처가 낫는 날이 오고 또 웃는 날이 올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4~5).
결론적으로, 현실적으로 믿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머지않아 하나님을 찬양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남편이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계기가 되도록 신앙으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시고 부부가 합심하여 신앙으로 잘 이겨나가길 권면합니다. 분명히 주님은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주님의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아멘
(상담19) 아이가 가정예배를 지루해 합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가정예배에는 참여하지만 말씀을 나누는 시간에는 전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아이를 재촉하다 보면 때로는 남편과 제가 화를 낼 때도 있고 아이 역시 더 위축되어 예배를 망치기도 합니다. 어떻게 아이가 예배에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도울까요?
(답변)
아이들도 영적 존재입니다. 우리의 가정예배 가운데 청소년 자녀들이 말씀 앞에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결단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들이 예배를 잘 드리게 하려면 3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청소년 사역이 잘 되어 있는 교회의 선택이 중요하고 둘째로, 청소년 자녀와의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에 대한 가정예배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며, 셋째로, 인도자 자신이 청소년 자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생각이나 느낌의 나눔은 가정예배시간 도중에 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에 자녀와의 사이에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자기 표현을 격려하고 서로 묻고 들어주고 해서 개발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예배시간이 특별히 다른 시간이 아니고 가정생활의 연속으로 여겨질때 예배시간에만 자녀들이 입을 다물 리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매사에 즐겁고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가정예배시간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힘들고, 기분 나쁘게 여겨지면 큰일입니다. 가정 예배를 드릴 때 웃기도 하고 자유롭게 대화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야단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자녀들과 모여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는 더 좋아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 아이에게 무엇에 대해 나눌 것인지 생각해 보고 미리 미션(숙제)을 주면 준비가 되어 있어서 좀더 쉽게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어른 예배에 자녀 한 사람을 참석시키는 정도의 예배로는 자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먼저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방법으로 성경읽기도 서로 나누어 읽고 말씀듣고 서로 나누고 공유해야 합니다. 또, 가정예배의 마지막에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합심기도를 제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명을 끄고, 평상시의 기도훈련이 수반된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즉, 식사기도나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기도, 저녁 잠들기 전 기도 등의 평소에 하는 기도훈련과 더불어, 평소 가정예배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적는 훈련, 그리고 오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을 때 자녀들의 신앙은 더 살아서 약동하며 기도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상담20) 육아양육에 대한 스트레스는 왜 생길까요?
교회에서 집사로 있는 데, 결혼후 7년 만에 첫 아이를 얻고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퇴근후 남편이 많이 도와주지만 육아를 혼자 담당하기가 벅차고, 스트레스가 심하며, 무엇보다 집안에서만 갇혀 지내니까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감옥살이를 하는 것 같아서 우울합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답변)
먼저 어렵게 자녀를 출산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자녀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까? 아이를 낳고 지금의 우울한 상태는 출산 후 나타나는 정상적인 적응 과정의 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7년이나 직장생활을 해오셨는데 집안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몸매가 출산 전과 같지 않고 비만해 지는 것도 모든 어머니들이 다 함께 겪는 희생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대개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진다는 것이지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해결이 빠릅니다. 현재의 상태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 지나간 과거 7년 동안 일하던 때의 자유도 그리워해야 하니, 오늘 잘 적응하셔야 합니다. 과거는 영원히 지나갔고 내게 있는 것은 현재뿐입니다. 현재를 즐기도록 하십시오.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분별하여 할 수 없는 일은 조속히 접어 두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몇 가지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매일 적절한 운동을 해서 몸매를 관리하고 회복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돈이 조금 들더라도 일주일에 하루, 아침이나 오후 정도는 보모(baby sitter)를 두고 외출도 하시고 또 교회의 구역모임에 나가 구역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지혜와 적응을 위해 중보기도도 부탁하십시오.
결론적으로,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내를 위해 환경의 변화를 배려해 줘야 합니다.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외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내의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행복한 아내의 모습은 남편의 행복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가 잘 자라나는 데는 어머니의 많은 사랑과 희생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어머니’란 말만 들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감격하는 것입니다. 또 아이를 키울 때 자칫하면 나태하기 쉬운데 홀로 끊임없이 영적인 힘을 키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남편이 직장 나가고 아기가 자는 동안에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뜨겁게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내적인 힘이 강해지면 우울증도 어떤 어려운 외적인 여건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화이팅!
(상담21) 인터넷을 자제할 방법이 없나요?
저는 고2 학생인데요 전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다름이 아니라 인터넷에 중독된 거 같거든요.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안하려고 해도 매일같이 하게 되고, 당연히 성적도 떨어지고 예수믿는 학생으로서 너무 걱정됩니다. 어떻게 하지요?
(답변) 요즘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을 하느라 밤을 새고, 아예 방과 후 집에 와서는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떤 일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 정신적인 부담감을 피하려고 좀 더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이유로 인터넷에 더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인터넷에 더 몰입하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을 하는 것으로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요. 오히려 적절히 이용한다면 인터넷 자체는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바로 지금이 이 문제를 벗어나는 좋은 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떤 일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 정신적인 부담감을 피하려고 좀 더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배, 마약, 술, 자극적인 음악, 만화나 소설, TV나 비디오, 자위행위 등은 중독성이 있어서 쉽게 빠지듯이 인터넷에 중독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최근엔 휴대폰 카카오톡에도 빠진 친구들이 많아서 중고생들을 둔 부모님들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여 잘 활용해보기를 권합니다. 인터넷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주말에만 하기, 둘째, 해야 할 공부를 끝낸 후에 하기, 셋째, 정해진 시간에만 하기, 넷째, 알람시계를 이용하기 다섯째, 적극적인 신앙생활로 이겨 나가기 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인의 노력 못지 않게 부모님들의 관심과 협조가 절대 필요합니다. 인터넷 중독은 최근의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컴퓨터 사용 및 인터넷 이용과 관련된 과도한 집착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며 많은 경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충동 조절 장애와 약물 남용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노력으로 하루 빨리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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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영탁 교수
신한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비정년전임강사.
CCC기독교수회 회원, 대한상담심리치료학회 이사
미국 메릴랜드대학교(경영학), 중앙대학교(심리학)(학사)
미국 펜실베니아신대(M.Div.목회학석사), 케이씨대학교(Th.M신학석사)
미국 캐롤라이나신대(Ph.D철학박사), 대한신학대학원대(Ph.D상담심리학박사)
고려대학교(Ph.D아동교육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