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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美 금리인상과 글로벌경기 침체
1. 제2차 세계대전과 US달러 기축통화
뒤늦게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진행 중이던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통화금융회의를 개최하여 각국의 통화가치를 US달러 기준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미국 달러기준의 고정환율제도(달러-금 본위제도)를 결정했다.
브레튼우즈체제가 출범하면서 파운드 기축통화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US달러가 새로운 기축통화로 등장했다. 하지만 US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를 잡는 데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특히 미국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소련과의 우주전쟁으로 금 보유량의 4~5배에 달하는 달러를 찍어냈다. 미국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량만큼의 금을 비축해야 했으나 유통에 한계가 있었던 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은 금태환을 정지시키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쇼크’다.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신뢰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미국을 앞세운 국제투기자본은 제1차 석유파동이 시작되던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산유국들이 원유 대금을 US달러 만으로 결제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금으로 보증되던 금본위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석유로 보증되는 석유달러본위제도가 새로이 정착하게 된다.
1970년대 제1-2차 석유파동에서 큰 돈을 벌었던 미국 최고의 갑부 석유왕 록펠러 등 국제투기자본은 1974년까지 1달러에서 머물렀던 원유 가격을 1980년(1979년 이란혁명) 38달러까지 끌어올려 자신(국제투기자본)들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등 중동 왕정들에게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US달러는 기축통화로 확고히 자리잡았고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2. 1970년대 이후의 달러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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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의 디폴트 선언과 함께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등 국제헤지펀드가 등장했다. 이들은 국제투기자금을 동원하여 US달러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과 시점까지 정해놓고 금, 은, 원유 등 원자재와 달러인덱스, 일본 엔화, 독일 마르크화 등 환율에 투자했다.
또한 이들은 US달러를 이용하여 글로벌경기사이클도 키친파동(5년), 쥬글라파동(10년), 콘트라티예프파동(30~50년) 등 자신들이 원하는 기간을 정해놓고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CNN, BBC, 블룸버그통신 등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를 통하여 역(거짓) 정보를 흘려서 투기수익을 극대화하여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 제1·2·3차 달러약세기
가. 제1차 달러약세(하락)기
미국은 소련과 우주정복을 경쟁하는 동시에 중동전쟁(1~4차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무리하게 진행하면서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금본위제도’였기 때문에 화폐를 발행한 만큼의 금을 확보해야 했다.
미국의 화폐발행이 과도했고 당시에는 광물(금 등) 생산의 속도에도 한계가 있었던 때라 화폐 발행량만큼의 금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대규모 화폐발행으로 1914년 금본위제도를 포기(영국의 금태환 정지 선언)한 경험이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 등 채무국에서는 “달러를 돌려 줄 테니 금을 내놓아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보유한 금이 없다.”며 금태환을 정지하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정지를 선언했던 ‘닉슨쇼크’다. 달러인덱스는 하락을 시작했고 [제1차 달러약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 제2차 달러약세(하락)기
[제2차 달러약세기]는 1985년 ‘플라자합의’로 시작되었다. 미국, 영국, 일본, 서독, 프랑스 등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 등 금융수뇌부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일본에게 대(對) 미국의 무역흑자 규모가 과다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출 규모를 줄이라고 압박하면서 그 대안으로 일본 엔화(독일 마르크)를 강세로 유도하자고 결의했다. 즉 일본 엔화 강세 → US달러 약세 유도였다.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플라자합의는 일본 수출기업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한국 수출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미국은 [美?日 비밀반도체협정]을 통하여 일본 반도체 전체 매출의 50%까지 줄일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압박으로 일본 반도체산업은 급격히 후퇴했고 전기전자, 자동차 등 수출기업들 또한 플라자합의와 함께 시작된 엔고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로 들어섰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엔고현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저환율(원화 약세) 정책을 유지했던 한국의 반도체(삼성전자), 전기전자(삼성전자, LG전자), 자동차(현대차) 등 수출기업들이 고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1990~2000년대 엔고현상으로 나타난 일본 수출기업의 침체가 한국 수출기업에는 전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2010년대는 한국의 수출기업이 떠오르는 중국 수출기업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 모든 현상들이 국제투기자본의 전략·전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이 들은 이 흐름을 이용하여 매수·매도를 반복하면서 천문학적인 수치의 차익을 챙겨왔다.
