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산울림(山鳴り) 17-1
그곳은 사카모토성 같기도 했고, 쇼류지성 같기도 했다. 타마코는 혼자 이불 속에서 잠결에 우두커니 있었다. 사람 기척에 눈을 뜨니 베갯머리에 타다오키가 서 있었다. 놀라 얼굴을 들자 타다오키는 말없이 무릎을 꿇고 타마코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타다오키는 흰 린즈(양단)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린즈의 서늘한 감촉이 타마코의 뺨에 쾌적했다. "타다오키 사마, 뵙고 싶었습니다." 타마코가 말하자, 뭐라 말할 수 없이 그윽한 향내음이 타다오키의 옷에서 감돌았다. "오타마, 데리려 왔다." "네? 데리러 왔다고요?"
타다오키는 고개를 덕이며 다정하게 등 줄기를 다독였다. 타다오키의 숨결이 타마코의 귀에 뜨거웠다. "이제 성으로 돌아가도 되는 건가요?" 다시 묻자 이미 타다오키는 곁에 없었고, 방을 나가는 참이었다. 타다오키는 갑옷을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 투구 한곳이 번뜩 강한 빛을 발했다. "아, 또 출전하십니까?"
눈이 떠졌다. 데리러 왔다고 해놓고 나를 두고 간단 말인가, 타마코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며, 타다오키 손의 감촉이 어깨와 등에 또렷이 남아있었다. 향내음도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타마코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꿈이었다. "데리러 왔다"고 했을 때의 가슴 떨림이 오래도록 타마코의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해질녘의 하늘이 푸르고 깊다. 장수잠자리 두 마리가 가을 햇살에 날개를 반짝이며 마루 끝을 날아다니고 있다. 타마코는 장수잠자리의 재빠른 움직임에 눈길을 주며, 책상머리에 기대어 오늘 아침 꿈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타다오키의 꿈은 물론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함께 성의 정원을 거니는 꿈이나 이야기 나누는 꿈은 몇 번이고 꾸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꿈처럼 함께 누워있고, 게다가 데리러 왔다고 하는 꿈은 처음이다. 타마코는 낮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이 꿈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꿈을 생각하며 타마코는 쓸쓸해지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꿈속에서 기뻐했던 것이 오히려 타마코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타마코는 그 외로움을 털어내듯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붓끝에 먹을 묻히고 타마코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지난밤의 꿈을 시가(시조)로 적어두려 생각한 것이다. 색이 짙어지기 시작한 나무들을 스쳐오는 바람이 때때로 조용히 타마코의 머리칼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 만나보았다 여긴 옷소매의 향기가 남아있지 않으니 꿈이었음을 알았네 ---- 다만 다시 읽어보고, 타마코는 '알았네(知りける)'를 '알았도다(知りぬる)'로 고쳤다. 이어 ---- 만나는 꿈을 꾸는 정념도 괴로워라 새벽의 이슬만 깊은 꿈의 길인가 ---- 쓱쓱 적어 내린 타마코는 후우 한숨을 쉬고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라고 흩갈려 썼다. 어디선가 때까치가 날카롭게 울었다.
---- 잊으리라 마음먹고 버려도 잠들면 억지로 나타나는 꿈 속의 모습 꿈 속의 모습 ---- 시로 읊으면 조금은 마음이 위안받을까 하여 붓을 들었으나 한층 더 타다오키가 그리워져, ---- 그리다 말하면 가벼워지리니 내 마음을 보여줄 언어가 있었으면 --- --- 마음이 색이라면 어느 것이 어떻게 물들었을까 보여주고 싶어라 보고 싶은 이 마음을 ----
시가는 계속해서 지어졌다. 너무나 생생한 오늘 아침 꿈이 이렇게 연달아 시를 읊게 만드는가 생각하며, 타마코는 겨우 스스로를 가라앉히듯 붓을 놓았다. 옆방에서 베 짜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왔다. 가요가 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그 소리가 뚝 하고 멈추었다.
산의 해질녘은 빠르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다. 오늘의 베 짜기도 끝난 것이리라. 타마코는 가요를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잠시 더 혼자 책상에 앉아 요즈음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을 적어두고자 했다. 가요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마음도 조금 가라앉지만, 요새는 어째서인지 홀로 이렇게 붓을 달리고 싶어질 때가 많다. 타마코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가을 저녁 무렵, 기러기가 아스라이 울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울타리 아래에서는 벌레들이 저마다 울어댄다. 참으로 눈에 와 닿는 것들이 모두 애처롭기만 하다. 남쪽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칠게 몰아치고, 작은 싸리꽃 위에는 벌레가 마음 둘 곳 없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날아가 버린다.〉
2, 3일 전 저녁, 바람에 거칠게 휘어지는 싸리나무를 보며 타마코는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 마음을 품고 지금 써 내려간 것이다. 잠시 숨을 죽이고 다시 읽고는 줄을 바꿔 이어 쓴다. 붓을 잡은 그 손가락이 가늘고 희다.
〈무릇 세상에 달을 구경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무엇에 비기어 지나간 날의 슬픔을 이토록 떠올렸을까.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빛 가늘고 희미하여 낙엽 위 소나무 뿌리에 일부러 빛을 채운 듯 보이니 참으로 애달프구나〉〈비할 데 없이 마음 서글프고 덧없는 세상의 애수가 몸에 저려와, 잠들지도 못하고 눈물이...〉
자신이 쓰는 글귀에 마음이 점점 흔들려 타마코는 붓을 놓았다. 감정에 쓸려가선 안 된다고 경계하는 것이 마음속에 있었다. 태아를 생각하면 감정은 철저히 평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해가 지고 금세 어둠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날을 거듭하여 가을도 깊어갈 뿐...) 머지않아 이 산중에 눈이 내리면 마을과의 왕래도 완전히 끊긴다. 그 눈이 내리기 전에 타다오키의 편지가 올 것인가, 아닌가.
