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의 역사는 기록상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 한편 한국의 수박·권법을 전해받은 일본은 16세기경 ‘유술(柔術)’이라는 특유의 무예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유도로 정착시켰다.
고종 때 ‘유술’이라는 말이 등장하였고, 1906년 우찌다 도장[內田道場]이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에 일본식 건물의 공장을 이용하여 도장이 운영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로는 유창호(柳昌浩)가 저술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유도연맹은 1948년 10월 28일 정식으로 창설하였으며, 1950년 11월 KUA(Korea Judo Association:대한유도회)로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30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으며, 1956년 5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에 가입하였고, 같은해 5월 JUA(Judo Union Asia:아시아유도연맹)에 가입하였다
온몸을 사용하여 2명의 선수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공격해오는 상대를 힘의 역학으로 허점을 찔러 승패를 겨루는 격투경기이다. 현대 유도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의 정관 제1조 3항에 ‘The IJF recognizes Judo, as a system of physical and mental education created by Jigoro Kano, which also exist as a Olympic sport’라고 하여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에 의해 심신의 교육체계로 창안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올림픽종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적인 유도경기단체인 IJF는 1951년 유럽 13개국, 범아메리카 4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 아시아 1개국 등 총 19개 회원국으로 결성되었다. 1999년 10월 현재 아프리카 40개국, 아시아 36개국, 유럽 50개국, 오세아니아 16개국, 아메리카 40개국 등 182개국의 회원국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1956년 5월 가입하였다.
세계대회는 1956년에는 도쿄[東京]에서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1960년 제17회 로마 올림픽경기대회 총회에서는 유도가 올림픽 선택종목으로 결정되어 1964년 제18회 도쿄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개최되기 시작하여 국제적인 경쟁스포츠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IJF의 설립으로 인해 현재 전세계를 통해 유도에 대한 이익보호와 5개 대륙연맹의 협조 아래 올림픽경기대회의 유도경기뿐만 아니라 2년마다 세계선수권대회·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리며, 또한 4년마다 월드컵대회를 개최하여 전세계에 유도를 조직화하고 유도의 정신과 기술을 발전보급하며, 유도의 국제규정을 제정하고 있다.
1. 한국
한국 유도의 역사는 기록상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 한편 한국의 수박·권법을 전해받은 일본은 16세기경 ‘유술(柔術)’이라는 특유의 무예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유도로 정착시켰다.
고종 때 ‘유술’이라는 말이 등장하였고, 1906년 우찌다 도장[內田道場]이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에 일본식 건물의 공장을 이용하여 도장이 운영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로는 유창호(柳昌浩)가 저술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유도연맹은 1948년 10월 28일 정식으로 창설하였으며, 1950년 11월 KUA(Korea Judo Association:대한유도회)로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30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으며, 1956년 5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에 가입하였고, 같은해 5월 JUA(Judo Union Asia:아시아유도연맹)에 가입하였다.
한편 남자유도 못지 않게 여자유도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국내 여자유도의 효시는 1934년 5월 조선연무관(朝鮮硏武館)에 입문한 윤명신(尹明信)이었다. 1978년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에 여자부가 신설되면서 1979년 7월에 개최된 제4회 성곡기쟁탈 전국유도대회에 국내 유도사상 최초로 여자유도단체전의 경기출전이 인정되었다. 한국이 세계규모 여자선수권대회를 처음 파견한 것은 1982년 12월 프랑스 파리(Paris)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였다.
주요 국제대회의 전적을 보면, 1964년 제18회 도쿄[東京]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김의태(金義泰)가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1967년 8월 제5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박청삼(朴淸三)과 김병식(金昞植)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해 8월 25일부터 도쿄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개인 6체급과 단체전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2회 아시아 유도선수권대회에서 특기할 것은 중량급에서 최규본(崔圭本)이 일본 선수를 누르고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일이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안병근(安炳根)·하형주(河亨柱)가 금메달을,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김재엽과 이경근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5년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2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한편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여자부에서 김미정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남자 81㎏급의 조인철이 은메달, 여자 63㎏급의 정성숙, 여자 70㎏급의 조민선, 여자 78㎏급 이상의 김선영이 각각 동메달에 그쳤다.
2. 기본기술
유도에서는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 방법인 자연체를 중요시하며, 상대의 강한 힘에 맞서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순응하면서 그 힘을 역이용하여 상대의 허점을 찔러 제압하는 것이 유도의 기본기술의 원리이다. 유도의 기술은 메치기·굳히기·급소찌르기의 3가지로 대별되는데, 그 가운데 급소찌르기는 위험한 기술이어서 경기에서는 제외되었다.
