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많이 변해 있었다.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뒤 꼭 10개월만에 다시 찾은 북한은 여러모로 바뀌어 있었다. 평양시민들의 표정도 밝아졌고, 거리에 차량도 사람도 많아졌다. 가정의 전기 사정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10월 한국방송공사(KBS)의 남북 교향악단 공연과 남북 국회회담대표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호 영문표기 문제(Corea&Korea) 남북학술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달 19일 평양의 순안 비행장에 도착해 평양시내 호텔로 들어가는 데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역시 거리의 차량이었다. 서울 시내의 차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평양 거리의 차량이 지난해보다는 2배 정도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 안내원에게 “차량이 지난해 보다 많아 진 것 같다”고 하자 그 안내원은 “아무렴 이 정도 차량이 없었겠습니까”라며 약간은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점심 청류관과 함께 평양 냉면으로 유명한 음식점 옥류관을 찾았을 때도 냉면을 먹으러 온 평양시민들과 그들이 몰고온 차량으로 북적거렸다. 차량이 많아 짧은 구간이지만 옥류관 길목에는 ‘트래픽잼(교통체증)’이 생길 정도였다.
전력사정과 경제적 어려움이 지난해 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증거이다. 전력사정의 호전은 평양 시내의 밤 풍경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해 방문했을 때는 시내 한 복판인 고려호텔에 묵었는 데도 저녁 8시가 되면 중심가 아파트들의 전기불이 일제히 꺼져 암흑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광복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밤 10시쯤 나오는 데 인근의 아파트에 여전히 전기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지난해는 숙소인 고려호텔의 방안 불빛마저 희미해 책을 보지 못할 정도였는 데, 이번에 묵은 보통강여관호텔에서는 남쪽의 호텔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불빛도 수돗물도 별다른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북측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작은 수력발전소들을 여기저기 건설해 여름철의 가정용 전기사정은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강수량이 줄어드는 겨울철에는 가정용도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아직 공업용이나 농업용 기계를 돌리는 데는 전기사정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력난을 솔직히 인정했다.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현상들은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었다. 평양시내 곳곳에 우리로 치면 노점에 해당하는 간이 매점대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간이 매점대에서는 빈대떡이나 과일을 팔고 있었는 데, 간이매점대에서 물건을 사려고 줄 지어 있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간이매점대는 자본주의식 시장경제의 한 모습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평양시민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최악의 경제난을 극복하고 전력난이 조금 호전되면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20일 모란봉 을밀대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데 평양시민들이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와 가져온 음식과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서울시내 한강변에 소풍나와 고기를 구워먹는 풍경과 다를바 없었다. 남쪽에서 왔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반갑습니다”며 반기면서 스스럼없이 악수를 했다. “이거 먹어보시라”며 가져온 송편떡을 줘서 맛있게 얻어먹고, 나이든 어머니와 남편, 아내, 딸들로 이뤄진 그들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남쪽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북쪽 사람들도 남쪽 사람들에 대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농사도 아직까지는 좋다며 풍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실제 평양인근과 백두산 인근의 논에는 파란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수확기에 태풍이나 해일을 걱정하기도 했다. 북측 한 관리는 “과거에도 일년동안 농사를 잘 지었다가 수확기 때 태풍등이 몰아쳐 농사를 망친 경우가 많다”며 “수확기 때 날씨와 벼를 짧은 기간에 얼마나 빨리 수확하느냐여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변화가 눈에 띄었으나 여전히 북한체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여전했다. ‘선군정치 강성대국’ 등의 정치구호들은 그대로 였고, 오는 9월 9일의 북한정권 창건 55돌(이른바 ‘9.9절’)을 맞아 대대적인 카드섹션 행사 준비를 위해 평양시민들이 연습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평양시내의 인민대학습당과 주체사상탑뿐아니라 평양 시내 곳곳에서 학생과 일반시민들이 모여 학교별 또는 직장단위별로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는 정권창건 55돌인데다 북핵문제 등으로 인한 주변의 위기상황을 고려해 대대적으로 주민을 동원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주민을 저렇게 행사에 동원하면 오히려 생산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었는 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1866년 9월 고종 당시 미국 선박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켰던 대동강변의 장소에 지난 68년 1월 나포한 푸에블로호를 원산에서 반대편 대동강에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미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대미 항전 승리의 상징물을 대동강에 전시함으로써 승리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븍측 관리는 “지난 99년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 선박을 제주도 멀리 공해상을 거쳐 서해를 통해 견인해 대동강으로 옮겨놓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미항쟁의 근원을 단순히 한국전쟁이 아니라 1886년의 셔먼호사건에서부터 찾고 있었다.