(겨울!) 문득 타마코는 이제 타다오키의 편지를 기다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분노인지 원망인지 모를 감정이 분출하는 듯했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기대하고 오늘은 내일은 하며 편지를 기다리며 애태운 몇 달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배에 살며시 손을 대고 "이제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타마코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그때 요코부에(横笛-횡피리) 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왔다. (어머, 또 하츠노스케가...) 해질녘 타마코가 슬퍼질 때, 혹은 밤깊어 타마코가 타다오키나 아이들을 생각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잠들지 못할 때, 희한하게 피리 소리가 흘러오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타마코의 한탄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했다. 높게, 또 낮게, 맑게 개어있는 피리 음색이었다. 타마코는 그 피리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위안받았다. 지금도 타마코는 그 피리 소리에 분노와 닮은 슬픔이 점차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하츠노스케의 피리를 들을 때마다 어째서인지 사카모토성에서 바라본 비와호가 눈앞에 떠오르고, 아버지 미츠히데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운 듯 생각나는 것이었다. 7월 타카모토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 하츠노스케는 타카모토를 따라 이 미토노에 왔다.
타카모토는 이곳에 이틀 밤을 묵고 미야즈성으로 돌아갔으나, 하츠노스케는 이 부락에 오두막을 지어 정착해 살고 있다. 타다오키의 허락 없이 경호원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타카모토는 "사람이 어느 땅에 살든 그것은 제 마음.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라며 경호원들에게도 돕게 하여 오두막을 짓게 한 것이다.
경호하는 쪽 입장에서도 손이 부족한 산중에 하츠노스케처럼 무예가 뛰어난 젊은이는 요긴하다. 삼가면서도 성실한 그 인품은 경호원 일동에게도, 지역 주민들에게도 신뢰받아 하츠노스케는 호소카와가 사람인지 지역 주민인지 모를 생활에 들어서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본래 평가의 낙향인으로 무사 출신이다.
산중에 숨어 살아야 하는 타마코나 그것을 지키는 호소카와가의 사람들에게 친근한 정을 가지고 대하고 있었다. 가만히 하츠노스케의 피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타마코의 방에 가요가 들어와 "마님, 어두워졌습니다"라며 등잔에 불을 붙였다. "마루 문을 닫아도 되겠습니까? 저녁 바람이 차갑습니다"
"하지만 가요, 하츠노스케가 피리를 불고 있는데..." "네. 하지만 닫아도 하츠노스케 님의 피리는 들립니다. 저녁 바람은 몸에 해롭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가요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참으로 하츠노스케의 피리는 아름답구나...라기보다 무언가 가슴을 파고드는구나" "네, 저 피리는 무언가를 하소연하는 듯한...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타마코는 말없이 고개를 덕였고 잠시 후, "어머니도 피리를 즐겨 부셨지"
타마코는 긴 눈을 감았다. 그런 타마코를 가요는 안타깝게 바라보았으나, "마님, 하츠노스케 님은 어제 미야즈에 나갔다가 오늘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어머! 미야즈에?" "네, 오키모토 님을 뵙고 오신 모양인데, 조금 전 킨타루 청어(金樽いわし-지역특산어종)를 많이 전달해 주셨습니다" "킨타루 청어! 어머, 그리워라" 타마코의 입가가 풀어졌다.
킨타루청어는 미야즈의 명물로, 옛날 타이라노 시게모리(平重盛)의 여섯째 아들 타다후사(忠房)가 뱃놀이를 할 때 술을 채운 황금 항아리를 바다에 떨어뜨려 무슨 짓을 해도 그 항아리를 건져 올리지 못하고, 대신 이와시가 많이 잡히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작지만 맛있는 청어로 유사이도 타다오키도 타마코도 좋아하는 먹거리였다. "가요, 미야즈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타마코는 소녀 같은 간절한 표정을 보였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산울림(山鳴り) 17-2
"에? 이야 님이 성으로 돌아와 계셨다고? 그건 또 어째서?" 타마코는 가요를 데리고 이케다 로쿠베에를 동반하여 다음 방에 있는 하츠노스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네" 쓸쓸할 정도로 맑은 눈의 하츠노스케는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어제 하츠노스케는 미야즈까지 나갔다. 오키모토와는 이미 방문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오키모토의 방에서 정원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쿠마치요를 어루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까맣고 긴 머리칼과 그 입고 있는 코소데는 멀리서 보아도 시녀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타다오키 님의 측실인가?) 하고 의아해할 때 그 표정을 포착한 오키모토가 "저건 누이동생인 이야다"라 말하고,
"불쌍한 녀석이지, 저 누이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말이야, 잇시키 요시아리를 멸망시키고 하루라도 빨리 단고를 평정하여 나라 전체로 히데요시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아버님은 조바심을 내셨던 게겠지. 어쨌든 요시아리는 강했으니까. 형인 타다오키조차 녀석의 대담함에을 인정할 정도였어. 그렇다 해도 아버지는 책사야. 그 이야의 남편을 훌륭하게 이 성으로 불러들였지. 뭐라고 해서 불렀는지 아나?"
"글쎄요, 그것은" "그게, 사위와 장신의 술잔을 나누자는 구실이었지. 굳이 술잔을 나누지 않더라도 이야가 요시아리에게 시집간 이상 사위와 장인 관계임은 자명한 일인데" "....."
"요시아리는 강하지만 단순한 사내다. 물론 전혀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많은 가신들을 이끌고 왔지만 사위와 장인의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는 한두 명의 제한된 인원만 들어설 수 있어. 요시아리가 부어받은 술잔을 이렇게 양손으로 쥔 순간 형님이 칼로 베어버렸지. 요시아리의 어깨에서 옆구리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해. 하지만 과연 요시아리답게 몇 걸음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나가 마루 끝까지 나가 쿵 하고 쓰러졌다네. 작은 산이 무너지는 듯한 호쾌한 죽음이었다더군. 그게 9월 8일이야. 미토노에 자네를 동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지. 이야는 그 이래로 이곳 성에 돌아와 있다는 게야"
"그것은..." "어쨌든 아버지는 머리는 깎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명인이지. 자네 알고 있나? 아버님은 7월 20일에 혼노지(本能寺)의 차가운 터에서 렌가(連歌) 모임을 여셨네. 즉 노부나가 님의 추도 공양이지.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이것이 평판이 나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님도 완전히 호소카와가(細川家)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야"
오키모토는 그때의 렌가를,
- 먹물 물든 저녁이여 미련의 옷소매 이슬 ----유사이 (墨染のゆふべや名残袖の露--幽斎)
- 영혼 모시는 들판의 달에 가을바람 --- 쇼고인 도초(たままつる野の月の秋風-聖護院道澄)
- 헤어져 돌아가는 길의 솔귀뚜라미 울어 예나 ---홋쿄죠하(わけ帰る道の松虫音に啼て--法橋紹巴) 를 종이에 적어 보여주었다.
