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25.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5:12~21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9) 당신에게는 간증이 있습니까?
1. 간증
‘간증’이란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것’(국어사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 경험한 것들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믿음의 자녀의 삶에는 하나님 경험의 간증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간증이 있습니까?
아마 있는 분들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간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신앙이 힘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간증’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간증의 제조일자(?)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3년이 지난 간증은 효과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년 간증이 생길 수 있어야 파워풀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믿음의 자녀는 가장 중요한 모두에게 간증이 있습니다. 그것이 ‘찬305장’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이 이상의 간증과 고백이 있겠습니까? 이 간증으로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일 위험한 신앙(사실은 불신앙)은 “나는 경건하고, 내 신앙을 바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현대적 바리새인들’이라고 부릅니다. 이 현대적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특징을 나타내 보입니다.
첫 번째는 신앙의 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구원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고백하지 못하기에 감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래서 이들은 남들을 정죄하고, “남탓”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12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행 5:12)
성경은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누구 한 사람 여기서 예외는 없습니다. 다 “죄의 종들”(요 8:34)입니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4)
‘내가 왜 죄의 종이지?’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써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에 너무도 부족한 자라는 사실, 그래서 구원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13절’입니다.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행 5:13)
우리에게는 “죄를 안 지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지어 천국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복음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3) 아멘.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그래서 신앙하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또한 하나님의 어떤 영광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요 15:1~2’입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1~2)
그래서 진짜 간증자들은 말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사의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2. 율법의 기능
선을 행한 능력이 전혀 없는 우리, 죄를 이길 힘이 없는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죄와 죽음의 길로 가고 맙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죄와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 조차 망각하고 무덤덤해지는 것입니다. 오후예배 ‘사무엘서강해’의 주인공 다윗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우리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다시 ‘13절’을 읽습니다.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행 5:13)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죄인인줄 깨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 것이 믿음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인 것입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한 ‘요시아’ 왕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그 말씀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백성들이 말씀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도록 선포합니다. ‘대하 34:19~21’입니다.
“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20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1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대하 34:19~21)
우리의 본성은 “각자의 소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벗어나 은혜 가운데 머물려면, 말씀을 통해서 나의 죄를 깨달아가야 합니다.
‘존 파이퍼’목사님은 우리가 ‘초등학생 수준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대학원 수준의 죄와 싸우는 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면(그리고 하나님 없으면) 죄를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오늘부터 주님을 알아갑시다.
주님을 알아가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을 향한 “순종”을 통해서 주님을 알아가고, 그 간증을 쌓아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19절’입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행 5:19)
그래서 순종해야 합니다. 구원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구원의 능력과 간증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순종을 통한 간증을 쌓아가는 백성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믿음의 삶은 반드시 간증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우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증이 없다면, 신앙의 모양을 매우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는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이 죄인됨을 알고, 그 죄를 감당하신 주님을 알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은혜의 고백이 바로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