메치기는 상대편이 자세를 기울이면 기술을 걸어 어깨로 메치거나 쓰러뜨리는 방법으로, 유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각 기술을 세분하면, 손기술로는 띄어치기·업어치기·어깨로 메치기, 허리기술로는 허리띄기·허리후리기·허리채기, 발기술로는 모두걸기·발목받치기·허벅다리걸기, 바로누우면서 메치기 기술로는 배대뒤치기·누우면서 던지기·안오금띄기, 모로 누우면서 메치기 기술로는 모로걸기·모로돌리기·모로띄기 등이 있다.
굳히기에는 누르기·조르기·꺾기의 3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연습이나 경기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고 위에서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누르기를 중심으로 연결하며, 손이나 팔뚝으로 상대의 목을 제압하는 조르기에는 외십자조르기·맨손조르기·안아조르기·죽지걸어조르기·역십자조르기가 있다.
또한 상대의 관절을 젖히거나 비트는 꺾기에는 팔얽어비틀기·가로누워팔꺾기·어깨대팔꺾기 등이 있다. 급소찌르기는 상대의 급소를 치거나 지르거나 차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위험하여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허공을 지르거나 차거나 치다가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하여 연습한다.
이밖에 중요한 기술의 하나로 자기 몸을 잘 보호할 수 있는 낙법이 있다. 낙법에는 후방낙법·측방낙법·전방낙법·전방회전낙법·장애물넘기낙법 등이 있으며, 충분히 연습을 한 다음 선기술 수련에 임해야 한다.
유도의 역사
한국 유도의 역사는 기록상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 한편 한국의 수박·권법을 전해받은 일본은 16세기경 ‘유술(柔術)’이라는 특유의 무예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유도로 정착시켰다.
고종 때 ‘유술’이라는 말이 등장하였고, 1906년 우찌다 도장[內田道場]이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에 일본식 건물의 공장을 이용하여 도장이 운영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로는 유창호(柳昌浩)가 저술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유도연맹은 1948년 10월 28일 정식으로 창설하였으며, 1950년 11월 KUA(Korea Judo Association:대한유도회)로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30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으며, 1956년 5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에 가입하였고, 같은해 5월 JUA(Judo Union Asia:아시아유도연맹)에 가입하였다.
온몸을 사용하여 2명의 선수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공격해오는 상대를 힘의 역학으로 허점을 찔러 승패를 겨루는 격투경기이다. 현대 유도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의 정관 제1조 3항에 ‘The IJF recognizes Judo, as a system of physical and mental education created by Jigoro Kano, which also exist as a Olympic sport’라고 하여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에 의해 심신의 교육체계로 창안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올림픽종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적인 유도경기단체인 IJF는 1951년 유럽 13개국, 범아메리카 4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 아시아 1개국 등 총 19개 회원국으로 결성되었다. 1999년 10월 현재 아프리카 40개국, 아시아 36개국, 유럽 50개국, 오세아니아 16개국, 아메리카 40개국 등 182개국의 회원국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1956년 5월 가입하였다.
세계대회는 1956년에는 도쿄[東京]에서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1960년 제17회 로마 올림픽경기대회 총회에서는 유도가 올림픽 선택종목으로 결정되어 1964년 제18회 도쿄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개최되기 시작하여 국제적인 경쟁스포츠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IJF의 설립으로 인해 현재 전세계를 통해 유도에 대한 이익보호와 5개 대륙연맹의 협조 아래 올림픽경기대회의 유도경기뿐만 아니라 2년마다 세계선수권대회·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리며, 또한 4년마다 월드컵대회를 개최하여 전세계에 유도를 조직화하고 유도의 정신과 기술을 발전보급하며, 유도의 국제규정을 제정하고 있다.
1. 한국
한국 유도의 역사는 기록상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 한편 한국의 수박·권법을 전해받은 일본은 16세기경 ‘유술(柔術)’이라는 특유의 무예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유도로 정착시켰다.
고종 때 ‘유술’이라는 말이 등장하였고, 1906년 우찌다 도장[內田道場]이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에 일본식 건물의 공장을 이용하여 도장이 운영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유도 저서로는 유창호(柳昌浩)가 저술한 《조선무도관유도대의(朝鮮武道館柔道大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유도연맹은 1948년 10월 28일 정식으로 창설하였으며, 1950년 11월 KUA(Korea Judo Association:대한유도회)로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30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으며, 1956년 5월 IJF(International Judo Federation:국제유도연맹)에 가입하였고, 같은해 5월 JUA(Judo Union Asia:아시아유도연맹)에 가입하였다.