"뭐, 아버님으로서는 호소카와가를 안태하게 두기 위해 이것저것 지혜를 쥐어짠 게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야는 불쌍하게 되었어"
오키모토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아버지와 오빠에게 남편을 속임수로 잃은 이야의 마음은 대체 어떠할까 하고 하츠노스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쿠마치요와 함께 있는 이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이야의 모습은 넋이 나간 듯 기운이 없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하츠노스케는 "네, 잇시키 요시아리 님은 오쿠보성에서의 사위-장인 서약 연회에서 최후를 맞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라고만 타마코에게 답했다. 타마코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알아차려 "어머나, 그럼 이야 님은 요시아리 님이 살해당하시고..."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오나, 난세의 세상이온지라..." 하츠노스케는 말을 아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이야도 불행한 운명이었다고 타마코는 생각하며, 시집가던 날의 풋풋한 이야의 신부 모습을 눈앞에 떠올렸다. 작년에 시집간 지 얼마 안 된 이야에게는 이미 남편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와 오빠의 간계에 쓰러졌다. 타마코는 가슴속을 차가운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이야의 행복을 빌며 떠나보낸 자신도 지금은 이렇게 산중에 유배(유폐)된 몸이다. (여성은 왜 이런 슬픈 마음을 해야만 하는가) 남자들은 여성을 이토록 불행에 빠뜨리면서도 여전히 다투어야만 하는 존재인가. 앞으로 자신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 산중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을 여기에 숨긴 것은 적어도 목숨만은 건지려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자신은 이 산중에서 평생 유폐된 몸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타마코는 어두운 생각에 갇혔다. "그렇습니까. 이야 님은 돌아오셨군요" 깊은 한숨을 쉬는 타마코의 수심 어린 시선이 하츠노스케에게 돌아왔다. 하츠노스케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오늘 저택 안에서 만난 타다오키의 정한한 표정을 하츠노스케는 다시 복잡한 마음으로 떠올렸다.
오키모토와의 환담을 마치고 오키모토의 배웅을 받으며 성문 근처에 왔을 때였다. 말을 탄 타다오키가 두세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문으로 들어왔다. 하츠노스케가 타다오키를 처음 본 것은 이미 5년 전의 일이다. 타마코와의 맞선을 위해 타다오키가 사카모토성에 찾아왔을 때였다. 그 이래로 지금이 첫 대면이다. 흠칫하여 하츠노스케는 방심하지 않고 서 있었다.
"톤고로, 이 자는 누구냐?" 낭인 차림의 하츠노스케를 타다오키는 말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교토에서 알게 된 낭인으로 미카미 하츠노스케(三上初之助)라 하는 자입니다" "미카미 하츠노스케?" 의심스러운 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타다오키에게 하츠노스케는 일례했다. "실력이 뛰어난 인재라오" 오키모토는 시치미를 떼어보였다. "음, 눈빛이 다르다. 확실히 실력이 뛰어날 법하군" "그렇다오. 검도 활도 잘 쓰지. 조총도 잘 쏜다오. 이나토미 정도는 아니라 해도"
이나토미 테츠노스케(稲富鉄之助)는 일본 제일의 조총 명인이라 불리며 캄캄한 밤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조차 맞춰 떨어뜨린다고 했다. 원래는 잇시키가의 가신이었으나 미츠히데를 섬겼고, 시집가는 타마코를 따라 호소카와가에 들어왔다. 타다오키는 말에서 내려 "너, 관직에 들 의지는 있느냐?" 하고 물었다.
"없습니다" 무뚝뚝하게 하츠노스케는 답했다. "어째서냐" "주군 없는 몸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흠, 일리 있군" 타다오키의 말은 뜻밖이었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 "발길 닿는 대로입니다" "과연. 생각이 내키면 다시 찾아오도록 해라" 타다오키는 날렵하게 말에 올라 떠나갔다. "형님은 자네가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군" 타다오키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오키모토가 웃었다. ".....?"
"노부나가 공은 충성스러운 인재를 모으는 것이 장수가 해야 할 첫째 일이라고 자주 형님에게 말했다더군. 아마 형님은 자네를 충직한 무사로 본 게지. 평소엔 말에서 내리는 사람이 아닌데" "....." 하츠노스케는 자신이 "주군 없는 몸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을 때 "흠, 일리 있군" 하고 답하던 타다오키의 표정과 음성을 생각했다. 지극히 솔직한 느낌이었다.
다이묘(大名)이라 해도 타다오키 역시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처지에 서 있다. 그것이 미토노에 아내를 보내야 했던 타다오키의 본심일지도 모른다고 하츠노스케는 생각했다. 타다오키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츠노스케는 타마코의 남편이기에 타다오키에게 품어온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약간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형님은 성깔이 강하다. 노부나가 공을 닮은 구석이 있어" 오키모토는 헤어질 때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하츠노스케는 타마코의 곁에 그 타다오키가 함께 선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때 이케다 로쿠베에(池田六兵衛)가 타마코의 근심 어린 태도를 털어버리려는 듯 말했다.
"뭐 어쨌든 잇시키가 멸망하면 호소카와가도 안태해지는 법. 이야 님은 안되었습니다만 가문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요. 가문을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타마코는 중얼거렸다. "그렇사옵니다. 마님께서도 가문을 위해서이기에 이렇게 산중에서 불편함을 참으시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자신은 그저 남편 타다오키를 위해 이러한 날들을 견디고 있다고 타마코는 생각에 잠긴 눈빛이 되었다. "자, 이것으로 오늘 밤은..." 로쿠베에는 하츠노스케를 촉구하여 서둘러 물러갔다. 물러가는 순간 하츠노스케는 등불 그림자에 약간 파리해 보이는 타마코의 얼굴을 일순 응시했다. 그러나 타마코의 시선은 무릎 위에 떨어져 있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산울림(山鳴り) 17-3
드디어 미토노(味土野)에 겨울이 왔다. 얼마 전까지는 붉게 타오르던 단풍도 지금은 모두 떨어지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던 으름덩굴도 머루도 눈을 뒤집어쓰고 미토노의 산에 겨울이 왔다. 겨울 산은 자주 산울림을 했다. 산 전체가 때로는 신음하듯, 때로는 짖짖듯, 때로는 굉음을 내며 우르르 울었다. 산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산은 말이지, 잎이 떨어지면 울기 시작한다네" 토박이인 정원사가 말했다.
