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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도봉을 오르기로 약속된 날, 밝은 봄날을 기대하였지만 잔뜩 흐렸습니다. 일상대로 집 부근 공원을 산책을 하며 하루 일정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어제보다 더 화사 날이 봄의 특징입니다. 흰매화 피기 시작하면서 겨울의 때를 벗기더니 드디어 벚꽃도 난 분분 해졌습니다. 개나리도 만개하고 제비꽃도 흩으러 졌습니다.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선택하고 nap- sack, stick을 선택하여 신발은 현관문 앞에 놓아두고 하루 살림을 챙겼습니다. 언제나 이 시간만큼은 이유 없이 즐거운 시간입니다. 나도 모르게 산노래를 부르며 짐을 정리한 후
하루에 살림살이~~ 어깨에 걸머지고 산 사람 가는 길은 낭만의 세계라오, 보아라 저 구름을 들어라 산 노래를 환희에 파노라마~~ 산으로 또 산으로
기억하고 있는 산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하루에 살림 살이 챙기는 일은 조사해 놓은 일기예보가 항상 기준이 됩니다. 흐리다 오후 3시경부터 비 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3일 내내 봄 비 소식입니다. 봄 비는 산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이끌고 이를 보며 걷는 산사람의 마음도 사유와 함께 고요한 서정 속으로 몰입하게 해 줍니다. 우선 비를 대비하기 위하여 두꺼운 비닐봉지 2개를 우선 준비했습니다. 보온력은 뛰어나지만 가볍고 얇은 우모 패딩을 선택한 후 넣고 오버 트러스 상, 하의, 와 윈드쟈겟, 비옷 하나를 함께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고 가며 입을 산복을 챙기고 양말과 모자를 챙겨 책상 위에 올려 둔 후 카메라, 핸드폰, 시계를 함께 챙겨 놓았습니다. 다시 또 하나의 비닐봉지에는 카메라를 몸체와 랜즈를 분해하여 보호천으로 싸서 가죽 가방에 넣어 둔 후 물 한 병과 물컵 두 개를 사려 두었습니다.
도봉산 사하촌 마을에 있는 김밥 집에 들러 김밥과 탁 넣을 여백을 가늠해 두고 sack 입구를 묶었습니다. 줄 끈을 이용하여 스틱을 단단하게 묶으며 혼자 말로 ~~
이 지팡이 없이도 서북 주능을 걸었고 황철봉에서 한계령까지 걸었으며 공룡능을 넘고 용아장성도 넘고 설악골을 이용하여 천화대를 거쳐 넘어 범봉을 넘어 마등령을 돌아 용대리로 내려섰는데…
이젠 이 녀석 없이는 8부 능선도 어림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세월이 나를 이렇게 몰아세운 것입니다.
sack을 현관 옆 신발장 옆에 세워 두고 시계를 차며 시간을 확인하니 7시 50분, 나갈 채비를 차렸습니다. 의관을 갖춘 후 커피를 타 마시고 양치를 끝낸 후 집을 나선 시간은 8시 10분 5분 만에 지하철 승강장에 섰습니다. 20분에 도착하는 차에 올랐습니다. 17분 만에 도착한 군자역, 걸어서 환승하기까지 5분이면 족합니다. 7호선을 기다리는 시간 4- 5분 사이 그리고 도봉산역 도착 예정시간은 8시 20분, 그리고 걸어서 도봉산 광장까지 10분, 약속시간은 40분 알맞은 시간 배분입니다. 역에서 내려 동선을 호젓한 길로 잡아 사하촌에 도착 한하여 가끔 들러보는 김밥 집을 방문 김밥 3줄을 구매하여 sack 빈 공간에 채우고 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선행자가 있었습니다.