다. 제3차 달러약세(하락)기
유대국제투기자본(미국)은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유대인) 美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극비리에 중국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美·中 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일명 핑퐁외교다. 핑퐁외교는 1979년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는 결실을 맺게되고 중국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일로 헨리 키신저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며 세계 최고의 외교전문가로 등장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1976년) 이후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하면서 안정적인 고성장을 시작한다. 19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외환위기도 있었지만 GDP 성장률은 10% 내외를 유지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또다시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2000년대 중국 등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고성장은 일본 엔화 자금은 물론 US달러 자금까지 빨아들였다. 즉 일본을 떠나 전세계로 흩어졌던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중국 등 신흥국으로 이동했고, US달러캐리트레이드 자금도 중국 등 신흥국으로 유입됐다.
특히 중국은 2005년 7월 위안화 평가 절상(위안화 강세)을 단행했다.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자 미국 자산을 매도하고 중국으로 이동하는 자금의 규모가 커졌다. US달러캐리트레이드 자금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가파르게 상승(강세)하고 미국 US달러 가치는 급락(약세)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제3차 달러약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 제1·2·3차 달러강세기
가. 제1차 달러강세(상승)기
미국은 1971년 닉슨쇼크 즉 디폴트(채무불이행)선언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경기가 위축되고 GDP 성장률도 하락했다. 그러나 US달러의 약세로 수출산업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1973년부터 GDP성장률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1977~81년에는 오히려 금리를 인상했을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럼에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88년)이 당선되면서 공격적인 부양정책을 시작했다. 일명 ‘레이거노믹스’다
미국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의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前대통령)가 부통령으로 실질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이 기간에 미국은 이란-이라크 8년 전쟁(1980~88년)으로 이라크에 무기 등 군수물자를 대면서 군수산업이 고성장했고, 레이건 대통령의 공격적인 부양정책으로 GDP 성장률이 1980년 -2.2%에서 1988년 5.9%로 호전됐다.
국제투기자본은 US달러를 매집했고 이후 경기의 성장 흐름을 이용하여 급등으로 유도했다. [제1차 달러강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 제2차 달러강세(상승)기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과 1991년 12월 25일 소련 붕괴로 유럽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먹이 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통일독일은 낙후된 동독지역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동독의 요구에 따라 동·서독 마르크화를 1:1로 교환해주는 등 대량의 화폐를 발행할 수 밖에 없었다. 통일독일은 가파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여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독일 마르크를 매수하고, 영국 파운드를 투매하여 1992년 9월 영국 중앙은행의 항복을 받아냈다. 조지 소로스가 1조원의 이익을 챙기는 등 국제투기자본은 단기간 천문학적인 수익을 실현했다. 이후 이들은 1992~3년 프랑스, 스웨덴 등 전유럽을 휩쓸었다.
영국 등 전유럽을 환투기로 휩쓸었던 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1994년 멕시코로 이동한다. 미국이 금리인상(1994. 2 ~ 1995. 2)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제투기자본은 US달러를 매수하고 멕시코 페소를 투매하여 멕시코를 위기로 몰아세워 외환위기로 빠뜨렸다. 멕시코는 1994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외환위기가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포식하고 멕시코에서도 맛을 본 국제투기자본은 아시아로 이동한다. 1997년 1월 1일 홍콩반환이 먹이 감이 되었다. 영국의 홍콩 중국반환으로 홍콩의 부자들은 부동산, 증권 등 자산을 매도하여 해외로 떠나면서 홍콩달러 가치는 하락(약세)하고 US달러 가치는 상승(강세)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국제투기자본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1997년 1월 홍콩 등 중화권(홍콩, 대만, 중국 등 주변 중화권이 공동 대응) 공격을 시작했다. 국제투기자본의 중화권 공격은 중국의 경기 둔화로 이어졌고, 중국의 경기둔화로 체질이 허약해진 아시아는 하나 둘씩 국제투기자본의 먹이 감으로 전락했다.
1997년 4월 태국을 비롯하여 1997년 7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1997년 11월 한국까지 아시아 전역이 외환위기에 시달렸다. 이후 1998년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지불유예선언)으로 이어졌고, 2000년 1월 브라질과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또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서 남미까지도 외환위기에 시달렸다.
