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길] 사천 고려 현종 부자 상봉길 오가는 길은 멀고 만남은 짧고… 천 년을 이어온 애틋한 ‘부자의 정’을 만나다 Editor. 월간경남 ㆍ글 김규남 작가
2021년 03월호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속에 애초에 길이 있었을 리 없다. 깊은 산속에 처음 길을 낸 사람은 누구일까. 사천 사남면과 정동면을 잇는 고갯길에 길을 낸 사람은 아마도 고려 8대 왕 현종(顯宗)의 아버지 왕욱(王郁)이었을 것이다. 왕욱은 매일 새벽 8km가 넘는 길을 달려 아들 순(詢)을 만나러 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 안타까운 부자상봉의 길이 천 년이 지난 지금 사천을 대표하는 이야기 길로 거듭났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비탈을 오르고 험한 고개를 넘었을 왕욱과 그 길을 같이 걸었다.
왕욱은 고자봉 위에서 아들이 있는 배방사를 몇 번이고 돌아봤다.
사천 사남면~정동면 잇는 고갯길 8.3km 귀양 갔던 고려 현종 아버지 왕욱이 아들 만나러 다닌 길
여행객이 걷기 편하게 단장된 길
사천 ‘고려 현종 부자 상봉길’은 고려 현종의 아버지 왕욱과 그의 아들 왕순의 애틋한 부자의 정이 담겨 있는 길이다. 능화마을에서 시작해 안종능지, 고자정, 고자실(학촌마을)을 지나 대산마을과 배방사지를 잇는 8.3km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귀양 온 죄인 신분이었던 왕욱은 낮에만 아들과 만날 수 있었고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때문에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아들이 있는 배방사까지 걸음을 재촉하며 내달렸을 것이다. 가는 길은 멀었지만, 그 짧은 만남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이 험한 길을 넘었을 것이다.
고려현종 부자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
고려현종 부자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
벽화에 담긴 부자의 정
상봉길의 시작점인 능화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왕욱과 순의 이야기가 벽화가 돼 온 마을을 꾸미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벽화를 보며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물렀다. 벽화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왕욱과 어린 아들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마을 입구에는 ‘풍패지향(風沛之鄕) 사천’이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다. 풍패지향은 제왕의 고향이란 뜻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왕이 없는데, 어째서 사천이 풍패지향의 이름을 얻게 됐을까. 그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현종은 왕위에 오른 후, 사천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 풍패지향으로 명했다.
고려 현종에게 사천은 ‘마음의 고향’
이야기의 주인공인 왕욱은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이다. 왕욱은 고려 5대 왕 경종의 계비인 헌정왕후와 사통해 아들 왕순을 낳았다. 헌정왕후는 아들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왕욱은 선왕의 태후를 범한 죄로 사수현, 즉 지금의 사천시 사남땅으로 유배됐다. 992년의 일이었다. 당시 왕이었던 성종은 모가 죽고 부는 귀양간 어린 왕순을 불쌍히 여겨 궁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왕순이 자라면서 아버지를 찾자 성종은 순을 사수현 정동 땅 배방사(排房寺)라는 절에 보내 살게 했다. 죄인인 아버지에게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왕욱은 사남에서 정동까지 8km가 넘는 길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다녔다고 전해진다.
고려현종 부자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왕욱과 어린 현종
이렇게 힘들게라도 아들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3년 남짓이었다. 왕욱은 귀양 4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왕순은 배방사에서 더 머무르다 6살이 되던 해에 개성으로 올라갔다. 이후 1009년에 왕위에 올라 고려 8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현종은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 왕욱을 효목대왕이라 높이고 묘호를 안종이라 했다. 또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사천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 사천을 ‘풍패지향’으로 명했다.
아들 만난 후 돌아오던 길 들르던 봉우리 ‘고자봉’은 어린 아이 있는 배방사 돌아보며 그리워하던 곳
이정표를 따라 천 년 전 왕욱이 걸었던 길을 같이 걸었다.
자꾸만 그리워 돌아보던 곳, 고자봉(顧子峯)
능화마을에서 배방사로 가기 위해서는 봉우리를 하나 넘어야 한다. 왕욱은 배방사에서 아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봉우리 꼭대기에서 아들이 있는 곳을 계속 돌아봤다고 한다. 아직 어린 아이를 두고 돌아가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방금 보고도 금세 보고 싶은 마음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아들을 돌아본다’는 의미로 고자봉(顧子峯)이라 불렀다. 사천시에서는 지난 2015년 이곳 고자봉 산꼭대기에 고자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여행객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쉬어갈 수 있게 했다.
고자정에서 산길을 조금 더 오르면 왕욱이 묻혔던 안종능지(安宗陵址)에 닿는다. 현종이 왕위에 오른 후 시신을 경기도로 옮겨 건릉이라 이름 지었으며, 이곳에는 터만 남아 있다.
당시 왕욱은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는데, 능화마을 위 능화봉이 임금이 날 자리라는 것을 알고 아들에게 ‘자신이 죽거든 이곳에 매장하되, 반드시 엎어서 묻어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시체를 엎어서 묻으면 임금이 더 빨리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순은 아버지가 떠난 지 13년 만에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는 죽어서도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을까?
고려현종 부자상봉길
‘배방사지’ 비석이 증명하는 현종의 추억
대산마을에서 배방사지까지 오르는 길을 걸었다. 아마 이쯤에서 왕욱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배방사지로 오르는 길을 걸어 목적지에 닿았지만, 배방사는 보이지 않았다. 현종이 내려와 6살까지 지냈던 절은 이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배방사지에는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 당시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배방사는 없어졌지만 한때 이곳에 가득했던 어린 현종의 웃음과 아들을 보기 위해 험한 산비탈을 걷고 또 걸었던 아버지의 사랑은 여기에 남았다.
사천 정동면에선 매년 ‘고려현종대왕제’ 열려 부자상봉길 걸으며 사람의 정 느끼는 추억 만들기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걸어보는 길
사천시 정동면에서는 매년 ‘고려현종대왕제’를 열어 현종과 왕욱을 기리고 있다. 고려현종대왕제 기간에는 배방사지까지 3km가량 걸어가는 ‘부자상봉길 걷기’를 통해 부자의 정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행사도 펼치고 있다.
왕욱이 걸었던 모든 길이 아니어도 좋다. 구간을 정해 짧은 길이라도 함께 걸으며 그 고단했던 걸음에 발을 포개어 보자. 그렇게 걸으며, 가까이 있어 그리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소원해지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왕욱은 혼자서 울며 걸었을 길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지 않은가. 마침 계절은 겨울을 끝내고 걷기 좋은 시절을 향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ㆍ글 김규남 작가 ㆍ사진 전강용 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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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려 현종 부자 상봉의 길]
시작 : 능화 벽화마을, 도착 : 배방사지
총거리 : 8.3Km, 소요시간 : 3시간 30분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의 벽화마을을 둘러보며 그 시대의 애틋한 사연을 되새겨본다.
[고려 현종 부자 상봉길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