광진 인형이 일어서 마중해 줍니다. 아주 반가운 반가운 얼굴입니다. 오래 묵은 장맛처럼 찐 같은 친구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도착한 막봉이, 항상 형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 산 속의 빈터 쿡입니다. 늘 기대를 안고 오르게 하는 좋은 산 벗이지요. 어디 어느 산 모임에 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는가! 나도 모르게 막봉이 어깨에 걸머진 어택에 눈 길이 깄습니다. 오늘은 저 속에 무엇이? 이 의문이 풀리는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입니다. 기대를 하며 오늘 코스에 대하여 상의를 하여, 보문능선을 낙점하였습니다. 능선을 치고 오른 후 우이암 뒤로 돌아 옛 샘터 부근에 점심을…. 노구를 이끌고 도봉에서 우이동까지 결정해 버린 것이다. 산 길은 늘 그렇습니다. 시작이 힘들지 걷기 시작하면 걸어지는 것이 산꾼들의 건각입니다. 걷지 않는 자는 죽어도 앞으로 갈 수 없다, 라는 준엄함이 장딴지에 들어 차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보문 능선이 좋은 것은 가시거리가 좋고 도봉산의 정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봉산(道峯山), 이름이 명명된 것은 바로 경기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답다 한, 수많은 묵객들의 입에 의해서 전해져 도봉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암봉만으로 이루어진 오 형제 바위가 놓여 있는 송추 오봉은 별도로 묵객들은 오봉산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걸으며 자꾸 눈 길이 도봉산 중심부로 갑니다. 선인봉이 향도라면 그 뒤를 이어서 암 군이 세력을 과시하는데 만장봉이 뒤 따르고 후면에 자운봉, 좌측 옆으로 틀어 신선대, 주봉이 횡대로 도열하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주봉으로 멋을 과시하고 칼바위에 암릉은 우선 매듭을 짓고 육산으로 달리며 우이능선을 만들어 놓습니다. 결국에는 우이동을 탄생시킨 우이암이란 암각화로 환생하여 소귀천의 찬란한 마을 이름을 각자 해 놓습니다. 소귀를 닮았 다는 牛 耳 岩이 우이(牛耳) 동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북한산과 도봉산 사잇길인 고갯길도 우이령이 됩니다.
여러설을 지니고 있는 바위 우이암, 불가에선 보살님을 닮았다 하고 가톨릭에선 성모님 옆모습이라 하고 원주민들은 소귀를 닮았다 하였습니다.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 삶이라지만…
늘 삶의 줄기는 난마처럼 얽히고 얽히기 마련입니다. 그 매듭도 한순간에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 삶이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잠깐의 순간이고 다시 난마가 괴로움을 주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삶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수목의 난마 뿌리가 유명한 곳은 바로 강진 다산 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그곳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 길에 그 뿌리가 얽혀 있어 다산의 18년 유배의 서러움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초당 옆에 놓여 있는 천일 각 그곳에 서서 포구를 내려 다 보며 그가 가장 존경한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바닷물은 늘 형과 만나는데 이 못난 동생 은형을 찾지 못하고 그리움만 마음에 새긴다는 무능함을 탓했었습니다. 형은 흑산도 고도에 갇혀 어부들을 위한 어부사시가를 부른 것이 아니라 귀하고 귀한 자산어보를 집필하여 어족의 생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어부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전수해 줍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삼합이라는 음식물로 재조명되어 식탁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지요. 홍탁도 그 선생의 덕분이 아니면 맛볼 수 없었겠지요. 마침 3월 말일을 기하여 그분에 대한 영화가 자산어보라는 이름으로 개봉된다 하는군요 챙겨볼 계획입니다.
난마를 딛고 올라서니 어느새 우이암 앞에 섰습니다. 추억이 많은 암입니다. Rock - climbing 암장입니다.
직등하는 사이 침니에 박혀 있던 촉스톤 참 요긴했던 바위였고요 그리 고 그 상단에서 침니를 양 발로 딛고 서서 뜀바위 넘듯 차서 건너가면 기다리는 트레 파스 그리고 직등 후 테라스 가장자리로 옮겨 당기고 오른발을 벌려 구르듯 정상에 서면 육신은 호쾌 해집니다. 노원 일대와 마들 평야와 중랑천 맑은 물이 흐르고 산 이름답게 수락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들려왔었습니다. 또 하나의 바윗길 팬 드럼 코스 돌아서서 허공에 매달리듯 밀착하며 밴드에 서면 일단 호흡이 정리되던 길이었습니다. 움푹 파인 슬랩도 서늘하긴 마찬가지였었지만… 세월이 야금야금 앗아갔어도 대신 추억은 나이 값 이상으로 쌓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순간이었습니다. 참 좋은 산길이었던 곳이 폭우에 씻겨 대부분의 점토성 흙은 사라지고 바위 표면이 부각된 후 마사토가 살짝 덮어버린 상태와 비탈진 길이 합작으로 만들어 놓은 심술이었습니다. 그 뒤를 따르던 나는 그 순간을 목격하며 이렇게도 쓰러지는구나 되뇌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필 오늘따라 의약품을 빼놓고 왔는지 후회막급하였습니다.