잎이 떨어져 바람이 잘 통하기 때문이리라. 산이 몸을 비틀며 신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날은 타마코의 마음도 우울해졌다. (드디어 타다오키 님은 단 한 통의 편지도 보내주지 않으셨구나) 마음이 우울해지면 생각은 그곳으로 돌아간다. 눈이 내리기 전에 성에서 식량이 도착했다. 쌀, 된장, 밤, 곶감, 말린 고사리, 자반생선, 건어물 등이었다. 그러나 역시 타다오키로부터의 편지는 없었다.
타마코는 가요와 베를 짜거나 바느질을 하며 날을 보냈으나, 마음이 우울해지면 멍하니 화로의 불만 바라본 채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겨울밤에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는 더없이 쓸쓸했다. "후우, 후우" 창자에 사무치는 듯한 그 소리를 들으면 타마코는 타다오키나 아이들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베개에서 머리를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조금 익숙해진 지금은 쓸쓸한 소리로밖에 울지 못하는 부엉이에게 타마코는 희한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만약 새가 된다면 역시 부엉이 같은 소리로밖에 울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틀림없이 지금의 나는 참새나 꾀꼬리처럼은 울지 못할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 둠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밤중에 "후우, 후우"하고 불길할 정도로 외롭게 울 수밖에 없는 부엉이 같은 자신을 타마코는 생각했다.
미도노에서 맞는 첫 새해가 왔다. 순백의 새눈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을 타마코(玉子)는 침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지난해 새해는 아버지 미츠히데(光秀)도 어머니 히로코(凞子)도, 그리고 숙부 야헤이지(弥平次)도 언니 린(倫)도, 남동생 주고로(十五郎) 일가도 경사스럽게 새해를 맞이했건만, 새삼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했다. 일족은 멸망하고 자신은 남편과 자식에게서 떼어내어져 홀로 이 산중에 유폐되어 있다.
이런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 내 평생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가요,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이리도 괴로운가..." 타마코는 차오르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입밖에 냈다. 동시에 뜨거운 것이 울컥 차올랐다. "마님..." 안타깝게 타마코를 바라보던 가요는 그 눈에 눈물이 자욱해지는가 싶더니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오열했다.
한동안 두 사람은 흐느껴 울었으나 이윽고 타마코는 눈물을 닦고 "가요, 내 아버지가 노부나가 님을 쓰러뜨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다. 가요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가요,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거사가 일족을 멸망시키고 나 역시 이렇게 자식과 남편과 떨어진 나날을 보내는 동안 왜 반역을 일으키셨을까 하고 원망이 솟구치는 날도 있었다" "....." "그것이 이렇게 산속의 쓸쓸한 겨울을 맞아보니 아버지를 향한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말씀은?" "사람이란 삶이 괴로워졌을 때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버지는 견디고 견디고 참다 참으셨던 것이라고 나는 이 눈 속에서 생각했다. 만약 평생 이 눈 속에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아버지는 노부나가 님에게 영지를 몰수당하고는 미쳐버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았겠느냐" "....."
"아버지가 천하(天下)를 쥐려고 하신 것, 역시 딸인 나는 칭찬해 드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마님..." 가요는 불안한 듯 타마코를 보았다. "왜 그러느냐?" "마님께서는... 마님께서는 머지않아 성으로 돌아가실 날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헛된 생각은 하지 마시옵소서..."
"어머, 가요는 내가 아버지처럼 미쳐버리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느냐. 나는 결코 자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미치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미쳐버릴 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마님, 가요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저 기도할 뿐..." "무엇을 기도해 준다는 것이냐? 하루라도 빨리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는 것이냐?"
"...아닙니다. 가요는 그 기도보다 더 중요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가요는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 그것은 어떤 기도냐?" "네, 그것은... 모든 고난이 마님께 큰 은총이라 생각되실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이옵니다" "고난을 큰 은총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그보다 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더 고마울 것 같구나"
"네, 마님. 그 기도는 물론 미력하나마 아침저녁은 물론 베를 짜면서도 걸으면서도 매일 빠짐없이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님, 사람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무사히 성으로 돌아가셔도 또 다른,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자주 신부(파데레)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의 해결은 고난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천주의 은총으로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과연" 타마코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결국 이런 뜻이겠지. 고난이 고난인 사람에게는 언제까지 지나도 고난의 해결은 없다. 하지만 고난을 은총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고난도 고난이 아니라는 것..."
"네, 기쁨 속에 고난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은총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따위의 일이 인간에게 가능할 리가 없지" "네, 하지만 천주님의 도움이 있다면..." "기도해 주는 진심은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기리시탄(크리스천)의 일은 나는 잘 모르겠구나" "....."
"가요, 지금 나는 기리시탄도 믿고 싶지 않다. 어릴 적부터 손을 모으던 부처조차 믿고 싶지 않다" "....." "정말로 가요는 데우스의 신을 믿는 것이냐?" "네,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믿고 있는 것이냐? 부처와 신이 어떻게 다르지? 데우스의 신과 저기 사당에 모셔진 신이 어떻게 다른 것이냐?"
타마코는 살포시 웃으며 "신앙이란 무엇일까? 본간지(本願寺)의 승려들은 노부나가 님과 싸웠다. 여기저기 불교도의 일키(폭동)가 일어났다. 부처를 믿는 자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느냐? 불교에는 살생계가 있을 터. 아니면 요즘 불교는 살생해도 된다는 게냐? 부처의 마음은 자비일 텐데" "....."
"틀림없이 그럴 터... 그렇지 가요?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때때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고 많은 기부도 하셨지만 결국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주군마저 죽이고 최후를 맞이하셨다. 아버지도 살생계를 범한 이상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
"내 남편 타다오키 님도 마찬가지로 용맹하게 싸워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리시탄에는 살생계가 없느냐?" "있습니다. 죽이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 열 가지 계명 중 하나에 있사옵니다" "그것 이상하구나" 타마코의 총명한 눈빛이 빛을 띠었다. "그 말씀은?"
