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崔濟愚) 1824(순조24) ~ 1864(고종1)
조선 말기 동학의 창시자. 호는 수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경북 월성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한학을 배운 다음
울산에 내려가 무명 옷감 장사를 하였다.
1844년부터 1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후, 어지러운 나라와 병든 사회를 바로 잡겠다느
결심을 하고 울산에 돌아가 암자를 짓고 도를 닦았다.
1859년 새로운 종교 '동학'을 창시하였다. 동학은 기독교의 정신과 유교·불교·도교 등의
동양사상에 민간신앙을 결합한 것으로, '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최제우는 동학의 교리를 세우고 전국적으로 포교활동을 펼쳐, 농민·천민·
유생에 이르기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나가자 조정에서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종교라하여
1863년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 세력은 더욱 퍼져 동학혁명과 3.1운동에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민족 운동의 기틀이 되었다.
1907년 그의 죄는 풀리고 동학은 오늘날 '천도교'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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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崔時亨, 1827∼1898)
동학 제2대 교주로 본관은 경주(慶州),
1861년(철종 12) 동학에 입교하여 최제우(崔濟愚)에게 가르침을 받고 1863년 제2대 교주가 되었다.
이듬해 최제우가 처형당하자 동학 재건에 힘썼으나, 71년 이필제(李弼濟)의 민란과 관련하여 당국의 탄압을
받게 되면서 이후 평생을 계속 피신하며 은둔 생활을 하였다.
동학 포교를 위해 최제우가 저술한 동경대전(東經大全),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였다.
이후 충청도 보은군(報恩郡)으로 본거지를 옮겨 보은 장내리(帳內里)를 동학 중심지로 삼았다.
1892년부터 교조신원(伸寃)을 명분으로 하여 3차에 걸친 합법적 교조신원운동을 벌였다.
1894년(고종 31) 남접의 전봉준(全봉準) 등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무력행동을 반대하여 만류하였으나,
그후 이에 호응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94년 동학운동이 실패하자 피신생활을 하며 포교에 전력하였다.
1898년 교도 송경인(宋敬仁)의 밀고로 체포되어 사도난정(邪道亂正)이라는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전국적인 봉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40여년에 걸친 도피생활을 통해 동학사상을
전파하고 동학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킨 최시형의 숨은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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