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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7:15-25(p.976) 그 날이 온다(In that day)
‘디-데이’(D-Day)라는 말이 있습니다. ‘디-데이’라는 말은 ‘중요한 작전이나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로 정한 날을 말합니다.·
‘디-데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어진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이, 북 프랑스 반격개시일을 정했을 때 ‘디-데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디데이’는 1944년 6월 6일었습니다. ‘디-데이’가 정해지면 ‘카운트에 들어갑니다. ‘디데이 8일 전’ ‘디데이 7일 전’ ‘디-데이 5일 전’하고 작전을 개시할 날이 몇일 남았는가를 헤아려보고,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하게됩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한군은 ‘폭풍’이라는 암호명으로 남침을 감행 하였습니다. 우리 국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뺐겼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낙동강을 넘어 포항까지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연합군의 사령관 맥아더장군은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지 않게되면 부산까지 밀려날 것을 알고는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허리 부분인 인천으로 연합군이 상륙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름하여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의 ‘디-데이’로 1950년 9월15일 밤 10시로 정했습니다.
7만5000명의 연합군과 261척의 함정을 투입하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디-데이’를 정하고 하루 하루 ‘디-데이’를 향하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수도 생길수 있습니다. 디-데이 전에 태풍이 온다든지, 지진이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작전에 중심에 있는 사령관이 사망을 한다든지 하게되면 ‘디-데이’가 취소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디-데이’를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단11장에는 앞으로 다가올 나라들을 미리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의 반복이 계속되는데, 이렇게 나라가 일어나고, 그리고 사라지는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시는데....., 그 모든 나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오시는데 그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런 나라 저런 나라가 등장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세계에는 수백의 나라가 있으며, 여러나라들이 얼키고 설켜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갑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이리 구비치고 저리 구비쳐 내려갈지라도 결국은 바다로 들어갑니다. 인간들의 삶이 자기들 끼리 이리 저리 부닥끼고, 자기들의 계획과 의지대로 살아가지만 그 배후에는 결국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목표지점을 향하여 가게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 역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그 방향을 향하여 가도록,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을 향하여 가도록 하나님은 역사(歷史)의 방향키를 잡고 운전하고 계십니다.
다니엘 10장과 11장의 큰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완전히 통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예언은 역사 속에서 정확히 실현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역사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통치해 가고 계십니다. 나라마다 권세와 부를 쟁취하기 위하여 싸움이 그치지 않지만, 그러나 세상나라들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날’이 있습니다. 심판의 ‘그 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심판을 죄인들을 대신 담당하시고 속죄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그 날’이 있으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십시다.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날’을 생각해야 우리는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며 믿고 의지하게 되며,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을 거룩하게 경건하게 깨어있어 기도하며 살 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에는 ‘그 날’이라는 말씀이 4번이나 등장합니다. 여기서의 ‘그 날’은 좋은 의미의 ‘그 날’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災殃)의 날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끌고 가셨는가를 기록한 것이 세상 역사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역사라는 말을 히스토리(history)라고 하잖습니까? 히스토리라는 말은 두단어의 합성어입니다.
〔history〕에서, [His]는 ‘그’의 그리고. [story]는 이야기 라는 말이잖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그’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레서 역사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을 주전(主前)이라 하고, 약어로는 [B.C]로 씁니다. [B.C]는, [before Christ]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테어나시기 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후를 주후(主後)라 합니다. 주후라는 말은, [A.D]로 표기합니다. [A.D]는 라틴어 [Anno Domini]라는 말의 약자입니다. [Anno Domini]라는 말은 [예수님의 해]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그때를 1년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분기점을 나누는 것도 예수님이 오시기전과 후로 나눌정도로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는 마음을 좀더 숙연하게 하면서 좀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 먼저 15절 말씀을 봅니다.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어린 아기가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줄 알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하였는데, 어린아기가 무엇이 악한 것인지, 선한 것인지를 분별하여 선을 택할려면 적어도 3살은 넘어야 가능합니다. 우리나이로는 4살이나 5살이 돼야 합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무엇이 악인지 선인지를 알지 못하여 죄악 중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는 엉긴 젖이나 꿀 같은 것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죄 가운데 살고있을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한 것인지, 또는 악한 말인지, 또는 악한 행동인지를 분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택할 때 하나님은 엉긴 젖과 같은 충만한 은혜를 주시며 꿀과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 16절 말씀을 봅니다.
16. 대저 이 아기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미워하는'은 문자적으로는 '두려워하는'입니다. 유다의 아하스 왕과 유다백성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두 나라는 [암몬 나라]와 [에브라임]입니다.