"우콘 님은 유명한 기리시탄. 하지만 또한 뛰어난 장수이시다. 어째서 기리시탄인 우콘 님이 살생계를 범하고 계시는가?" "글쎄요, 그것은..." 아직 스무 살인 가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데우스의 신도, 부처도 믿고 싶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난 타마코는 마루의 창문을 스르륵 열었다. 눈부신 눈빛이 타마코의 눈을 쏘았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미토노의 봄(味土野の春)18-1
정월 닷샛날인 그날, 눈은 소리 없이 소복소복 내려쌓이고 아미노는 침묵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아침 식사 후, 타마코는 타다오키가 자신을 위해 3년의 세월을 들여 만들어준 카르타(시가 카드를 이용한 놀이)를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읽고 있었다. 금박을 입힌 부채 모양의 우아한 카르타이다.
백인일수(百人一首)의 시 하나하나가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신이 이 깊은 산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는 것일까 생각하면서도, 너무나도 외롭고 애절한 노래가 많은 것에 타마코는 새삼스럽게 놀라고 있었다.
ㅡ 내 소매는 밀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앞바다의 바위처럼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마를 틈이 없구나.(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의 소매는 눈물로 늘 젖어 있어 마를 날이 없다)
ㅡ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쓰호 해변의 저녁 잔잔한 바다에서 태워 만드는 해조 소금처럼, 내 몸과 마음도 애타게 타들어 가는구나.
ㅡ 여울이 너무 빨라 바위에 가로막힌 급류가
둘로 갈라지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만나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훗날 반드시 만나리라 생각하네.
"갈라지더라도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 생각하네" 타마코는 작은 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희미한 한숨을 내쉬며 다음 카르타로 눈을 돌렸다.
ㅡ이제 이 세상에는 없을 나, 저승으로 가는 길의 추억으로. 다시 한번 그대를 만날 수만 있다면 ㅡ산골 마을은 겨울이라 외로움이 더욱 커지네. 사람의 발길도 풀도 시들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마치 산속에 떨어져 사는 자신을 대신해 읊어 준 노래처럼 느껴져, 타마코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그렇고, 어쩌면 이렇게 외롭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며, 괴롭게 살아온 것일까. 이 애절함은 가인을 읊는 사람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시를 짓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괴로운 마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혼자만 괴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괴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타마코는 새삼 눈이 뜨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타다오키가 이 백인일수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타다오키 님!) 타마코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미토노로 쫓기듯 들어와 산 지 벌써 7개월, 타다오키와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멸망해 버린 부모와 형제들을 떠올리며 울어온 자신을 타마코는 조용히 돌이켜보았다. 이 괴로운 삶의 처지 속에서, 자칫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타마코의 마음을 지지해 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태내에 품고 있는 생명이었다.
"순하고 착한 아이를 낳으시오. 산골에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불쌍하지만…" 성을 떠날 때 타다오키는 그렇게 말하며 격려해 주었다. 타다오키, 쿠마치요, 오쵸와는 어쩌면 평생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해도, 머지않아 태어날 태내의 아이만큼은 틀림없이 이 가슴에 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아기의 부드러운 감촉을 떠올리며, 타마코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산길을 올랐을 때는 괴로웠지만, 임신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요즈음은 특히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카요(佳代)에게도 말하지 않은 타마코 혼자만의 은밀한 마음이었다.
백인일수를 읽으면서, 지금 다시 타마코는 자신에게 머지않아 태어날 생명이 숨 쉬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쿠마치요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타마코의 배는 작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지역의 산파 할머니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도 그 임신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백인일수를 마음에 담아 읽은 이 날 이후, 타마코는 조금씩 기운을 되찾아 갔다. 이 세상에서 울고 슬퍼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타마코를 성장시켰을지도 몰랐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오지로(おじろ-男城<->女城-めじろ)에 머무는 호소카와 가문의 경호원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는 더욱 친밀해졌다. 눈(雪)에 묻힌 이 산골 마을까지 올라오는 외지인은 없었다. 경호 임무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지루해하는 남성의 무사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자주 도부로쿠(탁주)를 가져와 찾아왔고, 때로는 밤을 새워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남성의 무사들 역시 친해진 집을 찾아가 옛 전투(合戦) 이야기를 듣곤 했다. 헤이케(平家)의 낙향인(落人)들이 사는 미토노의 집들에는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마을 사람들도 원래는 무가 출신임을 알게 되자, 점점 거리감이 사라지고 서로 가슴을 터놓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러한 친근한 분위기는 메지로(女城)에 있는 타마코의 거처에도 미묘하게 영향을 미쳤다.
마을 여성들은 부엌일을 맡은 키사키 오오이(木崎大炊)의 아내 소노(園)와 카요(佳代)가 있는 곳에 조림 음식 등을 가져다주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마 타마코의 방까지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여성이라고는 해도 그리 넓지 않은 저택이었기에 옆 카요의 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가 몇 번이고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 중에는 남성의 무사들이 말해주지 않았던 사건들이 몇 가지 있었고, 타마코는 카요나 소노로부터 다양한 소식을 전달받았다.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님께서는 지난해 7월, 노부나가(信長) 공의 여동생이신 오이치(お市) 님과 혼례를 올리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타마코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그건… 불쌍하기도 해라…"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를 타마코는 느꼈던 것이다.
6월에 노부나가가 죽고, 바로 그 다음 달에 이미 62세인 카츠이에의 아내가 되어야 했던 오이치노카타가 타마코에게는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오이치노카타는 자신의 오빠인 노부나가에게 남편 아사이 나가마사(浅井長政)를 잃고, 세 아이를 데리고 노부나가에게 돌아와 있던 처지였다.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님께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키사키 오오이의 아내 소노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타마코는 마음 깊은 곳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호색가로 이름 높은 히데요시는 오이치 노카타를 측실로 삼기를 원했던 것일까. 히데요시에게는 아내가 있는 이상 오이치노카타를 정실로 맞이할 수는 없다. 주군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주군의 여동생을 측실로 탐내다니 이 무슨 일인가.
