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감사하라
시편 136:1-9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다른 점이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생각한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요소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고린도전서 13장13절을 가르치면서
그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3가지의
큰 덕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은 바로 ‘감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말을 설명하면서
이 말씀이야말로 인간이 완전에 도달한
실제적인 경험담이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즉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인간의 최고의
덕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가 중요하고
필요함에도 감사하는 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평은 가르치지 않아도 잘하면서
감사는 열심히 가르치고 힘을 써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우리들 주변에
배은망덕한 모습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청년이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한창 뛰어다녀야 할 청년이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강사님에게 안수를 받고 정말로
감쪽같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모두가 신기해서 그 청년을
보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 낮 예배 때
교인들에게 간증을 하기로 해서
주보에 그 소식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결국 간증의 시간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어찌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오랜만에 걸어보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주일 낮에 도봉산에 등산을 갔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이것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여건이 생기면 감사하고 좋지 못한
여건이 생기면 불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별히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았기에
감사하고 그렇지 못했기에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 같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어떤 이는 불평하고
어떤 이들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트렌취 감독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컴컴한 길에 조그만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들을 지켜 주시는 하늘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월절과 같은
큰 절기에 제사장과 회중이 교독하면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라고
제사장이 외치면,
회중들은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라고 명령을 한 후
그 다음으로 감사할 근거를
제사장이 선언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응답하는 노래입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가 불타오릅니다.
우리들 마음에 감사가 얼마나 있습니까?
기왕이면 감사를 넘치게 하시길 바랍니다.
얼마든지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항상 감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카페 게시글
은혜&간증나눔
[은혜와간증] 여호와께 감사하라 (2024.06.17 월)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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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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