암몬과 에브라임이 연합군을 만들어 쳐들어오려했을 때, [아하스왕과 유다 백성들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그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겁을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경외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나머지 문제는 하나님이 모두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암몬과 에브라임은 훗날 폐망하였습니다. 65년 내에 에브라임은 앗수르 라는 나라에 망했습니다. 암몬도 마찬가지로 망했습니다.
아람이라는 나라는...,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수도는 현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하며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침략해 괴롭힌 나라입니다. 이 아람나라도 훗날 신(新)앗시리아 제국에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하스왕이나 백성들은 죄를 버리고 선을 택하기만 하면 지금의 강대국들을 다 처리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까? 두려운 것이 있습니까? 선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여 택하여 그 길에 순종하고 그 길에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하스왕도 유다 백성들도 벌벌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면 전쟁의 두려움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말씀을 찾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17절 말씀을 봅니다.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비록 암몬나라와 에브라임이 황폐하게되므로 이 두나라의 위협은 없어질 것이지만, 유다 나라에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앗수르]로 부터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유다나라의 아하스왕은 앗수르 나라가 자기를 도와줄 것을 철썩 같이 믿고, 하나님을 찾으려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는데, 그 앗수르로 인하여 유다나라 백성들이..., 이제까지 당해보지 못한 큰 재앙을 앗수르 나라를 통해 받게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믿을 것을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 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 그대로 우리의 발등을 찍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한가지는,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을 하시다가 갑자기 심판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하스 왕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앞의 10절 말씀에서 12절 말씀 까지를 보겠습니다.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믿음이 아주 좋아서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다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집사님 기도하세요’하고 말할 때 속으로 ‘기도는 뭐’ 하고 말한다면 믿고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돈을 빌려준다’했거나, 권력있는 친척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해결해줄게 했다’든지 했기 때문에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단단히 있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하스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떨고만 있는 아하스 왕에게 도와주겠다 ‘못믿겠으면 징조를 구하라 어떤 징조를 구하든지 징조를 보여주겠다’]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앗수르]라는 대제국을 지금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앗수르 나라]가 [아람나라]와 [북이스라엘 나라]를 쳐부숴 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불신앙에 대한 심판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믿고 사는 것을 두고보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그냥 두면 영영 저주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새가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새 중의 왕이라고 하는 독수리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을 독수로 비유한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려고 찾아오시는 곳이 어디일까요? 우리가 어디 있을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실까요?
우리들이 오성급 호텔에서 날마다 최고의 세프가 만든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저녁이면 호텔의 여러 유흥장에서 춤을 추고,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그러다가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면서 즐겁게 지내는 그곳으로는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으로 찾아오시면 우리들이 만나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황무지처럼 외로울 때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 그곳으로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가 같은 처지에 빠졌어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황무지에서...., 그리고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떨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계속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렇게만 우리들에게 헤주신다면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는 마마보이가 됩니다. 장가를 간 후에도 엄마만 찾는 그런 마마보이로 우리를 하나님은 키우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양육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하시는가 말씀하셨습니다.
독수리를 자기 새끼를 모질게 훈련을 시킵니다. 절벽 바위틈에 집을 짓는데 제일 밑에는 가시나무 가지를 물어다가 얼기설기 둥지를 틀고 그 위에는 토끼 같은 짐승의 가죽을 덮고 그 위에 자기 가슴에서 털을 뽑아 푹신푹신하게 깔아놓고 알을 까서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키웁니다.
이제 웬만큼 자라면 새끼를 등에 업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떨어뜨리면 새끼는 죽는 줄 알고 죽을 힘을 다 써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보다가 기진맥진하여 저 밑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어미가 지켜보다가 떨어지기 전에 쏜살같이 내려가 다시 등에 업고 높이 올라가서 또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혼이난 새끼 독수리는 다음에는 어미가 다시 등에 엎으려하면 새끼 독수리를 그 훈련을 받기 싫어서 푹신 푹신한 둥지에만 앉아있으려고 뒷걸음질만 칩니다. 심지어 푹신 푹신한 둥지를 두발로 움켜쥐고는 어미 등에 엎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미는 하는 수 없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부드러운 털도 흩어버리고 그 밑에 있는 짐승의 가죽도 들어내어 내던져 버립니다. 그러면 그 밑에 가시나무만 남으니까 찔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하는 수없이 어미 등에 업혀서 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를 편안한 보금자리에 앉아만 있게 하지 않고 그 날카롭고 무서운 발톱으로 둥지를 다 흩어버리고 혹독한 훈련을 시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날도 독수리와 같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우리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무섭게 흩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리 저 높은 곳, 천국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독수리같이 세상을 뒤로 박차고,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올라갈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며, 하나님의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를 우리에게 주셨지 않습니까?”
⤳ 18절과 19절 말씀으로 넘어가시겠습니다.