타마코에게는 그것이 아버지 미츠히데(光秀)의 행위보다 훨씬 더 추악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것은 영지를 몰수당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무사의 도리를 숭상하는 지금 세상에서는 당연한 행위로도 여겨졌다. 히데요시에게는 여러 명의 측실이 있다고 들었다. 주군의 여동생마저 그 사이에 더하려는 히데요시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정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더욱 음습하고 검은 무언가를 타마코는 감지했다. 자신은 미츠히데의 딸이라는 입장에 있다. 그 입장이 히데요시 앞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타마코는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자인 장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노부나가를 친 미츠히데의 딸인 자신을 죽이든 측실로 삼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 타다오키가 자신을 미토노에 숨겨준 깊은 배려가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그런 타마코의 심경 변화를 알 리 없는 소노가 말했다. "그 이후로 하시바 님과 시바타 카츠이에 님은 왠지 사이가 나빠지셨다고 합니다. 저 다이토쿠지(大徳寺)에서의 대법요에는 시바타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더군요." "대법요?"
의아한 듯 타마코가 물었다. 지난가을 10월 15일, 히데요시에 의해 노부나가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것을 타마코는 아직 듣지 못했다. 미츠히데의 딸인 타마코에게, 그 장례식의 방식과 예법 일체를 총괄한 것이 시아버지인 호소카와 유사이(細川幽斎)라는 것이나, 그 장례식이 공전의 대성전으로 여러 장수는 물론 조정에서도 칙사가 파견되고 수많은 공가가 참석했다는 사실 등을 일부러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 좋은 소노는, "예, 노부나가 님의 그 장례식 말입니다. 하시바 님께서는 시바타 님에게도 통지를 하셨는데, 시바타 님께서는 원숭이 녀석이라며 무시하고 참석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오이치 님을 맞아들여 시바타 님은 오다 가문의 일족이 되셨으니 안심하신 걸까요? 하지만 히데요시 님께서는 노부나가 님의 적손(嫡孫)인 산보시(三法師) 님을 안고 가장 먼저 향을 피우시며, 노부나가 님의 뒤는 히데요시 님이라고 천하에 알렸고 세상도 납득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벌써 두 달도 더 지난 일을 타마코는 복잡한 심정으로 들었다. "듣자하니 히데요시 님께서는 그때 다이토쿠지에 1만 관(10만 석)이나 기증하시고, 게다가 위패소를 건립하기 위해 1천4백 관(1만 4천 석)을 쓰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미츠히데가 쓰러뜨린 노부나가를 위해 히데요시는 크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마코는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히데요시는 정말로 노부나가를 위해 일한 것일까)
모든 것은 히데요시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버지 미츠히데를 친 것도, 10여 만 석의 재물을 노부나가의 장례식을 위해 쓴 것도. 문득 타마코는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시집간 오이치노카타의 운명을 생각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카츠이에와 히데요시의 반목은 깊어질 뿐일 것이다. 이 두 세력이 충돌할 때, 오이치노카타는 또다시 전란의 불길을 뚫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운이 얇은 분…) 소노가 물러간 후, 타마코는 몇 번이고 가슴속으로 읊조렸다. 지금 세상에 무장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불행을 짊어지게 된다. 타마코의 어머니인 히로코(凞子)도 두 남동생을 안고 사카모토성에서 성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 겨우 열세 살, 열 살이었던 남동생들은 후에 프로이스에 의해 "그 영식은 서구의 왕족과 같은 우아한 기품이 있다…"고 서간에 기록될 만큼 아름다운 소년들이었다.
큰언니 린(倫) 역시 불행했다. 아라키 가문에 시집갔으나 시아버지 무라시게의 반란으로 이혼하고, 아케치 야헤이지와 결혼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사카모토성에서 남편, 어머니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 오다 노부스미에게 시집갔던 둘째 언니 기쿠(菊)는 혼노지의 변 이후 미츠히데의 딸이라는 이유로 오다 측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타마코는 어머니와 언니들의 피에 젖은 마지막 모습을 본 것처럼 상상했다. 이 미토노에 은거하고 있는 자신도 언제 히데요시 측의 손에 죽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오이치노카타의 불행도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이 타마코의 생각은 결코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이로부터 3개월 후인 4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는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타카(信孝)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히데요시와 싸웠으나 시즈가타케(賤ヶ嶽)에서 패배했다.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는 세 딸의 목숨을 히데요시에게 구걸하고, 시집간 지 9개월 만에 카츠이에와 함께 에치젠의 키타노쇼성(越前の北庄城)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미토노의 봄(味土野の春)18-2
멀리서 눈사태 소리가 들렸다. 내일이면 음력 2월, 미토노의 하늘도 눈에 띄게 봄기운이 감돌았다. 이른 낮, 타마코에게 차를 권하던 카요가 "어머, 눈사태 소리예요" 하며 얼굴을 반짝였다. "봄이 가까워졌구나…" 읊조리듯 타마코가 답했다. "이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뚫리겠지요." "그래요… 하지만 내가 내려갈 길은 눈이 녹아도 뚫리지 않을 것 같아요." "----" "저기, 카요 님." "예."
"생각해 보면, 이 산속 미토노에서 태어나 여기서 죽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마님께서는 이 곳 분이 아니시니까요…" "카요 님. 요즈음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이런 생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
마을 사람들은 이 미토노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늙어가는 이들뿐이었다. 그들은 결코 풍족하지 않았지만 적은 물건이라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가 문병을 가고, 아이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기뻐했다. 그러한 생활을 바라보며 타마코는 깊은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전쟁이 없었다.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전쟁은커녕 도둑질도 없었다. 그들은 밭을 갈고, 베를 짜고, 음식을 끓이고, 나무를 자르는 법만 알면 되었다. (이 사람들은 이 눈 깊은 산이 평생의 안식처인 것이다)
그 사실 또한 타마코에게는 새삼 큰 놀라움이었다. 이런 산 깊은 곳에 사는 것 따위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미토노 사람들에게는 이곳이야말로 편안한 안식의 땅이었다. 그들은 평생 이곳을 떠나 어디론가 이주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에게 편안한 땅이 왜 자신에게는 편안한 땅이 되지 못하는가. 문득 타마코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이곳에 타다오키 님과 쿠마치요 일가가 함께 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때, 타마코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이야말로 자신들이 정말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성(城)일까. 가신일까. 화려한 코소데(옷)이며, 칼과 갑옷일까.
