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박기옥
펜데믹 현상이 많은 사람의 발을 묶어놓았다.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가 세상에 출몰한 지 2년여가 흘렀다. 이놈은 여우가 덕수넘기하듯 모양을 바꾸면서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있다. 그동안 잘 버텨왔지만, 나라고 무슨 용뺄 재주가 있겠는가. 바이러스가 온 공간을 지배한 형국에 감염이 두려워 호흡을 멈출 수는 없을 터.
확진 전야다. 이른 아침부터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소나무 가지치기, 감자 이랑 짓기가 몸에 버거웠다. 침실에 들 무렵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조짐이 이상했다.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둔 종합 감기약(타이네놀 포함)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목이 칼칼하고, 목젖이 따끔거렸다. 나른했다. '못된 놈이 설마 몸속까지 파고들지는 않았겠지.' 미심쩍었지만 출근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을 어쩌랴. 동태탕으로 점심을 때우는 동안 식은땀이 속옷을 적셨다. 오지게 걸렸구나. 퇴근길, 졸음이 몰려온다. 나의 애마는 차선 위반 경고음을 연방 울린다.
병원을 찾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양성이면 격리는 당연하다. 당면한 일이 걱정이다. ‘박사리사건’ 희생자 유족을 상대로 진실규명작업이 코앞이다. 재판으로 말하면 대법원의 최종심이다. 6여 년 걸쳐 펼친 운동이 물거품 되어서야 하겠는가? 유족들이 놓치는 부분을 대변해야 할 변호사 역인 것을. 코로나 항원 검사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유족 처지에서 보면 눈을 딱 감아야하고, 나로 말미암아 선의의 삼자가 감염 된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결국 후자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뾰족한 꼬챙이가 콧속 깊숙한 곳에서 휘젓는다. 결과를 기다리는 십여 분이 이렇게 길 줄이야.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리라.
"양성입니다. 보건소에서 별도의 연락이 갈 겁니다. 지시에 잘 따르시기 바랍니다." 시선조차 외면한 간호사는 단죄하는 판사처럼 지극히 사무적이다. 그때부터 자유를 잃었다. 병원 처방전부터 약을 짓는 것까지 간호사가 대행했다. 받은 약을 살폈다. 특효약을 기대했건만 목감기·기침·가래·발열 치료제, 소위 몸살약이다.
2일 차(3. 15.)
약에 대해 신심이 작용했는지 평소처럼 개운하다. 08. 38. 영천 보건소에 온 메시지다. '귀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19 확진 되었으므로 감염병예방법 제41조 제43조 등에 따라 격리 대상임을 통지합니다. 또한 귀하의 동거인이 10일간 준수 해야 할 권고 사항을 안내해 드리오니 동거인에게 본 문자를 공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격리 대상자 확진자: 박기옥. 격리 기간 통지: 2022. 03. 20. 24: 00시까지. 격리장소: 자택 >'격리 명령을 위반할 경우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행정명령을 받아들고 난감했다. 사무실 일이 걱정이다. 가망 업체를 방문하여 거래처를 확보하고, 납품·수금을 해야 한다. 제때 납품 못하면 거래처가 날아갈 수 있다. 거래처 뚫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지 아니한가. 같은 날 경산보건소에서 날아온 메시지다. "url에 접속하여 자가 진단 자기 기입식 조사서를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뒤이어 메시지가 연방 날아온다. "재택 치료 건강모니터링 시스템 환자 등록이 완료됐습니다. 환자용 앺 설치 및 로그인 후, 매일 2회 건강 정보를 측정하여 등록해 주세요."
3일 차(3.16)
머리가 다소 뻐근했지만 이상 반응 없다. 10. 47. 경산시보건소에서 날아온 격리 통지 안내문이다. '격리 기간 3.14~3. 20. 24: 00'. 같은 날, 동국대학교에서 근황을 물어왔다. 격리 여부를 체크함은 틀림없겠다. 이어 경산시 보건소 두 가지 설문에 응답했다. 당국의 권고 사항에 따라 아내와 병원에 갔다. 항원 검사 결과 음성이란 판정을 받았다. 나의 판정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초조했다. 오늘은 과거사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박사리사건 유족을 상대로 진실규명을 하는 날이다. 유족들과 미리 답변 내용을 준비해 두었지만, 집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이다.
4일 차(3.17).
경산보건소에서 유의 사항 안내문자. 오후엔 경산시보건소 체온기·키트기·소독약·약(타이네놀)·산소포화도측정기가 든 상자가 대문 앞에 던져져 있었다. 저녁 무렵 동국대학교에서 전화 모니터리링이다 근황을 물어왔다. 격리 준수 여부를 체크하는 모양이다. 환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찰하는 셈이다.
5일 차 (3. 18).
별 이상 반응이 없어 약을 끊었다. 5일분 중 3일을 복용한 셈이다. 경산시에서 날아온 문자이다. '박기옥님의 재택 치료 종료 예정일은 3. 20. 24:00 까지. 격리 후 자동 해제 (추가 검사 無). 격리 해제 후 3일 동안 주의 사항: 외출 및 일상생활 가능. 다중 이용시설, 고위험군 시설 이용 및 사적 모임 자제'. 오후엔 경산보건소 위문품이 답지했다. 곰국 1봉지·오뚜기밥 3그릇·컵밥 1봉지·라면 5봉지·조림 1캔·동원참치 1캔·김 5봉지들이 한 통이다. 오후에 동국대학교에서 건강 상태 확인한다. 6일차엔 다른 증세가 전혀 없다. 다만 가래가 가마솥에 누룽지처럼 목젖에 달라붙어 있다.
7일 차 (3. 20. 24:00).
격리가 해제됐다.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공무원 생활부터 자영업을 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렛 동안 쉬어본 적 없다. 격리 선언을 받는 순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닥을 잡지 못했다. '수필 한 편 쓸까. 끼적이던 소설을 손볼까. 피아노 연습할까.' 계획은 세웠지만, 작심삼일이다. 뭐하나 일궈 놓은 것 없이 한 주일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중국발 코로나가 한국에 상륙하여 신천지가 전국을 뒤흔들었을 때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사람 만나기가 겁났다. 청정한 우리 마을에도 코로나가 잠입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확진자로 판정받고 포항에 이송됐다. 그는 퇴원 후에도 마을에 나오지를 않았다. 중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전화로 문후를 여쭸지만, '마주치지 않았으면.' 은근히 바라지 않았던가.
그 일이 부메랑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자주 찾아오던 이웃도, 친구도 발걸음이 뜸해졌다. 서운한 정, 스멀스멀 인다. 속 좁은 소인배의 심사는 언제 고쳐질는지. 부메랑, 코로나가 내게 남기고간 값진 선물이다.
첫댓글 박기옥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영남수필, 54집에 게재하려고 복사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찻 소설 출간도 축하드립니다 ~~^^
코로나, 삶의 체험 생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건강은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