한편 남자유도 못지 않게 여자유도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국내 여자유도의 효시는 1934년 5월 조선연무관(朝鮮硏武館)에 입문한 윤명신(尹明信)이었다. 1978년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에 여자부가 신설되면서 1979년 7월에 개최된 제4회 성곡기쟁탈 전국유도대회에 국내 유도사상 최초로 여자유도단체전의 경기출전이 인정되었다. 한국이 세계규모 여자선수권대회를 처음 파견한 것은 1982년 12월 프랑스 파리(Paris)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였다.
주요 국제대회의 전적을 보면, 1964년 제18회 도쿄[東京]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김의태(金義泰)가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1967년 8월 제5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박청삼(朴淸三)과 김병식(金昞植)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해 8월 25일부터 도쿄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개인 6체급과 단체전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2회 아시아 유도선수권대회에서 특기할 것은 중량급에서 최규본(崔圭本)이 일본 선수를 누르고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일이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안병근(安炳根)·하형주(河亨柱)가 금메달을,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김재엽과 이경근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5년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2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한편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여자부에서 김미정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남자 81㎏급의 조인철이 은메달, 여자 63㎏급의 정성숙, 여자 70㎏급의 조민선, 여자 78㎏급 이상의 김선영이 각각 동메달에 그쳤다.
2. 기본기술
유도에서는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 방법인 자연체를 중요시하며, 상대의 강한 힘에 맞서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순응하면서 그 힘을 역이용하여 상대의 허점을 찔러 제압하는 것이 유도의 기본기술의 원리이다. 유도의 기술은 메치기·굳히기·급소찌르기의 3가지로 대별되는데, 그 가운데 급소찌르기는 위험한 기술이어서 경기에서는 제외되었다.
메치기는 상대편이 자세를 기울이면 기술을 걸어 어깨로 메치거나 쓰러뜨리는 방법으로, 유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각 기술을 세분하면, 손기술로는 띄어치기·업어치기·어깨로 메치기, 허리기술로는 허리띄기·허리후리기·허리채기, 발기술로는 모두걸기·발목받치기·허벅다리걸기, 바로누우면서 메치기 기술로는 배대뒤치기·누우면서 던지기·안오금띄기, 모로 누우면서 메치기 기술로는 모로걸기·모로돌리기·모로띄기 등이 있다.
굳히기에는 누르기·조르기·꺾기의 3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연습이나 경기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고 위에서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누르기를 중심으로 연결하며, 손이나 팔뚝으로 상대의 목을 제압하는 조르기에는 외십자조르기·맨손조르기·안아조르기·죽지걸어조르기·역십자조르기가 있다.
또한 상대의 관절을 젖히거나 비트는 꺾기에는 팔얽어비틀기·가로누워팔꺾기·어깨대팔꺾기 등이 있다. 급소찌르기는 상대의 급소를 치거나 지르거나 차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위험하여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허공을 지르거나 차거나 치다가 모래주머니 등을 이용하여 연습한다.
이밖에 중요한 기술의 하나로 자기 몸을 잘 보호할 수 있는 낙법이 있다. 낙법에는 후방낙법·측방낙법·전방낙법·전방회전낙법·장애물넘기낙법 등이 있으며, 충분히 연습을 한 다음 선기술 수련에 임해야 한다.
한편 남자유도 못지 않게 여자유도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국내 여자유도의 효시는 1934년 5월 조선연무관(朝鮮硏武館)에 입문한 윤명신(尹明信)이었다. 1978년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에 여자부가 신설되면서 1979년 7월에 개최된 제4회 성곡기쟁탈 전국유도대회에 국내 유도사상 최초로 여자유도단체전의 경기출전이 인정되었다. 한국이 세계규모 여자선수권대회를 처음 파견한 것은 1982년 12월 프랑스 파리(Paris)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였다.
주요 국제대회의 전적을 보면, 1964년 제18회 도쿄[東京]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김의태(金義泰)가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1967년 8월 제5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박청삼(朴淸三)과 김병식(金昞植)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해 8월 25일부터 도쿄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개인 6체급과 단체전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2회 아시아 유도선수권대회에서 특기할 것은 중량급에서 최규본(崔圭本)이 일본 선수를 누르고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일이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안병근(安炳根)·하형주(河亨柱)가 금메달을,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김재엽과 이경근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5년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2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한편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여자부에서 김미정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남자 81㎏급의 조인철이 은메달, 여자 63㎏급의 정성숙, 여자 70㎏급의 조민선, 여자 78㎏급 이상의 김선영이 각각 동메달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