US달러는 가파르게 급등(강세)했고 신흥국의 화폐 가치는 하락(약세)하면서 신흥국의 자금이 모두 미국으로 이동하는 ‘쏠림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제1차 슈퍼달러시대]가 도래 했던 것이다.
※ 1990년대 외환위기 순서
1992년 9월 영국 → 1993~4년 유럽 전역 → 1994년 12월 멕시코 → 1997년 1월 홍콩 등 중화권 → 1997년 4월 태국 → 1997년 7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 1997년 11월 한국 등 아시아 전역 → 1998년 8월 러시아 → 2000년 1월 브라질 →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전역
다. 제3차 달러강세(상승)기
미국은 2000년대 법인세를 올리는 등 기업환경을 어렵게 하여 미국내 기업들을 중국으로 내보내는 Off-Shoring 정책으로 US달러 약세 → 중국 위안화 강세를 유도했다. 그러나 2010년대는 법인세를 내리는 등 기업친화정책으로 2000년대 중국으로 내보냈던 기업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Re-Shoring 정책으로 중국 위안화 약세 → US달러 강세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부터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2008년 국제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미 제로금리(0~0.25%)까지 내렸던 미국은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카드가 여의치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QE)를 선택했다.
미국은 2009년 3월부터 5년여간 양적완화(QE)를 시작하여 시장에 쏟아낸 자금은 4조 5,000억달러에 이른다. 지금 미국 중앙은행인 Fed는 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2014년부터 Tapering(단계적 양적완화 축소)을 시작했고 2015년 12월 첫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리고 올해 내내 글로벌 불확실성을 이유로 금리를 동결해왔으나 오는 12월 제2차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다. 이미 월가(Wall Street)에서는 오는 12월 금리인상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빠르면 11월 금리인상설도 나오고 있다.
올해 금리인상이 물꼬를 트면 내년부터는 금리인상에 속도가 붙으면서 [제3차 달러강세(상승)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견된다. 1990년대 [제1차 슈퍼달러시대]에 이어 [제2차 슈퍼달러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3. 2011년 4월 국제헤지펀드의 자금 이동
가. 2011년 4월 국제헤지펀드 달리인덱스 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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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금, 은, 원유 등 원자재를 매도하고 달러인덱스 매집을 시작했다. 또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서는 비밀중기통화정책회의(Discussion of Medium-Term M"ko">.
비밀중기통화정책회의는 당시 Fed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와 부의장 재닛 옐런, 뉴욕연방은행 총재겸 Fed 부의장 윌리엄 더들리 등 유대인 Fed 3인방과 대통령 지명직 이사 2명 등 5명이 지역연방은행 총재들을 제외하고 별도로 모여 중기간 US달러를 강세(상승)로 유도하자고 논의했던 비밀통화정책회의다.
나. 2011년 4월 국제헤지펀드 금(SPDR) 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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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금, 원유 등 원자재 시장에서 매도한 자금으로 달러인덱스를 지속 매집했으며,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2013년 1분기에 금(SPDR)을 전량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 2011년 4월부터 신흥국에서 국제투기자자금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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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재정위기(2011~2013년)가 시작된 것은 2011년부터였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글로벌경기가 둔화되면 금, 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하락하고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의 경기는 침체에 빠진다.
브라질, 칠레, 러시아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2011년 4월부터 국제투기자금이 이탈하면서 환율이 상승(약세)으로 전환했다.
라. 달러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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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오는 12월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내년에는 금리인상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미국의 US달러 가치의 상승(강세)은 가파르게 진행되고 반대로 신흥국의 환율 가치의 하락(약세)에도 가속도가 붙으면서 [제3차 달러강세기] 및 [제2차 슈퍼달러시대]가 도래한다.
글로벌경기는 침체로 빠져들고 국제투기자본의 공격 정도에 따라 신흥개도국은 금융위기 및 외환위기로 빠져든다. 한국도 경기가 침체로 빠져들면서 수출산업은 위축되고 내수산업(제약산업, 음식료품, 화장품 등)은 성장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그리고 신성장산업은 정부정책의 강도에 따라 각각 성장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글로벌경제연구소 김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