인간에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을 모르는, 조용하고 신뢰에 찬 생활이 아니겠는가. 타마코는 카요에게 그 생각을 털어놓았다. 드물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타마코를 카요는 기쁜 듯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카요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아니, 카요는 그 이상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다.
어쨌든 마님인 타마코가 마침내 도달한 행복관은 카요를 적지 않게 안심시켰다. "마님, 참으로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부님(파아데레)께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 또 신부님 이야기인가요." 타마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단 하나… 그 하나란 무엇일까요?" 하고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이겠지요. 신앙이라 말씀드려도 좋겠습니다." "신이나 부처는 지금의 저에게는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져서…" 말하려다 불현듯 타마코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마님?" "아니요, 약간 통증 같은 것이…" 타마코는 희미하게 웃으며 배에 손을 대었다. 저녁때가 되자 통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산통이었다.
갑자기 오지로(女城)의 저택은 긴장감에 싸였다. 몇십 명이나 아이를 받아냈다는 산파 모요 할머니가 불려 왔고, 소노는 물을 끓이며 기다렸다. 하지만 산통은 때때로 약해지며 좀처럼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가운데 드디어 밤이 새었다. 타마코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얼굴도 창백해져 있었다.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카요가 말하자, 타마코는 헐떡이면서도 "하지만 머지않아 이 손으로 안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고 조용히 답했다. 낮이 가까워지자 산통이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한낮이 지나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어이쿠, 이것 참!" 태어난 아기를 보고 모요 할머니는 안색이 변했다. 아기의 목에 탯줄이 두 겹으로 감겨 있었다. 소노는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물을!" 모요 할머니는 재빠르게 탯줄을 잘랐다. "물이요?" "어서 대야에 물을!" 모요 할머니는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렸다. 하지만 아기는 축 늘어진 채 그대로였다.
가져온 대야의 물에 아기를 담글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딸이었다. 산후 열흘 동안 타마코는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태어날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즐거움도 참혹하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음식을 가져오는 소노에게도, 머리맡을 지키는 카요에게도 타마코는 얼굴조차 맞대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타마코는 방으로 들어온 카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님!" 열흘 남짓 시선을 피하던 타마코가 바라보자 카요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카요 님, 수고를… 폐를 끼쳤군요." "아닙니다, 제 기도가 부족했던 탓에…" 카요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마님."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그대 탓일 리가 있겠습니까. 모두 이 몸이 짊어진 운명입니다." "그런…" "카요 님,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것, 무엇이라 생각해야 할지요…" "….." "열 달 동안 태내에 살아있던 것을… 어머니인 나의 슬픔이 그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고…" "아닙니다, 마님, 그것은…"
"아니, 그렇겠지. 말하자면 그 아이는 이 세상의 슬픔과 괴로움을 작은 목숨에 짊어지고 스러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가 죽은 보람이 없지요." "….." "너무나 짧았던 그 아이의 목숨을 허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군요. 카요 님,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님!" "불쌍한 목숨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타마코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카요는 죽은 아기보다도 타마코에게 거듭되는 불행에 가슴이 아팠다. 부모, 형제 일족이 멸망하고, 남편과 자식과 헤어지고, 게다가 이제 막 태어나려던 생명마저 잃은 것이다. 카요에게는 위로할 말조차 없었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미토노의 봄(味土野の春)18-3
3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뚫리자 카와키타 이와미(河喜多石見)와 이케다 로쿠베에(池田六兵衛)가 사산 소식을 타다오키에게 전했다. 타다오키에게서 역시 편지는 없었으나, 쌀, 생선, 해조류 등과 함께 한 장의 탄자쿠(短冊, 시를 적는 종이)가 전달되었다. 카와키타 이와미는 탄자쿠를 정중하게 바치며 타마코에게 전했다.
"아직 하시바 도노의 눈초리가 엄혹한 때라, 전하께서는 여전히 편지를 자제하시는 모양새입니다만, 몸을 부디 보중하시라는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탄자쿠에는 그리운 타다오키의 필적으로,
시들어 버린 듯 보이는 풀도 싹도
다시 움트는 봄을 만나게 될 터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오
라고 읊어져 있었다. 한 번 읽고 타마코는 참지 못해 오열했다. 타다오키의 마음이 열 달 만에 닿은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의 말이었다. 서른한 자의 시에 실린 타다오키의 마음이, 견디고 견뎌온 타마코의 외로운 마음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사산한 딸아이를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봄을 만날 터이니) 라고 타다오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봄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 좋다, 그날이 언제이든 타다오키 역시 타마코를 다시 맞이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말만으로도 타마코는 충분히 격려받고 위로가 되었다. 타다오키의 소식을 기다리며 열 달 동안 그저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것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에 띄게 타마코는 기운을 되찾아 갔다.
겨울을 넘긴 미토노는 지금,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새들이 지저귀는 한가로운 봄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예의 바름과 온화한 성품도 알게 되어, 타마코에 대한 경계도 한층 더 풀렸다. 외지인이 습격해 오지 않는 한 타마코의 신변은 안전했다. 자연스럽게 타마코의 외출 자유도 인정되었다.
그것은 철들었을 때부터 성안에서 자라 성안을 세계로 알고 살아온 타마코에게 너무나 신선한 생활이었다. 타마코는 카요나 소노를 동반하여 때때로 밖으로 나갔다. 저택 아래 연못 근처라면 혼자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물론 요충지마다 남성의 무사들이 경계하는 눈길이 있었다. 연못가에 큰 벗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카요의 권유로 타마코는 벚나무 아래로 왔다. 옅게 낀 구름 아래 희게 피어난 벚꽃은 그 윤곽도 아련하게 하늘에 번져 보인다. 연못 물에 벚꽃과 타마코, 카요의 모습이 거꾸로 비치는 것도 아름다웠다. "성의 벚꽃은 절정이 지났을 때이겠지요."