오늘, 부상당한 아우가 챙겨 온 점심입니다. 미나리 쌈과 연어, 훈제 삼겹살과 미나리 쌈 그리고 콩떡과 송편 아주 따끈한 정대포 등...😊😊
막봉이의 고민의 산물인 점심상, 오늘도 푸짐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 에서 시작되는 점심 컨셉, 오늘은 조식을 분명히 거르고 올 형들을 위한 배려의 점심 상이 었습니다. 이런 악우인 동생도 없을 것입니다. 과히 국보급입니다. 오늘은 미나리가 곁들여진 훈제 삼겹살 미나리 쌈, 연어 생물 미나리 쌈과 골뱅이와 명태포가 곁들여진… 곁들여진 콩떡과 송편류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나라님 진짓상도 이만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 포(따끈한)가 죽여줘~~~^&^ 습니다.
입이 귀에 걸린 날이 되었습니다.
나이 먹어 물가는 시름을 몰고 오기 십상입니다. 그 이유는 부평초 같고 끝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면은 늘 출렁거리지요. 반면에 산은 돌처럼 단단하고 보리심입니다. 변하지 않는 정체성과 정주성은 지루함을 달래 주려고 사계절 순환시켜줍니다. 그리고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와 긴 겨울을 이겨냅니다. 스스로 고독의 긴 동면으로 돌아와 제 자리를 지키다 새로운 봄을 시작하며 새생명을 만들어 성장시키고 결실을 얻어 나누어 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넉넉함이 흠모의 대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산입니다. 나는 이 모습을 악우의 그림이라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생명 그 자체는 빼고 나머지는 평생 자신이 그려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붓을 꺾는 날, 바로 그 화폭이 멈춰지는 날, 모든 소풍을 끝내고 돌아 가리라 부른 것처럼 매듭 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 둘 사이로 흐르는 추억의 그림들, 이것이 바로 진품이다 하는 아우성이 나를 뒤 흔들었습니다. 추억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존재합니다. 삼삼한 즐거움을 즐기던 신선놀음을 시샘하는지 오후 3시 예정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둘러
채양을 치고 들어 앉았습니다. 하늘을 가려 놓으니 아늑하였습니다.
이 또한 장비도 막봉이가 준비해 온 장비입니다. 늘 빈틈이 없는 처신입니다. 하긴 인수봉 아래에선 제대로 된 구슬처럼 생긴 포도주 잔 쨍그렁 소리를 내면서 마시던 기억도 있습니다. 적, 백색의 포도주와 어느 때 스파클링도 기울인 기억이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봄비 덕분인가 생강나무 노란 꽃도 더더욱 짙어졌고 봉오리 십여 게도 개회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적이 깊고 정적과 정 적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 분명히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산길을 잡아 내려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진달래가 봄비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축 쳐져있었습니다.
시간의 문이 열리면 닫히는 순간도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소나무 그늘을 빠져나오면서 자꾸 나를 뛰어넘어 사라지는 시간들의 긴 줄이 보였습니다. 당연한 일이고 숙명적 일이지만 그냥 흘러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가 사유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추억의 그림들은 정리 정돈해 두고 여백의 시간 안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생각하며 고심하며 그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의 제 자리는 꽃과 나뭇잎이 전부 떨어진 모습이 제자리라 합니다. 여백 또한 기억이 되면서 추억으로 자리매김이 되겠지만 삶의 마지막 그림은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함께 늙어가며 정을 주고받는 우정의 시간도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 더불어 추억을 소환하며 걸은 도봉산 봄비 산행은 많은 것은 일깨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 장의 아름다운 화폭이 마음 안에 그려졌습니다.
그 마음을 대신하여 동행한 묵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적어본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늘 평화를 빕니다. 고마웠습니다. 꾸벅~~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