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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민 26:63-65)
백성의 숫자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의 민수기는 1장에서 애굽에서 나와 둘째 해인 2
월 1일에 백성들의 수를 계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1차 인구조사입니
다. 레위인을 제외하고 전쟁에 나가 싸울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계수했을 때
603,550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6장에 기록된 것처럼 40년간의 광야 방황생활
을 마친 후, 모압평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인구조사를 합니
다. 이것을 2차 인구조사라 할 수 있는데 601,730명이 계수되었습니다. 1차 계수와 2
차 계수의 차이가 1,820명입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에는 인구가 70명에 지나지 않았으
나 430년 만에 남자 장정만 603,550명이 되었을 정도로 자손이 번성했지만, 광야 40
년 동안에는 인구가 증가되지 않고 도리어 1,820명이 감소했습니다.
민수기 외에도 사무엘하 24장에 다윗도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인구
조사를 두 번씩이나 하고도 혼나지 않았지만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을 때에는 하나님께
서 진노하시고 역병으로 칠만명이나 죽이시는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인
구조사지만 동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서의 1차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명령
을 따라 광야에서 질서 있는 행군을 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었고, 2차 인구조사는 가나
안 땅에 들어가서 효율적으로 전쟁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해
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조사는 이와 다릅니다. 다윗은 통치 말기에 국가
가 번영하고 백성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땅이 확장되면서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서 국방력을 과시하고 싶은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시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와 같은 다윗의 동기를 싫어하셨기 때문에 진노하셔서 무려 칠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역병으로 치셨던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동기는 이처럼 중
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올바른 동기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의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전쟁
에 나가서 싸울만한 남자만 계수했습니다. 여자와 20세 이하, 그리고 레위인은 모두
제외됐습니다. 1차와 2차 계수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미 언급한대로 인
구가 1,820명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1차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생을 하고난 직후에 시행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장자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인구는 왕성하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에는 불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부패하였
고, 하나님께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과 핍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
움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핍박과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더욱 부흥하는 역
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내부적인 부패는 큰 문제가 됩니다. 내부적인 부패
가 있을 때 교회는 약화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
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성하도록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에 내부적인 부패가 있으면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
과 고난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죄악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고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내부적인 부패와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
고, 우리 내부의 부패와 죄악, 그리고 동기를 살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을 통해서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를 비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가운데 변
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변화한 것
먼저 이스라엘 구성원 전체가 바뀌었다는 것이 변화된 사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두 죽었습니다. 국가
의 구성원 전체가 다 바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이 있었기 때
문에 40년 안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었
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다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히 9:27)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모세는 광야 40년
의 경험을 시편에서 이와 같이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
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여기서 ‘신속히 간다’는 말은 영어성경에서는 ‘soon cut off’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이 말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이것
은 부정해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
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평번하지만 엄청난 진리를 기억하고 사는 것이 지혜로
운 삶의 태도입니다.
둘째,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문
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습니다. 언제 죽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모든 해
답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대할 때에 너무 두려
워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위
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fear of death)에서 해방시키기 위
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가 불행하
고 어두운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
가 더 행복하고 영원한 세계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만큼이나 현실적인 세계
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그 아름다운 세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들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아름
다운 세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으므로 죽음
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대가 바뀌는 것도 유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이 죽지 않고 지금 이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보다 세대가 바뀌는 과정들이 유익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1세대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세
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대마다 할 일이 다릅니다. 세대의 변화
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김일성이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히틀러가 지금도 독일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합
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는 것은 유익이 있습니다. 세대는 흘러왔다가 다시
흘러가고 이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번째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
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면, 그 사람이 얼마
나 유명했는지, 얼마나 학벌이 좋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을 믿고 죽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
나 봉사하고 일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봉사는 현세를
넘어서 내세까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명예와 권력은 내세의 효과가 없
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은 내세에 영원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
아가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은 모두 바뀝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불변성의 교리(Immutability
of God)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
라기서에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I the Lord do not change)”(말 3:6)라
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라”(약 1:17)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에도 “천지는 없
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
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6-27) 기록되었습니
다.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성, 그리고 작정하신 목적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그리고 하
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언약도 불변하십니다. 우리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교회입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에서 백성들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국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켜서 광
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영원하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죽었을 때에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울고, 장정들은 엎드려서 슬
피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어도 광야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론
은 죽었지만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살이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고, 모세는 죽었
지만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는 어떤 면에서 모
세보다 부족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수종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각각 특성있게 사용하셨습니다. 모세가 책의 사람(the man of
the book)이었다면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계시를 받아서 위대한 오
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
쟁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
안 땅의 일곱 족속을 쳐서 멸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였던 것입니다. 새 시대에
는 새 인물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도 새 사명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의 목사가 바뀌고, 장로가 바뀌고, 집사가 바뀌어도 교회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현세로부터 내세까지 영원히 지속됩니다. 건물이 영원하
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이
스라엘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졌듯이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
도 우리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교회 출석을 강력하게 권면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30
년 전에 비해 오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능력이 좋아서
입니까? 아니면 똑똑해서입니까? 똑똑해서라면 왜 과거 반만년동안에는 이와 같은 성
장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똑똑해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
은 우리 민족이 교회를 세우고 기도하며 전도하는데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새벽
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민족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서 우리 대한민국에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데 그 축복의 비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
르쳐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 할 것을 늘 강력하게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
회 나와서 교회를 채워줘야 우리의 세대가 지나가도 다가오는 세대에 또 다시 하나님
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앙했던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머
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전쟁터에서 싸웠던 용장들인
데 왜 생명을 위협받을만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화살의 위험, 질병의 위험, 칼의 위험
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
씀이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필요성
변화해야 될 존재이면서도 변함없이 2차 계수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믿
음에 관해서 세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
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
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면제됩니다. 아무리 죄
가 많을지라도 지옥행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언제 죽어도 갈 곳은 지옥뿐이라는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죽으
면 심판이 집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면 그 판결이 무시되고 죄사함과 영생과 천국의 소망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나는 예수님을 구주
로 믿습니다”라는 확실한 고백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오늘 이 시
간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도 보고 특권을 누려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
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1-2)고 했습니다. 아무리 복음의 말씀
을 들어도, 기적을 목도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 부어져도 믿음으로 화합해서 받
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는 것입니
다.
셋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단코 멸망치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에서 죽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으며, 부활하여 지금보다도 억 만 배 행복한 내세를 받게 될것입니다.
결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에 자신의 삶을 투자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
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투자는 망하고 실패할지 몰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 투자하면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얻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뿌린 만큼 열매를 거둬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
러나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
다. 결국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얼마나 투자했는
가 하는 것만이 영원토록 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를 창시한 도슨
트로트맨(D.E. Trotmann)은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건강과 재물,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과 교회와 말씀에 투자하십시오.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아는 성도들은 이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이와 같이 고
백할 것입니다. “내가 썩어질 것에 마음을 쏟을 인생이 아니로구나. 얼마나 남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알기 위해, 더 많
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에 더욱 유익을 끼치는 일에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애를 살 것인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러한 믿음이 날로 더해져서 변하지 않는 것을 붙들고 영원한 축복을 향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