베이징 6자회담을 통해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컸으나 여전히 미국에 대한 불신은 짙게 깔려 있었다. 북한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느냐 여부도 “전적으로 미국의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의 철회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북측 인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뒤이은 주장이 ‘민족공조’였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미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북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하는 두 개의 풍경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평양 시민 몇사람만 모여도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 남쪽에서는 ‘포커’라는 게임을, 북쪽에서는 주패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대동강변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보통강변에 모여 있는 사람이나, 모란봉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몇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낙없이 ‘주패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도박을 해도 단속을 안하느냐고 묻자 북측 안내원은 “돈내기가 아니라 취미삼아 하는 놀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화투놀이를 주로 하는 데, 북쪽에서는 주패놀이가 최고 인기라고 한다. 두 번째 장면은 평양제일보통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평양제일보통학교는 북한의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로, 졸업하면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대학등 최고 명문대학에 주로 진학한다. 이 학교 복도 한중앙에는 수백명의 학생들 사진과 이름이 나붙어 있었다. 각 학년과 반별로 학생들 이름 위에는 ‘1’부터 ‘122’의 숫자가 붙어 있었다. 이 숫자는 다름아닌 성적순을 나타내는 것이다. ‘최우등생 쟁취를 위한 개인별 성적순위’라는 이름의 게시판에는 1등부터 아예 꼴찌까지 성적순을 공개하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꼴찌까지 성적을 공개하는 것을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묻자 학교관계자는 “경쟁을 시켜야 자극이 되어 더 잘하게 된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처음 1학년 때 꼴찌했던 학생이 졸업할 때 1등을 한 적도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 학교 게시판에는 또 “방학은 놀기만 하라는 방학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방학기간에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이다”는 글귀도 나붙어 있었다. 북쪽도 대학들어가기 전에는 엄청난 공부를 하고, 치열한 경쟁을 시키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북쪽사회에서도 성적에는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고, 못하면 취업을 해야합니다”고 말해 진학에 있어서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줬다.
북한에 있어 최대의 특징은 ‘변화’이다. 남쪽의 기준으로 보면, 북쪽의 변화는 미미할지 모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거나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북한은 분명 엄청나게 변하고 있었다. 변화의 밑바탕에는 남북교류를 통한 개방이 깔려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게 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와 관련해 북한의 고위관리는 “대구시민들이 우리가 올 것을 대비해 많은 준비를 했을 텐데 우리가 안가게 되면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겠느냐”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북남간 교류는 계속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또 8월 24일에는 우근민 제주지사 등 제주도민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8월 25일에는 안상영 부산시장 등 부산시 관계자들이 평양을 찾게 된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21일 ‘국호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남토론회’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개최한 것도 남북학술토론회로는 처음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개방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와 비교해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구호가 가끔 눈에 띄는 것도 새로왔다.
백두산 주변도 남쪽 사람들과 외국인들을 맞을 준비를 이미 거의 끝내고 있었다. 22일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 인근 비행장에 내려 버스를 타고 정상으로 2시간정도 달려갔으나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려 결국 백두산 정상인 천지에는 못가도 중도에 하산해야 했다. 백두산 입구의 삼지연부근에는 유럽풍의 이국적인 펜션식 별장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북한에서 유럽풍의 별장이 보다니 눈이 휘둥그래 질 정도였다.
안내원은 “백두산을 국제적 관광지로 개발하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이미 숙박시설 등을 끝냈다”며 “9.9절 행사 때까지는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북측 관리는 “이탈리아는 조상을 잘 만나 매년 관광수입으로만 30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우리도 (이탈리아)못지않은 유적지와 관광지가 많다”고 말했다. 금강산에 이어 백두산도 국제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23일 중국의 베이징을 거쳐 귀환하기 위해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니 공항의 접견실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공항의 대합실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남측인사들과 외국인들이 있었다. 내가 탄 베이징 행 북한의 고려항공에는 한 자리의 빈좌석이 없이 만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땅을 왕래하고 있는 것이다. 순안비행장의 수많은 승객들과 꽉 찬 고려항공기의 좌석은 북한의 변화하는 모습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세상의 변화의 시작은 사람이 ‘오고 가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성호·국회의원(서울 강서을,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지난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국호영문표기문제 남북학술토론회’ 참석차 북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입력 : 2003.09.02 10:06 15' / 수정 : 2003.09.02 10:2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