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도 못하는 고무대야가 엎드린 채 끝내 품었던 것들 습습한 부엽토와, 부엽토에 반쯤 파묻힌 소주병과 손잡이가 빠진 호미와 푸석해진 검은 비닐봉지와, 비닐봉지 속 여전한 영빈중화반점 일회용 라이 터와 판콜에이 갈색병과 그런데 저 빨간 고무대야는 언제부터 엎드려 있었을까? 지난 늦여름 붉은 흙에 엄마를 묻고 있을 때 한낮 햇살 아래 한갓진 흰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오래전 가을 아버지를 묻을 때도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는데 열리면 움직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 누가 다녀간 걸까? 인기척에 놀란 지네인지 노래기인지 소주병에서 뛰쳐나와 으다다다 다 급하게 마른 풀더미 틈으로 사라졌다 더는 지키지 못한 아버지 취중 진 담처럼 그래 판콜에이는 아버지 만병통치약이었지 비닐봉지를 들어내자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 가까스로 기어가다 피딱 지처럼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덩굴 열매들 사이에서 그쳐 섰다 엄마도 먼 길 가다 느릿느릿 멈춰 서곤 했는데 왜 하필? 지렁이도 오래 그치면 큰 개미들 몰려올 텐데 봄은 어디까지 왔나 한식 즈음이면 식솔들을 이끌고 발부리로 땅을 툭 툭 차며 소주와 간편 제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산길을 오른다 생전의 아버지 엄마처럼 유해한 몸으로 품어내는 무해한 것들도 있는 거라며 한식에 한나절을 슬다 유해한 것들을 고무대야에 쓸어 담아 산길을 내 려온다 누가 생일을 맞았는지 마을 사람이 팥시루떡을 돌리고 있다 엄마 아버지는 이제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인간을 버리고서야