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칼리아(Philokalia)'라는 말은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 탁월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탁월한 것은 초월적인 삶의 원천이자 진리의 계시로 이해됩니다.
필로칼리아는 4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동방 정교회 전통의 영적 대가들이 기록한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필로칼리아는 18세기에 그리스 아토스 성산의 성 니코디모스와 고린도의 성 마카리오스가
편집한 것으로서 1782년 베니스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두 번째 판본은
1893년 아테네에서 출판되었습다. 세 번째 판본은 아스티르(Astir) 출판사가 1957년부터 1963년 사이에 아테네에서 출판한 것으로서 총
다섯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후 러시아의 수도자 파이시 벨리츠코프스키(Paisii
Velichkovski, 1722―1794)는 필로칼리아의 본문들을 발췌하여 슬라브 말로 번역하고, 도브로톨류비예(Dobrotolubiye)라는 제목으로 1793년 모스크바에서 출판하고, 1822년에 다시 출판하였습다. 이
책은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의 주인공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며 쉬지않고 기도하기 위한 많은 배움을 얻는 바로 그
책입니다. 필로칼리아는 19세기 러시아 사람들의 영성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 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1857년에 이그나티 브리안차니노프(Ignatii
Brianchaninov, 1807―1867)가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고 은수자 테오판 주교(Theophan, 1815―1894)는 또 다른 러시아어 번역본을 "도브로톨류비예"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어로 된 원본에는 없던 내용을 자신의 영적 경험을 바탕으로 포함시켰으며, 그리스어 판본의 일부분을 알기쉽게 의역하였습니다. 은수자
테오판의 번역본은 모스크바에서 다섯 권의 총서로 출판되어, 첫 번째 권은 1877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1883년, 1885년, 1905년, 그리고 1913년에 각각 출판되었습다. 1883년에 발행된 판본은 1963년
뉴욕의 조단빌에 있는 성 삼위일체 해외러시아정교회 수도원에 의하여 영인본으로 출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본문들은 관상수도 생활을 안내합니다. 성
니코디모스가 말한 대로, 필로칼리아는 '마음의 기도를 배우는 신비로운 학교'가 됩니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심겨진 영적 씨앗을 싹틔우고 힘차게 길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요한 1:12), 그러한 거룩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에페 4:13). 그리하여 내적인 공부, 즉 '그릇의 내부를 깨끗하게 씻어 겉도 깨끗하게 되는 일'에 있습니다(마태 23:26).
필로칼리아는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예수기도를 되풀이하여 언급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기도는 필로칼리아에 내적인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발전된 상태를 헤시키아(hesychia, 이시하시모스)라고 합니다. 헤시키아는 평정과 침묵의 뜻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으로 볼 때 사고가 안정되고 고정되고
집중되어 있는 상태와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이 단어에서 유래된 헤시카즘(hesychasm)은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필로칼리아에 묘사된 영성운동 전체를 가리킵니다. 헤시카즘은 교회의 성사 및 전례 생활의 요체이며 그것은 교회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사 및 전례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동떨어져 영성훈련을 실행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않습니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본문들은 동방 정교회의 성사 및 전례의 틀은 물론이고 동방정교회의 수도원 전통의 틀 속에서 수도자들에 의하여 또 수도자들을 위하여 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 니코디모스는
자신의 서문에서 '쉬지 않고 하는 기도'는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진 덕분에 각 사람은 온전해지는 데에로 부름을 받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로 부름 받습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같은 소명을 가지고 같은 영적인 길을 따라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그 길을 더 잘 따를 것이고 그 길을 열렬히 추구하는 사람은 그 길이 요구하는 것에 맞는 생활 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 방식을 수도원이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원 환경 안에서 그 길을 걷든 밖에서 걷든 간에, 이러한 영적인 길의 목적지는 같습니다. 즉, 필로칼리아는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성취를 이루고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적인 수행 길을 제멋대로 걷지 않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질을 갖춘 스승의 지도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지도를 받을 수 없다면, 교회의 성사 및 전례 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은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길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과 위험을 극복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이 세계의 겉모양과 상태는 변할는지 모르나, 그러한 변화가 인간 상태의 타고난 잠재력과, 인간과 하느님의 친근한 교류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필로칼리아의 가르침과 방법이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우리 인간의 타고난 잠재력과, 인간과 하느님의 친근한 사귐입니다. 그렇기에 필로칼리아가 소중히 품고 있는 많은 조언들은 그것들이 기록되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효력이 있습니다. 필로칼리아는 광야와 같고 공허한 삶, 특히 현대인의 삶을 사랑과 영적인
지혜로 안내하며, 생기가 넘치고 시들지 않는 삶의 비결을 일러줍니다. 우리는 필로칼리아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기도의 삶, 즉,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