18.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19.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유다를 괴롭힐 침략군에는 앗수르 뿐만 아니라 애굽도 첨가됩니다. 선지자는 애굽을 파리로, 앗수르를 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일 강을 끼고 있는 애굽에는 인간에게 해(害)를 끼치는 많은 종류의 곤충들, 그중에서도 특히 파리가 많았습니다. 많은 산과 숲으로 우거진 앗수르에는 벌떼가 많았습니다.
파리와 벌이 한두마리 일때는 한갓 미물에 불과하지만 떼를 이루어 덤벼들때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 피해가 막심할 수 있습니다. 파리는 전염병을 옮깁니다. 벌은 사람을 공격합니다. 애굽과 앗수르가 가져다줄 피해가 막심할 것을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경고는 흘러들을 것이 아니라 그 경고를 주시는 분에게 대책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는 것을 회개하고 전적으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가 [니느웨]라는 도시입니다. [니느웨]는 현재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그 당시로는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하나님은 자연을 만드셨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죄가 더 많아집니다. 니느웨는 큰 도시답게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니느웨 성읍을 하루 동안 다니면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하고 외쳤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외침을 듣고는,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에 들어갔습니다. 왕궁의 왕에게도 이 소문이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습니다.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경고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게되면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십니다. 소돔성에는 이렇게 가슴을 치며 회개할 의인 열명이 없었어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 20절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0.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20절 말씀부터 [그 날]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심판의 날입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와 세상 나라를 믿고 교만한 아하스왕과 유다에 임할 재앙의 날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한 것은 아하스왕과 유다 백성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수치스러운 모습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치스러운 ‘그 날’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유다 나라는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 나라에게 화를 당했습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자 유다 왕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달라는 것을 내가 전부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앗수르] 왕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에게 내게 하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내어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왕하 18:13-16).
좀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유다나라의 왕은 껍떼기가 홀랑 벗기게 된 것입니다. 이런 유다 나라에 이런 치욕적인 일이 ‘그 날’에 마침내 일어났었던 것입니다.
⤳ 21절 말씀으로 넘어가시겠습니다.
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그 날에는...., 즉 하나님이 심판하는 날에는 아하스왕과 유다 백성들에게는 땅이 황무하게 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의 소유물은 겨우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에 불과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엉긴 젖을 먹고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하였는데, 무슨 말입니까? 이는 인구 감소로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에게서 짠 젖도 먹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양 젖이 엉킨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숭배하며 세상 나라를 의지하게 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되는 [그 날]이 다가 오게됩니다.
⤳ 마지막으로 23절에서 25절까지 봅니다.
23.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24.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
[그 날]..., 즉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가 자라고 가시나무가 자랄 것이라 하였습니다.
'은 일천 개'는 아주 큰 돈입니다. 은 일천개의 가치가 있던 포도나무는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말합니다. 최상품의 포도나무가 가득하던 포도원이 가시로 뒤덮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라는 나라를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구하지 않았던 결과는 땅이 황무히게될 정도로 전쟁으로 폐하게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실제로 유다 나라는 도움을 청했던 앗수르에 의하여 큰 재앙에 빠지게됩니다.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라는 말은 극상품의 포도나무로 이루어져있던 그 포도원이 완전히 황폐하게되어 찔레가 무성하고 가시가 무성하게되어 짐승들의 거쳐가 되어 있었으므로 화살을 갖고 사냥하려고 사냥꾼들이 몰려들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도록,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극상품의 포도나무처럼 은혜를 주셨음에도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 보다는 세상 나라를 의지하고 그리고 우상을 의지한 결과는 하나님의 그 날.., 즉 심판의 디데이가 되는 날에 이처럼 황폐하게 되어 이 나라 저 나라가유대나라를 사냥감으로 삼게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신을 차립시다. 깨어 근심합시다. 우리들의 심령이 사탄의 사냥터가 되지 못하게 합시다. 우리의 교회와 직장과 가정이 사냥터가 되지 못하도록 하나니믜 말씀으로 항상 갈아엎어 잡초를 재거하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로 능력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는 말씀은 유다 나라는 포도나무로 상징되는 농업 경제를 자랑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제는 소와 양으로 상징되는 유목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선지자가 본 유다의 미래 모습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 날'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그 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라 상받는 '그 날'이 될 것입니다. "아멘 주 에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그 날'을 기다렸던 밧모섬의 요한 처럼 우리들 역시 '그 날'은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그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 하며 삽시다. 하나님 외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든든하게 생각하신다면..., 그 믿고 있는 것이 우리의 발등을 찍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낮이든 밤이든 읊조리며 되뇌이며 삽시다.
기도가 우리의 호흡이 되고 말씀이 저아 여러분의 양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날이 우리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복된 날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