카요가 말했다. 타다오키의 시가 전달된 이후로는 성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도 더 이상 금기가 아니었다. "그 정원에 꽃잎이 일면에 흩날려 깔려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타마코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장아장 어린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풀이 돋아나는 오솔길을 세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머, 귀여워라." 타마코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얼굴에 흙을 묻힌 어린아이는 멈춰 서서 멍하니 타마코와 카요를 올려다보았다. "이리 오렴." 타마코가 손을 내밀자 어린아이는 덧없이 웃으며 순순히 안겼다. "어머나, 마님!" 얼굴도 손도 흙으로 더러워진 어린아이에게 타마코는 사랑스러운 듯 볼을 비벼댔다.
"카요 님, 성을 떠날 때 쿠마치요가 이 아이만했습니다." "예." 카요는 고개를 숙였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타마코는 다시 볼을 비비며 깊은 감정에 젖어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신기한 듯 타마코의 긴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 황송하여라! 황송하여라!" 서른 가까운 여자가 황송해하며 머리를 깊이 숙이고, "스에키치(末吉)!" 하고 꾸짖듯 불렀다. "꾸짖지 마시오." 타마코가 미소를 지었다. 꾸중을 들어도 어린아이는 기쁜 듯 어머니 쪽으로 두 손을 뻗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재빠르게 어린아이를 안아 들고 "실례했습니다" 하며 달아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부러운 일이구려." 모자의 뒷모습을 배웅하던 타마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타마코가 어린아이를 안았다는 소문은 그날로 마을 전체에 퍼졌다. "참으로 자상하신 분이셔." 타마코의 평판은 올라갔다. 소노에게 그 평판을 전해 듣고 타마코는 카요에게 말했다. "자상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쿠마치요가 생각났을 뿐." 카요는 타마코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를 안고 내가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타마코는 지금의 자신에게 어린아이만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 타마코는 어린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이들을 보면 말을 걸고, 안아 올리고, 소매 속에 숨겨둔 과자 등을 주었다. 점점 아이들은 타마코의 모습을 보면 곁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타마코의 모습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메지로(女城)의 정원까지 놀러 오는 아이조차 있었다.
그런 모습을 항상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하츠노스케(初之助)를 타마코가 알 리 만무했다. 5월 말에 이르러 저택에 놀러 오던 아이들의 모습이 며칠 동안 딱 끊겼다. "카요 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까닭일까요?" 아이들을 위해 호소카와 가문에서 보내온 설탕으로 콩 등을 졸여놓고 기다리던 타마코가 외롭게 말했다.
"예, 실은 아이들 사이에 역병(疫病-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역병이요? 그거 큰일이군요!" 타마코는 안색이 변했다. 즉시 카요를 거느리고 타마코는 병든 아이들을 문병하러 다녔다. 병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배를 문지르며 타마코는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그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러나 아이들 중 세 명 정도가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타마코는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일처럼 슬퍼했다. "어째서 저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카요 님, 정말로 신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신은 어째서 나를 위로하는 것들을 차례차례 빼앗아 가는 것입니까?" "마님,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신의 뜻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나의 자그마한 행복조차 질투한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렇치 않습니까, 카요 님. 저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어떻게든 건져낼 방도는 없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슬퍼하는 타마코의 기세에 눌려 카요는 말문이 막혔다. 마을 대표가 찾아왔다.
"이 무슨 재앙이란 말입니까. 이에 부탁이 있사옵니다. 부처님처럼 자비로우신 마님의 영험한 시를 받는다면 이 무서운 전염병도 물러가지 않을까 하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사옵니다." 간절히 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타마코는 붓을 들었다.
어찌 감히 미모스소가와의 물줄기를 이어받은 사람에게 역병의 신이 재앙을 내리겠는가
(いかでかは御裳濯川の流れくむ
人にたたらむ疫癘の神)
마을 가구 수만큼 종이에 써서 건네주자, 마을 대표는 몇 번이고 절을 하고 돌아갔다. "저런 종이가 병을 퇴치할 리가 있겠습니까." 타마코는 카요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종이를 마을 사람들이 집 문앞에 붙이자, 희한하게도 전염병이 물러갔다. 즉시 마을 사람들이 야채와 민물고기를 가지고 메지로(女城)로 감사를 표하러 왔다.
"참으로 영험하기 그지없는 시였습니다. 마님께서는 부처님의 화신이 아니신지요!" 마을 사람들이 타마코를 보는 눈이 공경으로 바뀌었다. 타마코는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카요 님, 나의 시 따위에 영험이 있다고는 믿기지 않아요. 그대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 종이에 적은 시에 영험이 있다고는 데우스(하나님) 신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마님께서는 진심으로 마을 아이들의 전염병을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그 진실함이 신께 닿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생각하는 진심이라면 그 아이들의 부모가 훨씬 더할 터인데요." 타마코는 웃었다.
"예, 그 부모님들의 진심과 마님의 진심이 신께 닿은 것이라고 카요는 믿습니다." "그대는 신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나에게는 신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째서 믿지 못하십니까?" 카요는 그 맑은 눈을 근심스럽게 타마코에게 두었다. "죄 없는 어린아이가 죽거나 약한 여자가 괴로워하는 이 세상에 신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요…"
"마님, 착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보응이 있고, 나쁜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쁜 보응이 있다면, 사람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신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연, 선인선과(善因善果)라면 좋은 일만 하고 있으면 그걸로 일이 끝난다는 말이 되는군요." 타마코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귀관(帰館) 19-1
6월, 타마코는 미토노에서 아버지 미츠히데를 비롯해 어머니, 언니, 남동생들의 1주기를 맞이했다. 한편 이달 2일, 노부나가의 1주기를 이른 아침에 마친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날로 오사카성에 처음 입성했다. 당시는 아직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를 오사카성으로 삼고 있었다. 타다오키가 오사카성의 히데요시에게 설탕을 바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8월이었다.
히데요시는 4월에 시바타 카츠이에를 멸망시키고, 5월 2일에는 적대했던 노부나가의 셋째 아들 노부타카마저 오와리 노마의 우츠미에서 자결하게 했다. 노부타카는, ----옛날부터 주군을 쳤던 노마(野間)이거늘, 치쿠젠(筑前)이여 응보를 기다려라, 하시바 치쿠젠---- 이라는 사세(辞世)의 시를 남기고, 히데요시에 대한 원한 속에서 죽었다. 26세였다. 노마는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우츠미의 오사다 타다무네에게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