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월출산 무위사
무위사 극락전 수월백의관음보살 벽화
푸른새가 그린 미완의 불화 海岩孤絶處 (해암고절처) 中有洛伽峰 (중유낙가봉) 大聖住不住 (대성주불주) 普門峰不峰 (보문봉불봉) 明珠非我欲 (명주비아욕) 靑鳥是人逢 (청조시인봉) 但願蒼波上 (단원창파상) 親瞻滿月容 (친첨만월용)
바다가 높은 벼랑 아득한곳, 그 가운대 낙가봉이 있으니 대성은 머물러도 머문 것이 아니고, 보문은 만나도 만남이 없네 명주는 나의 마라는 바 아니지만, 청조와 이 사람은 상봉하였네 오직 바라옵건데 푸른 물결위에서 친히 만월같은 모습 뵈옵게 하옵소서
안내하시는 처사님이 오언율시를 줄줄 외우면서 설명을 해 너무 좋아서 특별히 처사님께 부탁해서 자료를 뽑은것이다
아미타삼존불 벽뒤에있는 "백의관음도"
이 후불벽화에는 새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극락보전 건립 후 어느 날 노승 한사람이 찾아와 벽화를 그리겠다며 100일 동안 법당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궁금증이 많은 한 승려가 창살을 통해 법당 안을 들여다보자 한 마리의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연유인가 오늘날 전하는 후불벽화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무위사 후불벽화는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그려지지 못한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정말로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전설을 예견하듯 한눈에 보아도 관세음 보살님의눈동자가 없는것을 알 수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사진 촬영금지'라는 안내판이 보여 우리나라 보물위 벽화를 손상시킬까봐 그만 찍기로했다.
무위사는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을 좌우로 두고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39년 (617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헌강왕 원녕 (875년)에는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갈옥사"라 한 후, 고려 정종 원년 (946년)에 선각대사가 삼창하였고 "모옥사"라 개칭하였으며, 그후 조선 명종 10년 (1555년) "무위사"로 부르게 되었다.
사천왕상이 떡 버티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극락보전 부석사 무량수전,수덕사 대웅보전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극락전은 1476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묘사되었는데, 벽화 보존각을 건립하면서 아미타삼존불과 수월백의관음 벽화 외 나머지 27점을 이곳에 진열했다.
극락전에서 친견할 수 있는 수월백의관음도는 후불벽 뒷면에 그려져 있다. 백의를 입은 관음이 굽이 치는 물결 위에 떠 있고, 두광과 전신을 감싼 신광을 등지고 서 있다.
양손에는 버들가지와 정병을 각각 쥐어 교차시켰으며 시선은 무릎을 꿇어 합장하며 관음보살을 우러러 보며 앉은 노비구에게 향하고 있다.
비구의 등뒤에 전설을 예견해주듯 파랑새한마리가 앉아있다.
이 벽화는 성종 (1476년)에 그려진 것으로, 조선시대벽화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2001.7.30자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믈)로 지정 되었다. 아미타 삼존불은 4각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를 하고 관음과 지장보살을 협시한 불화로써, 지장보살이 표현된 매우 희귀한 걸작예술품이다. 위의 백의 관음도와 함께 조선시대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이한것은 이아미타삼존도 가 그려져있는 벽의 뒷쪽에 있는 불화인데. 이들벽화는 당나라의 유명한 화가 "오도자"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고 한다.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화가가 그렸으면 하는 욕심이 앞선다.
입구에 들어선 경치가 가히 일품이다.
고려 초기에 세워진 2층기단의 삼층석탑
구한말 나라가 망할 시기에 들어왔다고. 이름붙여진 개망초가 산신각가는길에.아주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선각대사 편광령탑비
산신각
ㅇ해탈문을지나니 입구에 종각이 별 덧칠도 하지 않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백제계 석탑인 보물 제 298호의 "월남사지 3층석탑"
무위사에서 동쪽으로 약 1.5km지점에서 월출산을 배경으로한 만평의 평지가람인 월남사의옛터가있다. 진각국사 "혜심"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현제 남아있는유적으론, 진각국사 혜심의 추모비인 보물 제313호 "월남사지석비"가있다.
사찰답사마치고 내려오는데 입구의 찻집앞에 코스모스가 반긴다.
