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오영숙
작년 5월 노꼬메를 등반하고 편안한 오후의 휴식을 즐기는 중에 영숙이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비닐하우스 환풍기를 수리하던 중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쳐 한마음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고가 난지 3일 만에 숨지고 말았다.
영숙이와의 인연은 키에서부터 시작된다. 학교 다닐 때 워낙 키가 작았던 그는 제일 앞에 섰고, 나는 세 번째 섰다. 키가 작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그가 철봉 하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영숙이는 키는 작았지만 운동 기능이 뛰어나 특히 그가 철봉에 매달린 채 몸을 흔들어 수레바퀴처럼 도는 대차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나도 철봉에 관심을 가져 열심히 매달렸다. 그는 철봉뿐만 아니라 축구나 육상에도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다.
졸업 후 뿔뿔이 헤어져 서로 만나지 못하고 울산 어딘가에서 선생을 하는데 축구 지도로 이름을 날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난 것은 70년대 중반쯤이다. 단번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키도 크고 몸이 불어 있었다. 그러나 웃을 때 눈부터 웃고 걸을 때 왼팔은 그대로 두고 오른팔만 흔드는 습관은 그대로였다.
우리 동창들 중 가장 건강하고 오래 살 것 같은 친구가 영숙이었다. 매일 조기 축구와 수영으로 몸을 단련하고, 60대 이후에는 육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대회까지 참가하여 이름을 떨쳤다. 사고가 나기 며칠 전에는 도민체전에서 최홍만, 홍석만, 김수경 등과 같이 성화 봉송 주자를 맡기도 했다.
그가 간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젊은이 못지않은 패기와 자신감이 어쩌면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남겨진 가족들이 절망과 실의에 빠져 슬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쯤 슬픔을 잊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록이 아름다운 노꼬메를 오르며
어제까지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오늘은 바람도 가늘어지고 기온도 적당하다. 차창 밖으로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이 씽씽 달린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안보이던 얼굴들이 보인다. 그러나 오늘 꼭 나온다고 하던 완산네가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본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는 바람에 못 나오게 되었다는 전갈을 운공을 통해서 들었다. 오늘 납읍 목장 입구에 모인 친구들은 모두 16명이었다.
노꼬메는 서부관광도로와 제1산록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산록도로를 따라 1100도로 쪽으로 약 2km 지점 길 남쪽에 있다. 소길리 공동목장 입구에는 오름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목장 문이 잠겨 있어서 우리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목장 문을 지나자 시멘트 포장된 농로가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오름 기슭까지는 약 1.5km가 된다고 한다. 고사리가 있나 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목장지대라 고사리가 있을법한데 별로 보이지 않는다. 넓은 목장에는 말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귀여운 망아지가 어미 곁에서 불안한 듯이 우리를 지켜본다. 조금 더 가니 말먹이를 실은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처음에는 우리를 보고 울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말들을 모이게 하는 신호 같았다. 나중에는 호루라기까지 불며 말들을 모으는 모습이 신기했다.
기슭에 닿으니 삼나무와 자연림이 울창해서 시원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작년보다 길이 더 넓게 나 있었다. 오름을 오르는 동안에도 오르고 내리는 여러 팀의 일행을 만날 수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오름임을 알 수 있었다. 큰 나무 밑에는 보통 식생이 좋지 못하는데 여기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음지식물이 잘 자라고 있었다. 나무 사이의 간격이 적당하여 음지식물 생육에 좋은 조건이 되는 모양이다.
평지와 같은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더니 조금 더 오르니 길이 점점 가파라지며 오르기가 벅차다. 하긴 이 오름의 비고가 234m 로서 서부의 오름 중에서는 가장 높다. 동부의 오름 영주라는 다랑쉬보다도 7m가 더 높다. 그래서 다른 오름과는 달리 두 번 정도 쉬어서 올라야 했다. 중간에 쉬면서 마신 선달표 매실주와 도원표 방울토마토가 큰 도움이 되었다.
올라갈 수록 조릿대가 많아지더니 정상부근까지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조릿대를 헤치며 남쪽 봉우리를 거의 오르자 시야가 갑자기 환해진다. 남동쪽으로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이 세수를 한 산뜻한 얼굴로 굽어보고 있고, 노꼬메 기슭에서부터 한라산 기슭까지 광활한 면적이 신록으로 가득하다. 연두색에서부터 진한 녹색까지 여러 가지 녹색이 어울러져 마치 절묘하게 수를 놓은 거대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이런 광경을 보려고 힘들여 오름을 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다. 사진을 찍으며 꽤 많은 시간을 보낸 다음, 우리는 다시 정상인 북쪽 봉우리로 향했다.
정상에서는 남쪽 봉우리에서 본 경관보다 감동은 작지만 시원하게 사방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제주도의 4분의 1을 볼 수 있다면 과장일까? 따뜻한 날씨로 바다에서 부연 수증기가 피어올라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제주 시가지와 서쪽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쉬운 점은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 정상부근이 많이 훼손되고 조릿대 때문인지 작년까지 많았던 철쭉꽃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따가운 햇볕을 피해 옹색한 대로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순대와 술은 기본이고 정성껏 만들어 온 쑥떡에 제사음식까지 곁들이니 만찬이 따로 없다.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운공표 김치 없으면 못 사는 것처럼 선달의 유머 강의가 빠질 수 없다. 보도안이 없다고 점잔을 빼는데 관수가 ‘버드 버드 블루버드’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자연스러워지며 웃음꽃이 핀다.
이야기인즉슨 초등영어 연구학교 공개발표 시 그 학교 교장이던 선달이 인사말을 할 때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즉석에서 영어로 코믹하게 만들어 발표를 해서 연구공개에 참석한 선생님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버드 버드 불루버드/ 녹두필드 돈트싯다운/ 녹두플라워 다운하면/ 청포세일즈맨 클라잉 고어웨이’(맞는가 모르겠네)
내려올 때는 북사면을 타고 내려왔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잡을 나무가 없다면 엄두도 못 낼 정도다. 한참 내려오니 다리가 후둘거린다. 그래도 모두들 대단하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잘도 내려간다.
기슭을 빠져나오니 그린 필드가 펼쳐진다. 넓고 푸른 목초밭 너머 노꼬메의 뾰족한 삼각봉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늘도 보람 있고 행복한 산행이었다. (2006. 5. 4)
첫댓글 어쩌다 생각이 난다는 것은 무심해서 일까? 그러다가 잊혀지는 걸까? 오영숙, 1년이 되었구나. 자주 생각이 나진 않아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영숙이 간지가 1주기 되는구나. 그래서 선달의 선몽이야기가 화제가 됏었고. 영숙이와는 초,중 통합학교 책임을 맡은 공동 운명체란 점에서 전화토론과 정보교환, 푸념과 위로 격려하며 애환의 세월 2년이었네. 세파를 벗고 편한 곳에서 고이 잠들기를 기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