장소를 옮기는길에 태양양 차밭이 또한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첫느낌이 화장하지 않은듯한 느낌으로 아주깨끗하고 꾸밈이 없었다. 거기에다 극락보전 안의 모든 벽화는 다 우리나라의 보물이다. 옛날의 느낌 그대로 보존 되어있어... 요즘 새로 창건하여... 그저 깍아진듯한 사찰들과는 다소 다른 고즈넉함을 느꼇다. 이번 사찰기행은 정말 뜻깊은기행이었다.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단체로 가서 다소 복잡한 답사에 시간 맞추느라 정신없이 다녀서아쉬운 마음으로 언젠가는 아주 조용히 다녀오고 싶은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인 무위사는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 동남 쪽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 많은 절들이 원효 의상스님에 의해창건되었듯, 이곳 역시 원효 스님에 의한 창건된 것으로 연혁이 전해진다. 무위사는 관음사라 하였고,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 연기 도선스님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갈옥사라 바꾸었다. 그러나 무위사 경내에 있는 형미스님의 ‘선각대사변광영탑’에는 신라 때 무위갑사(無爲岬寺)라고 불렀다 한다. 형미스님 당시에는 경북 청도 가지산과 호거산에 대작갑사인 운문사를 중심으로 오작갑사(五鵲岬寺)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월출산 일대에도 산봉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도갑사·무위갑사 등 갑(岬)이 들어가는 사찰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체로 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의거하여 53선지식을 순방하며 구도행각을 하는 선재동자를 묘사하는데 비해, 무위사의 경우 동자 대신 가사를 걸친 노비구의 모습이 특이하다. 어깨 위에는 여의를 입에 문 청조 한 마리가 앉아 역시 관음보살에게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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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글도 올려도 될려나 모르겠군요. 혹시나 맞지 않으시면 언제나 말씀 해주세요. 지기님과 운영자님께서는 삭제 하셔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다녀본 사찰중에서. 새로운건축구조물 보다는 옛맛이 묻어나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곳이라 올려봤습니다.
귀한 글을 삭제하다니요? ㅎㅎ..울 지기님도 분명 대환영이실겁니다... 요 글이 삭제된다믄 전 이미 울 방에서 퇴장이옵니다요~ 하하하~ 야생화님 어떻게 그 곳의 역사를 다 쓰셨네요~~ 대단해요~~~^^ 월출산....늘 오가며 보기만 했지 정작 올라가보지는 못 했어요... 잘 구경하고 갑니다~~언제인가 월출산 가게 됨 야생화님 생각날거예요~~^&^
좋은 여행 하셧네요....글 감사히 잘 읽어봤습나다..덤으로 구경도 잘하구요..ㄳ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산세가 쟁반위에 수석 올려놓은듯 아름답지요..무위사에 대한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절에 정보가 담겨있는 서적이 나와 있는게 있으시면 추천해 주시면 감사 ~~참고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읽어 보았습니다.
우공이산님 ! 저는요. 사찰에 다녀올떄 그곳 스님께나 보살님께 제가 자료를 올릴려고 그러니 자료를 좀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는 편입니다. 사실 무위사에 갔을때 안내 하시는 처사님께도 부탁드려 작은 책자를 얻었지요. 설명들을 때는 그때 뿐이고 곧 잊어버리고 하니 ... 그래야 적을수 있거든요. 저 사찰과 함께 들린 도갑사, 대흥사에도 스님꼐 직접안내 책자를 받았답니다.
여행 잘했습니다.이방에서 전국여행하겟는데요?.ㅎㅎㅎ..고찰은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코스모스도 아름답구요~산신각도 좋습니다~고맙습니다.
좋은곳에 갔다오셨네요.부럽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밑줄그어가며 읽었던 책입니다...생각만큼 여행을 못다녀서 무자년부터 좀 다녀볼 계획입니다...야생화님 감사요...글구..무위사에서 동쪽으로 약 1.5km지점에서 월출산을 배경으로한 만평의 평지가람인 월남사의옛터가있다. 진각국사 "혜심"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현제 남아있는유적으론, 진각국사 혜심의 추모비인 보물 제313호 "월남사지석비"가있다. 이것땜시 무위사 꼭 가야한다고 토론했던 스님이 있습니다.
다른사찰을 몇군데 다녀봤지만 무위사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군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밑줄그으면서 읽으셨다면 상당하시네요. 전 그저 읽어보고. 북한 문화 유적 답사기 읽다가 쉬다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